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사 무기(十四無記)>
옛 성인들은 제자나 외도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답할 만한 가치가 없거나
말해봐야 알아듣지 못할 상대일 때, 즉 소용이 없어 오히려 말하지 않는 쪽이 더 낫다고 여길 때,
말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말문을 닫는 것을 무기(無記)라 했다
무기(無記, pali. Avyākata)의 원어인 아비야까따(avyakata)는 ‘설명되지 않은, 설명할 수 없는,
답하지 못하는, 결정하지 못하는’ 등의 의미다.
즉, 선과 불선으로 판단할 수 없는 심리현상을 뜻한다.
부처님께서는 말하지 않아야 할 주제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취한 적이 있다.
이를 거룩한 침묵[성묵(聖黙, Ariya tuṇhībhāva)]이라 했고, 이것이 중국에 전해져서 무기(無記)
라고도 하고, 양구(良久)라고도 하게 됐다.
일체법을 말로써 다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경우에 따라 입을 닫을 때가 있는 것이다.
실은 법은 이미 입을 열기 전에 설해 마쳤다, 따라서 입을 열면 개구즉착(開口卽錯-입을 열면 바로
어긋나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입을 닫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다움은 입을 열어 말로써 일러 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무렵에 한평생 설한바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입으로 설한 바는 실다운 진리가
아니라 모두 방편이었다는 말이다.
초기경전에서 출가비구(니)의 하루 일과는 물론 안거(安居)를 포함한 매년 반복되는 수행생활
역시 대부분이 좌선수행의 시간이었다. 특히 집단수행 공간에서도, 출가수행자가 행해야 할 것은
‘성묵(聖黙)과 법담(法談)’만이 우선적으로 강조됐다. 여기서 성묵, 즉 성스러운 침묵이란 다름
아닌 좌선과 같은 선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못난 중생에게 어찌 말 없이 법을 일러 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잠시 양구(良久)한 후
주장자를 쳐 불성의 작용을 보인 후, ‘말’이라는 도구를 빌려서 방편으로 법문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의 침묵을 무기(無記)라고 하는데, 무기란 부처님께서 형이상학적 희론(戱論)에
대해 희론은 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질문에 기답(記答)하기를 거부하고
침묵한 것을 말했다.
부처님은 신(神)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기를 거부하셨다.
무기의 이유는 형이상학적 문제는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으며,
또 비록 해결했다 하더라도 불안⋅고뇌의 해탈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즉, 인간의 사유와 이성적 판단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의 희론(戱論)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했다.
부처님의 무기(無記)에는 십사무기(十四無記)가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열네 가지 문제에 관한 것에 답하기를 회피했다.
하루는 만동자(蔓童子, 말룽꺄뿟타, Malunkyaputta)라는 비구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중아함 권 60. 전유경(箭喩經) >
• 세상은 영원한가(常인가), 무상(無常)인가,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 3가지
• 세상은 유한(有限)인가, 무한(無限)인가, 유한이며 무한인가? 유한도 아니고 무한도 아닌가? ― 4가지
• 여래(如來)는 사후(死後)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기도 하며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 4가지
• 정신과 육체는 같은가, 다른가, 같은 것이기도 하고 다른 것이기도 한가? ― 3가지
이상의 14가지 물음에 대해 부처님은 답변을 하지 않고 무기(無記) 하셨다.
이런 쓸데없는 유형의 문제에 대해 부처님은 답변을 하지 않고 침묵한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다른 종교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해주고 있는데 부처님 교설에는 그러한 해명이
없으므로 몹시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는 만일 끝까지 부처님께서 답변을 해 주시지 않는다면 부처님
곁을 떠나겠다는 단호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을 때,
그 친족들은 곧 의사를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되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소.”
“성은 무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를 알아야겠소.”
“그리고 그 활이 뽕나무로 되었는지 물푸레나무로 되었는지… 화살은 일반 나무로 되었는지
대나무로 되었는지를 알아야겠소.”
“화살 깃이 매 털로 되었는지 닭털로 되었는지 먼저 알아야겠소.”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는 그것을 알기도 전에 온 몸에 독이 퍼져 죽고 말
것이다. 나는 세상이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문제는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가 강조하는 바는 인간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이와 같이 빨라서,
한가로이 이것저것 따지는 일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제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쓸데없는)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 논의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인생의 보다 중요한 문제는 현실적인 고통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응해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가르침을 펴는 부처님의 목적이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부닥친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에서 부처님은 “사성제(四聖諦)에 대해 말하는 이것은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14무기의 질문들에 대해 말하는 그것은 열반에 나아가게 하는 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때문에 자신은 항상 사성제를 가르치고 말할 뿐 14무기에 대해서는 가르치거나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은 <벽암록(碧巖錄)> 제65칙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세존(世尊)이 양구(良久)하신 예를 들었다.
어느 외도(外道)가 부처님한테 와서 말했다.
