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예수사랑 큰잔치 초청 주일 / 위라클팩토리 박위 간증
오늘 제가 뭐 이렇게 저의 엄청난 이야기를 할려고 온 건 아니구요.
그냥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니까 여러분, 그냥 토크쇼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되게 엄청나게 큰 우량아로 세상에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제가 보통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만큼 키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굉장히 활발한 아이였기 때문에 워낙 제가 소리를 지르고 다녀서 어렸을 때 목이 쉬어서 목에 혹이 생겼어요.
제가 6살 때는 유치원을 다니면 제가 하도 소리를 지르니까
유치원을 강제로 다니지 못하고 저희 동네에 있는 서예학원을 제가 1년간 다녔습니다.
그렇게 저는 잘 성장을 해서 이제 대학생이 되었어요. 저는 되게 활발한 사람이었어요.
사교적이고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던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 때였지요. 큰 맘을 먹고 제가 이제 한 학기 휴학을 하게 됩니다.
한 학기를 휴학을 하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서 제가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가게 돼요.
한 4개월 정도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제 그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저에게도 취업 시즌이 찾아오게 됩니다.
제가 그 당시에 취업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었어요. 제가 학점이 되게 안 좋았었거든요. 제가 학점이 좀 안 좋게 생겼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제가 그나마 좋아하는게 옷을 좋아했어요.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패션 관련 기업에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러던 중에 우연히 한 외국계 패션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학교를 다니는 대신에 회사를 다니면서 전공학점 18학점을 받고, 인턴사원 월급도 받고, 경력도 쌓게 되었습니다.
6개월 정도 후에는 저한테 정직원 제안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운 좋게 덜컥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제 인생이 마치 톱니바퀴와 맞물리듯 완전히 풀렸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주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열심히 일한 저에게 전 보상을 주었어요.
바로, 세상적인 쾌락으로 보상을 주었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클럽을 다녔습니다. 다들 조용하시네요... ㅎㅎ
솔직히 그 당시에는 정말 재밌어요. 그런데 제가 그날 정직원 전환에 대한 시점에 친구들과 축하 파티를 연 겁니다.
그날 제가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제 중환자실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제가 이야기 나가면 될까요..
제가 이렇게 눈을 떴는데요. 이제 하얀 천장이 보이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저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이게 중환자실이라는 것을.., 저는 제 몸이 분명히 보이는데,
이 쇠골뼈 밑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몸인데, 내 몸 같지가 않은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잘 안 오지요?
지금 우리 다 같이 손을 한번 들어보실까요? 자 우리 하나 둘 셋 하면 여러분 손톱에 한번 지금 힘줘 보겠습니다.
자, 이번에는 머리카락에 한 번 힘을 줘 볼게요, 자 하나, 둘, 셋,
자, 나는 손톱이나 머리카락에 힘이 들어간다면 손 들어보세요.
네, 다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계시네요. 여러분 이런 느낌입니다.
분명히 내 몸의 일부분인데 내가 아무리 힘을 주려고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고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제가 수술을 하고 마취를 했는데,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았구나' 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제 목을 수술하신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다가 제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앞으로 전신마비로 살 것이고, 영원히 걸을 수 없을 겁니다. 손가락도 절대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아! 여러분, 저는 하루 아침에 전신마비 환자가 됐습니다.
알고 보니까, 저는 술에 취해서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이렇게 추락을 해서
목이 완전히 부러져서 이 척수 신경이 완전히 끊겼던 것이었습니다.
이거 제가 직접 한번 보여 드릴게요. 제 목 뒤에 보시면, 목사님 가까이 계시니까 보이시나요?
여기 이 상처가.. 네... 여러분은 보여드릴 수가 없네요.
중간에 그러니까 목뼈가 완전히 어긋나서요, 척수 신경이 완전히 끊겼어요. 그렇게 저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지요.
