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오랜 친구로 지냈지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었지? 난 당신에 대해 모르는 걸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엄청 설레이고 신기했었어,우린 이렇게나 많이 달랐구나하면서,그래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었구나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었고…., 넌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니? 이건 꼭 물어보고 싶었어,나와 함께 했었던 너의 시간들은 행복했니? 어디에다 이 말을 전해야 할 지 몰라서 너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이 곳에 겨우 전해 네가 있는 곳으로 띄워 보내,네가 이 글을 언제 읽을 지 알 순 없지만 최대한 빨랐으면 좋겠다,너와 함께 했었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빼곡히 우리의 기일에 항상 하나씩 적어놓을 거거든1"
"네가 알려준 산사나무의 꽃말,넌 아직 기억하고 있니? 세상에 물들지도,시간에 시들지도 않는….네가 소원처럼 꿈꿔오던 순전하면서도 영원한 나의 사랑이라고 했었잖아,난 그게 우리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왜냐하면 너는 처음으로 나의 이름이 된 유일한 사랑이거든."
"만약 네가 나에게 진실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면 내 마음 속엔 네가 있다고 대답할 거 같아,날 배려해주는 네게 내 심장이 흔들렸거든"
남들보다 먼저 수습된 내 연인의 주검을 앞에 두고 그녀의 아버지는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축하한다니….,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먼저 확인하지 못해 자책감에 빠져 있는 여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밖에 없다는 참혹한 현실이 또 어디에 있을까,아픔을 어루만질 시간도 없이 상처는 더 깊어져만 갔고 그녀가 유일하게 믿었던 사람2은 그녀에게 통렬한 분노만을 남겼다,언제 끝날 지 모를 이 싸움의 끝이 대체 있긴 한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필 그 날 사고가 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어쩌면 그녀가 그에게 일어날 수도 있을 사고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었다,순식간에 일어난 불길은 너를 집어삼켰고 나는 정말 바보 같게도 결국 너를 지켜줄 수 없었다,이토록이나 슬픈 언약식이 대체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얗고 여린 그것3들이 내리던 날 평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그 아름다운 꽃비 내리던 날에.
그와 나의 거리를 실감한 순간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다.
아파서,힘들어서,견딜 수 없어서 놓은 손을 그녀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네가 지금 이 집에서 나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 지 너도 잘 알 거야"
어쩐지 그4의 표정에서 불안함이 느껴졌다.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이 곳에 있으면….내가 살아갈 수 없을 거 같아요,이유는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내 유일한 전부였던 그를 빼앗아 간 이 곳에 있고 싶진 않아요,집을 알아볼 거에요,간간히 연락은 할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내가 당신을 죽을만큼 미워해도 당신이 날 낳아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까,애석하게도."
그녀를 붙잡으려는 그의 팔을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그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을 다 잃은 듯한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괜찮아요,다만 모든 것이 ……."
그녀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인을 바라보며 나는 정말 괜찮다고,아무렇지도 않다고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사실은 괜찮지 않은데 이대로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데….,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잃어버린 낙원 속에서 내가 찾아내야만 하는 건 너였는데,네가 곁에 없는 난….어떤 존재인 건지 잘 모르겠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그저 멍하니 너를 추억할 수 없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한심스러워 보였다.
나는 왜 이토록이나 나약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 하나뿐이었던 유일한 사랑이 희생양이 되어서야 끌려온 궁전 같은 집에서 그녀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가쁜 호흡으로 내뱉은 숨이 시린 공기를 만나 금세 얼어붙을 듯 했다.
그의 마지막은 어딘지 모르게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다.
처연하게 축 쳐진 어깨가 들썩였던 것을 보았던 거 같았는데 그저 그것을 내 간절함이 만들어낸 착각이라 치부해버렸던 게 후회스러웠다.
"그냥 잠들 수가 …… 없었어"
그는 그 한 마디 말만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나는 위로해달라는 네 무언의 눈빛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너의 손길을 차갑게 뿌리쳤었다.
그 때 가만히 너를 안아주었더라면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너의 어설픈 사랑고백이 그리웠고,사소한 일로 다투다가도 금방 화해하고 웃고 떠들던 우리의 사랑스러운 추억이 그리웠다.
봄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너와 자주 갔었던 카페의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여전히 너를 잃어버렸던 지독했던 겨울의 북풍이 매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1. 도경이 지혁에게 끝내 전해주지 못한 채 산사나무 아래 묻어놓은 편지
2 도경이 지혁과 사귀기 전에는 주원과 사이가 좋았다.
3 도경과 지혁의 사랑의 매개체가 되는 새하얀 눈
4 그녀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