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흙을 밟아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하는 도심 속의 사람들이여. 매캐한 공기가 코를 찌르는 아스팔트에서 한번쯤 벗어나 보자. 마음대로 흙을 주무르고 상큼한 풀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는 자연 속의 싱그러운 체험은 분명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애초에 하나만 기대했는데 뜻하지 않게 ‘따따블’로 얻었다면 횡재한 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하긴 고스톱을 쳐도 따따블의 위력은 얼마나 큰가. 아무튼 이번에 떠난 체험 여행스케치가 바로 그짝인 듯싶다.
기자처럼 역마살이 잔뜩 낀 탓으로 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취미이자 일인, 덕분에 여행의 참맛을 아는 한 여인이 자신있게 소개해준 도예교실 ‘그륵꿈는집(055-533-6502)’ 안엔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들어있었으니….
‘그륵꿈는 집’은 꿈을 담을 그릇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릇을 굳이 그륵이라고 표기한 건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라나? 시골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순박하고 정이 넘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란다.
‘그륵꿈는 집’을 소개한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곳에 가면 흙을 원없이 주무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시골학교에서 지내는 하룻밤의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 아울러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을 천막 삼아 찾아온 손님들에게 걸쭉한 술판을 벌여주는 주인의 훈훈한 인심이 그만이라고 했다.
게다가 주변에 원시자연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우포늪이 있어 도예교실에 간 김에 둘러보면 일석이조의 여행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이 자자해 ‘그륵꿈는 집’이 있는 경남 창녕으로 주저없이 길을 떠났다.
이제는 폐교가 된 시골의 작은 분교를 분양받아 운영하는 곳이라 시골에서도 한참 구석에 있을 거라고 예상, 찾기가 만만치 않을 거라 싶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하지만 생각보다 찾기는 쉬웠다. 창녕 인터체인지를 나오자마자 무조건 우회전하면 잘 빠진 4차선 도로가 1km쯤 이어지다 바로 2차선으로 줄어드는 길로 접어들어 5분 정도 달리면 언덕배기 왼편에 ‘그륵꿈는 집’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하지만 주의할 점 한가지, 팻말이 너무 작아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팻말을 따라 들어가니 차 한대가 간신히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좁은 자갈길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호위병처럼 학교까지 죽 늘어서 있는 것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막다른 길 끝자락에 자리잡은 교문 안에 들어서니 분교치고는 의외로 큰 느낌이다(3천5백평이란다).
먹고 자고 도자기까지 만들어가는 일석삼조의 즐거움
이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은 사촌 오누이사이인 단 두명.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김진숙씨(38·그륵꿈는 집 실장)와 꽁지머리 김종구씨(33·그륵꿈는 집 교장)가 환한 웃음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했다. 큰 키에 넉넉한 몸집의 김실장과 꽁지머리에 생활한복 차림의 김교장 모두 푸근한 인상으로 (확실히)훈훈한 인심의 주인공인 듯싶다. 두 사람 다 전북 무주 출생으로 ‘깡촌에서 잘살아보겠다고 도시로 나와 기껏 공부시켰더니 다시 촌구석으로 들어왔다’며 집안의 눈총을 받긴 하지만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고 한다.
넓은 운동장에 아담하게 지어진 건물, 운동장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그네, 미끄럼틀, 폐타이어로 만든 징검다리… 참 아늑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처음 온 곳임에도 한 여름 땡볕에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 깔고 누워있으면 그야말로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편안함까지 느껴진다. 밤이 되면 이 운동장에서 불깡통까지 돌리며 놀 수 있어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한단다. 반면 아이들은 학교 복도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운동장 한켠에는 그물로 막아놓은 테니스장도 있다. 하지만 테니스를 칠 때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곳이지만 가끔 족구장으로도 변신하는 ‘전천후’ 코트라고. 또 탁구장으로 만들어놓은 교실 2층 안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탁구대는 그 실체를 알고보니 더 기가 막히다. 교실 칠판을 그대로 뜯어 나무 다리로 고정한 후 파란색 모기장으로 네트를 만든 게 아닌가. 처음엔 ‘여기서 어떻게?’ 하면서 탁구채를 들었는데 일반 탁구대보다 공이 좀 덜 튀는 것만 빼고는 제법 쓸 만하다.
게다가 통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도자기 전시실(그래서 더욱 독특한 느낌이다), 그런대로 운치있는 분위기가 묻어나는 카페(밤마다 김종구 교장의 라이브 무대가 펼쳐진다), 밤을 지새는 손님들을 위해 만든 이층침대(꼬마 아이들의 인기순위 넘버원이다)… 하나같이 김종구 교장이 직접 뚝딱거리며 만든 것들이다. 그 솜씨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지라 아예 인테리어 업자로 나서도 되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김목수’하지만 김교장은 “궁하면 통한다고 돈이 없어 직접 만든 것뿐”이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더니… 재주도 참 다양하다.
도예교실 체험을 하고 그날 돌아가도 되지만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간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륵꿈는 집이 생긴 건 지난해 9월.
김실장 왈, “처음에는 자고 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한두번 찾아왔던 손님들이 도자기를 만들다 운동장에서 족구도 하고 불깡통도 돌리고 릴레이 달리기를 하면서 저녁에 ‘라면 끓여주기’ 내기를 했다가 고기도 구워 먹고 소주까지 한잔 걸치다 보니 날이 샜다”며 “그 이후부터는 아예 하룻밤을 묵을 요량으로 온다” 는 것. 말하자면 ‘염불보단 잿밥에 눈이 어두워’ 1박2일 프로그램이 생긴 셈이다.