제가 너무 질문에 대해서 말을 길게 한 것 같아서 그 다음 질문을 좀 듣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질문을 드리자면, 어쨌든 28살 어린 나이에 되게 큰 사고를 당하셨고,
엄청 많이 무너지셨을 것 같은데, 그 사고 직후의 당시의 심정은 어떠셨을지...
네, 사실 되게 제가 굉장히 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야. 나는 하나님이 일으키시면, 반드시 일어날 거야!"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요,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뭐 여러분들이 지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정말 그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도 울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러분, 전신마비 진단을 받고 전신마비의 몸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저에게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상실감을 느끼게 해 줬어요.
병원에 있을 때는 치열한 전쟁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는 그 당시에 욕창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두 시간에 한 번씩 24시간 동안 누군가가 제 몸을 계속해서 뒤집어 줘야 했고요,
밥도 이렇게 다 직접 떠 먹여 주어야 했고, 이도 누군가가 이렇게 직접 다 닦아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씻으려면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병원 샤워실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침대에 누워있는 저를 가족들이 직접 다 씻겨줘야 했어요.
그리고 전신마비가 되면, 이 장기의 기능에도 마비가 옵니다. 대변과 소변을 스스로 볼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지요.
저는 당시에 소변줄을 차고 있었고, 이 소변백에 소변이 가득 차면 가족들이 그 소변을 비워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변을 보기 위해서는 좌약을 넣어야 했습니다. 좌약 뭔지 아시지요..
좌약을 침대 위에서 넣고, 가족들이 매일매일 뒷처리를 손으로 해야만 했습니다.
하루는 밤에 저의 아버지가 이렇게 제 변을 치우시는 모습을 보고, 제가 아버지 모르게 이렇게 돌아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어요.
이제는 이 검은 머리카락보다 흰 머리카락이 많으신 아버지를
이 28살이 된 이 아들의 뒷처리를 하게 만드는 제 자신이 너무나 싫었어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취직을 해서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서 저는 효도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물론 인턴사원 월급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가 처음으로 이렇게 월급을 타서 봉투에 용돈을 넣어서 부모님께 드렸을 때,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전신마비 환자가 돼서 28살짜리 아이가 되어 버렸거든요.
도저히 믿기지도 않고, 그 현실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지요.
그래도 병원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특히, 저와 한 번도 이렇게 마주한 적이 없는 저희 교회 목사님들과 교회 분들이 오셔서 맨날 기도해 주고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저의 가족은 지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 지금까지 이렇게 회복될 수 있는 건 사실 저희가 상상만 하는 것이고,
말씀만 들어도 막 기적에 가깝다 이렇게 밖에 공감을 할 수 없는 이 가운데
정말 많은 분들이 중보해 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용기 주셨다고 표현하셨는데,
누구보다도 또 아버지 어머니의 기도와 또 그 간절함이 훨씬 컸을 것 같은데요. 그 부분도 조금 나눠 주시겠어요..
일단 저희 아버지는 크리스찬이 아니었어요. 제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제가 좋아했던 찬양을 이렇게 핸드폰에다가 저장하고, 핸드폰을 틀어놓고 24시간 이렇게 몸에 품고 다니셨대요,
여러분, 이 찬양 아시는 분 계신가요?
영어로는 '랫 잇 레인'인데, 저는 한국말이 훨씬 더 편한 사람인데 왜 그러지..
'랫 잇 레인' - 누구 아는 사람 없나요?
♬ 성령의 비가 내리네~ 성령의 비가 내리네~♬ 맞지요?
그 찬양을 아버지가 이제 번안되기 전 영어 버전으로 그렇게 들으셨대요..
그런데 제가 중환자실에서 3일째 되던 날,
입에 기도 삽입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누워있는 제게 아버지께서 오시더니,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위야, 너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이제 나도 믿어 볼게"
저는 제가 전신 마비로 살아야 한다는 상황보다,
이렇게 저희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사실이 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전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솔직히 포기했었거든요.
저는 아버지와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면, 어렸을 때 대화가 되지 않았어요.
