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 초 비록 일본 Mazda의 모델을 들여온 것이기는 하나, 기아자동차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 승합차인 봉고를 만들어 부도직전의 상태에서 단기간에 우량기업으로 기사회생한 이야기는 독자 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짐작된다. 흔히 ‘봉고신화’라고 일컬어지는 이 극적인 역전드라마는 사실 면밀한 시장조사에 의해 향후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서 승합차가 힛트를 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중반에 Mazda에서 Brisa를 들여와 국내 승용시장을 선도하고 있던 기아자동차가 상용부문의 하나의 가지치기 모델로 1톤 트럭과 Platm을 공용화 하는 승합차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81년에 5공화국의 강제적인 중화학공업 합리화조치에 의해 승용차 생산을 금지 당하고 1톤에서 5톤까지의 트럭만 만들게 된 기아자동차로서는 트럭만 팔아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선택의 여지도 없이 생존을 위해 승합차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것이었다. 그 것이 천만다행으로 그 당시 국내 시장의 여건과 딱 들어맞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니, 결과적으로 기아자동차로서는 상당히 운이 좋았던 셈이나 그래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았더라면 타이밍 좋게 그 행운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긴 자동차라는 게 출시하기 4 ~5년 전부터 기획해서 출시 후 또 4~5년 동안 만들어 팔아야 되는 10년 Cycle의 제품이니, 자동차를 만들어 판다는 자체가 원래 거대한 도박이기는 하다).
이 때 승합차로 국내에서 처음 팔린 봉고의 인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봉고는 같은 Platm을 쓰는 1톤 트럭의 이름으로도 쓰였지만 어느 새 시장에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승합차를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버려 그 후 현대자동차에서 승합차 그레이스를 내놓았을 때 사람들이 ‘저게 현대에서 나온 봉고냐?’라고 흔히들 얘기했을 정도였고, 요사이에도 가끔 뉴스에서 기자들이 사건사고를 설명하면서 ‘범인들이 피해자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어쩌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DaimlerChrysler의 고유제품 이름이었던 Jeep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져 SUV를 일컫는 일반명사가 된 것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들 찦차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래서 원래 Mazda의 1톤 트럭의 브랜드였던 봉고라는 이름을 기아자동차가 버리질 못하고 20년 넘게 지금도 Van과 1톤 트럭의 이름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물론 국내에서만이다. 수출 시에는 상표권 문제로 다른 이름을 쓴다).
이러한 봉고신화의 영향 때문인지, 차종개발에 있어 안정적인 수익지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뭔가 독특한 특징을 집어넣어 새로운 세그멘트를 열어 나가는데 희열을 느끼는 묘한 조직문화를 가진 기아자동차가 봉고 이후 만들어 낸 대표적인 화제의 차종 세 가지가 바로 스포티지, 엘란, 그리고 카렌스다. 그 중 스포티지와 엘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고 독자 분들과도 리플을 통해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으므로 이 번에는 카렌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혹 독자 분들 중에는 왜 카렌스가 화제의 차종인지, 그리고 제목에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 카렌스가 우리나라 최고의 힛트차인지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카렌스가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승용형 Mini Van으로서 국내 RV대중화의 시대를 열었고(RV에는 Mini Van 이외 SUV 등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에 대한 상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 보도록 하자), 99년 6월 출시 이후 2002년 말까지 국내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근 42개월 동안 연속적으로 Back-order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해가 되실는지. 그것도 수출물량을 대느라고 내수 물량을 충분히 공급 못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동안 국내에서 카렌스보다 대수 면에서 많이 팔린 Best-seller 모델들은 많았으나, 42개월 간의 Back-order기록은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제대로 틀을 갖추어 성장한 이래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新車에 약한지라 어느 모델이든 출시 이후 新車효과에 의해 어느 정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기간을 가지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모델들이 다 힛트차종이 되지는 못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동차라는 게 10년 Cycle의 도박인데, 개발된 모델이 출시 시점에서 사회 분위기나 시장 수요와 맞아 떨어져 큰 화제가 되고 상당 기간 동안 목표대수보다 월등히 많이 팔려야 힛트차종이 되는 것이다. 카렌스는 월 5천대의 생산능력 규모로 기획되었는데, 출시 이후 42개월 동안 밤낮없이 작업해도(출시 초기에는 월 9,500대까지 만들었다) 수요를 못 따라갔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힛트차라고 한 것이니 이 점 독자 분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당시 하루라도 빨리 인도받기 위해 계약을 재촉하는 고객에게 영업사원이 차량인도 지연에 대해 불평하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받은 건 아마 카렌스가 유일할 것이다).
