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殘雪)

[불휘]

 殘 雪

                                                                    우 병 택

 훈은 지난겨울에 설악산을 여행할 때 보았다.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친 날이었다. 그렇게 모질게 몰아친 눈보라지만 잔솔가지 하나도 분질러 놓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볍게 눈이 소록소록 솔가지에 쌓인 이튿날 아침에 보았다. 소나무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가지를 부러뜨렸다. 훈은 세상살이의 오랜 시달림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명희를 보며 적설의 위력을 떠올렸다.

1.충동

 이훈은 대학에서 현대 소설론을 강의한다. 학교로 나가봐야 변변한 연구실 하나 마련되어 있질 않은 신참 강사다. 학부를 마치고 입시학원을 전전하며 재산은 좀 모은 편이다. 그런 훈이 대학 강사 자리를 얻은 것은 순전히 친구 김 교수가 등을 밀어서다. 그리고 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도록 배려해 준 덕에 다른 강사보다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窮卽通이라든가. 훈의 아내인 정숙은 이런 남편이 미덥지 못해서 자신이 직접 일식집을 꾸리기 시작한 지 올해로 삼 년이 됐다. 이젠 제법 이골이 나서 단골도 늘고 그런 만큼 수입도 늘었다. 훈으로서는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당장 궁해야할 이유도 딱히 없는 처지라 언제나 여유가 있어 보이게 신경을 쓰는 중년사내다.

 이런 훈에게도 살맛나는 일이 하나 생겼다. 글을 쓰는 광호에게 곧잘 찾아오는 명희란 여자가 어느 때부턴지 내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녀가 광호를 찾아오는 것은 수필을 공부한다는 구실에서다. 그러나 광호의 상식으로는 그다지 좋은 수필을 쓸 것 같지는 않다고 훈에게 귀띔을 했다. 그럼에도 다정다감한 표정과 잔잔한 미소는 충분히 매력적이랄 수 있는 여자다. 훈은 그녀를 만날 때마다 이성으로서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그런데 바로 6개월 전에 명희가 묘한 제안을 해 왔다.

“선생님, 제가 좋은 글감 떠오르는 대로 수필을 쓸 테니, 선생님께선 저를 주인공으로 해서 멋진 소설을 써 보시죠?”

 이 엉뚱한 제안에 훈은 움찔 놀랐다 그러나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 제안을 물리칠 이유가 없어 그냥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러시지요 뭐, 저야 좋습니다만….”

“호호호. 그럼 승낙한 겁니다. ”

“그런데 말이지요. 왜 저한테 그런 제안을 하시는지요?“

"“이 선생님도 참, 각박한 세상에 뭐 우리까지 그렇게 살 필요가 있나요?   제가 선생님께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럼 그 통로는 쌍방이겠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단 선생님께서 약속을 잘 지켜주시기만 한다면야. 특별히 문제될 건 없지만요.“

“그야 약속은 이미 한 거구요.“

“좋습니다. 자, 악수!“

  그 이후로 훈이 김 교수의 사무실을 찾는 것은 순전히 명희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구실이야 그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이지만. 명희가 그런 훈을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 그를 조금씩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훈은 그 동안 묵혀 둔 원고를 꺼내들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시도 소설도 다 20대 후반부터 틈틈이 모아 둔 것이었다. 무신경했던 연애감정이 되살아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렇게 훈이 스스로 변화를 시도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도 터득해 갔다. 그런 일로 훈이 얻는 것은 많았다. 우선 강의에 생기가 붙었다. 수강하는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수강생도 늘어났다. 명희도 약속대로 수필을 썼다. 처음은 사랑 얘기가 주요 레프토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철학적인, 혹은 일상적인 삶을 테마로 한 시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지도하고 있던 김 교수가 그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정도로 명희는 창작 열의와 함께 시의 질적인 수준이 향상 됐다.

 명희는 이즈음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 하고 있지 못했다. 흔히 남편 석민이 명희에게 하는 말은 일종의 통보에 불과했다. 남편은 언제나 밑도 끝도 없이 출장을 알렸다.

 “여보, 나 출장이야, 속촌데 한 일 주일 정도 걸릴 일이야. 좋은 땅이 나와서 말이야.”

 그럴 때도 명희도 일상적인 말로 묻는다. 

 “혼자 가요?”

 “아니 직원 서넛과 함께 가지.”

 “남자 직원만?”

 “에이, 여직원도 있지.”

