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동성에서 5일(5-1, 完)
(청도맥주박물관)
瓦也 정유순
5-1. 청도맥주박물관(2023년 8월 6일)
동중서(董仲舒)의 혼이 깃든 덕주의 동자기념관을 출발한 버스는 5시간여를 달려 청도시에 도착하여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밤을 의탁한다. 청도(靑島, 칭타오)시는 중국 산동반도 동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나, 역사적으로는 즉묵현(即墨縣, 지모)에 속하는 평범한 어촌(漁村)이였다. 지금은 청도(칭다오)가 즉묵 보다 훨씬 더 큰 중심 도시가 되어 넘사벽으로 커졌고, 즉묵(지모)은 청도의 현급(縣級) 도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덕주~청도 간 도로변 비닐하우스>
19세기 말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아시아로 진출할 때 청도(칭다오)가 위치해 있던 교주만(胶州湾, 자오저우만)은 독일에게 점령되어 상하이와 마찬가지로 100년간 조계지(租界地)가 됨과 동시에 독일의 해군기지가 되었으며, 1903년에 독일인에 의해 청도에 세워진 최초의 맥주공장을 2001년 박물관으로 개장하였다. 지금도 ‘청도(칭타오)맥주’는 유명하다.
<중국 청도(칭다다오) 거리>
청도(칭다오)를 점령한 독일이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아마‘고향의 맛’인 맥주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독일인들이 맥주 제조기술을 들여와 독일 맥주 회사를 건립했다. 그리고 청도맥주가 유명세를 탄 것은 인근 로산(崂山, 라오산)에서 나는 광천수가 맥주를 제조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물맛이어서, 중국을 대표하는 맥주 생산지가 될 수 있었다.
<청도맥주박물관>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이 신경 쓰지 못하는 틈에 일본이 이곳을 점령하여 중국 침략의 전진기지로 활용하였고, 맥주회사도 일본으로 넘어갔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접수하면서 ‘국영칭다오맥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3년 중국 10대 브랜드에 선정되더니, 이제는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20년 전부터 맥주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로산(라오산)의 광천수 대신, 지하수를 정제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맥주주입 모형>
<청도생맥주>
청도맥주박물관에서 최고 인기는 정제하기 전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원액’을 시음하는 코너다. 입장권을 보여 주면 순생(純生)맥주를 한 잔과 땅콩 안주가 함께 제공한다. 시중에서 맛보던 맥주보다 몇 배 더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꼬리를 문다. 더 마시고 싶으면 현장에서 구입해 마실 수도 있다고 한다.
<생맥주 시음장>
박물관 앞으로는 710m에 달하는 ‘칭다오맥주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쓰레기통, 벤치, 맨홀 뚜껑까지 칭다오맥주를 테마로 장식했다. 거리를 따라 50여 개의 맥주 바와 음식점이 이어진다. 각종 해산물 요리, 조개 볶음과 꼬치구이를 곁들여 칭다오 맥주를 마시기 좋은 곳인데, 대체로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청도 맥주거리>
청도맥주박물관을 끝으로 산동성에서의 모든 여정은 끝이 나고 점심 먹고 공항으로 나가 서울 행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항상 여행의 끝은 무언가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 시나브로 찾아온다. 이번 산동성 여행에서 느낀 점은 중국이 역사동북공정을 끝내고, 이제 문화공정을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었다.
<맥주공장>
<맥주병>
그 첫 번째가 공자에 대한 위상이다. 중화권에서도 공자는 오랜 기간 성인으로 취급받았지만, 청(淸)나라 말기 서방 세력의 침입을 받고 근대의 서양식 사고(思考)관이 퍼지기 시작하며 유교는 당시 서방에게 청이 뒤쳐지게 된 원흉 취급받게 되었으며, 연장선상에서 지식인층으로부터 공자도 격하 받게 되었고 이때부터 전근대성의 상징마냥 인식하기 시작했다.
<니산 공자상>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 뒤에는 조상 숭배가 금지되었고,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시절에는 공자를 깎아내리는 비림비공운동이 전개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대혁명 와중에 곡부(曲阜)의 상당수 공자와 관련 유적이나 문화재가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파손되는 수모를 겪었다.
