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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참전복 개도마을 체험/gaedo.invil.org -기간 2008년 5월3일-5월5일 -참가자 : 나천수 가족들 25명 O 연락처 : 개도마을 위원장 김정숙/011-621-8943 센타관리자 최동운/ 017-621-0244 O 기본 예산 : 120만원 O 주요 일정 스케쥴 < 2008년 5월 3일/토> - 12:30 여수중앙동 중앙파출소 물양장내 주차 후 집결, - 12:30-13:30 : 오찬 - 14:50-15:50 : 한려 페리 승선 - 16:00 : 숙소 도착, 여장을 풀고 - 16:00-18:00 : 개도지역 탐사 - 19:00 -20:00 : 만찬/남기고 싶은 이야기 쓰기 < 2008년 5월4일/일> - 09:00 ; 아침식사 - 10:00-14:00 : 양식장 체험 및 오찬 전복따기, 바다낚시 등 - 14:00-15:30 : 섬 일주 - 15:30 - 자유시간, 갯바위 낚시 등 -19:00 : 만찬/남기고 싶은 이야기 쓰기 < 2008년5월5일/월> - 09:00 : 아침식사 - 10:00 - : 갯바위 낚시, 봉화산 등산 등 - 11:45 - 여수항으로 이동/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출 - 여수항에서 오찬 후 해산 O 배삯 : 1인당 5700원, 차량 2만원 |
◯ IT벽을 넘으면 세상이 보인다.
세상은 보이지 않은 인연의 실로 네트워크된 것 같다.
여수에서 배로 한 시간 거리인 개도마을을 정보화마을로 지정하여 오픈 행사에서 참석하여 축사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5년이 흘렀고, 5년 후에는 내가 개도 체험 손님으로 방문하게 된 것이다.
농어촌이 산업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힘든 업종이 되어 붕괴되어 가고 있다. 소위 3농(농업, 농촌, 농민)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뚜렷한 방책이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고품질 먹거리 생산으로 3농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제 희망이 없어 보인다. 도대체 어찌해야 3농이 살아날 것인가.
그것은 3농 자체를 상품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공직30여년의 마무리를 정보화에 5년간 몸을 담고 있으면서 농어촌의 살아날 길은 농어촌에 지식정보화 즉 IT, BT, CT, ET, NT. ST, DT 등을 접목 시키는 것이라고 갈파하고 정보화 마인드 함양 교육에 심혈을 기우렸다.
농어촌에 IT인프라를 구축해주고 정보화 교육을 시키는 것 그 자체가 3농에 지식정보화를 접목하는 프로세스라고 본다.
그 결과 정보화마인드로 재 탄생한 3농의 성공마을에서 희망이 있어 보인다.
정보화 그 자체가 농민이 이용하면 농기구가 되고, 장사하는 농민이 이용하면 마케팅 도구가 되고, 나아가 백화점으로도 활용할 수 있고, 세상 살아가는 넘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요술상자이다.
그러니 현대인은 반드시 IT벽을 넘으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농어촌이라고 IT벽을 넘지 않는 것에 관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IT인프라 구축할 때는 다만 IT벽을 넘을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만들어 주면 다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실전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1차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식해 주었지만 그에 따른 방법 하나 하나에 힘든 문제점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문제가 뒤따르고 있다.
쉽게 말해서 자동차만 사주면 되는 것 같아도 운전도 가르쳐야 하고, 운전이 되면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역할이 무엇인가.
밑바닥의 주민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끝없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1사 1정보화마을 자매결연 추진
2005년도에 1마을 1사 자매결연에서도 나는 여수지역 3마을(돌산, 개도, 거문도마을)을 화천기공과 연결해 주었으며, 화천은 기념으로 마을에 각각 몽골 텐트를 선물로 주었다.
아마 이때부터 섬지역 정보화마을 활성화에 관심을 보인 것 같다.
화천기공 회장이 친구라서 특별히 부탁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졌고 2005년 한강 여의도 축제에서 자매결연 체결을 한 것이다.
이러한 것도 물론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섬마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해산물의 판촉에 있기에 도시 소비자와의 고리를 맺어준 것이다.
◯ 회접시 택배(DT) 사업 추진
3어(어촌,어업,어민)이 살아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마케팅의 기법이 달라져야 한다. FTA가 체결되면 단순히 가격경쟁력으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어촌 양식어민들의 말을 빌리면 기술적으로 양식은 할 수 있지만 이 상품을 파는 것은 별개의 기술이 필요 하자는 것이다.
