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야기
첫머리에 벤취에서 주먹밥을 기다리는 고등어 무늬 고양이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일상에서 성격과 모습을 그렸다.(여기 까지 작성한 원고지 분량은 현재 50매 정도 진행 했음
배경-아파트에 사람과 고양이가 사는 모습. 공기 좋은 산과 가까운 신도시*아파트 1층 은퇴자와 아내. 길 고양이 관찰과 보호, 죽음. 사람과 공생하는 방법과 고양이의 생태 사람들과 사건 전개를 사실적인 내용으로
주인공
* 아내-고양이에게 밥 주기(건 사료와 생선을 삶아준다. 처음엔 무관심한 아내.
* 나- 은퇴자 심심해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됨. 적극적인 헌신.)
* 아파트 2층 곷순이 아줌마 - 고양이를 찾아다니며 하루도 빠짐없이 주먹밥을 주고 다닌다.
* 아파트 1층 고양이를 매우 싫어하는 부부- 고양이가 싫어한다. 아파트 마당에 오는 고양이 때문에 놀라서 심장병이 생겼다고 한다. 잠시 머무르는 고양이 구멍을 밥상으로 막아 새끼가 두 마리 매장되는 사건을 제공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의 적대감이 표출되나 내색 하지 않는다. 어미 얼룩이가 울부짖으면서 울타리 사이를 왔다갔다 설쳐도 끄덕도 안하다 관리실 직원의 방문으로 이웃 간 분쟁 없이 해결이 되었다.
* 관리실 직원- 고양이 구출 작전을 의뢰 받고 구해 냄. 두 마리를 생매장에서 구출.
* 생선가게 주인-생선머리를 모아서 잘 준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라고 자랑을 하면서 사진을 보여준다. 상술도 좋고 인정도 많은 쾌할하고 붙임성 좋은 사람.
* 수의사1-치료가 어렵다고 솔직히 설명하고 구청에 신고할 것을 권하는 양심적인 수의사를만난다.
* 수의사2- 동물의 생명보다 돈에만 관심이 있다. 돈이라면 욕창에 생긴 구더기도 맨손으로 처리한다. 동물의 고통을 보고도 치료 시기는 느긋하게 시간이 해결하듯 답답하다. 몇시에 죽었느냐고 물었지만 그걸 기억하지는 못한단다. 아침에 유리물병이 냉장고에서 서로 부딪쳤고 깨졌다. 그대는 몰랐는데 죽음은 예고되었다. 죽음을 알리는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문자로 날라 왔다. 1시에 간다고 했는데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 임신한 암컷 얼룩이 고양이- 4마리의 새끼를 길러낸다.
* 고아 고양이-눈치 빠르고 붙임성 좋은 고양이도 같은 동족끼리는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 장마철이 지나고부터 얼룩이 엄마에게 아양을 떤다 젖도 얻어먹고 거절도 당한다.
고양이 새끼 4마리- 새끼들의 성장과정을 관찰한다.
1 사건-어미고양이가 배가 홀쭉했다. 밥만 먹고 사라졌다. 어느 날 젖이 퉁퉁 불었고 식사 후에 자주 쉬어 간다. 고기를 주었더니 이에 물고 사라졌다. 주면 사라지고 주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줄려고 말이다. 조각이 너무 작아서 반복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실로 묶어서 좀 크게 해서 주었다. 그 뒤를 밟았다. 새끼들이 4마리나 있었다. 이젠 어미가 몸집이 커진 새끼들에게 보물섬을 남겨주고 떠났다. 그러나 가끔 온다. 살짝 온다. 급하게 밥만 먹고 간다.
