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KBS드라마스페셜2023’이 12월 16일 끝났다. 지난 10월 14일 밤부터 단막극(‘극야’ㆍ‘반쪽짜리 거짓말’ㆍ‘도현의 고백’ㆍ‘우리들이 있었다’ㆍ‘폭염주의보’ㆍ‘마님은 왜 마당쇠에게 고기를 주었나’ㆍ‘고백공격’ㆍ‘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8편과 TV시네마(‘그림자 고백’ㆍ‘수운잡방’) 2편 등 총 10편이 전파를 탔다.
지난해 수목드라마 시간대 주 2회 방송과 달리 이번엔 토요일 밤 주 1회 편성으로 바뀌었다. 토요일 밤은 KBS 2TV 주말극과 대하드라마를 열외로 하더라도 MBCㆍSBS 등 방송사 드라마가 몰려있는 시간대다. 토요일 밤 방송은, 이를테면 ‘KBS드라마스페셜2023’을 무한 경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게한 편성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KBS 2TV에선 11월 11일부터 12월 16일까지 ‘효심이네 각자도생’ㆍ‘고려거란전쟁’ㆍ‘KBS드라마스페셜2023’이 연속 방송되는 드라마 과부하 현상이 이어졌다. ‘고려거란전쟁’과 ‘KBS드라마스페셜2023’ 사이에 시사프로가 있다곤 하나 연속극도 아닌 단막극을 누가 그렇게 챙겨볼까 하는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편성이라 할까.
이 글을 써야하는 나조차도 제7화 ‘고백공격’을 본방사수는 물론 재방까지 못보고마는 ‘불상사’란 늪에 빠지게 됐다. 내 기억으로 이런 일은 드라마평을 써온 수십 년 동안 처음이다. 우리집 TV에 문제가 생겼고, 그 해결이 늦어진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토요일 밤 방송이 아니었으면 어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이번에도 지난해와 같이 단막극 8편, TV시네마 2편으로 어김없이 또 돌아와 반갑지만, ‘KBS드라마스페셜2022’처럼 주 2회는 아니더라도 수목드라마 시간대 방송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해서다. 그래서 그런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지난해보다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KBS드라마스페셜2023’이 되고 말았다.
가령 지난해 최고 시청률은 2.6%(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같음.)를 찍은 반면 이번엔 1.6%(‘마님은 왜 마당쇠에게 고기를 주었나’)에 그쳤다. 지난해 최저 시청률도 0.8%인데 반해 이번엔 0.6%로 ‘극야’ㆍ‘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두 편이나 된다. 심지어 10편중 절반이 시청률 1%를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 지난해와 다른 건 사극이 많아진 점이다. ‘KBS드라마스페셜2022’엔 사극이 한 편도 없었다. 그 ‘한’을 풀려고 그랬는지 이번엔 사극이 3편이나 된다. 2020년과 2021년 사극이 최고 시청률을 찍은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럴망정 TV시네마 2편까지 모두 사극으로 채운 건 좀 과하지 싶다.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주고 있어서다.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주는 게 하나 더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10편의 제목을 보면 ‘고백’이 들어간 게 3편이나 되는 걸 알 수 있다. 수년간 쓴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낼 때 유사한 제목이 있음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수가 만든 ‘KBS드라마스페셜2023’이 그런 건 다소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목만이 아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유독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많은 걸 알 수 있다. ‘10편 10색’과는 거리가 한참 먼 한쪽으로의 쏠림이라 할만하다. ‘반쪽짜리 거짓말’은 초등학생, ‘폭염주의보’는 중학생, ‘우리들이 있었다’는 고등학생이 각각 주인공이다. 이렇듯 초ㆍ중ㆍ고 학생 모두를 주인공으로 한 건 ‘KBS드라마스페셜2023’이 최초가 아닐까 한다.
‘도현의 고백’과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도 성인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10대 시절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TV시네마 ‘그림자 고백’도 서당에 다니는 17살 도령 등 10대 이야기다. 그쯤해두고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보자. 제목 괄호안은 방송일.
‘하루종일 어둠이 지속되는 현상’이란 뜻의 ‘극야’(10월 14일)는 업체서 받은 대금 1억을 가게 보증금으로 돌려쓴 주류회사 최수열(이재원) 과장이 사기당한 걸 알고, 위기를 극복해가는 암울한 일상 이야기다. 드라마 제목에 딱 맞는 이야기로 회사 간부의 갑질과 비리라든가 산재 문제 등 첨예한 사회현실이 녹아 있다.
다만, 단막극으로 소화해내기 벅찬 듯보여 아쉬움을 준다. 가령 최과장이경리직원 문혜란(이하영) 대리에게 초밥을 사준 후 모텔에 데려가고, 그녀가 잠든 사이 사무실로 돌아가 컴퓨터 조작 등 그 위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썩 공감되지 않아서다. 혜란을 납치한 건지 꼬셔서 데려가 불륜을 저지른 것인지 구체적 맥락이 없어 붕 뜨거나 뭔가 휑한 느낌이라 할까.
‘반쪽짜리 거짓말’(10월 21일)은 부모의 이혼을 10살짜리 딸 정두리(김시우)의 시선으로 그려내 신선하고 특이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두리는 아빠 재훈(오동민)으로부터 버려진 것이라 깨닫는 순간 엄마 김진영(민지아)이 불쌍하다고 반성하며 흐느껴운다. 고작 10살짜리 애가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해 엄마가 불쌍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송민아 역의 안세빈과 함께 꼬마 배우들의 깜찍 연기가 볼만하다.
