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9월 18일 월요일, 하루 종일 비. 늦은 오후에 갬.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남쪽으로 간다. 브루클린 브리지 시티 홀(Brooklyn Bridge-City Hall)역에서 내렸다. 맨해튼 뮤니시펄 빌딩(The David N. Dinkins Manhattan Municipal Building)으로 나온다. 뉴욕 센터 스트리트 1에 위치한 건물이다. 40층 건물로 1898년에 주변 지자체와 합병한 후, 정부의 부족한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1907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뉴욕의 도시 미 운동의 마지막으로 1914년에 완성되었다. 뉴욕 지하철 역으로 연결되었다. 이 건물은 다른 미국 도시의 건축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약간 러시아 건축 냄새도 나는 것 같다. 길 건너편에는 시청 공원(City Hall Park)이 초록을 갖고 있다.
주변에 시청사(시티 홀City Hall)를 비롯해 관공서 건물들이 많다. 뉴욕 시청(New York City Hall)은 1812년경에 지은 웅장한 정부 단지로, 시장실, 시 의회 등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사다. 분수대(Jacob Wrey Mould Fountain)도 보인다. 도시 정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진정한 오아시스다.
Jacob Wrey 금형 분수는 원래 1871년 Lower Manhattan의 시청 공원에 설치되었다. 분수대는 뉴욕시 공원국의 수석 건축가였던 Jacob Mold가 디자인했다. 분수는 양쪽에 반원형 웅덩이가 있고 중앙 폭포가 있는 넓고 다양한 색상의 화강암 세면대가 특징이다.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로 간다.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1883년경의 명소로 독특한 강철 및 석조 디자인으로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한다. 미국 뉴욕시의 이스트 강에 놓인 교량이다. 왕복 6차로로 구성되어 있다. 1869년 착공하여 1883년 완공하였으며 당시 총 길이 5,989피트(약 1.8km)의 다리로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임과 동시에 뉴욕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또한 최초로 철 케이블을 사용하여 토목공학의 정수로 불린다. 현재 뉴욕의 매우 중요한 교통로이자 관광지, 건축물 중 하나다. 뉴욕 특유의 무지막지한 차량통행량과 별개로 중앙의 보행자용 보도가 있어 이 보도를 지나다니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많다. 뉴욕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들도 보통 여기서 시작하거나, 이곳을 꼭 지나가도록 코스가 지정된다.
또한 다리 특유의 랜드마크성과 유니크함 덕에 맨해튼이나 브루클린 쪽에서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매우 많다. 도시적인 느낌의 극치를 보여주며, 고풍스러운 거대한 다리의 뒤로 초고층빌딩이 깔려있는 대도시의 장관은 누구라도 카메라를 들게 만든다.
특히 야경은 미칠 듯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검색만 해봐도 주간보다는 야간에 찍은 사진이 더 예쁘게(?) 신경 쓰여서 찍은 게 많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마냥 이 다리도 헷갈리는 또 다른 다리가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옆에 놓인 맨해튼 교다.
장소가 영 다르고 생김새도 딴판인 금문교와 베이 브릿지와 다르게 브루클린 다리와 맨해튼 다리는 서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으며, 세부적인 형태를 뺀다면 생김새도 비슷해서 잘 모른다면 헷갈릴 수 있다. 한 가족의 세대를 바친 근성의 건축이다.
다리의 건설은 시기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9세기 당시 이동 량은 많았지만 넓고 물살이 센 이스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선박밖에 없었다. 토목기술자 존 어거스투스 로블링은 이곳에 다리를 놓을 것을 뉴욕시장에게 주장하였고, 지형적 특성상 강 중간에 교각이 없는 다리를 짓는다는 설계를 내놓는다.
너무나도 획기적이고 위험한 방법이라 전문가들 대부분이 반대하는 가운데 존 로블링과 그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 뉴욕시장과 금융업자들을 설득, 현재가치로 3억 2000만 달러 가치의 공사자금을 모았고 건설에 착수했다. 하지만 존 로블링이 공사를 시작하던 해 페리와 선착장 사이에 다리가 끼어 다리를 절단했으나 파상풍 합병증으로 죽는다.