2 사건-고아 고양이가 부상을 당했는지 며칠 만에 나타난다. 다리가 한쪽이 부셔졌나 보다. 그래서 겨우 붙잡았다. 동물 케이지에 넣어서 치료 병원을 내방. 동물병원 측의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욕창이 항문에 생긴 것이다. 많은 비용과 힘든 치료이며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상황을 설명하는 원장에게 방법을 찾는다. 길고양이임이 강조되면서 하나의 치료 방법으로 기관에 신고하게 되었고 치료혜택을 10일은 보장 되었다. 때문에 당일 즉시 치료를 안했다. 닭고기 삶은 것을 주니 잘 먹었다. 살려고 반짝거리는 눈을 하면서 그런데 입원 2박 3일만에 죽었다. 영양제 비용을 지불하면서 살리려고 했건만.
고아 고양이 실제 엄마 검은 고양이-그의 엄마가 항상 멀리서 지켜보았다. 사라진 새끼를 찾기 위해서 새벽 3~4시에 울고 다녔다. 며칠 동안 애처로운 소리로.
죽은 새끼의 몸은 이미 화장인지 매장인지 처리되고.
3 사건 - 절 터 옆에 사는 고양이 가족 5마리. 등산객들이 주고 간 음식으로 넘쳐나도 사랑을 받는다. 어느 날 주민? 새끼들의 몰살당함. 죽어가는 걸 마당에서 공터로 던졌다는 증언. 현장에서 죽어가는 형제들을 목격한 새끼 한 마리 살아 도망치듯 충격 받고 그곳을 떠나고 어미도 비통한 심정으로 굶어 죽은 시체가 풀섶에 나뒹군다. 살아남은 새끼는 사람을 무서워하면서 아파트 얼룩이네 가족과 합류 하지만 경계가 심하다 . 어느 날 다리를 다친다. 하교한 어느 초등학생이 던진 신발주머니에 맞은 탓이다. 천박하고 무지한 세상이다. 평화속에 전쟁같은 죽음 사고에 넌덜머리. 아무리 많이 번식해도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할 수 없다. 개체수는 조절이 된다. 구역 내 영역이 있고 적정 개체 수 유지는 자연 현상. 죽은 고양이 소식이 들리고 목격 되고 있다. 사실 숫 고양이의 피터지는 싸움도 한 몫 한다. 그러나 동물은 자살은 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다. 어리석지 않고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4 사건 - 4마리의 새끼에게 보금자리를 내어 주고 떠나는 에미 고양이. 새끼 4마리 중 2마리만 생존하여 이곳에 계속 살면서 옆에 살았던 고양이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고양이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힘을 모아 살게 된 이야기
동물을 사랑하는 공통의 대화는 이웃 간에 훈훈한 사랑이 생기고 서로의 이야기는 친화적이며 호의적이 된다. 살기위해 노력하는 동물의 행동에서 행복한 웃음이 이웃으로 퍼진다. 길고양이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인간과 야생의 동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행정기관에 신고처리- 관련 병원으로 옮겨 입원 시킨다. 치료가 늦어진다. 즉시 치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병은 악화된다. 퇴근 시간 후에 치료를 시작한다. 길고양이 신고를 취소하고 의사 말대로 자비로 치료를 했다면 죽음으로 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죄책감으로 슬퍼진다. 죽은 고양이가 꿈속에 나타나 살려고 하는 환상. 수의사는 무심하다. 돈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고양이 이야기
계획 된 신흥도시라고는 하지만 개발이 시작 되고 벌써 10여 년 남짓 세월을 지닌 작은 마을이 있었다. 새로운 아파트, 단독주택, 가로수 나무, 도로, 학교 모든 것이 새로운 게 아닌 게 없는 마을이 생기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새로운 것은 옛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 자리 잡았다. 흔적을 지워 버렸다고 해도 소중한 기억을 잊은 건 아니었다. 옛 것은 없어졌지만 농사를 지었을 그 땅에 새로운 식물이 자라고 새로운 아이들이 뛰어 놀고 새로운 나비와 벌과 새들이 적막을 깨고 꿈틀 거리며 공존한다. 잘 익은 모과가 ‘툭’ 하고 무겁게 떨어지는 진동에서 지구를 느끼게 하는 생명의 소리가 있었다.
