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놀던 작은 금강
소요산 전경
소요산역까지 사람들을 실어다주는 기차는 인천에서 출발하는 국철 1호선이다. 배차 간격은 30분 정도다. 1호선을 타고 동두천을 지나 얼마지 않으면 소요산역에 도착한다. 역사(驛舍)를 나오면 바로 소요산(587m)이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뒤로 제키지 않아도 부채 모양을 한 산세가 그냥 조망되기 때문에 산행이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랬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소요산 입구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양옆으로 도열해 있는 골목을 만나게 된다. 그 골목을 따라 진입하면 왼편으로 소요산 삼림욕장과 동두천 소방서가 보인다. 길 오른쪽으로 있는 자유 수호 평화 박물관을 지나 계속 전진하면 왼편에 소요산 관리 사무소가 나온다.
자재암 일주문
소요산 삼림욕장에서 소요산 입구라 할 수 있는 자재암 일주문까지 단풍나무와 느티나무들이 양켠으로 터널을 이루며 도열해 있다. 산행을 하기에 앞서 몸을 푸는 구간으로 활용하면 된다. 소요산 관리 사무소를 지나면 왼편에 요석공주가 원효 대사를 뒤따라 와서 별궁을 짓고 살았다는 집터임을 알려주는 석비가 세워져 있고, 그 맞은편에는 요석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야외음악당을 지나 매표소를 통과하면 머지않아 자재암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현판 아래 그 보다 작은 글씨로 쓴 경기소금강(京畿小金剛)이라는 편액(偏額)이 걸려있다. 글쎄. 소요산이 작은 금강산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울까. 고개를 갸우뚱한 것이 두 번째 잘못이었다.
얼마지 않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원효폭포를 만날 수 있다. 폭포 앞쪽 돌다리를 건너면 소요산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가 실질적인 산행 들머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갈래 중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면 옛절터 → 공주봉 → 의상대 순으로 산행을 할 수 있고, 왼쪽은 자재암 → 하·중·상 백운대 코스다. 어느 쪽을 택해도 부채 모양의 능선을 따라 원점으로 회귀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재암으로 올라가서 공주봉으로 떨어지는 코스를 택한다.
등산로 안내판
소요산은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이라는 여섯 개의 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다 도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되면 중간에서 선녀탕이나 일주문으로 탈출할 수도 있지만 소요산 산행의 묘미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여섯 봉우리의 정상을 다 올라보아야 한다.
왼쪽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평지가 나오고, 여기서 다시 왼쪽 계단을 내려가 길을 따라 전진하면 자재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량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 석벽에서 쏟아지는 청량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있은 후 원효 대사는 오로지 수행할 일념으로 인적이 두절된 심산유곡을 찾아다니다가 산자수명한 소요산에 이르러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 했는데, 안내판에는 그 초막이 오늘 날의 자재암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나한전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산신각을 건너다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니 단번에 숨이 가쁘다. 소요산 등산로 중에서 가장 가파른 깔닥고개가 바로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90도는 제켜야 까마득히 까치집 같은 백운대가 올려다 보인다. 소요산역 앞에서는 눈높이로 바라다 보이던 정상이 비로소 난공불락의 요새로 닦아온다. 얕잡아 본 사람이라면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
하백운대(440m)에 도착해서야 맞은편으로 올라오는 길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삼림욕장 옆으로 들머리가 있단다. 자재암으로 올라오는 것보다 경사가 완만하여 한결 편한 대신 도상거리는 1.5배 정도 된다. 대개의 경우 시간이 적게 걸리는 자재암길을 택하는데, 초보자라면 삼림욕장 경유 코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하백운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산세를 조망한 다음 중백운대로 향한다. 하백운대에서 중백운대까지는 0.4km로 20분정도 걸으면 된다. 초반에 가파른 길을 올라왔기 때문에, 중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조금 수월하게 느껴진다.
중백운대(510m)에서 안내판을 확인한 후 내처 상백운대로 향한다. 상백운대까지는 0.5km로 25분 정도 걸아가면 된다. 10분쯤 걸어가자 안내판이 또 나오는데, 직진을 하면 상백운대로 통하고, 오른쪽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선녀탕에 다다른다. 탈출을 하고 싶더라도 선녀탕 쪽은 길이 미끄러워 등반사고의 위험성이 뒤따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백운대→ 중백운대 코스보다 중백운대 → 상백운대 코스가 조금 더 길고 험하다.
소요산 등정은 이렇게 하백운대로 올라 와서 중, 상백운대를 지나 나한대→의상대→공주봉 순으로 능선을 따라 파도를 타듯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마루금은 부드러운 흙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바위들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상백운대(559m)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펼쳐져 있는 마차산이 조망된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까지는 1.2km로 한 시간 쯤 걸린다. 나한대로 이르는 마루금은 다른 곳보다 유독 바위가 많다. 위세 등등한 칼바위가 날카롭게 서 있고, 뾰족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바위들 때문에 여기가 인간들이 소요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산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에 이르는 길이 가장 길다. 그러나 곳곳에 안내판이 많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나한대(571m)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바로 소요산의 주봉인 의상대로 향한다. 나한대에서 의상대까지는 15분 정도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의상대
의상대에서 수락산의 정기를 들이마시고 마지막 봉인 공주봉으로 향한다. 공주봉까지는 1.1km. 나무계단을 내려가 편안한 발길로 30분쯤 걸어가다 보면 안내판이 나온다. 직진하면 공주봉(0.3km)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 쪽으로 일주문(1km)으로 통하는 탈출로가 있다. 이때부터 다시 가파른 바윗길이 이어진다. 15분정도 땀 흘리며 올라가면 드디어 공주봉(526m)에 도착한다. 공주봉은 다른 어느 곳보다 시계가 탁 트여있어 동두천 시내가 제일 잘 내려다보인다.
이제부터는 하산이다. 공주봉에서 다시 소요산 안내도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길은 관리공단에서 설치한 나무 계단이 많아 그리 위험하지 않으며, 오른 쪽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와 귀 또한 즐겁다. 옛 절터의 대웅전 자리에는 등산객이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다.
한 눈에 들어와서 만만해 보이던 부챗살은 막상 밟아보니 생각보다 넓어서 빨리 돈 사람이라야 4시간 반이고, 5-6시간은 충분히 소요되는 것이 소요산 산행이다. 도도한 산세에 반발하여 쉽게 돌아서지 않고 끈질기게 바위를 어루만지고, 흙을 쓸어보고, 나무들에게 눈인사를 던지노라면 소요산도 못이기는 척 슬그머니 자태를 열어 보이는데, 그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바위와 계곡, 폭포와 선녀탕과 구름과 봉우리 사이사이에 신선들이 노닐기에 부족함이 없는 비경을 숨겨놓았고, 그것이 금강에 견줄 만큼 빼어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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