 “좋겠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온 흔한 대화 중 한 토막이다. 그러나 이런 남편으로부터 홍천쯤에서 만나 하룻밤 함께 보내자는 제안을 해 온 것은 특별했다. 명희는 남편의 제안에 들뜬 기분으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준비를 해서 만나기로 한 홍천으로 향하는 길에 예상치도 않은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틀렸구나 생각이 들 때, 남편의 전화가 왔다.

 “여보, 나 오늘 당신과 만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지금 진부령엔 엄청난 눈이야. 당신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 있어. 지금 상황으론 아무래도 내일 오후에도 홍천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명희는 맥이 탁 풀렸다. 전에 없던 제안에 잔뜩 기대를 걸었었는데, 이렇게 눈까지 자신을 방해하는 듯해서 더 실망스러웠다. 이미 그녀의 차는 양평대교를 건너 홍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꼴을 친구인 채숙이 보면 얼마나 고소해 할까?‘ 2년 전에 이혼하고 혼자 사는 채숙에게 남편과 만나 보낼 얘기로 한 시간 넘게 통화 했던 명희다. 이런 때에 동광이 떠올랐다. 요 며칠 전에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명희 씨, 저 퇴촌에서 이 번 겨울에 칩거하면서 한 작품 쓸 겁니다. 적적하시면   내려오십시오. 집 앞에 있는 멋진 카페에서 차 한 잔 살 테니까요.”

 동광은 동네 헬스클럽에서 만난 두어 살 연하의 글쟁이로 알고 있다. 처음엔 멀쩡한 대낮에 운동하는 룸펜쯤으로 무시하고 지냈었는데, 한 달 두 달 같은 시간에 거의 매일을 만나서 겪어 보니, 자신이 한 처음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가끔 낄끼리 점심도 함께 했고 노래방도 갔다. 물론 단 둘이서 어딜 가본 적은 없었다. 그를 대하면서 느낀 것은 우선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창작하는 시간과 운동하는 시간이 확실히 구분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매사에 열성이 대단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해서인지 유니폼 위로 들어나는 몸은 각이 서 있었다. 언제부턴가 남편과 뜸한 그녀에게 동광의 억세게 생긴 몸매가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도 그의 몸에 대해서는 소곤소곤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명희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동광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명희는 오던 길을 되짚어 다시 양평대교를 건넜다. 그리고 40분 후에 동광이 사는 동네 어귀에서 그를 태우고 중부고속도로에 올랐다.

 “동광 씨, 나 눈 내리는 바다가 보고 싶은데.“

 명희의 말에 동광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흘낏 보고는 말했다.

 “지금이 오후 다섯 시라…. 동해는 눈 때문에 틀렸고, 서해도 뉴스에 눈이 내리고   있다니, 거기도 그렇고, 음….”

 동광의 말이 이어지고 있는 순간에도 명희의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요. 바다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곳이 있지요. 이동 저수지라고.”

 명희는 이동 저수지를 알고 있었다. 남편과 별장 자릴 사겠다고 한창 나돌 때 몇 번 들린 곳이다.

 “거 괜찮은 곳이죠, 남편과 별장 지 찾느라고 몇 번 들린 적이 있었거든요.”

 명희가 일죽 IC를 거쳐 이동 저수지로 향하는 동안 동광은 무슨 고뇌에 빠진 사람같이 보였다. 마치 이 세상의 온갖 고뇌를 한 몸에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명희는 그런 동광이 좋았다.

 “사모님은 분당에 계시구요?”

 “아, 네. 그렇습죠. 초5년 된 딸이 하나 있거든요.”

 “네에, 사모님이 초등학교 교사이시라고 들었는데….”

 “그렇습죠.”

 “그렇담 방학 중인데, 함께 내려와 계시지 않고?”

 “예에. 그렇긴 한데, 제가 좀 귀찮아서요.”

 “아, 창작하시는데 방해가 된다는 말씀이죠?”

 “그렇기도 하구요.”

 “아니 그럼 무슨 딴 이유라도?“

 그렇게 말하고 명희는 침묵했다. 이동 저수지 근처에 오자 모텔이니, 콘도를 알리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두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송전 고개를 넘어서 저수지를 끼고 시속20Km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물안개가 자욱이 끼어서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명희는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다. 남편과 만나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계획을 한터라 그럴 만도 했다. 명희의 형편을 눈치 챈 동광이 먼저 제안했다.

 “저기 물가에 횟집이 보이네요.  저기서 요기를 하시죠?”