마을 뒤에는 아담하고 아늑한 마을을 안은 산이 있는데 해발 471미터 정도였다. 산은 가슴이 넓어 옛것이나, 새로운 것이나, 마을이면 마을, 사람이면 사람을 그윽하게 품고 있다. 산은 바위와 험한 직선 경사들로 본래의 모습이 아닌 듯이 원하는 사람에게는 길로 내어 주기도한다. 멀리서 보이는 산의 모습은 나무로 된 숲일 뿐이다. 실체는 보이는 것만으로 알 수 없었다. 언젠가 쳐다 본 산은 안개 속의 시야가 전방 100미터일 때, 흰색 하늘에 거대한 바윗덩이 한 개가 보였을 뿐이었다. 누군가 산이 있어 아름답다고 했을까? 안개가 낀 산은 그저 차가운 한 개의 거대한 검은 바위의 모습을 한 형상이었다. 때론 검은 고양이 상으로 우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얘야! 산 속에 절이 있는데 절에서 사는 불공을 드리는 고양이가 살고 있었단다. 밤에는 몸집이 커져서 마을에 내려 온단다”. 라고 말하면 엄포용으로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하는 전설의 주인공이 호랑이에서 고양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내려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쳤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호랑이가 어디에 있어. 동물원에만 있는 거야' 하며 한 수 가르치려든다. 고양이 이야기로 울음을 그치는 이유는 실제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그 녀석들을 가끔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공까지 빛나는 검은 고양이는 왠지 공포 영화속에서 등장한 동물을 연상한다. 야생의 고양이가 눈앞에서 ‘하악’거릴 때 소름이 돋지 않을 인간은 없다.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곳 산 아래 마을이 형성되면서 태어 난 아이들도 이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어 책가방을 메고부터 마을 아파트 단지는 부산해진다. 바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도 새벽은 언제나 고요하다. 산이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듯이 안개도 서서히 걷힌다. 부모들이 거실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아이는 듣고 자란다. 현관문이 몇 번 씩 열렸다 닫힌다. 출근을 서두르는 아빠들의 구둣발 소리가 조용해질 즈음 아이는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 세안으로 아침을 맞으며 뒤늦게 사라진 아빠를 찾는다. 풍성한 식탁은 눈으로 즐겨도 배부르다. 강아지도 식탁 아래서 제 할 일을 찾는다. 짖을 땐 열심히 짖고 먹을 것이 있을 땐 망설이지 않는 게 가장 강아지 다웠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잘 땐 하루 종일 놀다가 피곤에 지친 아이 옆에서 함께 끙끙대며 서로 몸을 기대어 꿈도 함께 꾼다. 매일 이 같은 패턴이 싫든 좋든 반복된다. 각자 모양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주 다양하다. 대기가 따뜻하게 팽창하면서 나뭇잎들이 부드러울 즈음에 사람들은 눈부신 거리로 쏟아진다.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정원 벤치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가 홀로 있었다. 출근길에 한 남자가 주먹밥 한 덩이를 던지고 간다. 곷순이 아줌마가 만들었을 것이다. 삶은 멸치와 삶은 계란에 쌀밥 한 공기를 뭉쳐서 그녀가 남편 손에 쥐어 주었으리라. 남자는 통근 버스를 놓칠까봐 고양이에게 ‘안녕’ 이라는 다정한 인사도 못하고 떠나고 난 남자의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하다. 고등어 무늬 고양이는 음식을 먹기 전에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건 고맙다는 인사일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누군가를 또는 그 남자를 쳐다봐준다면 고양이가 선택한 유일한 관심과 배려일 때 뿐이다. 고양이와 주먹밥을 준 남자, 서로 마주치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을 뿐이다. 