그 별개의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회접시 택배라고 판단하였다.
이것은 발상의 전환이요, 마케팅의 혁신인 것이다. 도시 소비자들이 생각할 수 없는 신선한 회를 접시로 담아 택배로 보낸다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수원 원수원에서 1년간 장기체류 하숙한 인연으로 알고 지내는 수원 노송 하숙정보화마을과 개도 참전복마을과 연결해 주고자 양 지역 대표자가 지난 2월 전국정보화 지도자 대회에 참석을 계기로 양쪽 대표자를 면담 소개 시켜주었다.
그리고 섬마을과의 "회접시" 택배의 자매결연 제의를 하였다.
구두의 제의지만 긍정적으로 받아졌고, 그 자리에서 개도마을 위원장 김정숙과 노송마을 대표 최혜경과 만나 쌍방간에 상호 방문을 약속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2008년 3월 000일 개도마을측 대표단이 노송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가면서 "회접시"견본과 아울러 풍성한 해산물 선물을 가지고 가서 선을 보인 결과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자리에서 준비해온 양 마을 간의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그 후 광주고속 버스편으로 지속적으로 회접시 택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회접시 택배가 붐을 타면 어촌은 반드시 살아한 것이라 믿는다.
택배비용은 개도마을측이 부담하고, 노송마을 측은 수원 고속버스 터미널에 직접 와서 택배물건을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고속버스측은 집까지 택배를 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객이 직접 지정된 시간에 도착한 버스편에서 물건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양 마을간에 이러한 택배 시스템에 상호 합의 하였으므로 전혀 문제없이 잘 진행 되고 있다고 한다.
노송마을측 대표단도 3월 00일 개도마을을 직접 방문하여 돈독한 유대관계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앞으로 회접시 택배가 성공하면 어촌은 분명 살아날 것이라고 본다.
◯ 어촌, 이것이 바로 팔아야할 문화상품(CT)이다.
농어촌 즉 1차산업을 경제활동으로 하고 있는 지역은 지식정보화 시대에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다만 흙에서 재배한 먹 거리, 바다 물속에서 잡아 올린 먹거리 만으로는 소비 고객의 마음을 잡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과거에는 먹 거리 부분이 상품의 주가 되었다면 지금은 농어촌 자체가 문화상품(CT)으로 변신하여야 하고, 먹 거리 부분은 문화상품에 끼워파는 종속상품이어야 한다.
FTA 이후에는 정말 먹 거리 부분에 국경이 없는 경쟁사회로 변한다. 지금 그러한 진통을 하고 있다. 외국산 저가상품이 우리의 식탁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완전 개방되고 이어서 다른나라에서도 가세하여 국산 농어가를 위협하고 있다.
먹 거리 부분으로는 가격경쟁력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농어촌에서는 팔아야할 주상품을 외국산과 경쟁이 되지 않은 품목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문화 상품이다.
농어촌은 멋과 맛, 어머니의 품, 고향이라는 향수의 원천이다.
이 향수의 원천을 외국산이 절대 넘어올 수 없는 방어벽이다.
세멘트, 아스팔트 속에서만 사는 도시 고객은 주말만이라고 탈도시하여 농어촌 향수의 품속에 안기고 싶어 한다.
위가가 항상 기회이듯, 한국 농어촌의 위기를 이러한 문화상품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정보화마을 포탈사이트 invi.org 에 들어가면 다양한 상품이 진열되어있다. 먹 거리, 볼거리, 놀 거리 등 그야말로 백화점이다.
그러나 고객을 오지 않으면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서울 등 도시 고객과의 지리적 원거리에 있을 때는 손님 고객이 잘 오지 않는다. 섬마을은 더욱 그렇다.
위기의 3농을 살려 보자고 추진한 정보화마을 사업이 성공하도록 지도, 강의를 했던 내가 공직에서 은퇴하였다고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농어촌 활성화를 위한 소신과 철학이 은퇴하였다고 그 정열이 식어지거나, 변질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은퇴 후에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인데, 끝없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접근의 길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공직 은퇴 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주니 마을 측에서도 고마워하고 있다.
대전에서의 개도마을 김정숙 위원장을 만나고 마을 체험 분위기를 물어보니 전혀 외딴섬으로 고객이 찾아오지 않는다 하여 내가 단체 고객을 이끌고 첫 고객으로 가겠노라 약속했다.