아들 워싱턴마저 교각 기초 공사단계 잠수병의 일종에 걸려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불구가 되어버리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상황에서도 워싱턴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하나로 자신의 아내 에밀리(존 로블링의 며느리)와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어 다리가 설계대로 만들어 지는 것을 도왔다.
워싱턴 본인은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망원경으로 공사현장을 지켜보며 감독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공사현장의 화재가 난다거나 압축공기가 폭발하는 등 온갖 난리가 났고 맨해튼 쪽 교각에 있는 고정 장치가 끊어져서 케이블이 강에 빠져버리질 않나, 심지어 강선계약업자들이 사기를 쳐서 수 톤(ton)의 케이블을 다시 교체하는 등 말 그대로 무슨 저주에라도 걸렸나 싶은 정도로 생고생을 해가면서 다리를 지어나갔다.
결국 다리 완공까지는 16년이 걸렸으며 아내 에밀리가 모든 권한을 넘겨받고 근성으로 완공해냈다. 매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도 이 다리에서 열리며, 엄청난 장관을 이룬다. 이 공사에 투입된 중국인 노동자들이 무사히 공사를 마친 뒤 나중에 뉴욕시장과 에밀리의 배려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는 부지를 보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대다수 중국인 노동자들이 모아둔 돈으로 건물을 짓고 차이나타운의 음식점을 운영하며 엄청난 떼돈을 벌었다. 현재 다리 타워교각의 표지판에는 건설 도중 사고로 숨진 최초 설계자 존 로블링과 워싱턴 외 다른 20명의 미국인 노동자들과 중국인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참고로 사망한 총 22명의 노동자들 중 17명이 미국인 노동자들이고, 5명이 중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분들의 시신은 모두 뉴욕 국립묘지에 매장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다리 중앙의 넓은 보행로는 최초 설계자 존 로블링이 직접 넣은 것인데, "밀집된 상업도시에서 그것은 무한한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라며 미래를 예측, 현재도 그 보행로는 관광객과 다리를 지나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그의 예측이 정확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뉴욕의 무지막지한 교통량에 비해 왕복 6차로밖에 안 되어 자동차들이 굉장히 밀려 헬 게이트를 이루긴 하지만, 그래도 보행자들을 배려해주는 센스가 보여 존 로블링은 후대 사람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을 상징하는 여러 랜드마크 중 하나다 보니 뜨거운 오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킹콩, 고질라(1998)등 뉴욕을 소재로 한 영화 등에서 꼭 등장한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도 스타스크림이 브루클린 다리 정상에 위치한 성조기를 발로 차는 장면이 나오고, 고질라(1998) 에서는 고질라가 새끼들을 잃어 이성을 잃고 광분하여 주인공 일행을 쫓다가 등가시가 다리에 걸려 미사일에 맞아 죽었으며, 스파이더맨 실사화 시리즈에서도 전투 장면이나 피터 파커의 사랑고백 씬 등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스파이더맨 원작에서는 그웬 스테이시가 죽은 장소이기도 하다. 1998년에 나온 재난 영화 딥 임팩트에서는 뉴욕을 덮친 거대 쓰나미에 처참하게 휩쓸려 파괴된다. 우리도 우산을 쓰고 걷는다. 회색 하늘이다. 비가 내려 보행자 나무 바닥에 빛이 난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여러 가지 동판이 보인다.
왼편에 페이스 대학(Pace University) 건물이 보인다.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Benjamin Franklin Statue)을 만났다.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미국의 발명가, 정치가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태어나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인쇄공의 견습생이 되었고 나중에 자신의 인쇄 사업을 시작했다. 프랭클린은 또한 수많은 기사, 에세이, 팜플렛을 출판하는 뛰어난 작가였다. 그는 번개의 전기적 특성을 입증한 1752년의 유명한 연 실험을 포함하여 전기 실험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랭클린은 또한 정치에 참여하여 대륙 회의의 대표로 활동하고 독립 선언서와 미국 헌법 초안 작성을 도왔다.
과학적, 정치적 업적 외에도 프랭클린은 성공적인 사업가이자 자선가였다. 그는 미국 최초의 공공 도서관인 필라델피아 도서관 회사(Library Company of Philadelphia)를 설립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립을 도왔다. 프랭클린은 또한 이중초점 안경, 피뢰침, 프랭클린 난로 등 수많은 실용적인 장치를 발명했다.