사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카렌스에 대해 자식과도 같은 애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필자가 기아자동차의 상품기획팀장으로 있으면서 필자의 아이디어로 처음부터 기획해서 만들어낸 차가 바로 카렌스이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는 80년대까지는 주로 Mazda의 차종을 들여와 생산하고, 90년대부터는 연구소 중심으로 독자모델과 Mazda 차종의 개량모델을 만들어 왔었기 때문에 사실상 공장의 엔지니어들이 차종개발을 주도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카렌스는 기아자동차 창사 이래 처음으로 선진 메이커들이 늘 그러하듯이 본사의 상품기획부가 시장 조사부터 시작하여 처음부터 기안하고 상품컨셉과 목표원가, 목표수익, 일정 등의 주요 개발목표들을 초기에 맞추어 놓고 사내 관련부문을 주도하면서 만들어 낸 최초의 차종이었다.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저가격과 LPG엔진 승합차의 경제성, 그리고 RV로서의 Utility라는 3박자를 겸비하여 대힛트를 치면서 사실상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 상태였던 기아자동차의 법정관리 조기 졸업에 크게 기여하고 RV전문메이커로서의 확고한 기업이미지까지 만들어낸 카렌스이기에 지금도 길 위에서 달리고 있는 카렌스를 보면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러면 과연 카렌스의 개발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필자가 東京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기아자동차 본사 상품기획부로 발령 받은 96년 초 기아자동차는 국내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에 밀려 거의 모든 차종의 세그멘트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 당시 기아자동차는 공장의 생산이나 연구인력 규모에서 현대자동차의 반밖에 안되면서도 차종 수는 변변한 힛트모델도 없이 오히려 현대자동차보다도 많았다(식당에 가 봐도 잘되는 식당은 메뉴가 몇 가지에 불과한데 손님 없는 식당의 메뉴리스트는 꼭 벽면을 가득 메우지 않는가?). 기존 모델들이 인기가 없으니 계속 가지치기 모델이나 新車를 만들어 내는데, 돈도 모자라고 인력도 부족하니 자꾸 개발일정은 지연되고 최고경영진에서는 빨리 만들어 내라고 성화를 부리니 어쩔 수 없이 디자인이나 품질 면에서 완전하지 않은 채 제품이 출시되는 게 다반사였다. 당연히 시장의 반응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고 당황한 최고경영진의 지시에 의해 새로 출시된 모델의 스타일이 수시로 바뀌는 등 악순환의 연속이었다(크레도스의 디자인을 시도 때도 없이 조금씩 계속 바꿔나간 게 좋은 예가 되겠다).
판매가 어려울수록 똘똘한 몇 개의 차종에 가용자원을 집중하여 힛트를 시켜 나가야 하는데, 기아자동차는 당장 판매대수가 좀 줄어든다고 비인기 차종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급한 마음에 이것 저것 만들어내기만 해 결국 그저 그런 차종만 많아지는 길거리 좌판식 제품 Line-up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기아자동차의 제품이미지도 약해지고 과다한 차종 수에 의해 영업 일선은 물론, A/S나 부품공급 같은 후방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대당 코스트가 올라가고, 경쟁업체와 비슷하게 들어가는 차종 당 개발비도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에 비해 제품의 인기가 떨어지니 조금이라도 싸게 팔아야 되는 상황에서 차종 당 판매대수가 경쟁차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반도 안되니 제대로 회수가 안 되는 등 수익성도 급속히 나빠져 가는, 한마디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총체적 난국 상황이었다(이렇게 된 데는 현대자동차에 이은 2위 메이커라는 확실한 현실인식 하에 Market-follower로서의 전략을 세우지 않고, 현대자동차에 뒤질 것 없다는 자존심으로 Market-leader에게 무리하게 맞짱을 뜨려 했던 기아자동차 최고경영진의 실책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Renault가 인수하기 이전 Nissan도 No.1 Toyota와 비현실적인 자존심 경쟁을 벌리다가 경영위기를 자초했었다).