2월에 한 그 약속이 5월에 실현되는 것이다.
막네 동서네 집이 광주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집들이 이사 턱을 외지로 나아가 콘도 빌려서 1박2일 정도 놀러가자고 하여, 이왕 돈을 들여 할 때에는 우리 지역 상품을 사주자고 내가 조정한 것이 처가식구들 모두 대찬성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여수 개도 섬마을을 소개 하였다.
육지 사람들은 섬에 대한 동경심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다.
콘도보다 더 멋진 바닷가 마을 민박집에서 2박3일 정도 휴식하는 것이 더 멋질거라 이구동성으로 환영하였다.
나는 우선에 김정숙 위원장에게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서, 처갓집 친인척들 20여명 이상이 5월3일부터 5월5일까지 섬마을 체험 갈 거라는 사항을 전화로 예약을 하였다.
이 때문에 최동운 정보센타 관리자도 개도마을 홈페이지(gaedo.invil.org)에 체험상품을 올려놓아야 했다.
나는 gaedo.invil.org 홈페이지를 통해 체험상품 구매예약을 하였다. 우산 참여 숫자가 정확하지 않으니 20명 기준으로 체험가격 120만원을 예약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다음날 지정계좌에 대금을 송금하였다. 내가 이러한 절차를 하나 하나 밟는 것은 눈밭에 발자국 남기는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내가 한번 찍어 놓은 발자국 따라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품 구매를 하다보면 많은 부분에서 개인의 주민등록을 기재토록 되어있다. 물론 체험 상품도 자동보험 가입을 위해 참여자 개인의 주민번호가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참여자의 주민번호를 몰라서 나를 대표자로 하여 숫자만 기록하고 개인 이름은 기록치 않았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서울 삼성SDS관리자 측에서 개인보험을 위해 이름만이라도 알려 달라 하여 전화로 참가자 이름 26명을 모두 알려 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 남도 다도해에는 섬이 2천여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바다에 있다고 예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보물은 바다와 섬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다를 점령해야 세상을 점령한다 했다.
그러한 바다와 섬이 남도에는 2천여개로 전국의 60%라고 한다.
해안선 길이도 6천여 km이니 해안선의 아름다운 풍광이 끝없이 이어진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점에서, 바다위에 떠있는 섬에서 남도 사람들의 한(恨)이 동편제, 서편제 소리로, 남종화 그림으로, 남도 가사 문학으로 승화 되었으니, 작가 유홍준이 한번 가볼만한 문화 답사 지역을 남도1번지로 추천하지 않았는가.
남도답사 1번지 그 길에는 우리의 문화상품이 즐비하다. 우리의 혼,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유홍준이 남도 땅을 추천한것이라고 본다.
개도 섬마을이 있는 다도해도 우리의 혼이었다.
◯ 여행의 즐거움과 개도 섬마을 풍광
2008년 5월3일 여수 중앙파출소 옆 포구에 10집 가족식구들이 모인 시간은 12시30분경이었다. 참으로 좋은 것은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목적지를 초행길이어도 방향을 잡아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10집식구들 26명(어른18, 어린이 8)은 복춘집 항구식당에서 서대 초무침 요리와 아구찜을 주문하였다. 서대는 원래 "보리 익을 때 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5-6월경의 서대는 진미가 있는데, 이 서대 초무침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로 별미이다.
2시50분 여객선은 우리 일행과 자가용 전부를 싣고 출발하였다.
움직이는 물체 위에 내 몸을 싣는다 는 것은 왜 즐거울까. 버스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끝없이 자신의 위치를 변동 시키는 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움직이며 그려내는 궤적의 모습이 평상과 다르기 때문 아닐까. 아니면 인생 그 자체도 태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궤적을 그려 내고 있으니, 이러한 여행도 인생의 축소판 궤적을 그려내니 그리 즐거운 것 같다.
바다에서 보는 육지는 아름답다. 배가 움직여 육지를 지나치며 가니 풍광의 모습은 육지가 변하고 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변하는 육지 풍광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야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듯하니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여수항을 떠난 배는 1시간 후에 제도에서 잠시 머물러 제도 손님을 내려주고 곧바로 출발하여 5분후쯤 개도 섬마을에 도착하였다.
개도항구에는 정영호 정보화마을 총무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영호 총무(hp017-621-0244)는 개도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찾아오시는 손님에게 자신의 집 본체를 통째로 민박집으로 내어주시는 분이다.
