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하고 한잔 짠 하고 싶었는데, , , ,
회 비빔밥을 안주 삼아 쐐주 한잔, 차가운 주방에서 돗바 입고
누수방지 공사가 시급한 지붕
효심 지극한 해맑은 우리 장손
할배 호강 하시네
옛날에는 마누라가 여기서 과일도 팔고 쌀도 팔고 했는데, 며느리 손녀가 감도 팔고,
우리 장손이 좋아하는 생미역 사러 가자.
아부지 뻥튀기 하나 사 드릴까?
아이고 선배님 반갑네, 이보게나 내가 않와도 평해장날이 서던가?
우리 사는날까지 건강하세. 나 백수 잔치때 꼭 오시게나.
"아부지 방에 비짜루가 없어 고운걸로 하나 쌋음니더"
언제 이런날이 또 올 수 있을까?
지난 4월 1일 고향집 수리를 위한 구상을 위하여 소내가자 장조카와 고향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침 경주에서 일이 빨리 끝나서 하루 일직 3.29일 저녁에 고향으로 가게 돼었다.
저녁 때라서 다소 배가 고팟지만 후포 어시장에서 회를 준비해서 아버지와 모처럼 소주 한잔하고 싶어 열심히 집에 도착해서 누워 계시는 아버님께 큰절 올리고 "아부지요 회준비 해 왔는데 소주 한잔 할라니꺼?"하니까
머슥하게도 "귀찮다. 니나 많이 묵어라" 하신다.
문득 생각이 났다.
그 언젠가? 내가 하는 사업이 잘 안돼고 정말 정말 힘들어 경주 포항 쪽의 출장을 마치고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한테 위로 받고 싶고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싶어서 허기지는 배를 참고 고향집을 갔다.
마침 늦은 저녁을 드시고 계시던 엄마, 아빠께서는 "영문 왔나" 하시면서 밥 먹었느냐, 같이 먹자 하시는 말씀 없이 하시던 식사를 계속하여 너무 어이가 없었고 이재는 어머님이 옛날 한없이 자식한테 헌신하시던 어머님이 아니고 우리가 챙겨드려야 하는 분으로 변하셨다는 생각에 정말 서러워 했던 그때가 생각났다.
다음날이 마침 장날이라서 효심 깊은 장조카가 "할배요 오늘 평해 장 날인데 구경 갈 까요? 잘 가시던 슈퍼집 아지메한테도 나 아직 이렇게 잘 살아 있다고 큰소리도 함 쳐보시고" 하니까 아버님 얼굴 가득 화색이 돌면서 "안거래도 이발도하고 가기는 해야 돼는데 "하시면서 나를 쳐다 보셨다.
내가 잠시 망서리니까 " 아 삼촌, 할배한테 사장님 차 타고 사장님 아들이 휠체어 끌고 시장 한바뀌 돌면 할배 기분 끝내 줄낀데
함 모셔 가시더"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을 방에서 차까지 모셔와 차에 태우는데 둘이서도 쉽지 않았지만 차에 타신 아버님의 흐믓하게 웃어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그렇게 해서 시장 한바뀌 돌아 보는데 어디로 모실까요 여쭈었더니
아버지께서 "천일 상회로 가자".
"왜요? "
"나무 써는 톱이 잘 먹질 않아서 줄로 갈라야 하겠다. 줄 하나 사라"
"줄 사드리면 아부가 할 수 있어요?"
"허허" 하고 웃어셨지만 나는 아주 괞찬은 줄 하나를 사서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아버지는 이때부터 약간의 침해끼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버지께서 손수 나무 자르는 톱을 손질 할만한 기력이 있었던 시기는 이미 수년 전이었으니까..
어제는 지금 도와주고 있는 요양사가 우리집에 온지가 30년 되었다고 하셨다. 겨우 4~5년 되었는데.
"또 어디가고 싶어세요, 복이가 생미역 먹고 싶다는데 어물전으로 갈까요?
"그래 생미역 사봐라"
그리고 나서 시금치 상추를 심어야 한다고 종묘상에 가시잖다.
종묘상에 갔더니 주인 아저씨가 반갑게 마주 해 주면서 각별하게 않부를 물었고 마침 온정 조금골에 사시는 아버지 보다는 한참 후배인듯한 노인분께서 달려나와 반갑게 손을 맞잡어며 서로 않부를 묻고 누구누군 지난달에 죽었고 누구누구는 방안에서 꼼작 못하고 누워 있고 또 누구는 서울 아들들이 모시고 갔다는 등 온정면 노인들의 안부를 전부 물어면서 웃고 가끔은 혀를 차기도 하셨다.
우리가 이번 가을에 아버님 백수 잔치 할때 초청 할테니 꼭 오시라고 했더니 그러마 하신다.
한참 후에 수년 전까지만 해도 장날이면 밤새 화투하시고 아침에 해장도 하시고 주인집 할머니와 농담하시던 수퍼로 가자고 하신다.
그 수퍼집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며느리와 아드님이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고 아버님도 며느리님이 내 주신 유자차를 마시면서 한없이 많은 밝은 모습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셨다.
팔아 줄게 없어서 담배 한보루 사가지고 나와서 이발하려 갔는데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포기하고 집으로 가는데 장조카 녀석이
집에 새벽 마다 장닭이 우렁차게 울고 할배 방 앞에 닭들이 아장아장 걸어 와 할배가 던져 주는 모이를 먹고 다니면 할배가 덜 외로우 실 거다면서 장닭 한마리와 암탁 병아리 두마리 사잔다.
집에서 내려 오기 전 보았던 부실한 닭집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할배를 생각하는 장 조카 맘씨가 기특해서 닭 세마리를 사서 집에 왔다.
걱정한 되로 집에와서 닭장 수리하는데 엄청 고생 했지만,
이재 이 닭도 모이 줄 사람도 없어니 이번 집 수리 공사를 하면서 장조카 부자가 몸보신하던가 어떻게 처리 해야 할 둣 하다.
아버님께서 이번 24일 갑자기 않좋아 지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오랜 세월을 살아 주셨지만 그래도 아직 못해 드린 것도 많고 미결건도 많고 보내 드릴 준비도 덜 돼어 있음을 실감 한다.
우리는 이재 차곡차곡 준비하고 또 내일 내일로 미루는 것 보다는 지금 할 수있는 작은 일이라도 지금 실천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해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 ,
일주일 전에는 산소호흡기를 달지 않은 편안한 얼굴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영영 없을 수도 있고 점점 더 가슴 아린 모습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첫댓글 짠한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집안 역사의 한 페이지
길이 길이 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