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중소형 트럭부문에서마저도 조직과 자금을 앞세운 현대자동차의 파상공세에 밀려 Market Share 1위를 빼앗기는 등 사내에서는 自嘲와 함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 당시 상품기획팀장으로서 고민 끝에 필자가 내린 결론은 승용차에서는 이미 현대자동차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시장에서의 Market Share에 있어서도 크게 뒤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일반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이미 승용차 하면 세그멘트 별로 아반테, 쏘나타, 그랜져 등 현대자동차 모델들이 확고하게 자리잡아 소위 소비자의 Mind Share에서 현대자동차를 밀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없는 돈에 아무리 용을 써서 뛰어난 승용 모델을 개발한다 해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미 현대자동차 승용 모델의 특성(넓은 실내, 부드러운 승차감, 아기자기한 디자인, 고급스러운 느낌 등)에 길들여져 있어 ‘승용차는 역시 현대가 최고’라는 인식은 도저히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일단 길들여지면 사람들은 현대자동차의 특성을 역으로 일반적인 승용차의 특성으로 생각해 좋은 승용차는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믿어 버린다. 그래서 현대자동차가 차를 가장 승용차답게 만든다고 주장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니 이게 무서운 것이다). 더욱이 자동차문화의 미발달로 자기 나름대로의 합리적 연구를 통해 자기에게 맞는 차를 고르는 게 아니라 막연한 느낌이나 남들이 많이 사는 차를 따라서 사는 후진적 구매행태의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내수시장의 특성 상(‘자동차와 문화 (1)’ 참조) 일단 현대자동차에 빼앗긴 큰 몫(Lion’s Share)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따라서 되지도 않는 승용부문에 자꾸 집착하는 것보다 새로운 컨셉의 자동차로 힛트를 쳐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켜야 했고(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의 의표를 찌르는 인천상륙작전이 있었기에 낙동강 전선에서 공산군의 압력을 순식간에 저하시키고 밀고 올라갈 수 있었지 않았는가? 그런 전격작전 없이 그냥 낙동강에서부터 밀고 올라갔었다면 시간도 엄청 걸리고 전력 소모도 막대했을 것이다), 이렇게 방향은 잡았는데 상품기획부 내에서 아무리 회의를 거듭해도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컨셉의 자동차를 개발해야 하는 지 도무지 感이 잡히질 않았다. 그 때 아이디어를 얻고자 여러 자료를 뒤지던 중 우연히 어떤 외국 저널리스트가 쓴 글이 필자의 눈에 띄었는데, Hatch-back 차종이 60년대에 처음 등장하였을 때는 사람들이 다들 모양이 이상하다면서 차도 아니라고 했지만 점차 스타일이 눈에 익으면서 Hatch-back 차종의 편리함과 유용성이 인정 받아 이젠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는 그렇다면 지금 전세계 사람들이 Car, 즉 승용차라고 할 때 당연하게 떠오르는 기본 스타일(자동차업계의 전문용어로는 3 Box Style이라고 하는데 쉽게 지금의 그랜져를 생각하면 되겠다)이 2, 30년 뒤의 소비자들이 Car라고 할 때에도 당연히 생각하는 기본 스타일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2, 30년 전에 나온 자동차들이 그 당시에는 최신 스타일로서 멋있게 느껴졌겠지만 지금 보기에는 구식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내 눈 앞에서 폼나게 굴러 가는 멋진 차들도 2, 30년 뒤에는 전부 구닥다리로 보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2,30년 뒤에 사람들이 Car라고 할 때 떠올릴 기본 모양은 과연 어떤 스타일일까? 이런 의문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을 휘저었으나 신참 상품기획 담당에게 그 답이 떠오를 리가 없어 답답한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96년 가을 Paris Auto Show에서 출품작들을 바삐 둘러 보던 필자는 Reanult의 전시장에 놓여진 한 모델을 보고 뭔가 짜릿한 느낌에 걸음을 멈추었고, 그 후 몇 시간 동안 그 모델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고 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그 곳을 떠나질 못했다. 그 다음 날에도 계속 그 모델의 주위를 맴돌았고, 그리고는 드디어 마음 속에서 ‘바로 이거다!’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모델은 바로 Renault가 Concept Car로 출품한 Megane Scenic이었다. 준중형 승용차 Platm으로 만든 승용형 5인승 Mini Van으로 전체적인 Form을 둥글게 가져가 앞쪽은 짧고 낮게 하고 뒤쪽의 볼륨을 키워 뒷좌석의 거주성과 화물 적재성을 키운 스타일, 그러면서도 승용차 못지 않은 실내 디자인과 편의성, 다목적 용도의 Utility, 승용차보다 높은 Hip Point에 의한 뛰어난 視界性 등 아직 양산된 모델은 아니지만,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일반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게 구현되어 있는 새로운 컨셉의 승용차였다.