 횟집은 저수지를 끼고 갖가지 조화를 다 부려서 꾸민 듯했다. 유럽풍의 지붕이 이국적인 인상을 풍겼다. 입구 양 옆으로 세워져서 대낮 같이 불을 밝히고 있는 수은등부터, 굳이 영어로 쓴 입간판 등이 그랬다. 이만한 날씨에 이 시각이면 한산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손님이 꽤 많았다.

 흔한 광어회에 반주로 내온 소주를 동광이 두 잔 명희가 다섯 잔을 비웠다. 그가 차를 몰 작정이었다. 주인 사내가 두 사람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부부면 묵묵히 먹기에만 급급하고, 연인 사이면 주로 여자가 쫑알대며, 남자를 챙긴다든가? TV에선 축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명희가 손거울을 꺼내 들고 얼굴을 손질하고 있을 쯤에 동광이 말한다.     

 “제가 차를 몰죠.”

 명희가 핸드백을 열어 차 열쇠를 찾아 동광에게 건넸다. 열쇠를 받아 들고 동광이 어설프게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횟집을 빠져 나오자 명희가 그의 오른 손을 잡고 말한다.

 “선생님, 나  취했나 봐요. 겨우 다섯 잔인데, 어디에 차를 잠시 세우고 바람이라도 쏘여야 될 것 같은데….”

 불빛도 없는 칠흑의 어둠을 헤치고 저수지 물소리만 들리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명희는 동광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동광이 명희의 팔을 살며시 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큰 손으로 머리를 쓸며 얼굴을 움켜쥐었다. 순간 명희가 움찔 했다. 동광은 서둘지 않았다. 평소에 보아오던 명희라면 서두를 경우 심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카 오디오의 음질이 좋다고 생각했다. 명희의 음악적 소양이 어떠한가를 아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의 삽입곡을 즐겨 듣는 듯 했다. 명희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 때 동광이 의자를 뒤로 재꼈다. ‘이건 아니다.’라고 명희의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과는 달리 명희의 몸은 젖어 있었다. 동광이 하자는 대로 나란히 누웠다. 동광이 명희의 가슴을 감싸 안았다. 명희는 숨이 멈추는 듯 아찔함을 느꼈다. 술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동광의 혀가 명희의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명희의 혀를 찾았다. 그의 손이 명희의 치마를 들치고 있었다. 동광의 억센 팔에 안긴 명희의 가냘픈 몸이 몹시 떨고 있었다. 스물 셋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대학 졸업과 함께 결혼 생활을 해온 명희다. 그런 그녀가 지금까지 꿈속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정사를 벌일 생각은 서너 시간 전까지도 없었던 일이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이동 저수지의 검은 물이 이렇게 거대한 소리로 명희를 압도하기는 처음이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귀를 통해 명희의 전신을 감쌌다. 남편 석민이 생일 선물로 사준 애마가 이렇게 쓰여도 된단 말인가? 하는 짧은 단상은 다음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육중한 기중기가 커다란 해머를 사슬로 감아올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오르다가 들춰진 명희의 치마 안으로 사정없이 밀고 들어 왔다. 땅바닥을 내리찍는듯한 순간의 충격이 명희의 몸속을 전율 시켰다.

 “아!”

 하는 외마디와 함께 마흔의 나이는 부서지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명희는 점점 그 육중한 아픔이 환희로 바뀌고 있음을 알았다. 명희는 자신도 모르게

 “훅!”

 소리를 내는 입술을 동광의 가슴에 묻어 막았다. 40년을 무장시켜 온 윤리가 그래도 최저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동광은  이런 명희가 몹시 사랑스러웠다. 그는 생각했다. 아내 정숙의 발랄한 정사는 화려하기는 하나 자신을 늘 감질나게 했다. 윤미는 남자를 굴복시키는 다소곳함이 없었다. 반면에 지금 자신을 받아들이는 명희의 몸은 그 다소곳함 속에서 자신의 전신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다. 아내 윤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다. 선배들의 말 중에 열 계집이면 다 각기 갖는 색다름이 있다더니,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명희는 동광의 등이 패이도록 그의 몸에 자신을 밀어 올렸다. 활처럼 휘어있는 명희의 잘록한 허리를 힘껏 끌어당겨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던 그가 먼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명희의 몸 위에 허연 객기를 쏟아 냈다. 뒤이어 명희의 괴로운 비음이 터졌다. 순간 그녀가 걸어 놓은 ‘Eric Clapton’이 부르는  ‘Wonderful Tonight’ 가 절정에 접어들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공연 실황을 녹음한 것이었다. 뒤이어 이어지는 여자 가수의 비음이 이어졌다.