남자의 눈이 뒤에 달렸다면 모를까. 남자는 뒤 돌아보기도 바쁜 소중한 출근 시간이다. 이 시간을 놓치면 아침도 먹기 힘든 고등어 무늬 고양이도 곷순이 아줌마 아파트에서 풍기는 멸치에 버무린 새벽밥 냄새를 기대하고 왔으리라. 또한 이심전심 2층 아파트 곷순이 아줌마도 벤치에 기다리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를 유리 창문으로 유심히 보았으리라. 30여 분 전에 산 아래 새벽 공기를 밀어내며 벤치에서 기다리는 야생 동물과 사람의 약속을 상상해보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설레이는 교감은 소중한 순간이 만들어 낸 기가 막힌 신의 선물이다. 지난 과거에 좋은 일이나 나쁜 일들까지 우리는 잊지 못 한다. 신뢰라는 뜻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한 일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이 약속이 지속되어 깨어지지 않았다면 신뢰는 형성 된 것이다. 신뢰가 깨어진 과거가 아름다울수록 배신감이라기 보다 소중한 그리움에 괴로울 것만 같다. 신뢰는 무너지고 깨어지니까 있는 것이다. 과거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을 것이고 유능한 신이라고 하더라도 과거는 바꿔 줄 수 없을 것이다. 고등어 무늬의 기다림과 곷순이 아줌마의 약속은 지속 되었으면 좋겠다.
야생의 고등어 무늬 고양이는 이른 아침 시각 잠에서 덜 깬 상태다. 휴식이 부족해 피곤한 무습으로 엎드려 있었다. 밥보다 더 절실한 피곤은 짖궂은 신이 몸뚱아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하드래도 고양이 노릇이나 하고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누구나 조금의 관심으로도 고양이의 고단한 것쯤은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의 고단함을 알아주었으면 좋으련만 몰랐다 해도 인간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고양이니까. 고양이는 주먹밥을 한 입 씩 쩝쩝 거리며 천천히 곷순이 아줌마의 정성을 생각한다. 그러기에 생각하는 고양이다. 그 시간에 그녀의 주먹밥을 기다리는 것이다. 배부름을 느끼고 식사를 마친다. 밤새 굶주린 배를 채웠다. 다음은 휴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며, 등교하며 고양이의 언어로 인사 하고 종종종 바쁜 걸음을 옮긴다. 하나 둘 씩 사람들이 지나친다. 때론 손으로 고양이를 만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면서 인사하지만 고양이는 먹는 동안은 아는 척도 안하고 입을 닦고 긴 하품까지 한다. 고양이의 독립적인 행동은 본성에서 나온다. 사람들과 거리는 일정하게 둔다는데 만인이 사랑하는 고양이로 변신되어 살아가는 방법을 새롭게 터득해 가는가보다. 벤치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는 특이하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야생으로 떠 돌다가 다시 집고양이 행세를 하는 거다. 사람에게 다시 괴롭힘을 당했을 때나 경계를 할 때도 ‘하악’거리지 않는 것이다. 버림받은 기억을 잊은 채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따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서 사람들은 착각을 하는데 사람들에게 길들여지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고양이가 사람을 길들이며 원하는 것을 얻을 뿐이다.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간절하게 오라고 해보지만 강아지처럼 다가 오지 않는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가고 안가고는 언제나 고양이의 선택권이다. 귀찮으면 우리 곁을 쿨하게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다.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가 제 허리를 둥글게 말았다가 쭉 펴고 긴 뒷다리도 늘려 본다. 밤새 자랐나(?) 뒷다리가 꼬리보다 길다. 유연한 몸놀림의 그는 몇 살 일까? 아무도 모른다. 고등어 무늬의 갈색과 검은색이 어울려 검은 색의 고양이 깜깜이 보다는 시야는 훤하게 보인다. 