가격도 손님들이 의논 끝에 정한 것으로 1박2일에 1인당 2만5천원. 그러면 그날 저녁, 다음날 아침, 점심까지 챙겨준다. 4인 가족이 오면 10만원으로 잠도 자고 세끼 밥도 먹고 하루 온종일 놀다 나중에 도자기까지 챙겨가니 이보다 더 알뜰한 프로그램은 없는 듯싶다.
일단 빚은 도자기는 가마에 굽는 시간이 있어 바로 가져갈 수가 없다. 마음씨 좋은 김실장이 나중에 택배로 보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다음에 왔을 때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찾으러 오는 날 또 만들고 그것 때문에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빌미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만큼 ‘그륵꿈는 집’에 재미를 붙였다는 얘기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이곳만의 매력이다.
“먹고 자고 도자기까지 가져가니까 사람들이 저희보고 ‘남는 게 뭐가 있냐’면서 오히려 걱정해요. 근데 저희는 사람들이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게 좋은 거죠. 저도 지난 번에 이천 도자기엑스포 행사를 할 때 어떤가 싶어 가봤는데 사실 실망을 많이 했어요. 보통 도예교실 하면 체험비가 3천5백원에서 많으면 7천원 정도 하는데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구경만 하고 맛만 보는 정도랄까요? 작은 꽃병 하나 만드는 데 1만원, 한개 만드는 데 얼마, 흙 2백g에 얼마 하는 식이더라고요. 근데 우리집에서는 마음대로 만들고 가져가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들은 꽤 짭짤하게 건져가는 거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김실장. 하긴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다. 기왕 흙 만지러 온 건데 흙 하나 가지고 ‘쪼잔하게’ 굴지 않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기자 역시 ‘물욕’에 눈이 어두워 도자기를 되도록 많이 만들어 가리라 생각하며 흙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되는 대로 주무르기만 하면 도자기가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내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우선 흙 사이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한참 동안 흙을 치대야 한다. 공기구멍이 생기면 나중에 구울 때 그릇이 쩍쩍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구멍을 없앤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손톱이 길면 주무르다 자신도 모르게 흙이 손톱에 긁혀 공기구멍이 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손톱을 짧게 깎는 게 가장 좋다). 어느만큼 정성을 들여 치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릇 모양을 만들려고 하니 여기저기 공기구멍이 뻥뻥 뚫리는데 그야말로 대책이 안 선다.
흙을 둥근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운데를 파들어가면서 그릇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전체적인 두께도 맞춰야 하고, 무작정 크게 만들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흙이 갈라지고 틈새가 벌어진다. 한번 벌어진 틈새를 메우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다보면 흙이 말라 더욱 말을 안 듣는다. 그렇다고 물을 바르는 건 금물. 물을 바르면 당장은 몰라도 구울 때 갈라지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도 속임수는 어디서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흙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비록 실패를 거듭하긴 했지만 묘한 재미에 빠져 일어나기가 싫었다. 어찌됐든 ‘작품’ 하나는 만들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고 해야 하나? 이곳에선 한번 재미 들이면 사람들이 이렇듯 일어날 줄을 모른단다. 잘되면 신나서, 안되면 끝장을 보자는 마음에서 그렇다나?
간신히 못생긴 그릇 하나를 만든 후에야 손을 놓았다. 그렇게 힘쓰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바로 그때, 땅 속에 묻어 둔 배추김치와 갓 무친 파김치를 곁들여 내오는 저녁이 얼마나 꿀맛 같으랴. 땅거미가 짙어오는 마당 한복판에선 불이 지펴지고 그 위에서 지글지글 생삼겹살 굽는 냄새가 솔솔 풍기고, 거기에 막걸리 한잔을 쭈욱 들이키고 나니 “캬~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게다가 김종구 교장이 직접 들려주는 생음악에 맞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이곳, ‘그래 바로 이 맛에 사람들이 그륵꿈는 집을 찾는구나’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생태계의 보물단지로 불리는 우포늪
그륵꿈는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5km 남짓) 곳에 있는 우포늪을 둘러보는 일도 의미있는 일인 듯싶다. 우포늪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그륵꿈는 집에서 망원경을 빌려주기도 하니 얼마나 좋은가.
우포늪은 1억4천만년 전에 형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원시적 자연늪으로 소문나 있는 곳으로 자연 생태계를 알아볼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여름이 되면 수초들이 늪지를 쫙 덮어 마치 잔디밭처럼 보이는 것이 압권이다. 그 수초를 헤치며 장대로 밀고 나가는 나룻배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이른 아침에는 물안개로 뒤덮여 신비스러움을 자아내고 밤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며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곳으로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기에는 그야말로 ‘딱좋아, 딱좋아’이다.
이곳에 가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어릴 적 냇가에서 잠자리를 쫓던 기억이 있는 사람,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자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잃고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모여주세요. 푸른 우포 사람들의 회원이 됩시다’ 라고 쓰인 문구를 보니 새삼 자연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푸른 우포 사람들’이 선정한 ‘우포팔경’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번쯤 둘러볼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