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분비지않던 집에 많은 사람들 때문에 신이 났던지
마루한쪽 모서리에 놓인 성냥각을 주어들고 나는 하얀 천막아래로
내려와서 성냥개비 쏟아놓고 집모양을 만들던기억과
아버지와 마루에 계시던 어느분이 고놈 크면 목수가 되려나보네
제법 손제주가 있어보여 허허 웃던 모습 그리고 잠시후
어른들이 하얀 천막에 불이붙어 그걸 끄시기위해 허둥대던 기억이
언제나 머리을 스치곤 한다
아마도 네가 장난놀다가 불을 붙이것 같다
이대즘 한창 무서움을 탓던 기억이 난다
새벽 두세시즘 꼭오줌이 마려운데
집하고 조금 거리를 둔 뒷간은 엄두도 못네고
방문열고 토방에 오줌을 누려하면 대문앞에 어설픈이 흐미한 그림자는
네가 그곳을 떠나올때까지 하루도 거르지않던 무서워던 시절이다
무서움에 눈길을 대문에 두질않고 밤하늘 올려다보다가
언듯보면 흐미한 그림자가 닥아오는것같아
악..하고 소리 치면 왜그러냐고 달려나오시던 아버지 모습에
손까락을 대문에 가리키면서 누가 날 잡아갈라고 와야 하면
애끼이놈 오긴 누가 온다고 한밤중에 혼들갑이야고
군밤을 내리 주시던 그먼 기억이 오늘 어제처럼 되살아 나옵다
대문바로앞이나 집을 조금만 벗서나도 묘지가 온동네을 차지하고읶어
묘지속에 동네가 듬성 듬성 있어 아이들 놀는곳도 묘지을 벗서날수없었다
한번은 여름 태풍이 매섭게 동네을 허물고 지나면서 여기저기 묘지가 파이고
새로운 물고랑이 생기면서 들어난 곳에 먼 옛적 누구네 묘지에 세워두었는지는 모를
부처 형상의 석상을 보고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은 결과
산깊에 작은 옹달샘앞에 두자는 의견이 많아 그곳에 모셔둔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토속신항이 강하게 있는터라 이구동성 그곳에 두기을 원했스리라
하기사 그대만 해도 밤이면 독개비 불이라고 했던 인불이 엄청 많아서
한밤중에 아이들 하고 묘지에서 놀다가 오줌을 누며서 인불이 몆개나되나
헤아려 보량으로 숫자을 세다보면 갑자기 불들이 한곳으로 뭉처 커다란 공이 되여
네게로 굴려오는바람에 놀라 도망오던 기억과
언제나 굼주려던 기억이 서로 교차할대면 아픈 과거사가 아련하게 그려진다
그당시 전쟁 후유증으로 온통 나라안이 홀란 스러울 때며 엄친데 덮친다고
흉년이 5 년이나 이어저 너나 난 할것없이 굼주리고 병들어
곳곳에 점염병이 창출하고 살아도 살것같지않는 어두운 시절속에
우리 부모님들 참 고생 많으셨다
지금야 병원이 너무많아서 환자가 골라서 가지만 그대에는 상상 할수없는 일이였다
그래도 배고픔만 없다면 그때만큼 자유롭고 걱정 없던때도 없늘 것이다
언젠가 고향을 갈일이생겨서 가봤던이 어릴대 여름내 살았던 동네 아래 시넷가는
물한방울 모여있지않는 매바른 바닦을 들어내고 쾌키한 하수도 찌쩌기가 온통 차지한 흉울 스런 모습을 하고있는것이 너무니 안타가워다
여름 한철 온동네 아이들과 이웃동네 아이들이 간격을 두고 물놀이에
해지는줄모르고 지네는데 우리가 놀던 곳에 족히 2 m 타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있었는데 이돌이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제법 이름을 지니고있었다
이름하여 자리바구라고 한다 평소에도 수량이 무릅까지 차지만 자리바구 ( 바위을 이곳에서는 바구라고함 ) 주변은 어린아이 키을 조금넘는 깊이로 아이들이 수영 하기는 그만이다