겉모습의 옷 입은 걸로 애비를 닮았을까 짐작해 본다. 고등어 무늬 고양이는 수놈으로 동그란 불알 두 쪽이 달랑 소리를 낼 것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고양이의 차가운 태도는 밥을 주는 곷순이 아줌마 앞에서도 그랬을 테니까 고양이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그 점을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도 아이들의 귀염둥이는 고등어 무늬 고양이다. 이렇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 평화롭게 2년 정도 지속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고양이는 혼자서 아침을 여는 주인공이었다. 집집마다 창문을 열어 젖히며 청소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바쁘다. 아침 주먹밥으로 식사를 마친 고등어 무늬 고양이는 이내 시끄러워 참을 수 없는지 자리를 뜬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오늘 일과는 이제 시작 된 셈이다. 고등어 무늬 고양이의 다음 일정은 아무도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고등어 무늬 고양이와 같이 놀아 줄 고양이 친구는 없을 것이다. 늘 함께 있는 누군가를 보지 못했다. 밥 먹을 때 아침에도 언제나 혼자였다. 독립적인 성격이다. 고양이의 세계에서 끔찍한 무료와 단조로움도 그들의 몫이다. 그걸 즐겨야만 살아 갈 수 있다. 고양이도 인간도 결국 혼자라는 말이다. 외롭다는 말이다.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가 다시 한 번 순서대로 허리까지 주욱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하고 ‘야옹’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불길한 예감 속에 며칠 동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가 나타났다. 오른쪽 앞 다리에서 피가 말라있고 속살을 드러낸 상처가 그동안의 행적을 말해 주었다. 고양이는 나름 피도 멈추고 상처가 조금 회복 되고 나서야 주먹밥을 먹던 벤치에 나타났다. 그들의 세계는 사나이의 영역 싸움이 있었다. 인간 앞에서 자존심도 있다. ‘깡패’라고 불리는 덩치가 큰 고등어 무늬의 암갈색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살피러 다닌다. 몸집은 잘 자란 슈나우저종보다 더 컸다. 대로를 버젓이 지날 때도 강아지 한 마리처럼 여유가 있다. 그것은 오래 된 그만의 노하우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타고난 집중력에서 나온다. 대로변을 건널 때는 차들이 없는 절호의 찬스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본이다. 깡패의 나이는 8살 이상 되었다. 야생으로 오래 산 것이다. 고등어 무늬의 얼룩 고양이는 아파트에 영역을 두고 있었고 야생의 ‘강패’ 고양이는 이곳저곳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언제나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식사만큼은 곷순이 아줌마가 정해 놓고 해결했다. 깡패가 이에 도전한 것이다. 새벽 3시 대로를 건너 아파트에 도착한 ‘깡패’가 감정과 원한이 맺힌 것은 아닐지라도 영역의 도전장을 내민것이다. 새벽 정적을 찢어 내는 성난 울부짖음은 상대에게 오싹한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어느 한 쪽의 죽을 만큼 영광의 상처는 다른 고양이에게는 패자의 모습이 공개되는 본보기가 되었다. 2인자의 상처는 깊었고 상처가 깊을수록 살아 남기위한 복수의 칼은 다시 갈아야만 했다.
계속되는 1위 쟁탈전에서 허무하게 패하고 여전히 칼날을 세우면서 상처투성이의 삶은 반복 되는 야속한 억울함이다. 시대를 잘못 만나 상대의 힘이 너무 세다. 남자의 세계는 비참하거나 영광의 자리 둘 중 하나이다. 비록 상처로 얼룩졌지만 도전했다는 그 기백을 모든 고양이들이 알아챈다. 어느 한편이 피투성이 되어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받는 냉혹한 그들의 세계 고양이가 살아가는 방법을 보고 교훈으로 삼는다. 깡패는 도전자의 앞다리를 앞발로 움켜지고 보기 좋게 훑어 내려 가죽이 벗겨졌다. 상처가 꽤 깊었나보다.