 ‘Wonderful Tonight’

 늦은 저녁이었어. 아내는 뭘 입을까 고민하고 있어.화장을 하고 아내는 여전히 긴 금발 머리를 다듬고 나서, 그리고 나에게 물었어.

 "여보, 나 괜찮아 보여요?”

 그래서 난 대답했지.

 “그래, 당신 오늘밤 정말 기가 막히는데”

 우린 파티에 갔어.

 모든 사람들이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아름다운 숙녀인 내 아내를 보러 눈을 돌리는 거야. 아내는 내게 물었지.

 “당신 괜찮아요?”

 난 말했어.

 “그래, 나 오늘 밤 아주 기분이 좋아”

 난 정말 기분이 좋아 당신의 삶 속에서 내 사랑을 찾았기에…. 근런데 그 모든 것들 중 가장 궁금한 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당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난 머리가 좀 아파서 아내에게 차 열쇠를 건네줬어. 아내는 내가 침대에 눕는 걸 도와줬고, 난 불을 끄면서 이렇게 말했지.

 “여보, 당신 오늘밤 정말 기가 막혔어”

 “내 사랑, 당신 오늘밤 너무도 눈부셔 !!”

 ‘Eric Clapton ’의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잠시 끊겼던 음악이 이어졌다. 차 안이었다.   남편 석민이 그녀의 생일 선물로 사 준 차다. 명희는 카섹스란 말만 들었지 자신과는 먼 남의 얘기로만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동광과 차내에서 정사를 치렀다.

 명희가 남편 석민을 만나 결혼한 것은 그녀가 대학 시절에 하숙하던 집의 아들인 석민의 끈질긴 구애 때문이었다. 5남매의 맏이라 그녀의 부모가 결사반대하는 결혼을 사랑 하나만 믿고 성사시킬 정도로 둘은 잘 어울렸다. 그렇게 시작한 그들이었지만 석민이 고향인 성남의 운중동으로 돌아와 큰돈을 굴리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씀씀이가 커지면서 외박이 잦게 된 것도 그 때부터다. 거기에다 그가 태어나서 줄곧 자란 운중동이 신도시로 조성되면서 처음에 풍문으로만 들리던 개발이 구체화되기에 이르자 동리 사람들의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처음 몇 십 만원이라던 평당 가격이 백만 원을 호가하자 동리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운중동의 누구도 이 소용돌이에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운중동은 성남시의 12%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는 아름다운 농촌이다. 1992년 4월 20일 청소년 문화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그랬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의왕시를 잇는 342번 지방도 중간쯤이 이 마을의 위치다. 이곳에서 위로 올라가 서울 외곽 순환 고속 국도 밑의 터널을 지나 국사봉 자락의 기슭에 운중 저수지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나 왼쪽으로 펼쳐지는 분당의 아파트 군들의 끝임 없는 부풀림이 곧 불어 닥칠 운중동의 운명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이제 운중동의 지금 모습은 풍전등화에 직면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목돈 앞에서는 처자식은 물론 부모형제의 정의나 우애도 무의미해졌다. 오직 그들에겐 몇 억 돈이 누구의 손에 가느냐가 관심거리였다. 이 동리에서 난 사람 중 유일하게 부동산 중개를 하고 있던 석민은 쉽게 몇 십 억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 돈은 곧 투자가 되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자연히 아내 명희를 소홀히 대하는 일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명희라고 달라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본디 농사를 짓는 집에 시집 온 것이 아니었기에 고운 그대로의 몸매나 용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집온 만큼 배움도 있어서 동리 사람들과는 구별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불어 닥치는 개발 열풍이 피해갈 리가 없었다. 남편이 틈틈이 마련해 준 자신 명의의 땅마지기는 천여 평에 이르렀고, 모두가 노른자위라 최고의 보상이 예상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인근의 판교 사람들과 연대할 때 명희도 토지보상 대책 위원회에서 맡긴 부회장 직함으로 연일 시위현장을 누볐다. 그런 보람이 있어 연말에 보상액이 통보 됐다. 십억이 넘는 돈이 눈앞에 펼쳐지자 부부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목화]

삼각관계?....훈, 명희, 동민. 제 시력이 썩 좋은편은 아니기도 하지만 아직 눈에 티는 발견치 못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