미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프랭클린의 공헌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는 여전히 과학, 정치, 혁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다. 배가 고프다. 식당을 찾았다. 조용한 도로 옆에서 Subway를 발견했다. 반가웠다. 들어가서 커다란 햄버거 샌드위치를 조합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화장실이 없단다. 우리는 이제 월스트리트로 간다. 빌딩 사이로 뾰족한 첨탑을 가진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미국성공회 성당)가 보인다. 1697년 문을 연,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빌딩 사이에 우뚝 솟은 19세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인상적인 곳으로, 미국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교회의 외부에는 10달러 지폐에 그려진 '알렉산더 해밀턴'을 비롯하여 정치가 '존 와츠', 공학자이자 발명가 '로버트 풀턴' 등 다양한 유명 인사의 비석과 초기 미국인들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내부에 들어서면 화려하고 웅장하게 장식된 제단과 예배당 등을 볼 수 있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300여년 된 교회로 항상 가보고 싶던 곳, 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에게 기념이 되는 교회다. 2004년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내셔널 트레져>와 <다빈치 코드>영화에도 등장한다. 성당 무덤에는 존 와트의 동상(John Watts Statue)이 세워져 있다.
월 스트리트(Wall Street)는 뉴욕시 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거리이다. 금융기관이 집중되고 여러 고층빌딩이 임립해 있는 이 지구는 식민지 시대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생겼다. 월가는 브로드웨이 내리막길(Broadway downhill)로부터 금융행정구 역사중심지를 통과하여 남쪽까지 이어진다.
월가는 뉴욕 증권거래소의 소재지이며, '월 스트리트'란 명칭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지역을 지리적으로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금융세력'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월 스트리트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건물 앞에 섰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첨단 금융 시장으로 허가받지 않은 방문객은 입장할 수 없다. 뉴욕에 있는 증권거래소로 세계 주요 기업들의 주식이 상장되어 있는 곳이다. "Big Board"라는 별명을 가진 뉴욕 증권거래소(NYSE)는 뉴욕 기반의 증권거래소이다. 이는 달러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증권거래소이고 등록된 회사 개수로는 두 번째로 가장 큰 증권거래소이다.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던 증권거래소에 서니 흐뭇하다. 전에는 황소 동상이 보였는데, 어디로 가고 작은 소녀상이 당당히 서 있다. The Fearless Girl, 월가 새로운 명물 '겁 없는 소녀'상이다. 맨해튼에서 스냅 샷을 찍을 가치가 있는 많은 사진 촬영 장소 중 하나다. 이 "두려움 없는 소녀"는 사랑스러워 보일 뿐만 아니라 결단력도 물씬 풍긴다.
뉴욕 증권 거래소를 보면 나는 당신과 당신의 탐욕과 부패를 확고히 보고 있고 반대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상징성과 해석의 자유를 지닌 훌륭한 모티브다.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 상 앞에 세워졌던 명물 ‘겁 없는 소녀상(Fearless Girl)’이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조각가 크리스틴 비르발의 작품인 ‘겁 없는 소녀상’은 지난해(2017년)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NYSE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볼링그린 공원의 ‘돌진하는 황소 상’을 마주보고 설치됐다. 1.27m 높이의 소녀상은 두 손을 양쪽 허리에 올리고 3.35m 높이의 황소 상을 당당히 응시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찬 표정을 통해 성 차별과 불평등 대한 항의, 여성의 리더십과 힘을 표현했다는 평가다. 당초 소녀상은 일주일만 설치될 예정이었지만, 뉴욕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자 존속시키기로 했다. 지난 1년간 철거 요구도 끊이지 않았다. 개인 아티스트가 아닌 억만장자 금융회사가 세운 홍보물이다” “소녀상이 황소 상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등의 비판도 있었다.
작가 개인이 자비를 들여세운 황소상과 달리 소녀상은 투자자문회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SSGA)가 제작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SSGA는 ‘성별 다양성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었는데, 이 펀드는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는 기업 중에서 이사회 여성 비율이 30% 이상인 회사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으로 운영하는 상품이다.