곷순이 아줌마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상처 때문에 속이 상했다. 좋은 건 다 먹으면서 얻어 터지고 다니냐며 성화였다. ‘주먹밥으로 되겠니? 좀 더 힘내서 잘 먹고 이겨주기 바란다’ 는 메시지를 주었다. 사람들이 가져다 준 온갖 밥그릇이 쌓였다. 며칠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늘어 선 밥통을 다 비우지 못했다. 병원에 케이지에 넣어서 영양제를 맞고 약을 받았다. 그러나 약은 먹일 수가 없었다. 고기 속에 넣어서 한 번은 겨우 먹였지만 다음은 어려워졌다. 신체 어딘가의 날카로운 발톱은 바늘이 할퀴는 듯 몹시 아프다. 옛 주인에게 버려지기 전에 약 먹는 학대를 당한 것처럼 약을 거부 한 것이다. 다음 날 수의사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고 수의사는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를 명학하게 밝히지 않았다. 발톱이 무섭다는 것인지? 약을 먹여 줄 수 없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어렵게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야생 고양이를 무서워 한 것은 수의사였다. 고등어 무늬 고등어는 앞 다리의 상처를 입으로 햝고 햇볕을 쪼이며 분한 마음이 점차 추스려지는 중이었다. 상처가 다 아물기 전에 다시 도전을 시도하고 상처 위에 또 상처가 있었고 하루 이틀 일주일이 되어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 일주일 사이에 고양이 사체를 치우거나 신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구청과 시청에 문의했다. 이번 주에 한 건이 있었는데 고등어 무늬 고양이가 아니라고 하였다. 신고 되어 처리된 사체는 흰색 고양이라고 시청 위생처리반에서 알려왔다. 그 날 남자는 통근 버스를 타고 맨 앞에 앉았고 마침 터널을 지나오는 데 도로에 고양이 사체가 눈에 띄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아파트 모퉁이를 도는 순간 무언가 무릎에 스치듯이 부딪히는 물체에 놀라 집안으로 헐떡거리면서 뛰어 들어왔다.
“참 별 난 고양이를 다 봤어요.” 아내의 억양에는 숨길 수 없는 우쭐한 힘이 들어 있었다.
“웬 호들갑이요. 천천히 자세히 이야기를 해 봐요.” 그래서 고양이 한 마리를 현관으로 데리고 왔단 말인가? 나는 그 고양이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고 호기심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전 주인에게 버림 받고(?)도 참한 주인을 선택 하려고 안간힘을 쓴 동물이 고양이 말고 또 있을까? 애교장이 귀여운 고양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재미있게 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고양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곧 바로 밖으로 나가 고양이를 찾아 봤으나 감쪽같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노랑이라고 했는데 휘바람을 불러 볼가 간절한 생각만 있었다. 그만 두었다. 언젠가는 또 나타나겠지. 마당에 건사료 한 그릇을 담아놓았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나는 은퇴 후 한가한 나날을 젊은 아내와 사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은퇴 후 이렇다 할 일은 없었다. 꼭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는 두 끼 밥 먹고 자는 일이 다였다. 마음을 크게 비워버렸다. 나는 70대, 30년 근무한 회사원으로 전원주택을 원하고 꿈꾸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파트 4개 동이 있는 비교적 조용한 마을에 살게 되었고 꽃이 좋았다. 꽃을 좋아 한 것은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직장에 다닐 때 아는 꽃은 아내의 생일에 꽃바구니 보내는 정도가 내가 아는 꽃의 전부였다. 이제는 우리 집 마당에 꽃을 사다 심는 건 내가 다 한다. 봄이 오면 먼저 꽃을 보려 화훼 단지로 달려간다. 내가 어디를 가든 심심한 바람도 살며시 따라온다고 느낀다. 이름도 모르는 꽃들을 바람과 함께 구경하는 동안 세상에 아름다운 꽃들도 많구나. 아름다운 색깔도 많구나 하면서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팬지, 종이꽃, 튜립, 장미, 머루나무도 집으로 옮겨온다. 마당이 있는 나의 집은 1층 아파트다. 나무 울타리 사이사이로 방긋 웃는 꽃들은 언제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갑게 유혹한다. 울 밖에서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즐거움이 되어 마당 한 가득이다.