‘도현의 고백’(10월 28일)은 여고시절 유망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축구를 못하게된 19살 고도현(이연)의 1년후 이야기다. 한가연(신소율)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동네 풋살팀 감독으로 새 삶을 찾음은 물론 학생시절 헤어진 정무원(차선우)과 다시 연애도 한다. 도현이 보육원 출신의 천애고아라는 점에서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을 깨우치게 해준다.
‘우리들이 있었다’(11월 4일)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피해자 강민주(강나연)보다 그를 지켜보던 고3 방관자 정은호(이민재)ㆍ서강은(김현수)에게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다. 특히 “학폭에 얽히면 피곤해지니까”라며 피해가려한 반장 은호가 뭔가 먹먹함을 안겨준다. 가장 시의적절한 현실반영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데, 은호 역의 배우는 언뜻 김강우와 닮은 인상이다.
‘폭염주의보’(11월 11일)는 안양 살던 농구부 중학생 김이준(문우진)이 대구 중학교로 전학가 한여름(박서경) 등 친구들을 만나 적응해가는 이야기다. 이준부(허동원)가 사업에 실패해 형에게 아들을 맡긴 건데,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때다. 교실 급식장면이 의아했는데, 학교급식 시작 초기엔 그랬다. 오히려 시대상을 잘 살린 연출인 셈이다.
배불뚝이 컴퓨터라든가 8강에 이어 4강 진출이 TV 뉴스로 나오는가 하면 학교 운동장에서 하던 학생들 응원전 등도 정겹게 다가온다. 큰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이준의 심리라든가 얼굴에 여드름이 나고, 월경(月經)을 시작한 사춘기 소녀 여름을 둘러싼 삼각관계 등 풋풋함이 물씬 묻어나는 드라마라 할만하다.
최고 시청률을 찍은 ‘마님은 왜 마당쇠에게 고기를 주었나’(11월 18일)는 이정열(김주헌)과 최설애(박하선) 부부를 통해 조선시대 글만 읽는 선비 내지 양반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한다. 다정한 말 한 마디가 부부간에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데, 어디 그게 비단 조선시대만의 일이랴!
현대에서의 부부간뿐 아니라 모든 사람관계에서의 대화의 중요성을 환기하지만, 정열의 “제 부인 때문” 같은 오류가 옥에 티다. 부인(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제 아내’라고 해야 맞다. 정열처럼 자신의 아내를 ‘제 부인’이라 하는 건 무식함을 드러낸 것이다. 배우의 오류라기보다 대본상의 문제로 보인다.
조예은의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12월 2일)는 원래 좋은 남자였던 아빠가 가정폭력범으로 변하자 아들 신수호(김동휘)가 죽인 이야기다. 엄마(심이영)를 지키기 위해서인데, 아주 어렵고 산만하게 풀어내 최저 시청률의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단순하면서도 직설적 화법으로 전개했더라면 오히려 가정폭력의 처참함이 더 부각되지 않았을까 싶다.
TV시네마 ‘그림자 고백’(12월 9일)은 2022극본공모 우수작을 극화한 작품이다. “호적도 돈 주고 파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 박윤호(최민기)ㆍ김재운(박상남)ㆍ이설(홍승희) 세 10대 청춘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시한부로 요절한 윤호와 재운의 우정은 동성애에 가깝다. 그렇게 방점이 찍힌 듯해 다소 충격을 준다.
조선시대 청춘들의 동성애를 그린 게 점수를 따 우수작으로 뽑혔는지 모르겠지만, 극화된 ‘그림자 고백’은 그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생략된 듯한 장면들이 많아 관객 또는 시청자들에게 내용이나 메시지가 잘 전달될지 미지수다. 특히 설의 도움으로 여장(女裝)한 채 재운을 만나는 게 그렇다. 오히려 단오날 남사당패 놀이 등 풍물 재현이 볼거리다.
‘수운잡방’(12월 16일)은 제13회경상북도영상콘텐츠 시나리오공모전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이다. 1500년대 초기 양반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저술한 조선 선비 최초의 요리서 ‘수운잡방’(2021년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수운잡방’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상상력을 결합한 팩션으로 당시로선 말 안 되는 남자 요리사 이야기다.
영화는 엄연한 양반으로 과거시험 3수생인 김유(윤산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유는 공부하러 절에 갔다가 자칭 조선 최고 요리사 계암(김강민)을 만나 같은날 치러지는 과거시험장 대신 경연(요리경연대회)에 나가 장원을 차지,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유교윤리가 지엄한 시절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활짝 열어젖힌 그런 역사적 인물을 새로 알게된 기쁨을 안겨준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을 불러오면서 꼭 그렇게 요리사되기 과정을 그려야 했는지, 많이 아쉽다. 우선 초반부터 억지 코미디가 아주 거슬린다. ‘뭐 저런 양반 도령이 다 있나’ 할 정도의 캐릭터도 짜증난다. 좀 진중하게 접근하지 않고, 마치 애들 장난하듯 코믹 모드 일색의 역사적 인물 그려내기는 앞으론 지양되었으면 한다.
아쉬운 게 더 있다. 성긴 구성이랄까 부족한 극적 맥락이다. 가령 절에 간 아버지 김효로(강신일)가 음식을 직접 만든 유를 왜 대뜸 질책부터 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효로가 죽은 후 형 김연(백성현)이 과거 대신 경연에 나간다는 편지를 보고 대노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온갖 반대가 치열하게 그려지지 않아 오히려 극적 효과를 상당 부분 까먹고 들어간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