이번에도 우리 일행을 위하여 체류기산 동안에 식사며, 잠자는 민박 서비스를 제공하여 준다.
2박3일 동안에 5식의 식사를 하였는데, 시골 맛, 어촌 맛 다 내면서, 깨끗하고 정갈한 음식 솜씨가 참가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극찬하였다.
우리 일행 중에는 현직 교수가 4명, 퇴직교수가 1명, 사업가 사장 등 다양한 엘리트 계층이 있어 대체로 국내외 출장을 자주 하므로 출장지역의 인심과 음식의 맛을 체험할 기회가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 입에서 "엑설런트"라는 말이 나왔으니, 본 계획을 입안한 나로서는 참으로 다향한 일이다.
우선 우리는 개도 섬 중앙에 위치한 마을 안 산등성 위쯤에 있는 민박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방이 3개, 큰 거실이 한 개, 주방과, 욕실이 각각 별도로 있어서 우리처럼 20명이 넘은 대식구를 수용하는데 충분하였다.
나는 이 섬을 두 번 와본 적이 있다.
정보화마을 구축을 위한 설명회 때와 정보센터 개소식 때에 와서 특강과 축사를 하였던 마을이다.
그래도 처음 온듯하다.
애들은 4살부터 중학생까지 8명이나 되어 민박집이나 체험기간 내내 소란하였다. 모처럼의 전 가족 만남이 되어서 잠도 자지 않고 대화하고, 놀고, 먹고 한다. 요즘처럼 핵가족 시대에 10집 가족이 한자리에서 모인다는 것은 어렵다
민박집이 좀 높은 언덕위에 있어서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건너편 산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산의 나무들 입새는 녹색의 향연을 하듯 오직 녹색 물감 풀어 화폭에 동양화 한 폭 그린 듯 보인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사람 사는 동네는 그 그림속의 양념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니 건너편에서 내편을 바라다보면 나는 녹색의 동양화 한 폭 속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민박집과 바닷가 횟집 식당까지는 1키로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모두들 운동 삼아, 구경삼아 걸어서 다녔다.
저녁은 회가 곁 드린 한식인데, 4명 1식탁에 회가 많이 담긴 한 접시씩 놓여졌다. 도시의 식당보다 훨씬 양이 많아 보이고 회의 두께도 볼륨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로해서인지 부드럽고 감칠맛이 난다.
농어와 돔의 회 맛이 술맛을 더욱 좋게 한다. 우리 일행은 대부분 술을 못하지만, 경상북도 안동에서 온 동서(이서방)와 서울에서 온 처제 남편(김서방)이 그런대로 술을 대작하여 마시니 분위기는 좋아졌다.
애들도 평소에 회 맛에 길들여진 듯 회를 잘 먹었다.
민박집은 밤늦게까지 10집식구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모두 셋방, 큰 거실 하나에 나누어 잤다.
개도 섬마을 둘째 날은 일요일이다. 이 마을 특징이라면 특징인 것이 섬 주민 80%이상이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섬 주민 1300명인데 기독교 교회가 6개이다.
정보화마을 김정숙 위원장은 교회의 장로이고, 센터 관리자 김상운은 교회에서 음악담당이라 하여 체험 고객인 우리들과는 교회 예배가 끝난 오후에 부터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오전 중에 개도마을을 순회하면서 구경하였다.
완도 정도리 돌보다는 적고, 보길도 예송리 돌보다는 큰 둥글둥글한 돌들이 해변에 깔려있는 해변 모전 자갈밭, 그 위를 걸으면 돌 소리가 나서 좋았다.
어디를 가나 해변 풍광이 극치인 듯 하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경에 우리는 김상운씨가 운전하는 배를 타고, 약 2km거리에 있는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양식장 밭으로 갔다. 양식장은 돔, 우럭, 전복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커다란 바지선 위에는 간이형 휴게소 집을 지어 육지의 물을 호스로 이어놓고, 전기도 수중으로 선을 이어놓아 육지 횟집처럼 분위기 좋은 시설에서 즐길 수 있었다.
당초계획에는 낚시 체험이 있어 나는 갯바위 낚시나 배낚시를 할 줄 알았는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양식장 낚시를 하였다.