제가 이런 얘기만 하면 이 대화가 마치 평행선상에 있는 것처럼, 전혀 맞물리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다치고, 저희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게 되셨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정말 믿음의 어머니이십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이제 제가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레지던트가 저희 어머니한테 MRI 사진을 저희 어머니한테 보여주면서
"아드님은 전신마비입니다."라고 말해 줬는데, 어머니가 그 사진을 다 핸드폰으로 찍으셨어요. 여러분, 그 정신이에요.
왠지 아세요? - "나중에 우리 위는 꼭 일어서서 간증할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위가 간증할 때 증거자료를 써야 된다"면서 그 상황에서 영상을 찍으셨대요.
그리고 저를 보려고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어머니가 이렇게 선포하셨어요.
"우리 위는 나중에 그 미국에 있는 CNN에 가서 다 간증할 거예요."
여러분, 제가 전신마비가 돼서 누워있는 저의 상황을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으시고
그렇게 믿음으로 선포하셨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매일매일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제가 전신마비 진단을 받은 그 시점부터, "위야, 너는 반드시 하나님이 두 발로 걷도록 일으켜 주실 거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매일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런 어머니의 믿음은, 지금의 제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밝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Q : 사실 말씀 들으신 것처럼 이렇게 우리 앞에 간증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힘들고 고된 재활 치료가 있으셨을 거고, 또 이제 많은 분들과, 특히 어머니 아버지의 수많은 중보가 있었기에
박위 형제가 이렇게 육체적으로 많이 회복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당시에 박위 형제의 신앙은 육체가 점점 회복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더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하던데, 혹시 나눠 주시겠어요..
그러니까 왜 그랬냐면, 제가 이제 오늘 재활했던 시간들을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는 정말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서 정말 죽을 힘을 다했어요.
그래서 정말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이 보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저는 육체적으로 굉장히 건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제 신앙생활은 오히려 내리막길을 가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예전처럼 다시 일어서고 싶었는데, 제가 원하는 만큼 몸이 좋아지지 않은 거예요.
저는 진짜 매일매일 하나님께 일으켜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그리고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거든요..
"위야, 내가 응답을 받았는데, 너 곧 일어난대" "야, 내가 환상 봤는데, 야 너 걷는 걸 봤어"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셨고, 제가 그래서 기대치가 있을 것 아녜요..
그런데 제 몸에 변화가 없으니까, 어느 날 이제 더 이상 하나님한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더 이상 기도가 되지 않았어요.
예배 시간에 제 마음은 자연스럽게 냉랭해졌습니다. 그리고 기쁨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청년부 예배를 드리지 않고, 그냥 저희 교회 새신자 예배에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설교 말씀이 짧고, 예배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저의 교회 친구가 와서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야, 우리 이제 다시 공동체 생활을 하자. 이렇게 신앙생활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래서 저는 못이기는 척 다시 청년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청년부 2년째 되던 해에 제가 어마어마 어마한 사람을 만나거든요..
그 사람은, 제가 살면서 봤던 사람 중에 가장 끈질긴 사람이었어요. 저는 항상 이름도 말해요. 유준상, 연예인 유준상은 아닙니다.
정말 그 친구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 친구가 저의 셀 리더가 돼 가지고, 하루는 이제......
제가 너무 길게 말합니까? 길게 말하면 잘라 주세요..
이제 여름이 되어서 저희 청년부 여름 수련회 시즌이 되었어요.
그런데요. 준상이가 저한테 수련회를 같이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이 휠체어를 타고 수련회에 참가하는 것은 제게는 너무나 큰 도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아직도 잠을 자기 위해서는 욕창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침대 매트리스가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준상이가 말했습니다. "야! 위야, 수련회장에 침대가 있대. 그리고 내가 너 도와줄게"
여러분, 어떤 스타일인지 아시겠지요.. 이 주안교회에도 떠오르는 사람들 있지 않나요..
저는 '아, 준상이 이 친구 정말 끈질기다'라고 생각했지만, 용기를 얻어 수련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수련회에 갔지만 저는 여전히 하나님과 관계는 냉랭했습니다.