“어머나! 벌써 꽃이 예쁘게 피었네.” 곷보다 더 예쁘게 하는 말들이 밖에서 들려온다. 사람들의 소리에 새털구름도, 곤줄박이도 덩달아 감탄을 보낸다.
먼저 찾아 온 봄소식은 이렇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지만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소리도 있었다. 안에서 들어 올 때는 즐거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따사로운 햇살이 벌어지는 소리가 어울린다. 그뿐이 아니다. 거실에서는 목재가 잘리는 톱질 소리와 목재에 본드를 붙이는 미세한 소리가 밖으로 나가느라 야단법석이다. 나는 뭔가를 시작한다.
“짜잔” 하면 새집이 만들어 진다. 정원에서 자라는 커다란 나무에 그것들을 매어 달았다. 새들이 금방 알을 낳고 둥지를 틀 것만 같은 아름다운 나무 새집이다. 나는 새들이 가족을 이루며 행복하게 새집에서 살기를 바랐다. 순간 가슴 벅찬 행복으로 마음이 따스해졌다. 봄볕에 깜박 졸았던 때에 행복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노랑새와 곤즐박이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도 날아오겠지’ 하는 믿음도 생긴다. 새들이 재잘거릴 이른 아침은 어제의 아침이 아니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흐흠! 이렇게 아름다운 크고 고은 새집인데 새들이 몰라준다면 슬퍼질 것 만 같다.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면 말이다. 이제 주변의 모든 것들은 아름답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햇빛, 놀이터, 나무와 돌 하나까지 새롭고 기쁨이 넘치는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포근한 감정이 감싸 얼굴에 홍조가 피어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말을 하고 살아 움직였다. 새집이 한 개씩 늘어나더니 아파트 정원은 행복한 새들의 집이 되었다. 한 채, 두 채....새집은 새들로 재잘거리며 새집 안에 배설물을 남겨 놓았다. 새들의 집을 만들어 행복도 배로 늘어난다면 ‘돈이 들더라도 ....’아내의 귀여운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했지만 다시 심심해졌다. 내가 심심하면 아내도 심심한가보다.
나는 한참 동안 거실에서 뒷짐을 지고 서성거린다.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멀쩡한 거실 벽지를 한 면을 걷어 냈다. 벌써 나는 새 자동차를 타는 그런 기쁨이 솟아났다. 필요한 규격과 재료가 결정되었다. 심심한 집 강아지도 목재소로 함께 했다. 재료는 필요한 만큼씩 작업량에 따라 규격을 맞췄다. 목재소에 자주 가는 일은 번거롭지 않았다. 그래서 재료를 낭비하는 일은 없었고 그곳에 가면 새로운 정보를 듣고 온다. 나무의 종류도 다양하게 배워 버팀목, 도리목, 통나무, 얇은 판자, 각목, 욋가지, 대목, 배판 같은 전문 용어에 친숙해지고 있었다. 목재소 주인의 눈빛에서 형제 같은 친밀감이 전해진다. 따뜻한 감입차를 주인과 함께 하면 기분은 더 좋아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설레이며 토토 복권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더 자상한 목재소 주인의 친절한 마음뿐 이다. 이렇게 누군가를 사귀면서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면 돈이 좀 들어가도 유익하다고 젊은 아내는 나에게 소곤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두 번씩 같은 말을 했어도 아내가 하는 말이 싫지 않았다.
