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원통의 수행
2.이근원통의 원리
1)반문문성
이근원통 수행은 먼저 소리에 집중[觀]하는 단계를 거친 후, 반문문성(反聞聞性)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근원통의 마지막 단계인 반문문성은 이근원통 수행의 핵심이다. 듣는 소리를 돌이켜서 자성을 듣는다는 의미이다.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은 문성오도(聞聲悟道), 즉 소리를 통해 깨우침이다. 이에 대해 『능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난이 비록 많이 기억했다고 하지만 삿된 생각에 떨어짐을 면하지 못했다. 어찌 소리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흐름만 돌이키면 허망이 본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기억력이 좋은 아난조차도 문성(聞性)을 알지 못하는 이유로 성진이라는 생멸하는 문상(聞相)을 쫓으며, 더욱이 삿된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중생은 아난처럼 본래의 문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칭찬을 들으면 기뻐하고, 비방을 들으면 노여움을 일으킨다. 이렇듯 소리에 따라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유전하지 않으려면, 선류(旋流)하여야 무망(無妄)을 이루게 된다. 선류란 바로 반문(反聞)을 가리킨다. 이것은 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소리를 듣는 마음자리를 돌이켜 들으라는 말이다. 반문하는 것이 바로 선류이다. 반문에 일착(一著)하면 오온을 원만히 깨뜨리고 오탁(五濁)을 초월하며, 단번에 여래장 묘진여성의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관세음보살은 이근원통의 수증법에 대해서 관세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문(聞)・사(思)・수(修)를 통해 육결을 풀어 궁극의 적멸에 드는 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원통을 통해 얻어지는 과용(果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대가 비록 미진불의 가지가지 비밀법문을 들었다고 하나 먼저 애욕의 번뇌를 제거하지 못하고, 듣는 것만 쌓아 과오를 저질렀다. 들음을 통해 불성을 지녔으면서도 어째서 스스로 듣는 성품을 듣지 못하는가. 듣는 것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있게 되었으니, 그 듣는 것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이미 해탈이다. 이것을 다시 무엇이라 이름하겠는가. 하나의 감각기관이 이미 근원으로 돌아가면, 여섯의 감각기관 또한 해탈을 이루게 된다. 보고 듣는 것은 환(幻)의 티끌이고, 삼계(三界) 또한 허공의 꽃이다. 듣는 성품을 회복하여 눈에 가림이 제거되면, 허망한 티끌은 저절로 없어지고, 깨달음이 원만하고 청정하게 된다.
이문처(耳門處)로부터 들음을 돌이켜 자성을 듣는다[反聞聞自性]고 함은 곧 사유를 끊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곧 들음을 돌이켜 반대로 전환하면, 능히 성진의 허망한 결착을 원탈(圓脫)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문수보살이 대중 및 아난에게 권하기를, "그대들이 듣는 근기를 거꾸로 선회하여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하면, 그 자성이 무상도(無上道)를 이루어서 원통이 실로 이와 같다"고 밝힌 것이다.
2)관세음보살의 문・사・수
다음으로 관세음보살의 문(聞)・사(思)・수(修)를 살펴볼 수 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헤아릴 수 없는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겁을 기억해 볼 때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이름이 관세음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하게 되었으며, 그 부처님께서 저에게 '삼마지에 들어가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문사수의 수행과정을 보면, 먼저 소리를 듣고 소리가 발생했다가 사라짐에서 불생(不生)임을 생각한다. 또한 소리의 나타남과 사라짐을 알고 듣는 바탕인 문성이 불생불멸(不生不滅)임을 자각하고, 일체 세간과 출세간을 초월하게 되는 소리를 사용하여 닦는다. 또한 관세음 부처님이 관세음보살에게 가르치신 문사수는 일반적으로 삼혜(三慧)라고 한다. 지혜는 어떤 학문이나 진리를 듣지 않고서는 알 도리가 없으므로 들어야 한다. 듣고 나서는 깊이 사색하고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능엄경』에서의 문・사・수 삼혜는 일반적인 해석과는 달리하고 있다.