SSGA는 이사회에 여성 비율이 높고 여성의 의견이 기업 경영에 잘 반영되는 기업이 수익률도 좋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내세워 이 펀드를 판촉했다. 황소 상을 조각한 모디카도 자신의 작품이 가진 의미를 소녀상이 변질시켰다며 퇴거를 요청했다.
모디카는 “소녀상은 번영의 상징인 황소 상을 악당으로 바꾸는 광고 술책일 뿐“이라며 자신의 허락도 없이 동상을 설치한 뉴욕시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미국 자본주의와 월가의 상징으로 꼽히는 황소상은 1987년 증시 폭락 2년 후인 1989년 크리스마스에 NYSE 앞에 설치됐다.
의기소침해진 미국인들에게 힘을 주겠다는 의도에서였다. 뉴욕 경찰은 무단으로 설치된 이 조각상을 철거했지만, 시민들의 요청으로 황소상은 NYSE에서 두 블록 떨어진 현재 위치에 다시 자리 잡게 됐다. 돌진하는 황소 상(Charging Bull)도 만났다. 월가의 상징은 금방이라도 돌진할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황소 상으로 모디카가 만든 작품이다.
증시 상승장을 불스 마켓, 하락장을 베어 마켓이라 부르는데 황소상은 상승장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제작되었다. 황소의 주요 부위를 만지면 부자가 되고, 뿔을 만지면 행운이 깃든다는 속설이 있어 많은 여행자가 황소와 함께 인증 샷을 남기기 위해 찾아온다.
황소 뿔 앞과 황소 고환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 사진 찍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1987년 암흑의 월요일로 뉴욕이 주식폭락의 충격에 빠진 이후, 뉴욕금융계의 밝은 미래를 바라는 의미로 세워졌다. 황소 상을 보면 알겠지만, 황소의 포인트는 커다란 고환이다.
황소의 커다란 고환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다. 강한 남성상. 그건 바로 월스트리트의 문화다. 금융 맨은 거의 대부분 백인 남성이다. 월스트리트를 걷다보면 정장을 차려입은 직장인은 거의 백인 남성이다.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는 딱 그렇다. 커다란 고환을 주무르는 것이 마냥 좋은 여행자들은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어간다.
황소의 고환이 닳고 닳아서 작아진 게 아니라 황금빛으로 빛난다. 황소 상 앞에는 Liberty Bagels Wall Street 음식점이 있다. 최고의 베이글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금융 맨들이 순발력 있게 점심을 해결하던 메뉴가 다양한 베이글이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맛이라는데 먹어보진 않았다.
돌아 페더럴 홀(Federal Hall) 앞으로 간다. 월스트리트의 역사적인 건물이다. 현재 건물은 1842년 세관으로 완공되었다. 그 앞에는 이 건물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지 워싱턴의 기념비가 서 있다. 조지(Georgie)가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음을 발표한 옛 국회의사당이었던 페더럴 홀(Federal Hall)이다.
건너편에 제이피 모간의 집으로 알려진 건물이 있다. 1914년에 지어진 23 Wall Street는 "House of Morgan"으로 알려져 왔고, 수십 년간 은행의 본사들이 소재해 미국 금융의 가장 중요한 주소지였다. 제로지대로 간다. World Trade Center다. 9.11 테러로 인해 무너진 뉴욕 맨해튼의 구 세계무역센터를 계승하는 대규모 비즈니스 센터 지역이다.
붕괴 이전의 건물과 구분하기 위해 '신 세계무역센터'라 부르기도 한다. 총 4개의 마천루와 교통 센터, 추모시설과 박물관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그 중 가장 높은 건물이 541m의 제1세계무역센터, 일명 프리덤 타워이다. 1 WTC를 포함한 새로운 세계무역센터 건설 계획은 6개의 초고층 건물의 건설과 함께 9.11 테러로 인한 사망자들의 위령 공간, 상업시설, 뉴욕 지하철의 환승 구조물을 포함하고 있다.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을 둘러본다. 제로 지대로 불리는 곳이다. 구 1WTC와 2WTC의 기반 위에 지어진 추모 시설이다. 노스 타워 풀(North Tower Pool), 사우스 타워 풀(South Tower Pool). 엄청나게 특이한 기념물이다. 두 기념물(남쪽과 북쪽)은 땅에 '눈물 웅덩이'로 묻혀 있다.