기존 2 Box Style의 투박한 Van이나 Wagon이 아니라 앞쪽 엔진룸을 최소화하여 Cowl Point(앞 유리창 아래 와이퍼가 달려 있는 부분으로 차량 설계 시 전체 Proportion을 결정하는 중요한 Hard Point이다)를 최대한 앞쪽으로 가져가 차체를 작게 하고도 실내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1.5 Box Style의 Mini Van 승용차, 그건 바로 기존 소형 승용차에다 RV의 Utility가 결합된 새로운 컨셉의 승용차였다(요새는 이렇게 여러 차종 컨셉이 섞인 모델을 Hybrid라고 흔히들 얘기하고 실제 그런 컨셉의 차들도 많이 나와 있지만, 그 당시 여러 실험적 형태들을 거쳐 제대로 된 형태의 차로 만들어 낸 것은 Megane Scenic이 최초였다). 바로 필자가 고민하고 있던 미래의 Car의 모습이 제시된 것이다 (그 당시 경영위기에 빠져 있던 Renault는 Megane Scenic과 역시 RV 컨셉을 가미한 다른 승용 모델들의 연이은 힛트로 일거에 경영부진을 극복하고 여세를 몰아 Nissan까지 인수하게 된다. Nissan의 부진도 결국 제품 측면에서는 RV의 영향력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니 이렇듯 상품의 컨셉이라는 것은 기술이나 품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승승장구 하던 Reanult가 대형 승용차에도 RV 컨셉을 집어 넣어 미래의 고급 대형차라며 2001년 Frankfurt Motor Show에 출품하고 그 다음 해에 출시했던 Vel Satis가 시장에서 냉담한 반응을 받고, 최근 중소형 승용차 세그멘트에서도 새로운 컨셉을 내놓지 못해 다시 경영실적이 나빠지고 있는 걸 보면, 너무 앞서지 않으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힛트 컨셉을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 ‘잊혀진 한국의 명차 – 스포티지’ 참조).
혁신적인 컨셉의 Megane Scenic을 보고 그 동안 복잡하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시원해진 필자는 귀국하는 비행기의 Economy class에 구겨 앉아(필자는 몸이 좀 크다. 그래서 Economy class에 앉아 장거리 출장을 가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21세기에 국내 내수시장에서 현대자동차를 따돌리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승용차의 컨셉을 기존 승용차와 RV의 Fusion으로 정리했고, 그 시리즈의 제 一彈으로 개발할 모델의 컨셉을 정리했는데 그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 1) 세피아 1.8L의 Underbody와 기존 부품을 최대한 활용한 1.5 Box Mini Van을 개발하여 세피아와 크레도스의 사이에 위치시킨다. 2) 개발비를 줄여 저가를 실현하기 위해 개발범위를 최소화 한다. 즉, 국내 시장 & Auto Transmission 사양만 개발한다. 3) 3열 시트로 하되 시트 Layout을 조정해 6인승 승용과 7인승 승합을 동시에 개발한다. 4) 승용차의 장점과 RV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한다.
사람이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에 해답을 얻고 나면 의외로 주변에 해결 실마리들이 널려 있었는데 미처 그 전에는 보지 못했었음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가 東京 주재원으로 일본에 있었던 92년 초에서 95년 말의 기간은 일본이 90년대 초반 반짝 호황을 거쳐 장기 불황의 터널에 진입하게 되는 平成(헤이세이)불황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자동차 시장에서는 RV의 붐이 조성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기존 승용차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고 수출에 주력하여 불황을 벗어나려던 일본의 자동차메이커들은 85년 G5 프라자합의 이후 진행된 급격한 엔(円) 강세에 의해 수출의 수익성이 극도로 나빠져 진퇴양난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정통 SUV Pajero(현대자동차 갤로퍼의 기본 모?와 중형 승용차 Underbody를 활용한 Mini Van Chariot(현대자동차 싼타모의 기본 모델)와 RVR을 가진 Mitsubishi만 홀로 일본 국내시장에서 호황을 누려 ‘RV의 Mitsubishi’라는 명성을 얻고 있었고(Mitsubishi도 승용부문에서 하도 안되니 가지치기 차종으로 Chariot를 만들어 보았던 것인데, 이게 시대를 잘 만나 갑자기 효자차종이 된 것이니 일본판 ‘봉고신화’라고 할만 하다), 새로이 부상한 RV에 대해 원래 조그마한 계기만 주어지면 몰려 들어 호들갑을 떠는 일본 언론계와 출판계에서는 관련 뉴스와 책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 앞에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결국 RV의 붐이 계속 이어져 승용형 RV, RV형 승용차가 향후 대세를 이어갈 것으로 믿고 제품개발 방향을 과감히 수정한 Honda, Toyota, Suzuki는 살아 남았고, RV의 붐이 곧 끝나고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정통 승용차의 시대가 올 것으로 믿었던 Nissan, Mazda, Mitsubishi는 90년대 후반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Honda의 경우, 당시 가와모토(川本) 사장의 진두지휘 하에 기존 승용차 부문에서는 Civic, Accord같은 기본 모델들만 남긴 채 차종 수를 대폭 축소하고 승용차를 베이스로 한 승용형 RV에 집중하는 올인 전략을 펼쳤고, 다행히 Odyssey, Step Wagon, CR-V등이 일본과 북미 시장에서 힛트를 치면서 90년대의 위기상황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다. 