“말 있음도 묻지 않고 말 없음도 묻지 않겠습니다.” 이런 이상스러운 말을 던졌다.
‘말을 하지도 말고 말을 안 하지도 말고, 유언(有言) 무언(無言)을 다 떠나서 일러주십시오.’ 하는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일러야겠는가?
그런데 부처님이 양구(良久)를 하셨다. 아무 말씀도 없이 묵묵히 오래 앉아 계셨던 것이다.
이렇게만 했는데 그 외도가 말했다.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내 어두운 구름을 열어주셔서 깨달아 듣게 했습니다.” 하면서 감사와 찬탄을
드렸다. 외도는 부처님이 양구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 외도가 간 뒤에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외도가 무엇을 깨달았기에 깨달아 들었다고 합니까?”
학문이 깊었던 아난 존자도 그때 외도만큼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느니라.”
세상에는 채찍을 맞아야 움직이는 말도 있고, 피나게 때려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말도 있다.
그런데 여기 나온 외도는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천리마같이 훌륭한 근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부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벽암록>에 평했다.
부처님이 “말없이 대답하지 않았다(良久)”고 한 것은 말로서 대답한 것도 아니고, 침묵으로 대답한
것도 아닌 부처 본래의 경지를 여여하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즉, 유언(有言)에도 무언(無言)에도 떨어지지 않고, 이 두 차별 경계를 모두 포용한 불심의 지혜작용을
잠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양구(良久)한 것이다. 이렇게 의미가 깊고 엿보기 어려운 부처님
양구(良久)의 당처에 외도는 찬탄하며 말했다.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주시고 깨달음을 체득하게 하셨습니다.”
즉, 유무(有無)의 차별적인 이견(二見)에 미혹한 무명의 암흑 구름을 제거해주고 진실의 광명세계를
깨닫게 됐다고 하면서 세존의 대자비한 법문에 감사의 예의를 올린 것이다.
원효 대사가 지은 <대승기신론소>에 두구대사(杜口大士)라는 말이 나온다.
‘두구(杜口)’란 닫을 두(杜), 입 구(口), 해서 입을 닫는다는 말이다.
스스로 입을 닫은 대사란 불법에 귀의해 말없는 가운데 믿음이 두터운 사람을 말한다.
그런 사람 중에 유마힐 거사(維摩詰居士)가 있어, 유마힐 거사를 두구대사라 부르기도 했다.
<유마경>에 두구대사(杜口大士)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구절을 보자.
「석가엄실어마갈(釋迦俺室於摩竭) 정명두구어비야(淨名杜口於毘耶)
석가는 마갈에서 문을 닫았고, 정명은 비야리성에서 입을 다물었다.」
위에서 ‘엄실(俺室)’이란 닫을 엄(俺), 방 실(室), 해서 방문을 닫는다는 말이다.
‘마갈(摩竭)’은 마갈제국(摩竭提國), 즉 마가다국(Magadha國)을 말한다.
‘정명(淨名)’은 유마거사(維摩居士)의 별명이다.
‘비야(毘耶)’란 부처님 당시 유명한 고장이었던 비야리성(베살리/Vēsalῑ)를 말한다.
다시 정리를 하면,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 계실 때, (누구)의 물음에 아무 대구를 하지 않으셨고,
유마거사는 베살리에 있을 때 입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것이다.
‘정명(淨名)’은 유마거사의 별칭인데, 유마거사는 재가(在家)의 거사로서 속세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재가 남자 신도로는 유마거사가 가장 대표적이고, 재가의 여자 신도로는 승만 부인
(勝鬘婦人)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래서 속세에서 수행하는 재가들에게는 <유마경>과 <승만경>이
가장 주요한 경전으로 꼽힌다.
<반야심경>에서 보면 진실불허(眞實不虛)라는 말이 나온다. 부처님 말씀은 진실한 것이고 헛되지
않는 것이란 말이다. 모든 것이 하나하나가 다 진리다. 그와 같은 진리적 경지를 깨닫고 말하면
바로 그것이 진리의 말이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들은 아직 마음에 번뇌가 있고 여러 가지 잡된 생각(雜染)으로 하는 말이 많기 때문에,
자기의 진여심과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 그 자체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나 문자도
자기의 진여심과 통할 때에는 그대로 진리가 된다.
불교에서는 어떤 면에서 문자나 소리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느 경우에는 그것을
믿고 공부도 안 하고 참선만 한다고 하다가 아는 것마저 다 잊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포교에도
지장이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범부로 있을 때에는 번뇌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언어가 잘 소통이 안 된다. 그렇지만 보살로 갈수록
말을 잘 하고 오히려 진리를 더 잘 전달하도록 돼있다.
보살로 갈수록 번뇌가 맑아지고 교리나 진리를 터득하면 말도 잘 하고 이심전심은 전심대로 더 잘
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두구대사(杜口大士)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