이제 수련회 이틀째 날 마지막 날 밤 집회 시간이 되었는데,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OK 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나님, 그 대신에 오늘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만 제게 보여 주세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눈으로 보든 귀로 듣든 바람으로 느끼든 어떤 방법이든 좋으니까
하나님, 제발 오늘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만 제가 꼭 알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한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는 굉장히 실망한 상태였었어요.
그런데 그때 저희 공동체의 담당 목사님이 이 강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 주변의 아픈 지체들은 이 강대상 위에 올라오세요. 제가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정말 이 위에 올라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치유기도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치고 나서 저희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온갖 치유 집회에 참여했었거든요.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제가 이렇게 치유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마치 이 기복신앙처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당은, 여러분 이렇게 한 900명 정도 되는 청년들이 있었는데요.
저는 저 끝에 모서리에 혼자 휠체어에 앉아있는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앉아있는 이런 의자와 비슷하게 간이 의자로 이렇게 꽉 차 있어서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홍해가 갈라지듯 의자가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휠체어를 타면 가끔 이렇게 단점이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거 뭐가 보이시나요? 뭐가 보이세요. 손잡이 같지요..
그 뜻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누구든지 제 휠체어를 밀 수 있다는 뜻이예요. 저는 순식간에 이 강대상에 올라왔어요.
여러분, 마가복음 2장에 보면,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 환자인 친구를
예수님 계신 곳에 이렇게 지붕을 뚫고 자리에 눕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딱 그 상황이었어요.
저는 사고 후에 정말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위야, 널 위해 기도할게. 너는, 반드시 일어날 거야. 내가 환상을 봤는데 너 걷는 걸 봤어."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고,
처음에는 그런 기도와 그런 응원의 말이 저한테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게 기도해 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제 더 이상 제게 힘이 되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도 저는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야, 널 위해 기도할게'라고 말하면,
저는 그저 겉으로만 '아, 예 감사합니다.' 말하고는 그냥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여러분도 우리 이 중보기도는 또 눈에 보이지가 않잖아요.
그날은 적어도 한 20명 정도 된 친구들이 제 몸을 둘러싸서 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한 명은 머리, 어깨, 허벅지에, 발가락,
한 친구는 굳이 제 옆에 앉아서 제 종아리를 붙들고 저를 위해서 막 기도했어요.
제가 그날 진짜 눈물 콧물 엄청나게 많이 흘렸거든요.
제가 이렇게 제 친구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모습을 보는데, 하나님이 제게 알려주셨어요.
"위야, 이게 중보기도야." 이걸 딱 느끼게 해 주셨어요. 제가 눈으로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 여태껏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하나님은 저의 부족한 믿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제게 이 중보기도의 실체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의 실체를 제게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알려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이 중보기도의 실체를 보여 주시며 하나님이 이렇게 저한테 역사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날 정말 여태껏 막 기도해줬던 그 사람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엄청나게 회개하면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다시 서서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공동체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 제가 그 이후에는 휠체어를 타고 이제 공동체 구성원들과 같이 제주도와 일본으로 아웃리치도 다녀왔습니다.
저는 사실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도 이 교회 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기도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하니
비로소 왜 혼자서는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교회 공동체를 만드셨는지 알겠더라고요..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연약한 부분들을 보듬고 서로 사랑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을 하면 하나님을 더 깊게 느끼고 알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수를 안 칠 수가 없지 않아요..!!
Q : 저희는 상상만 하는 그 어려운 재활의 과정 속에서
또 여러 가지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이런 것들을 몸소 겪어내면서
박위 형제는 긍정의 아이콘으로 이제 많은 SNS와 또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요즘 전파하고 계신데요.
특별히 그 중에서 유튜브 채널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고 계시 하시는데요.
한번 저희들에게 위라클 채널을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되셨는지
또 그 마음과 생각들을 공유해 주시면 저희 안에 더 깊은 울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제 아까 그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서 말씀 드릴게요.