그동안 FS낚시 방송을 보았기 때문에 바다낚시가 무엇인줄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생전 처음 월척의 돔 낚시의 손맛을 느껴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여행의 맛이었다. 손맛을 느껴 보려는 것은 어른분만 아니라어린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미끼를 끼워 넣으면 30초도 안되어 월척의 돔이 낚였다. 나중에는 미끼가 없어서 빈 낚시 바늘만 넣어 낚시줄을 이리저리 움직여 주니 그 바늘도 미끼인줄 알고 불었다.
잡은 돔 물고기는 즉석에서 회를 쳤다.
바지선 위에 간이 주방시설에는 음료수는 물로 주방의 서실까지 다 갖추어 놓고 오신 체험 고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돔 양식장은 바다 밖 가까운 쪽이라면 전복 양식장은 육지에 가까운 비교적 태풍의 피해를 덜 받는 섬과 섬 사이 안쪽에 있었다.
양식 틀을 하나 건져 올리니 안쪽에 전북이 많이 붙어있다. 이것을 손을 떼어 내려 하니 전복은 더욱 강하게 밀착하여 붙어서 떼어내기 힘들었다. 그러니 전복을 채취하려면 전복을 옆으로 밀면서 떼어내어야 떨어져 나온다. 체험을 지도한 김상운씨의 지도로 즉석 채취한 전복을 즉석으로 먹는 체험도 하였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먹는 양이 1키로도 넘을 같다. 전복 한 바구니를 채취하여 바지선위에서 돔 회와 함께 즐겼다. 도시에서 돔 한 마리 10만원이라 하니 바지선에서 먹은 양을 도시가격으로 환산하면 150만원도 넘을 것 같다.
전복 1kg에 5만원 정도 하니, 즉석으로 먹은 양을 돈으로 환산하면 20만원은 넘을 것 같다.
점심도 바지선 위에서 즉석 요리한 전복 죽으로 하였다.
상상해 보라. 바다 가운데 떠있는 바지선 위의 작은 휴게시설에서 바다를 보면서, 바다 내음새를 맡으면서 바다가 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운치를 생각해 보라. 어촌 음식이 어촌 인심과 버무려져 최고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구워 먹은 전복 맛을 보기 위해 5kg을 추가로 채취하여 민박집으로 가지고 왔다.
저녁부터 비가 억수로 내려서 특별히 식당에서 민박집으로 저녁식사를 배달해 주었는데, 그날 저녁 메뉴는 전복과 닭이 한데 어우러진 한방 전복 백숙탕을 먹었다.
바다 속에서 자란 전복과 섬마을 야산에서 자란 닭이 한방약초와 어우러져 맛을 내니 낮에 먹었던 회 맛과는 별미의 맛이 났다.
그렇게 먹고도 늦은 밤에 민박집 주방에서 전복을 구워냈다.
저녁을 맛있게 먹어 배부른데도 구운 전복은 또 다른 별미의 맛을 주어 전복 50여개가 순식간에는 없어졌다. 전복을 생으로 먹으면 씹는 맛이 질기지만, 구워먹으면 부드럽고 감칠 맛나고, 날것의 3배정도는 먹을 것 같았다. 모두들 생전처음 전복과 회를 이렇게 많이 먹어본 것이 처음이라 했다.
셋째 날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너무 쳐서, 원래는 배를 타고 섬 일주를 하기로 하였으나, 차를 타고 섬을 돌기로 하였다.
이 섬의 지명 중에는 금이라는 단어가 있는 곳은 풍광이 매우 아름다웠다. 방적금, 숫돌금, 엄남금, 생금, 배성금, 청석금, 이저금, 신금 총8개의 금이 지명이 있다. 금은 쇠금(金)이니 분명 쇠와 관련된 이름인 듯 하다.
해식 절벽미의 극치이다. 이러한 해식 절벽미의 풍광이 바닷가로 주욱 펼쳐져 있다. 이 풍광을 바다에서 바라본다면 또 다른 맛이 날것인데, 불행히도 바람이 우리를 방해 하고 있다.
절벽과 갯바위 낚시가 잘 어울리는 곳도 있다.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알았더라면 갯바위 낚시 체험도구를 가져와 갯바위 낚시도 해볼 만하다.
섬은 숨겨진 보물이다. 단 3일 동안에 보고, 느끼고, 쓴다는 것은 과욕인 듯 하다. 이러한 숨겨진 우리의 멋과 맛을 찾아 여러 번 찾아와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이 섬의 정보를 얼마정도 알았으니 다음번의 체험에서는 더욱 깊은 보물을 찾을 것만 같다.
