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문법 파격의 대표적인 예임과 동시에 일관성이 없는 사용법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했던 아더 그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수형 명사인 엘로힘은 문법적으로 복수형 동사와 형용사를 받는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단수형 술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4]
이렇듯 엘로힘은 복잡한 쓰임새를 갖고 있는지라 신학자들로 하여금 다신 복수, 장엄 복수, 삼위 복수등의 제안을 내놓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제안중에 무엇이 적합한 접근일까요?
세 가지 제안 검토
이제 세 가지 제안을 검토해 봅시다.
(1) 다신 복수
다신 복수란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여러분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신 6:4를 비롯한 많은 성경의 구절들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계시하는지라 다신 복수를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를 다신 복수로 취할 경우 성경은 모순이 있는 책이 되는 것이지요. 이 견해는 자유신학자들이 취하는 견해로써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2) 장엄 복수
장엄 복수란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너무나 크고 위대하신지라 감히 단수로 부를 수 없고 복수로 불러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의도는 좋지만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장엄 복수란 개념은 모세의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타빗사이넨과 주커는 브라운과 길만의 글을 인용하여 장엄 복수의 개념은 창세기가 쓰여진지 2,000년 후인 4 AD경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5] 그럼으로 엘로힘을 장엄 복수로 취하는 행동은 나중에 생긴 개념을 그 개념이 없던 모세 시대의 글에 대입하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역사 신학자들은 이러한 시도를 “휘그적 해석 방법”이라고 부르며 비판합니다. 과거는 과거로 해석해야 합니다. 현재로 과거를 해석하면 안됩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과거에 있었던 개념과 현상으로만 해석을 해야지 그 때 없던 현재의 개념과 현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히브리어 학자 윌리암 파울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히브리어와 갈대아 언어의 기초를 아는 사람들은 성경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종종 당신을 복수형으로 말하시면서 술부의 수는 단수로 쓰시는 것을 알것이다. 이는 큰 어려움을 주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최근의 문법 학자들은 히브리어의 쓰임새를 면밀히 연구하지않고 오히려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장엄 복수”와 같은 표현을 만들어 냈다. 이 표현의 등장은 많은 신학적 어려움을 단번에 사라지게 한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장엄 복수”라는 개념은 모세나 선지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존함이 복수형이라는 의미를 장엄 복수로 풀어서는 안된다. [6]
엘로힘을 장엄 복수로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한 가지의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사마리아인들이 그들의 오경에 등장하는 복수형 엘로힘 몇 개를 단수형 엘로아로 변개한 사실입니다 (창 20:13; 31:53; 35:7, 출 22:8). 그 이유는 복수형인 엘로힘이 단수형 술부로 받아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장엄 복수의 개념이 있었다면 이런 시도는 하지 않았겠지요. 하버드 대학에서 사마리아 오경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쓴 부르스 왈트케는 사마리아 오경이 맛소라 사본과 다른 여덟가지 이유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은 맛소라 사본에 있는 난해한 문법 부분을 지우고 이해하기 쉬운 문법으로 고쳐 넣음으로써 그들의 오경을 언어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7]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들에게 장엄 복수의 개념이 있었다면 이런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로 장엄 복수의 개념을 취하는 것은 재고(再考)되야만 합니다.
(3) 삼위복수
마지막으로 삼위 복수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엘로힘(אֱלֹהִ֑ים) 이라는 해석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이 점진적 계시를 통하여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점진적 계시란 하나님의 계시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쓰여지면서 구체화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구약에는 거시적으로 두리뭉실하게 언급된 내용이 신약에서는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설명되었다는 것이죠. 가장 좋은 예는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늘 개념일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늘들의 하늘(הַשָּׁמַ֜יִם וּשְׁמֵ֤י הַשָּׁמַ֙יִם)”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늘이 하나 이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몇개의 하늘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하늘을 지칭하는 헬라어가 3개 등장합니다: 아에르 (ἀὴρ), 코스모스 (κόσμος), 우라노스 (οὐρανός). 이 세가지의 단어들은 각각 풍부한 뜻을 담고 있어 때때로는 이음동의어로도 쓰일 때가 있지만, 단어들의 쓰임새를 잘 분석하면 각각의 단어들이 담고있는 특이한 의미가 발견됩니다.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기’를 뜻하는 영어의 air가 헬라어의 아에르 (ἀὴρ)에 뿌리를 두고 있고, ‘우주’를 뜻하는 영어의 cosmos가 헬라어의 코스모스 (κόσμος)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구약에는 두리뭉실하게 언급된 표현이 신약에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점진적 계시입니다. 삼위일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시라는 명확한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신약에는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일체라는 사실이 명확히 계시됩니다. 예수님의 침례시에 성부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지요?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독립적 대명사들이 등장합니다. 즉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삼위일체를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한지라 엘로힘이라는 추상명사를 복수형으로 쓰고, 그 복수가 수(數)의 복수가 아니라 위(位)의 복수라는 것을 신약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계시한 것이지요.
아더 그린의 말을 생략없이 인용합니다.
복수형 명사인 엘로힘은 문법적으로 복수형 동사와 형용사를 받는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이 복수형 단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미할 때에는 단수처럼 사용되어 단수형 술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도적 문법 파격이다. [8]
끝으로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보야 엘로힘은 삼위 복수로 봐야함이 합당합니다.
[1]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God and Creation, 97.
[2]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47.
[3] Robert Girdlestone, Synonyms of the Old Testament: Their bearing on Christian doctrine, 19.
[4] Arthur Green, These are the Words: A vocabulary of Jewish Spiritual Life, 11.
[5] Irma Taavitsainen & Andreas H. Jucker (Editors), Diachronic Perspectives on Address Term Systems, 5.
[6] William Pauli, The Great Mystery: Or, How Can Three Be One, 7~8.
[7] Bruce Waltke, Prolegomena to the Samaritan Pentateuch, 463-464.
[8] Green, 11.
이상환 목사/https://m.blog.naver.com/choys0000/10190438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