제가 하루에 재활을 마무리하면 저녁에 항상 이렇게 조그만한 기도실에 갔습니다.
저는 예전의 저로 돌어가고 싶었어요. 예전에 건강하게 걷고 뛰던 모습으로 돌어가고 싶어서 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일으켜 주세요. 저를 일으켜 주시면 진짜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저희 병원에 다른 병실의 환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제가 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를 보면 결코 남을 위해 기도할 만큼 마음 밭이 넓거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그 당시에 제 눈물의 기도는요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긍휼의 마음이었어요.
그 당시에 제가 입원해 있던 재활병원에서는 여러분 저는 전신마비 환자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경증 환자였어요.
그 재활병원에는, 저보다도 심각한 상태에 계신 분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특히, 이 뇌가 손상되신 분들이 많았어요.
하루는 다른 병실에 한 고등학생 남자의 어머니가 전신마비가 돼서 누워 있는 저의 병실에 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아들이 위, 너 만큼만 됐으면 좋겠다!"
여러분, 상상이 되세요?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니, 어떻게 전신마비인 나한테 와서 이런 말을 하실 수가 있지요?'
그 어머님의 아들은 고등학생이었고, 펜싱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는데요.
하루 아침에 교통사고로 뇌가 손상이 돼서 대화가 불가능하고, 밥도 먹을 수 없어서 콧줄로 영양분을 공급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앞으로 미래에 냉정하게 회복을 기대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겉으로 울 수가 없었어요.
제가 입원했던 곳에 대부분 환자들이 이런 어려운 사건들의 환자들이었습니다.
기도실에서 제가 막 한 시간 정도 울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제 마음 가운데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위야, 너는 앞으로 반드시 회복될 것인데, 너는 앞으로 너와 비슷하게 아픈 사람들과
또 세상에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반드시 희망이 되는 사람이 돼야 된다!"
그런데 저는, 그 당시만 해도 혼자서 휠체어를 요렇게도 밀 수조차 없는 상태였거든요.
저는 그때는 구체적으로 제가 어떻게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을지는 전혀 알지 못했고, 감이 오지 않았어요.
몇 년 정도 지나고, 재활도 열심히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저한테 하나님이 이렇게 떠오르게 해 주셨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 그게 유튜브였어요.
저는 그때부터 확신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어요.
여러분, 제 이름이 "박 위"입니다. 영어로 '위'는 '우리'라는 뜻이죠. 그래서 '위 + 미라클'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 위라클이라는 채널을 만들게 됐어요.
이 채널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일상이 기적임을 일깨우면서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지체들에게 삶의 소망을 던지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이 위라클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 사실 저도 이번 기회를 통해 유튜브 영상들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방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대중들에게 우리 세상 가운데 정말 소망을 던져주는 영상들이 가득하더라고요.
어느 것 하나도 그렇지 않은 영상이 없는데,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제가 보니까 어느덧 구독자가 75만 명에 달하는 굉장히 큰 대형 채널이 됐는데
수많은 영상들을 올리시면서 또 다양한 인연들을 만나셨을 것 같은데,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시면서 마주했던 특별한 일들, 기적 같은 그런 일들이나
또 소중했던 인연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이 들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몇 가지만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그때는 이제 위라클 하기 전이었어요.
그 당시에도 제가 제 SNS에 저의 사진을 영상을 올리면서 저의 어떤 그런 활동들을 이제 계속 업로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울산의 한 목사님부터 제게 연락이 왔어요.
당신의 아들이 저처럼 이제 척수 신경이 손상이 돼서 전신마비가 되었다는 거예요.
목사님이 너무 힘들어 하셨어요. 그 당시에 얼마나 힘들어 하셨냐면 혼자 샤워를 못 하셨대요. 폐쇄 공포증이 생기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 목사님이랑 하루에 두 시간씩 매일매일 통화를 했었거든요.