조심성 많은 Toyota는 역시 Honda가 먼저 하는 걸 보고 따라가면서 비슷한 컨셉의 모델들을 내놓아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RV시장에서는 Honda의 아성을 깨트리지 못하고 뒤따라 가고 있는 형국이다( 예를 들다 보니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일본의 RV에 관한 상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늦게 시작했지만 조직과 자금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세한 Toyota가 왜 RV시장에서는 아직도 Honda를 이기지 못하고 있을까? 혹자는 Toyota가 RV 이외에도 차종이 많다 보니 RV에 주력하는 Honda를 못 이기고 있는 거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기존 승용차 시장의 강자 Toyota에 대해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강한 이미지, 즉 대표 차종인 크라운으로 상징되는 ‘푹신하고 안락한 아저씨의 차’라는 이미지가 젊고, 역동적이며 스포티한 RV의 이미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RV의 이미지에는 Challenge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F1 Racing으로 대표되는 Honda의 기업이미지가 오히려 잘 들어맞는다. RV라는 것이 단순한 기능 상의 만족을 떠나 삶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비록 몸은 도시에 머물러도 마음은 자연 속에 머무르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형이상학적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기에 그 어느 차종보다 판매에 있어 이미지가 중요하고, 그 이미지 형성에 있어 Brand Identity의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젊은 세대를 Toyota로 끌어오기 위해 수많은 모델을 출시하며 애를 쓰던 Toyota가 결국 포기하고 최근 북미시장에서 젊은 세대를 위한 새로운 브랜드로 Scion을 출범시킨 게 좋은 예가 되겠다. 이게 성공하면 Lexus처럼 일본 내에서도 Launch시키지 않을까?).
시장에서 No.1기업을 공격할 때 그 기업이 시장을 선도하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약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마케팅 교과서에 늘 나오는 얘기다. 그리고 시장 선도기업은 항상 守城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급격한 흐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의 도입에는 그렇게 열성적이지 않고, 오히려 2, 3위 업체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위해 혁신적인 제품들을 개발하는 경향이 강하다. Toyota가 기존 승용시장을 석권하면서 구축된 이미지를 RV로 공격해 들어간 Honda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존 승용차 시장에서 힘들게 얻어 온 Honda다운 강렬한 주행성능 이미지는 많이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가와모토(川本) 사장은 Honda 차량의 기존 특성을 바꾸어야 한다며 F1 Racing에서도 철수를 결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Honda의 魂을 지켜야 한다면서 Honda 연구소의 이리마지리(入交) 부사장이 강하게 반발하며 격렬한 노선투쟁을 벌이다가 물러나 게임업체 SEGA의 부사장으로 옮긴 얘기는 유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기존의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시장에서 현대자동차가 갖고 있는 강한 기존의 이미지, 즉 그랜져로 대표되는 Brand Identity는 Toyota의 그 것과 매우 유사하다. 필자가 카렌스를 기획하면서 무릎을 친 것은 바로 그 동안 현대자동차를 이길 수 있는 차종을 연구하면서 왜 Toyota를 이기는 Honda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것도 일본의 현장에서 지켜 보았으면서도 말이다. 기아자동차는 비록 국내 기준이기는 하나 ‘기술의 기아’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엔지니어링의 느낌이 강하고, 현대자동차에 비해 젊고 스포티하면서 실용적인 Brand Identity를 가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Honda처럼 RV에 적합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RV는 차량특성 상 Off-Road에도 자주 갈 것 같고 가족이 함께 이동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단하고 안전하다는 기아자동차의 이미지도 충분히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존 이미지에다가 먼저 치고 나가기만 하면 소비자들이 기아자동차를 RV 선두기업으로 인식할 터이니 필자는 Honda를 생각하며 승용형 RV로 21세기에 현대자동차를 이겨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귀국 후 필자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대해 