작업은 시작되었다. 일명 히노끼라는 편백나무가 재료였다. 작업은 조금씩 진척되고 있었지만 소요되는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천천히 쉬어가면서 시간을 붙잡아 두면서 일주일이 지났다. 작업보다 바르게 놓여 진 재료 자체만으로도 예술이었다. 반듯한 나무에 풍기는 향기 덕분에 집안은 어수선하지 않았다. 꼼꼼하고 깔끔한 마무리는 나의 반듯한 성격인 것 같았다. 반듯하지 않으면 참지 못한 버릇이 있었다. 참하고 예쁜 나무 향은 온 집안에 머문다. 문화센터나 집밖에서 표 나게 하는 것만 취미가 아니라는 걸 나는 깨달아 가는 중이다. 젊은 아내의 격려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고 있었다. 취미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하는 일에 감격하고 있다. 자아도취도 ‘분수에 맞게’ 해야지 하면서 중얼거린다.
목공 공구 자체는 직업인과 다름없는 전문가 영역이다. 나는 한동안 다리살을 파고 달려들었다는 아내가 해 준 고양이 이야기는 완전히 잊고 인테리어 하느라 푹 빠져 살았다. 느리지만 전문가 못지않게 완성도면에서는 완벽한 거 같았다. 은퇴자가 하는 DIY다. 언플러그드 목공으로 말이다. 이제 벽지는 걷히고 편백나무로 바꾼 거실 벽은 한 쪽이 완성이 되었다. 낡은 것은 어디로 사라지고 소년 얼굴 같은 미백의 수려한 벽이 햇살을 받아 자랑스럽게 반짝거렸다.
“아 멋진 걸!” 은은한 향취에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혼자서 해내다니...... 피곤함으로 서서히 깊은 잠에 빠졌다. 달콤한 시간이 흘러 젊은 아내의 자장가도 같은 부드러운 소리가 나를 힘차게 일으킨다.
“저녁은 뭘로 할까요?” 이제는 반대쪽의 벽을 시작할 것이다. 작정하면 언제든지 일주일 만에 완성이다. 이제 남은 포인트 벽지는 윗부분은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아래 부분의 벽지만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편백나무가 끼워지고 공사는 조용히 끝이 났다. 나는 담배를 피워 조용히 천장을 보며 쉰다. 아, 천장이 담배 연기로 찌들었다. 행복한 요즈음 심심하다. 행복과 심심 한 거는 완전히 다르다. 행복은 짧은 시간 머무르고 심심 한 거는 오래 간다. 장마철에 지붕이라도 샌다면 고양이처럼 17층 꼭대기라도 올라 갈 수 있다. 아파트는 샐 곳도 없나 보다. 그래서 또 심심하다. 길게 갈 것 같다. 젊은 아내 까지 심심하니 나는 더 심심하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 나도 심심한데 일은 항상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제 느긋하게 정원이 보이는 거실에 누워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정원 밖에 고양이의 그림자가 언 듯 보였다.
“이럴 줄 알았어.” 기다림에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이 찾아 왔다. 드디어 고양이가 시야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것이었다. 불안 한 듯 거실을 보면서 건사료를 훔쳐 먹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나의 눈과 마주치자 움칫하더니 나무 뒤로 숨어버린다. 내가 처음 대면한 고양이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낯선 환경에서 도망칠 게 분명한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우선 사료를 다 먹을 수 있도록 모르는 채하고 보니 다 먹고 사라졌다. 우선 그 고양이가 다시 와서 먹을 수 있도록 건사료를 채워 주었다. 사료통은 여기저기 옮겨 다닐 동안 여러 차례 옮겨졌고 그때마다 비워지지 않아서 실망하던 터였다. 비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물론 포기하지 않았고 거실에서 잘 보이는 곳으로 옮긴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여기까지 분량은 50 쪽입니다.
계속 고양이 사건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이어 질 것입니다.
첫댓글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분명해야 하며 에피소드는 그 주제를 향해 있어야 해요. 전체적으로 좀 산만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고양이에 관한 분명한 사건이 있어야 하고 그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가 분명해야 해요. 예를 들면 남자의 생활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부분 같은 것이 주제에서 벗어난다고 할까요...간결하게, 선명하게^^
ㄴ녭. 오랜만에 단비라 방가웠습니다.간결~,선명~,주제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