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 그 때 녹음해 놓은 것이 없으니 우리말에 성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정확히 모를 겁니다.
단서라고 남아 있는게 녹음파일이 아닌 문서 자료 뿐인데
그 문서 자료라는게 한글이 만들어진 후에도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니
우리말 성조의 흔적을 한문자료에서 얼마나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게다가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후에도 대부분의 서적이라는 것은 한자로 기록이 되었으니
한글로 적혀있는 해례본 언해본 예의본마저도 한자어가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정말 순우리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한자를 빌려서 기록한 향가 이두 외에는 비교대상이 전혀 없고
순 우리말을 제대로 기록한 건 훈민정음 이후의 기록에 근거해야 하는데
거기에도 방점이 모든 우리말에 어떻게 규칙으로 적용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중국어에 성조가 없지 않았는데 전적에 표시가 안되어 있다고 해서 성조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중국에서 성조에 관한 기록은 서기 600년 대의 중고 중국어 음운론을 펼친 切韻이란 책에 있습니다만
그 책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 옛날부터 중국 전역에 퍼져 있던 것을 모은 것이니
성조의 역사가 언제부터냐 하는 질문은 참 난해한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조를 창조하기 전에는 중국어에 성조가 없었다는 말을 합니다만 ...
마치 한자를 창조하기 전에는 중국어에 한자가 없었다는 말과 똑같아서 뭐라고 대꾸해줘야 할지 난감합니다.
심지어 원어민 강사 중에 한 사람은 중국인은 성조에 신경쓰지 않고 말하는데 한국인이 너무 성조에 민감하다고
헛소리인지 술주정인지 모르는 말을 하고 있는데 ...
한국인이 말할 때 발음이 맞는지 틀리는지, 문법이 맞는지 틀리는지 신경 쓰지 않고 말한다고 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한국어 발음과 문법에 신경쓰지 말라는 말과 똑같은 어리석은 소리지요.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고 말해도 문법과 발음이 정확히 맞게 말하고 있다는 현상을 보지 않는 것이니 할 말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대한국어의 성조와 중국어 성조의 비교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관심을 갖고 알아본 것이 부족해서
어떻다고 대답을 드리지 못하겠어요. 한국어가 원래 성조언어였다는 말을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훈민정음 창제와 함께 잠깐 방점표기를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성조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원래부터 한국어에 성조가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세종이 한글을 연구하면서 중국어의 음운체계를 깊이 연구하다보니
한국어에 대해서도 그에 맞는 어떤 규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낸 듯 합니다만
백년만에 없어지는 현상이 정말 한 민족의 언어체계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일까? 저로서는 회의적입니다.
그 민족에게 있던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소멸되는 데에도 수백년 넘어 천 년 가까이 이어지는 것이고
왕이 지어낸 훈민정음이 탄생하고도 5백여 년이 지난 뒤에 전국민들에게 보급되고 수용되었는데
민족의 언어가 백년 만에 완전히 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함부로 말하자면 틀림없이 오해를 하게 될테니 이 부분은 저도 공부를 더 해본 다음에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저보다 더 먼저 알아내실 수도 있을테니 알게 되면 제게도 가르쳐 주세요.
재미있는 질문에 재미없는 답을 드려 죄송합니다.
첫댓글 답변 감사드립니다.
사라진 것을 연구하는 것은 어렵지만 흥미있는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15세기.
세종대왕은 중국에서조차 만들지 못한 pinyin을 아우르면서도,
우리 언어생활에 적합한 문자를 창조해 냅니다.
거기다 성조표기까지... 창조성이 차고 넘쳐납니다.
최만리같은 대학자가 훈민정음을 중국에 수출하자고 세종대왕에게 건의합니다.
중국은 한글을 pinyin으로 과감히 채택하고,
중국어 모든 것이 한글로 표기되기에 이르렀다. 현재까지도..
한자와 한글이 공유하는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면 지금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정말 한글이 옛날에 중국에 수출되고 성조표기를 방점으로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되었다면
아마 중국어 학습이 좀더 쉬워졌을 것 같네요.
한자가 간체자를 채택하기 전에는 너무 어려워서 학습에 장애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조원임 선생의 오선지 성조표가 나오기 전에 훨씬 유용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