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도도 한파
이번 사리는 물이 많이 쓰는 사리이다. 그래서 온 주민들이 모두 갯밭에 나가셨다. 오후 점심을 먹고 있을 무렵 권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박집사님이 홍합을 까느라고 못나가서 그러니 택배를 대신해서 붙여 달라는 것이다. 홍합을 가득 담은 아이스박스를 직접 이고 오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신해서 차를 가지고 올라 갔다. 권사님네 택배물을 실코 내려오자 마자 또 전화가 왔다. 영호네 아저씨셨다. 같이 나가가는 것이다. 배가 육지로 가기 1시간 전, 교회 트럭 안에 아저씨와 마주 앉았다. 나는 신문을 보고 아저씨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차 싶어서 신문을 덮고 아저씨에게 여쭈어 보았다.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유. 그 약 먹고 좋아졌어요. 새달에 또 가야해유."
"다음 달에 또 진료가세요?"
"가긴 가야되는디 걱정이네유. 대천 동대동에 살던 아들녀석이 뭔 일인지 은포 그 시골 구석으로 이사를 갔슈. 그래서 택시를 타고 가보니께 7,000원이 넘어유. 그래 병원 갈때는 아예 천안사는 딸네 가서 하룻 밤 자고 병원에 다녀왔는디 아들네 가기도 그렇고 딸네 가기도 그렇고 참 그러네유 그날 새벽 사선을 타고 나가서 서울을 가자니 시간이 빠듯하고유."
"그래도 하루 전에 가시는 것이 낫지 않으세요? 혹시 날이라도 좋지 않으면 낭패잖아요?"
"그러게유 그런디 그냥 여관방이서 잘라고 해도 방값이며 밥값이며 하루 저녁에 못잡아도 3만원은 잡아야 해유.그러니 어디 가것슈."
그렇지 않아도 병원비며 차삯이며 만만치 않다고 하신다. 그래서 무리하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사리 때면 갯밭에 가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리고 화를 내도 아저씨는 남들 다 하는 것 안 할 수 있냐며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신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에 어깨 수술까지 하셔서 정말로 무리하시면 안된다. 그런데도 갯밭에 가신다. 내일은 정말로 안 가신다고 했는데 글쎄 내일 새벽에 남들이 다 개에 가는 것을 보고도 안 가실지... 그래도 가시지 말고 그냥 쉬는 것이 좋으실 텐데.....
여객선을 기다리는 객선마틔는 벌써 경운기며 트럭으로 분주하다. 많은 주민들이 한나절 해온 홍합이며 굴을 보내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겨울철 녹도의 가장 큰 돈벌이는 바로 갯밭에서 나온다. 그래서 다들 요즘같이 물이 많이 쓰는 사리 때는 열심이시다. 아직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갯밭에 가셔서 불을 피우면서 날이 새기를 기다릴 정도다. 경운기마다 트럭마다 갯것이 가득하다. 그렇게 열심히 안해도 되는데 주민들은 열심히 하신다. 한푼이 아쉬워서 또 경제적으로 위기라는 말이 들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가는 오르고 살기는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모두들 경쟁적으로 갯것을 하는 듯 했다.
속회를 마치고 박집사님이 물으셨다.
"우리집 막내가 동서울대학교를 다녔는디 청양대학교로 편입이 된데유?"
이상했다. 이왕이면 서울로 수도권으로 학교를 보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왜 어렵게 올라간 학교를 청양으로 끄집어 내릴려고 하는 것인지.
"집사님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이제 막내 하나만 가르치면 되는디 근디 서울에 있으면 그게 장난이 아녀유. 그래서 청양이면 대천서 통학 할 수 있으니께 대천 집이서 댕기면 돈도 절약되고 하니께유."
"남들은 못 올라가서 안달이짆아요?"
"그렇지 않아도 큰 딸도 이왕 올라온 학교를 왜 밑으로 내리려고 하냐고 그래유. 그런디 원채 가르치기가 힘들어서. 휴~~"
비단 집사님만 겪는 일이 아니실 것이다. 지금 대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 아니 학부모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어려움일 것이다.
우리 나라 경제가 많이 어려운 것 같다. 먼 바다 건너 이 곳 섬 마을의 주민들도 어렵다. 힘들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6.25동란 때도 그 어느쪽으로 부터 피해나 간섭을 받지 않았던 곳이 바로 녹도다. 그래서 육지에 있던 사람들이 피난을 오던 곳이다. 그런데 녹도의 주민들도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많이 어려운 모양이다. 이 땅에는 자식들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부모들이 있을 것이고 또 영호네 아저씨처럼 하룻밤의 거처 때문에 고민을 해야 하는 수많은 이웃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호흡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