이곳 에서 두어명인 가 물놀이 하다 익사한 일도 있고 하지만 하구바구 보다는 안전 하다 하여 하구바구 보다 아이들 많이 모여 물놀이을 했다
하구바구는 연들 천중간즘에 있는 각아지는 절벽 아래 자리바구보다 커다란 돌이 하나 서있고 그밑은 깊이을 헤알릴수없다고 그당시 애기들이 많았지만 그역시 지금은 하수냄새로 처참한 말년을 보네고있다 하구바구만큼은 해년 마다 아이들 하둘 익사하는 바람에
하구바구 밑에서 오동도 가지 용굴이 뚤어저있어 용이 매년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네도래 아이들은 진심으로 알고 믿고있었다
자리 바구나 하구바구나 주변으로 흐르던 물빛은 일급수로 무릅까지 차오르는 물이 항상 넘처났고 조금먼 고개을 숙이면 지천으로 깔렸던 올갱 엄지손톱만 한개 수도 없이 많았는데
지금은 하수구 썩은 물이 흐르는 죽음에 맨바닥을 들어네고 잊어버린 지난날들 을 그리워 핟다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겨울이면 나무로 만든 스케이트 타러
봉산동 큰샘 금처 연못에 자주다녀는데 이곳도 온통 아이들 천국이지만
살어름때 몃몃 아이들이 익사도 했다
하지만 마탕이 놀때가 부족 하던 아이들이라 곤방 잊어버리고 내일이면 몰려와
나무밑단에 철사을 두줄로 역은 발스케이틍 탄다든가 안즌뱅이 스케이트에 송곳 막대
손잡ㅇㅣ을 힘것내젓으면서 어름을 지치던 그곳도 세파에 밀려 온데간데 없고
지자리위에 이름모를 모텔이 많이도 서있을 뿐이다
아이들 자리바구나 하구바구에서 조금씩 익힌 수영 솜씨로 아주 더운 날이면 바다로 나오는 데 통통배들이 들락거리는 부두한족은 여름이면 아이들 멱감는 소리로 분주하다 나도 이곳을 자주와서 물놀리을 했고 아픈 추억도 있는곳이 40 년이 흘적 지너났지만 우리가 놀던 방죽돌무더기는 그대로 있다 한여름 때약볕에 오래 몸을 오래 노출 시키면 태양으로 인 해서 생기는 빈혈로 가끔은 아이들 쓰러지고했는데 나도 그중에 한사람으로r기억 저편에 남아있다
지금이야 연육교가 생겨서 자유로이 통행이가늘 하지만 불과 몆년전에는
나룻배에 자동차를 실어서 이동하던 돌산 도가 시로 편입되면서 돌산도 끝자락에 있는
항일암은 남해끝에서 볼수일출을 볼수있는 유일한 곳으로 찾는이들이 많다
돌산은 여수돌산갓하나로도 톡톡히 유명새를 타지만
굴레리 동백꽃굴락은 우리나라그어느곳보다 아름답다
붉다못해 피빛같은 꽃이 4월초에 개화해서 겨울에도 간간이 피는데
낙화해있는 꽃도 나무에 핀것보다 더울 볼만 하다
바닦이온통 피에젖어있는것처럼 붉은 색 천지다
돌아오는길에 방죽포 해수욕장과 어른 머리통만한 돌들로 해안가득펼처저있는 몽돌 해수욕장도 이곳만이 간직한 아름다운 천해의 조건을 가진 작은 보석같은 섬이다
돌산에서 여수시내로나오는 돌산대교는 저녁이면 진가를 톡톡히 발이하는데
오색의 조명색으로 다리아레에서 윗족으로 빛을 쏘아올리는데
몆초간격으로 색이 변화무상하게변하는데 지켜보면은
저절로 감탄사가절로나온다
다리난간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에는 근방이라도 쏱아질것같은 북두칠성과 수많은 별들은 너무나 투명해서 과히 장관이 아닐수없다
밤바다는 달빛에 취해 푸르다못해 검붉은 색으로 잠들있고
밤이깊어는데도 종고산이며 구봉산 자락에 민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도심에 야경을 한층증폭시키고 오가는 자동차불빛도 이곳에서는 예술작품처럼 내마음를 흔들어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