상품기획부에서는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였으나,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의 트렌드가 항상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일본의 선례를 따라갔기에 당시 폭발적인 일본의 RV 붐을 보고 한 번 밀어 보기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신참의 서투른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 주고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그 당시 강언석 상품기획부장( 지금은 현대/기아자동차 상품전략실장)과 김해진 상품기획 담당 이사에게는 지금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관련 부문들을 모아 놓고 수 차례 회의를 해도 다들 RV에 대해 낯설어 하는 지라 회의진행이 되질 않아 일단 회의를 중단하고, 일본의 예를 들어가며 향후 RV의 시대가 온다고 한참 사내교육을 시키느라 진이 빠진 건 약과였다. 정작 시작하려 하니 가장 핵심인 연구소와 국내영업이 움직이질 않았다. 연구소의 말인즉슨 세피아 1.8L의 Underbody로 7인승을 만들면 무게가 늘어나고 3열 시트로 해야 하므로 차다운 동력성능과 충분한 실내 공간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고, 원가 면에서도 목표로 하는 기본 판매가격 1,000만원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 그래도 차종이 많아 바빠 죽겠는데 해보지도 않은 새로운 컨셉의 차까지 리스크를 안고 개발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국내영업이었는데, 안 팔리면 어쩔려고 새로운 컨셉의 차를 들이미냐는 식이었다. 하긴 96년 초 그 당시 현대정공에서 만들어 출시한 싼타모 7인승이 낯선 컨셉과 고가로 인해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으니 그럴만도 했다(당시는 경기가 호황일때라 싼타모 가격이면 폼나는 중형차를 선택하였다). 그러면서 개발과 생산에 그런 여유가 있으면 아반테 Wagon이 이미 나와 있으니 세피아 Wagon을 만들어 주던지, 정 Mini Van을 하고 싶으면 아반테 Wagon 가격( 당시 800만원 정도)으로 만들어 주면 팔아보겠다고 막무가내였다. 판매하려고 만드는 물건이니 결과의 최종 책임을 지는 국내영업의 보수적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현대자동차의 뒤만 따라가서는 영원히 2인자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할 뿐더러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니 한 번 과감히 덤벼들어 해 보자고 통사정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열이 받을 대로 받았던 필자는 회의에서 국내영업을 빼기로 했고 카렌스의 개발은 국내영업을 제외시킨 채 상당 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결국 양산 때까지 국내영업은 끝끝내 예상 판매대수를 내놓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카렌스의 생산규모는 필자가 생산기획과 협의하여 결정하였다. 이렇게 당시 필자에게 욕을 들어 먹고 회의실에서 쫓겨난 국내영업의 과장이 나중에 카렌스가 대힛트를 치자 판매하느라 수고했다고 賞을 받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렵게 관련부문의 의견을 모아 개발품의를 써서 결재를 올리니 전무까지는 그럭저럭 통과되었는데, 자기 고집 세고 다혈질인 당시 김영귀 사장이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하지, 씰~ 데 없이 이게 뭐야!’ 하면서 결재판을 집어 던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 번 집어 던진 건 다시 보지 않는 걸로 유명한 사장인지라 카렌스 개발은 중단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몇 주일이나 끙끙거리다 필자는 나중에 사장한테 혼날 걸 각오하고 다른 루트로 당시 김선홍 회장에게 결재를 올렸고, 제품에 대한 이해가 빠른 김회장은 즉시 카렌스의 잠재력을 깨닫고 ‘이걸 누가 막았어!’하고 역정을 내기에 이르렀다. 즉시 시행하고 이왕 하는 거 개발기간을 당시 Toyota 수준인 18개월로 해 보라고 회장에게 지시를 받게 된 사장은 바로 개발품의서를 가져 갔고, 그 때부터 연구소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연구소의 설계 인력들이 東京都 千葉(치바)縣에 있는 기아일본연구소에 옮겨졌고, 허허벌판에 연구소 하나 달랑 있는 시골에서 달리 할 것도, 갈 곳도 없는지라 연구원들이 교대로 몇 개월 동안 하루 16시간씩 개발업무에 투입되는 강제수용소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개발코드명은 RS로 지었는데 이는 Recreational Sedan의 줄임말로 승용차와 RV의 Fusion Car로 힛트를 쳐보자 하는 기아자동차의 염원이 담긴 이름이었다.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세피아 1.8L Underbody의 7인승 컨셉은 역시 연구소의 반대에 직면했다. 