<상처난 공자묘 비석>
비림비공운동(批林批孔運動)은 반모(反毛) 쿠데타의 주동자 임표(林彪, 린퍄오)를 공자에다 비겨 함께 비판한 10전 대회 이후의 정치운동이다. 공자 비판운동은 1919년 5·4운동 때부터 비롯되었는데 1960년대에 사학계에서 다시 일어났다가 1970년대에 와서는 유소기(劉少奇, 류샤오치), 임표(林彪)의 반당(反黨) 수정주의 비판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니산 금성옥진 광장>
이와 관련하여 중국에서는 1973년 여름부터 약 3년간, 대규모의 공자비판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공자의 호칭도 선생을 의미하는 <자(子)>를 빼고 <공구(孔丘)>라고 부르고, 또한<공로이(孔老二, 공가의 차남)>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이와 동시에 공자를 숭배했다고 하는 임표 또한 <반혁명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받아서 정치적으로 말살되었다. 그렇지만 이 비림비공운동은 학술적 실체가 없는 <영사사학(影射史學)>으로 전부 부정되어 버렸다.
<공묘 앞에서 개인이 제사드리는 모습>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나고 나서 이에 대한 자성론이 확산되자 공자의 위상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다. 곡부의 유적과 문화재도 복원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근대 공산주의 이전에도 중국엔 위대한 사상가들이 있었다는 식으로 공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자의 후손을 이용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대만(타이완)에 거주하는 77대손이며 마지막 연성공(32대)인 공덕성(孔德成)이 문화혁명에 격분하였다.
<니산 공자상과 대학당>
그럼에도 중국당국은 공자(孔子)와 유가(儒家),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산하는데 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자의 탄생지인 니산(尼山)에 니산성원서원(尼山聖源書院)을 신설하여 국내외 학자들에게 대대적인 유가학풍을 일으키고, 니산성경공원(尼山聖境公園)을 조성하여 중국의 내국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적극적인 문화공정이다.
<니산성원서원>
두 번째가 덕주(德州, 더저우)시에는 동중서(董仲舒)를 기리기 위한 시설들이 새로 단장하고 있었다. 그는 음양오행의 이론을 유교에 채용하여 세상 만물은 모두 이 규칙에 따르고, 이것이 사회적 질서도 규율한다며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주장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피력한다. 이는 ‘천지인(天地人)은 하나’라는 우리의 천부경(天符經)에서 도입한 것 같다.
<천부경>
아무튼 중국은 올 때마다 무언가 달라지는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도로를 포함한 사회간접자본의 인프라가 날로 발전하는 것 같고, 명승 유적지에 가보면 몰려드는 인파가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역사동북공정으로 남의 역사를 침탈하고 시진핑이 전 미국대통령 트럼프를 만났을 때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원래 중국의 일부”였다는 헛소리를 할 때, 이 나라는 그저 조용했고, 국내에서만 큰소리치는 강단사학계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북한까지 점령한 한(漢)나라의 왜곡된 지도>
우리의 이웃 국가인 중국이 발전하고 뻗어나가는 것에 대하여 ‘배가 아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진정한 문화국가로 발돋움하려면 진실 된 역사적 바탕 위에서 힘의 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사실(史實)을 사실(事實)대로 기록하여 역사침탈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子曰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자왈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고 설파한 지혜(智慧)에 대하여 중국이 먼저 알아야 한다.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글>
이는 “공자께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니라.”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쥐꼬리만 한 자존심 때문에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이 큰 병폐가 아닌가? 이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산동성박물관의 옥벽(玉璧)>
그리고 우리도 국기(國旗)인 태극기의 정체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음양을 나타내는 태극(太極)과 팔괘(八卦)가 중국의 가는 곳 마다 도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태극기는 중국의 것을 차용해 사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고유의 우리 것인데 영토가 좁아져서 그렇게 된 것인가? 또는 우리의 고대사가 완전 부정된 식민사관의 후유증인가? ‘국가는 형체(形體)이고 역사는 혼(魂)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가슴에 되새기자.(끝)
<동중서 동상 앞의 태극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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