삼혜는 문혜(聞慧)・사혜(思慧)・수혜(修慧)이다. 첫째, 문혜는 이근을 통해 드러나는 문성이다. 『능엄경』의 해석으로 본다면 문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귀로 듣는 마음자리가 바로 문혜이다. 둘째, 사혜는 불타공유(不墮空有)이다. 공(空)과 유(有)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일미 반문(一味反聞)하는 것이다. 공과 유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의 자세로 일관함이 바로 일미다. 원통(圓通)을 하려면 불타공유하고 일미반문하며, 밖으로는 성진을 벗어나서 외탈성진(外脫聲塵)하고, 안으로는 여여지리(如如智理)에 계합(契合)하는 내명지리(內冥智理)가 되어야 한다. 셋째, 수혜라고 하는 것은 공부가 더 깊어지는 것이다. 수혜는 만행을 통달하여 선관(禪觀)과 반문공부(反聞工夫)가 서로 어긋나거나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언제든지 정(定)이 아닐 때가 없게 되는 경우이다. 문혜와 사혜는 선(禪)을 익히는 공부로서 반문공부를 착실하게 잘하는 것이고, 수혜는 육도만행(六道萬行)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근원통에 관한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 이상식은 이근원통법(耳根圓通法)이 조사선, 간화선, 묵조선, 염불선 등 기타의 선법으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특히 들음을 돌이켜서 듣는 수행법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정토종의 염불선법에 채용되었음을 밝혔다. 운서주굉(雲棲株宏)이 『선관책진(禪關策進)』에서 주장한 '염불하는 자, 이것이 누구인가?'라는 공안은 정토종에서 제시한 염불선의 핵심으로 이것은 이근원통 수행법의 핵심인 반문문성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염불선의 핵심은 소리를 초월하여 듣는 자성을 깨닫는 것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염불선과 반문문성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조용헌은 이근원통이 북방 불교권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았으며 티베트로 흘러 들어가서야 밀교의 전통 수행법 중의 하나로 정착된 것으로,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내려온 비전(秘傳)이며, 그 일부가 염불선이라는 형태로 변용되어 내려왔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재의 염불선에는 부분적으로 이근원통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긴 하지만 원래의 전통적인 방법과는 차이가 있다. 『능엄경』에서 제시하는 이근원통법은 염불선이나 기타 선법과도 달라 『능엄경』에 바탕한 선법이라는 뜻에서 '능엄선'이라고 보았다.
3.이근원통과 선지식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의 문하에 있던 어떤 스님은 정판(靜板)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깨우쳤는데, 이를 두고 위산은 "뛰어나구나! 이것이 관세음보살이 깨친 문이구나"라고 경탄하였다. 향엄지한(香嚴智閑, ?∼898)은 "행각하는 높은 선비는 모름지기 소리와 빛 속에서 잠자고 소리와 빛 속에 앉고 누워야 한다"라는 위산의 언급을 놓고 소산(疎山)과 대화하는 중에 "말로 표현하는 것은 소리가 아니고 빛 이전의 것은 물질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원오극근(圓悟克勤)이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과 소염시(小艶詩)에 대한 문답 중에 홀연히 깨달은 후 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를 듣고 깨침을 확인한 것은, 이근원통의 관음수행의 결과이다.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의 경우는 반문문성의 원리를 염불에 응용한 인성염불(引聲念佛)을 제창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것은 중국 염불선의 원류로 파악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매년 12월과 정월에 많은 이에게 수계식을 거행했다. 단상에 올라가서 먼저 소리를 죽이고 '나무아미타불'에 곡조를 붙여 '나∼무∼아∼미∼타∼불∼'을 인성염불을 하게 하여 숨을 전부 토해 버리게 한 다음에 소리가 끊어지고 생각이 그칠 때 아래와 같이 가르쳤다.
기억을 없애고, 생각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기억이 없는 것은 계율이요, 생각이 없는 것은 선정이다. 잊어버림이 없는 것은 지혜다. 이 3원칙[戒·定·慧]이 총지문(總持門)이다.
소리를 매개로 삼학(三學)을 유도하는 가르침을 펼친 그는 중국에서 오백나한의 한 사람으로 추앙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은 송의 정원(淨源, 1627∼1709)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돌아와 선교융합을 위해 진력했던 화엄 학승이었다. 하지만 고려에 『능엄경』을 전래시키고 주석서를 낸 바도 있어서, 관음수행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음수행의 기풍은 선승들뿐만 아니라 교학승 및 사대부 계층에도 폭넓게 의용(依用)되어 수행과 교화의 전통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맥을 이어 온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 소리의 공능에 관한 연구/ 이태영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