앞서 말한 이유 이외에 그 당시 일본에서 막 출시된 Toyota의 Ipsum 7인승이 Corona 2.0L Underbody를 기본으로 했으니 싼타모도 그렇고 아무래도 7인승은 중형차 Underbody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판매가격이 올라가 결국 싼타모 꼴이 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엔지니어들은 장인정신이 강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기에 직접 차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안 한다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크레도스의 Underbody로 Honda의 Odyssey와 유사한 개발컨셉으로 변경되어 진행되고 있었을 때, Toyota에서 준중형 Corolla 1.5L Underbody로 만든 소형 6인승 Mini Van Spacio가 일본 시장에 튀어 나왔다. 지금의 레조보다도 작은 차체에 접이식 시트를 한 줄 희한하게 집어 넣은 모델인데, 옹색하기는 하나 준중형 승용차로도 다인승 Mini Van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입증되었으니 연구소 엔지니어들의 입이 닫혀졌고 자존심이 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카렌스의 개발 主査(책임자)였던 이모 과장의 후일담에 의하면, 당시 아무리 엔지니어들을 설득해도 안되어 할 수 없이 Spacio를 한 대 샘플로 도입해서 보여줬더니, 엔지니어들이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조용히 제자리에들 돌아가서는 맡겨진 업무를 하더라는 것이다. Spacio가 Ipsum과 함께 카렌스의 기본 설계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다.(사실 Spacio는 세피아로 7인승 Mini Van을 만들면 제대로 된 차가 나올 수 있겠는가 하는 경영진의 우려에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어간 카렌스는 A/T의 Shift Gear 위치를 놓고 다시 설전이 벌어졌는데, 연구소에서는 시간도 없고 세피아의 Underbody를 그냥 쓴다고 했으니 세피아처럼 앞 시트 사이에 위치하는 Floor Shift로 가자는 것이었고, 필자는 RV의 특성 상 핸들 뒤 편에 위치하는 Column Shift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RV에 있어 Mono Space의 컨셉은 Key Factor로서차 실내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차내에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이러한 Walk-through 기능이 없기에 일반 승용차에서는 차내에서 앞자리에서 뒷좌석으로 이동하는 것이 A/T Shift Gear에 걸려 매우 어렵다), 가족들이 타고 다니는데 주행 중에 뒷좌석에 앉은 애가 울기라도 하면 앞 조수석에 앉은 애 엄마가 뒤로 재빨리 가야 하니 앞 시트의 사이가 막혀있으면 안 된다고 끝까지 우기는 필자가 불쌍했는지 기술적으로도 안 된다고 하던 연구소가 결국 필자 말을 들어 주었다. 그래서 카렌스 A/T의 Shift Gear가 미국차처럼 핸들에 붙어 있게 되었고 앞 시트 사이에 180mm의 통행 공간이 생긴 것이다(물론 수동기어는 어쩔 수 없이 Floor에 위치해 있다). 사실 필자는 일본의 Mini Van들을 보고 그렇게 주장했던 것인데, 카렌스 출시 이후 시장에서 Column Shift의 장점이 별로 주목받지 못한 걸 보면 생각만 앞서서 괜한 걸 연구소 고생만 시켰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97년 3월 RS의 Model Freeze(디자인 확정)가 있었고 실제 양산에 들어간 것은 99년 3월이니 총 개발기간은 24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개발기간 중 회사가 사실상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간중간 일정이 지연되어서 그런 것이지, 실제로 개발에 소요된 시간만 따져 보면 개발기간은 단지 16개월에 불과하였다. 카렌스가 경영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이라는 공감대가 사내에 형성되면서 직원들의 월급도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금도 최우선으로 배정되었고,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게 물건이 되겠다는 확신이 서자 젊은 엔지니어들이 달라 붙어 총력 매진한 결과였다( 사실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경영진들이 바빠져 개발 진행과정에 잔소리들을 거의 못해댄 것도 개발기간 단축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 개발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세피아와 크레도스의 기존 부품들(도어 핸들, Tire, 각종 스위치류 등)을 그대로 갖다 썼음은 물론, 試作金型을 여러 번 만들어 봐야 하는 계기판, 램프, 시트 등은 국내 최초로 한 번의 一發本型으로 양산품질을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 과정에서 부품업체들도 필사적으로 도와주었다. 이렇게 해서 초기 컨셉과는 달리 RHD(Right Hand Drive)와 수동기어가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40억 원으로 품의했던 총 개발비가 실제로는 100억 원이 채 들지 않아 통상적으로 들어 가는 차종 개발비의 4분의 1정도밖에 들지 않았고 개발기간도 세계 최고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는 Underbody를 포함한 부품공용화의 메리트를 충분히 살린 것이기도 했지만, ‘한 번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뭉쳐진 기아자동차의 근성과 저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기적 같은 일이었고, 덕분에 카렌스는 준중형 Mini Van들이 해외 선진 메이커들에게서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에 뒤지지 않고 출시될 수 있었다.