아마도 제가 이제 전신마비 진단을 받은 사람 치고는 굉장히 재활이 잘 된 케이스였기 때문에
그 목사님이 저와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 기준에서는 이 목사님이라는 존재는 항상 뭔가 인간 이상의 존재,
나보다는 하나님과 더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 목사님이랑 하루에 두 시간씩 매일매일 한 2주째 통화하다 보니까요.
제가 어느 날 목사님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었어요. "아니 목사님, 이제 제발 좀 믿음을 가지세요."
그런데 제 눈에는 목사님이 그저 전신바비가 된 한 아들의 아버지로 보였습니다.
저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아파서 제가 그날 결단했어요.
제가 혼자 휠체어를 타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제가 직접 울산으로 혼자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 사진을 못 가져와서 좀 아쉬운데,
그 친구의 이름은 박진성이라는 친구예요. 전신마비가 된 그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됐어요.
그 당시에 그 친구의 표정은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굳이 날 만나러 왜 서울에서 연고도 없는 사람이 여기까지 왔어?' 하는 그런 표정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랑 이제 시간이 지나서 이 친구가 굉장히 호전이 돼서
나중에는 저희 위라클 채널에 편집자로 무려 4년간 활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는 아직도 손가락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아요.
여러분, 손이 이렇게 주먹을 쥔 상태로 돌돌 말렸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편집을 했는지 아세요?
여러분, 주먹 한번 쥐어 보세요. 여러분, 요 부분 한번 만져보세요. 이 부분 있죠.
요 부분을 이용해서 이렇게 직접 터치패드를 이용해서 직접 다 편집을 했습니다. 여러분 진짜 대박이죠.
진성이가 편집한 영상이 궁금하시는 분들은 저 위라클 채널......
여기까지 해야겠다... ㅋ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제가 이렇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 울산을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제게 오히려 사랑 이상의 큰 힘을 주는 친구가 생겼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나는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 이런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몰라요.
특히 이제 교회 공동체 친구들, 저는 이런 만남을 통해서 제가 오늘은 뭐 많은 사람들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정말 이 만남의 축복이 저의 인생에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이 만남,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을 위해서
서로 기도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더 큰 사랑을 주실 줄 믿습니다.
Q : 제가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같이 울먹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요,
사실은 어느 자리에 가서든 이 삶을 이야기하셨을 거잖아요.
자신의 아픔을 수없이 꺼내서 전하고, 여러 차례 다른 이들에게 힘을 주고 있으신데,
저는 이 안에 하나님이 얼마나 같이 힘을 주고 계시고, 같이 이 자리에서 용기를 주시는지 느낄 수 있냐면,
화면에 안 잡힐 것 같지만 박위 형제의 눈가가 계속 젖어 있어요.
저희는 옆자리에서 뵐 수가 있는데, 그래서 지금 하나님을 전하고, 이 긍정 에너지를 이야기하는 박위 형제 안에
얼마나 이 진심이, 고백이 정말 진짜인지 찐인지 너무 저에게 와 닿거든요.
그래서 많은 기적을 경험하신 것은 사실 저희가 이 자리에서 다 들어보고 싶은데 어렵게 모셨잖아요.
그러나 시간 제한 상 그러지 못해서 아쉬우니까
계속 말씀드리는 위라클 채널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꼭 해주시고 정말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우리 안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일으키시는지
박위 형제가 삶으로 살아내는 정말 좋은 채널이니까 함께 해 주시면 좋겠어요.
너무 아쉽지만, 저희가 질문을 여기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다 아쉬우시죠.. 그래서 특별히 우리 주안교회 청년들에게 또 주안교회 성도님들께
박위 형제님이 이 자리에서 어떤 말씀을 또 나누고 싶은지가 저희가 궁금했어요.
각자 교회에 다니고 또 여러 채널과 만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주안교회에 또 어떤 마음으로 오셨고,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실까요?
저는 사랑에 대해서 또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오늘도 저희가 아침에 예배 같이 드리고 왔는데, 정말 그 사랑에 대한 메시지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 말은 꼭 하고 내려가야 될 것 같아서요..