기념물 자체에는 물이 빠져나가는 또 다른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의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끝없는 슬픔을 상징한다. 가장자리에는 9.11 테러에서 숨진 희생자들과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명패가 있다. 안의 빈 공간에는 북아메리카 최대의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다.
상당한 양의 물이 떨어지는데 9.11 테러로 인해 수많은 미국인들이 흘린 눈물을 상징한다. 시에서는 생일날 흰 장미를 조각에 넣는다. 모두 매일 최소 3송이의 장미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거대한 땅을 놓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상당히 분분했다고 한다. 많은 국민들과 희생자 가족들은 이 부지를 추모시설로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사업자들과 뉴욕시에선 너무나 거대한 부지를 추모시설만을 설치하기에는 손해가 크다며 건물 지하 등에 추모시설을 건설하는 것과 같은 절충안을 내세우며 거절의 뜻을 내비쳤으나, 결국 강력한 여론에 의해 추모시설로 사용하기로 결론 났다. 고요하고 무언가 가슴이 먹먹해진다.
서비버 트리(Survivor Tree)도 있다. 9.11테러에서 살아남은 배나무다. 비극에 직면한 희망과 회복력의 가슴 아픈 상징이다. 캘러리 배(Callery pear)인 이 나무는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세계 무역 센터 잔해 속에서 발견되었다. 심하게 손상되고 불탔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몇 년 동안 조심스럽게 보살핌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으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희망과 부활의 상징이다. 울퉁불퉁한 줄기와 뒤틀린 가지들은 그 당시의 트라우마와 참상을 강력하게 상기시켜 주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강인함과 회복력도 상기시켜 준다. 길 건너편에 엄청 새롭고 멋지고 특이한 흰색 건물을 발견했다. 세계무역센터 교통 허브 건물이다.
통칭 Oculus라 불리는 이곳은 스페인 출신 유명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했으며 38억5000만달러(4조 6천억원)의 건설비가 들었다. 외형은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내부가 텅 비어있고 하얀 대리석 바닥으로 되어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거대한 아이스링크 장 같다.
내부는 거인의 척추처럼 보인다. 비가 잠시 그친다. 광장에는 여러 가지 동물을 주제로 한 조형물들이 만들어져 있다. 긴 자전거를 타는 동물들이 재미있다. 맨 앞에는 코뿔소, 기린 그리고 원숭이 앞에는 사람의 빈자리도 있다. 사람들이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여성 토기와 남자 개는 광고판을 들고 있다. 개와 코뿔소가 체스판을 가운데 두고 있다. 커다란 코끼리 상도 보인다. 건물 내부에는 쇼핑센터가 자리 잡고 있고 사람들이 걸어간다. 이 장소는 기본적으로 지하철 정류장이 붙어 있는 거대한 쇼핑몰이지만, 정말 놀랍고 직접 볼만한 가치가 있다.
꼭 봐야 할 건축의 걸작이다. 이제 숙소로 간다. WTC 코트랜드 지하철 역에서 탑승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우산을 놓고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잘 사용하겠지. 타임즈 스퀘어-42 스트리트 역에서 내렸다. 마담 투소(Madame Tussauds)밀랍 인형 박물관 건물을 지난다.
영화배우 인형상이 보이고 다섯 손가락 모형도 보인다. 어제 헤매던 버스터미널(Port Authority Bus Terminal)에 도착했다. 이제 능숙하게 표를 사고 158번 버스에 탑승한다. 제법 익숙해졌다. 비는 그쳤지만 신발이 다 젖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새로 예약한 숙소(Rodeway Capri Inn)를 찾아간다.
아직 날이 어둡지 않아 숙소를 찾기는 쉬웠다.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는다. 진짬뽕에 계란 두 알을 넣었다. 정말 맛있다. 토마토도 곁들여 먹었다. 야자나무가 그려진 숙소는 넓고 깨끗하다. 창 밖에 넓은 잔디밭과 나무들이 보인다. 비가 개고 햇살이 많이 기울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부근에 숙소를 찾아 예약하고 잠자리에 든다. 신발이 금방 마를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