98년 말 기아자동차가 국제 입찰을 거쳐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을 때, 카렌스를 본 현대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온갖 흠을 잡아 카렌스를 죽이려 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카렌스를 보고 놀란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진에게 ‘너희는 그 동안 뭘 했냐?’고 혼이 나 기분이 나쁘기도 했고,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기아자동차에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앞선 컨셉의 자동차가 1,000만원이라는 저가목표에 맞추어, 그것도 그 짧은 기간에 나온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탓이다. 게다가 현대자동차가 개발하고 있던 비슷한 컨셉의 라비타가 곧 출시될 예정이라 미리 경쟁모델을 없애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현대정공과 현대써비스의 인원들이 미처 현대자동차에는 들어가질 못하고 대거 기아자동차로 몰려 와 미리 와있던 현대자동차 인원들을 다시 현대자동차로 몰아낸 것이다. 그리고는 그 동안 많은 설움을 주었던 현대자동차에 대해 대결구도로 회사운영의 가닥을 잡으니 공장 구석에서 죽어가던 카렌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게다가 시판을 앞두고 당시 기아자동차의 최고경영진이 ‘이렇게 좋은 차를 왜 그렇게 싸게 팔아?’ 하면서 기본 판매가격을 1,170만원으로 170만원이나 그냥 올린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초기 수익목표를 초과 달성해 놓고 있던 카렌스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성공을 거둔 카렌스였으나 디자인이 신차답게 쌈빡한 Advanced Fusion Style로 나오지 못하고 좀 평범하고 지루하게 된 것은 분명히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디자인이 그렇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충분한 시간도 없었고 돈도 모자라 해외에서 해오지도 못 한 탓도 있으나, 그 당시 카렌스의 실패를 두려워 했던 기아자동차 최고경영진의 염려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없는 돈 짜내서 만든 모델이 만에 하나 안 팔리게 되면 회사로서는 회복불능의 상황에 빠지게 되므로 스타일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최대 주안점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디자이너들의 손길은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선을 그리게 되고 마침 약간 앞서 나온 Toyota Ipsum이 힛트를 치자 안전하게 그 Ipsum을 Benchmarking하게 되어 버렸다( 뒷부분의 모습이 비슷하지 않은가?). 앞으로 나올 모델이 현재 시판 중인 모델을 따라 했으니, 카렌스는 스타일 면에서는 그저 그런 기능위주의 모델이 되어 버렸고 기존의 Mini Van의 모습에서 그리 벗어나질 못했다(사실 대우의 레조가 필자가 처음에 생각했던 Megane Scenic의 컨셉과 더 유사한 모델로서 카렌스보다 먼저 개발에 착수되었으나,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짧은 개발기간으로 카렌스가 먼저 출시됨에 의해 시장을 선점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승용형 Mini Van의 기본인 3:3:3(3 Generations, 3 Couples & 3 Functions : 7인승으로 3 세대나 3 신혼 가족이 같이 이동할 수 있으면서 Car의 주행성, 안락함, 연비, Van의 다인승, Wagon의 화물 적재성이라는 3가지 기능의 만족)의 특성과 저가격의 메리트를 갖추었기에(발매 당시 싼타모의 기본 가격은 1,400만원에 가까웠다) 다른 7인승 LPG 경쟁모델들보다 월등한 판매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즉 스타일보다는 실용과 기능에 의지한 모델이었고 그것이 IMF 금융위기에 의한 경기 불황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RV이야기에서 보다 상세히 다루어 보기로 하자). 이렇게 국내에서는 공전의 힛트를 쳤다 해도 카렌스를 세계 주요시장의 기준으로 보게 되면 많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두고 카렌스는 Fusion이 아니고 ‘짬뽕’이 되어 버렸다고 비평한 자동차 전문가도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과 자금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좀 더 강한 엔진, 좀 더 다양한 기능과 아기자기한 디자인 요소들을 집어 넣어 감성품질의 Craftmanship이 느껴지는 모델로 만들어 스포티지처럼 세계 선진시장에서도 통하게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요사이 LPG차들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카렌스의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고 디젤엔진을 얹은 가지치기 모델 Xtrek으로 어느 정도의 수요만 유지하고 있으나, 카렌스는 분명 IMF 금융위기가 만들어 놓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스타였다. 설사 IMF 금융위기가 오지 않았다고 할 지라도 최근 전세계적으로 Hybrid 차종들이 붐을 이루고 있는 걸 보면, 그 당시 카렌스를 개발하고자 했던 기본 방향은 옳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필자도 카렌스 개발의 아이디어를 내긴 했으나 97년 말 IMF 금융위기가 올 줄은, 그래서 7인승 LPG 엔진 모델이 불황 중에 그렇게 힛트를 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단지 다음 세기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였던 것인데, 운 좋게 기가 막힌 타이밍이 맞아 걸린 것이다. 그래도 지난 ‘봉고신화’와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한 자만이 찾아온 복을 누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필자는 무한한 보람을 느끼고 필자가 기아자동차에서 입은 은혜를 어느 정도는 갚은 것같아 행복하다.
Ps) Carens 이름은 대외적으로 Car + Renaissance라고 발표되었으나 사실은 독일의 패션모델 카렌 멀더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자동차의 이름들은 주로 외부 전문회사들이나 공개모집에 의해 지어지나, 가끔씩 이렇게 엉뚱하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차후에 기회가 닿으면 차이름 짓기에 대해서도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