제가 이제 몸도 굉장히 재활이 잘 되고, 나름대로 신앙생활도 회복을 해서
저는 휠체어를 탔지만, 굉장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어느 날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저는 전신마비 진단을 받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거였어요.
아니, 하나님은 맨날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는데, 제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해 보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휠체어를 타고 살아보니까,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장애가 있거나
정말 수많은 요인들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제 눈에 너무 많이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따졌어요.
"하나님, 지금 이 세상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왜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거예요?
아니,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면서요? 저는 당신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진짜 살아 계신다면,
적어도 그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가셔서, 개입하셔서 도와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한번 대답해 보세요."
그리고는 제가 이렇게 하나님께 따졌던 것을 잊어 버렸어요.
그리고 약 3일 정도가 지나고, 제가 이렇게 화장실에 있었는데요. 우리가 보통 화장실에서는 하나님 생각을 잘 안 하잖아요..
진짜 리얼입니다. 제가 화장실에 있는데, 갑자기 제 마음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위야, 네가 직접 가서 사랑하면 되잖아."
와! 충격이었습니다. 도저히 반문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저는 절대로 제가 한 질문에
하나님이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하실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었거든요.
저는 여태껏 제가 살면서 제가 사랑해야 될 대상은, 내 가족, 내 친구들, 그리고 제 주변인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위야, 네가 생각하는 그 사회적 약자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야, 네가 직접 가서 사랑하라"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은 제게 이 사랑의 원리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지금 돈이면 거의 모든 것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요.
그런데 약간 사랑은요, 돈이 없어도 줄 수 있습니다. 자 지금 저를 한번 보세요.
이렇게 다리를 쓸 수 없고, 손가락도 완전하지 않은 전데요,
제가 만약에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사랑할 수 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사랑은 이 세상의 가치가 수반되지 않더라고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저한테 마가복음 12장 30-31절 말씀을 저한테 주셨는데,
특히 31절 말씀,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지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아멘!
여러분, 저는 제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막 제가 뭔가 엄청난 일을 해야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이 마가복음 말씀처럼요,
[여러분이],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목적이 바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제가 그날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그냥 너무나 부족하잖아요. 그냥 제가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저 열심히 사랑을 베푸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아마 제가 감히 여러분들의 어떤 삶에 그런 여러 가지 고난들,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서 제가 이해할 수 없고,
또 알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제가 깨달은 점을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저처럼 다리를 쓸 수 없고, 또 내 안에 너무나 연약함이 많더라도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을 공평하게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 어떻게든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가서 충분히 누구나 다 사랑을 전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안교회의 청년부를 통해서 이 지역사회가 다시 한번 살아나고,
특히 이 죽어가는 영혼들이 다시 한번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저는 주안교회 청년국이 우리 지역을 사랑하면서 섬기는 '지선아 사랑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너무 메세지와 잘 맞아서 깜짝 놀랐어요.
정말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예비하시고 또 축복하시려고 박위 형제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또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 이렇게 토크쇼를 마무리해야 하는데요. 오늘 특별한 시간을 마지막으로 가지면 좋겠습니다.
박위 형제와 함께 어떤 찬양을 우리 청년들이 고백하면 좋을까?
좋아하는 찬양, 은혜를 받은 찬양이 무엇인지 저희가 사전에 여쭤 보았었는데요.
"주님의 시선"이라는 찬양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알려 주셨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제가 위라클 채널의 구독자라서 미리 알고 있는데,
박위 형제가 불후의 명곡에서 1위를 또 하셨더라고요. 보통이 아니십니다.
뒷이야기는 그 채널에서 여러분 함께 또 보실 수 있을 거고요.
우리 함께 "주님의 시선"이라는 찬양으로 박위 형제의 고백과
또 그 안에 울림이 있었던 우리의 고백을 같이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찬양 전에, 우리에게 뜨거운 사랑과 아낌없는 긍정 에너지를 나누어준 우리 박위 형제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