◯ 체험의 마무리글
섬마을이 보물로 가득 차 있지만 섬의 정보를 모르고 오면 보물의 일부만 보고 온다.
이번 체험에서 보건데, 바닷가에는 풍성한 해산물이 있으니, 맛있는 조미 반찬, 예를 들어 초장, 깨소금, 참기름 등 만 있다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체험의 종류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도 많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바닷가이니, 해수욕도 할 수 있고, 바다낚시도 할 수 있고, 스킨스쿠버도 할 수 있으니, 준비 여하에 따라 다양한 체험으로 섬의 보물을 발견할 것 같다.
미술가는 그림을, 사진가는 작품 사진을, 작가는 글을 쓸 수 있다.
영상작가는 일출, 일몰의 장관을 잡을 수 도 있다.
갯바위에 붙어사는 생물들의 관찰은 어린애들에게는 자연학습관이다.
특히 섬마을에는 야생화가 많이 있고, 많이 핀다.
부담되는 것은 배 삯이다.
단체 편도 5700원이면 배 삯이 버겁게 느껴진다. 자가용도 1대당 2만원이니 왕복으로 계산하면 부담이 된다.
그러니 섬사람들은 어찌하겠는가. 멀리 사는 섬사람일수록 육지에 나오는 것이 연중행사처럼 드물어진다.
개도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한다. 화정면 사무소까지는 연륙이 되어 거기까지 내비게이션으로 찾아온다면, 화정면소재지에서 개도까지는 배삯이 2500원 정도라 하니, 알면 싸게 오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가능하면 gaedo.invil.org에 예약하고 이 섬을 찾는다면 자가용을 부둣가에 놓고 몸만 들어오면 섬에서 준비한 봉고차로 안내한다고 한다.
어른 20명 기준으로 120만원에 예약을 하였는데, 떠나는 날 정산해보니, 그렇게 많은 회와 전복을 먹고, 음로수도 마셨는데, 초과금액은 겨우 8만원뿐이다. 총액128만원에 2박3일 체험을 하였으니 1인당 6만원 꼴이다. 하루 1인 2만원 꼴이다. 이렇게 계산하니 매우 싸다. 배삯 부담하고라도 온다면 매우 싸게 체험하고 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우리일행은 숫자적으로 25명이지만 어린애들이 8명이어서 어린애들은 거의 무료로 한듯하다.
앞으로 이 가격의 기준으로 도시 고객들을 모실 것이니 많이 선전하여 많은 도시손님들이 오기를 바란다고 김정숙 위원장이 당부한다.
참고로 여수에서 출항하는 배편 스케쥴은 다음과 같다.
여객선/ (주)화신해운 061)665-0011 한려페리호
출 항 |
입 항 |
여수)06:10 |
개도)07:10 |
개도)08:10 |
여수)09:45 |
여수)09:50 |
개도)10:50 |
개도)11:45 |
여수)13:20 |
여수)14:50 |
개도)15:50 |
개도)16:40 |
여수)17:45 |
어촌 체험의 여행도 여행이다. 인생이 여행이듯 여행이 끝나면 왜 서운할까. 여행의 서운함, 개도에 대한 연민의 정을 시로 담아 보았다.
개도 섬에서
글/나천수
삶의 무게가 얼마인가.
삶의 부피는 도대체 어떻게 잴까.
삶에도 키가 있을까.
무겁다, 가볍다, 라는 판단
크다 적다라는 인식은
기준이 무엇인가.
알 수 없다면 섬으로 가보라.
섬이 바다에 떠있는가.
섬이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가.
섬이 가벼워 떠 있다고 보면
삶의 무게 또한 가벼워
인생 대해를 둥둥 떠서 갈 것이고
섬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보면
삶의 부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한평생의 인생항로를 어찌 나아갈까.
그대의 삶이 무겁고
그대의 삶이 너무 커 보여
그대 가슴으로 안을 수 없어 답답하면
빈손 빈 마음으로
한번쯤 섬으로 들어 가 보라.
여수에서 배로 한 시간 쯤 가는
개도 섬에 가보라.
산더미 같은 섬이 둥둥 떠서
그대를 반길 것이니
섬 풍광에 섬 인심
멋과 맛을 비벼서 비빔밥으로 먹고 나면
섬도, 배도, 그대도 둥둥 떠가니,
이 정도면 득도의 경지 아닌가.
개도 섬에서 득도하지 않으려나............
2008년 5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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