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수호지 - 수호지 90
- 채경의 권모술수
동경에서는 문무백관이 한자리에 모여 총리대신 채경의 전쟁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모두들 채경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척하는데, 한 관리만은 천장을 쳐다보며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채경은 슬며시 화가났다.
"너는 누구냐?"
천장만 바라보았던 관리는 무술관으로 있는 나전이란 자였다.
채경은 가슴이 폭발할 듯이 노하여 당장에라도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마침 천자의 행차라는 전갈이 왔다.
황제가 자리에 앉자 채경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나전이 먼저 아뢰었다.
"무술관으로 있는 나전이 희서 지방의 대도적 왕경이 저지른 반역죄의 진상을 삼가 아뢰옵나이다.
왕경이 희서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지도 벌써 5년인데 관군은 이 무리를 아직 쳐부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일전에 동관과 채유가 희서로 토벌을 갔으나 전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와 폐하께 눈가림으로
아뢰옵기를, 군사들이 현지 기후에 길들이지 못해서 싸움을 중단했다고 했습니다.
채경은 나랏일을 맡아 폐하를 돕는 몸으로, 그의 자식 채유가 그처럼 병사를 잃고 장수를 죽음에 몰아넣고
나라를 욕되게 했는데도 여전히 윗자리에 앉아 큰 소리를 친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크게 근심되는
일입니다. 청컨대 양심과 능력을 갖춘 장군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왕경 무리의 토벌을 하게 하소서."
천자는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채경의 잘못을 따졌다.
그러나 채경은 교묘하게 변명을 했기 때문에 천자는 죄를 내리지 못하고 궁궐로 돌아갔다.
이튿날에는 박주성의 태수 후몽이 상경하여 동관과 채유가 군사를 잃고 나라를 욕되게 했다는 것을 호소했다.
후몽은 말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송강은 매우 비범한 작전과 전략을 기지고 여러 차례 눈부신 공적을 세웠으며 얼마 전에 요나라를 쳐
개선했으며, 또 지금은 하북을 점령하고 개가를 부르며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왕경이 제 멋대로
날 뛰고 있는 이 같은 판국에 폐하께서는 어명을 내리시어 송강에게 상을 내리는 한편 즉시 그의 군사로
하여금 희서를 쳐서 토벌케 하시면 반드시 큰 공을 세울 것입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즉시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채경이 대신들과 상의하여 이렇게 황제에게 올렸다.
"후몽을 토벌군 참모로 추천하여, 나전은 무술 군관으로서 병법에 밝으므로 후몽과 함께 진 감독관의
측근으로 보내 토벌에 힘쓰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송강은 지금 전쟁 중이라 벼슬을 나중에 내리고 우선은 상을 내리심이 가한 줄로 아뢰옵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말이었지만 실인즉 채경은 딴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희서 지방의 왕경의 군사가 용맹한 것을 알고 동관, 고 태위와 짜고 후몽과 나전을 싸움터로 보내
골탕을 먹일 참이었다.
황제는 후몽과 나전에게 임무를 수여하고 금은, 비단, 의복, 말, 어주 등을 주어 그 날 중으로 출발하도록
명령했다.
후몽과 나전은 위승성 가까이에서 포로를 호송하고 오는 송강 군사와 마주쳤다.
황제가 내린 격려문을 낭독한 후몽은 송강 군사에게 금은, 비단을 차례대로 내주고 진 감독관, 송강,
노준의에게는 각각 황금 5백냥, 비단 10필, 명마 한 필, 어주 두 독씩을 나누어 주었다.
오용 이하 34명에게는 각기 백금 2백냥, 어주 한 독을 주고, 나머지 금은은 필요할 때 군대 비용으로 쓰라고
따로 주었다.
송강은 오용과 협의하여 위승 남쪽을 평정하기 위해 출동하고, 장청과 경영, 섭청은 전호와 전표를 함거로
호송하여 동경에 갖다 바치도록 했다.
동경에 닿자 장청은 먼저 숙 태위에게 금과 구슬, 그리고 진기한 보물을 선사한 뒤 송강의 편지를 전했다.
숙 태위는 송강의 글 내용을 천자에게 전하니 천자는 경영의 공을 높이 사 은 50냥을 하사했다.
황제는 법률 대신에게 명하여 전호, 전표를 네거리에 있는 형장으로 끌고가 능지처참을 시키게 했다.
장청 등은 사신들의 일이 끝나자 송강 군에 합류하기 위해 동경을 떠나 완주성으로 향헀다.
왕경이란 자는 누구인가 ?
지금은 여섯 지방을 호령하는 주인이 되었지만 그는 원래 노름꾼으로 뇌물로 관리를 매수하여 동경
개봉부의 한낱 보좌관을 지낸 평범한 인물이었다.
몸집이 크고 힘은 센데다 어렸을 때부터 약간의 봉술을 익혀 어느 정도 무예 솜씨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허구헌날 불량배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여자들을 건드리는 나쁜 짓을 일삼다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역적모의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귀양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귀양을 가던 길에 산적들을 만나 끌려갔다가 운 좋게도 두령을 죽이고 자기가 그 산채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는 근처 방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순식간에 산적들이 2만 여 명으로 불어났다.
왕경은 이에 그치지 않고 주위에 있는 상진현, 죽산현, 운향현의 세 성을 쳐들어가 차지했다.
몇 번인가 관군들이 산적들을 토벌하러 나섰으나 번번이 패하고 돌아왔다.
왕경은 더욱더 세력을 굳혀 이번에는 남풍현까지 점령했다.
동경으로부터 장수들이 파견되었지만 그들은 고 태위에게 뇌물을 바치고 출세한 무능한 자들이었다.
이때 이조라는 자가 한 꾀를 생각해 냈다.
그는 점쟁이 차림으로 변장하고 형남성에 잠입해서 난봉꾼과 깡패들을 모아 안팎으로 호응해서 형남성을
공격하는 공을 세웠다.
이때부터 왕경은 스스로를 초왕이라 칭하고 이조를 군사로 삼았다.
이렇게 왕경의 무리가 활개를 치기 시작한 지 불과 3, 4년 동안에 왕경은 여섯 성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왕경은 성 안에 왕궁을 세워 놓고 조정을 비웃었다.
바로 이러한 때 송강은 하북을 평정하고 개선길에 올랐는데, 다시 희서 지방을 토벌하라는 황제의 영이
내려졌다.
송강은 휴식도 없이 또 20여 만의 대군을 이끌고 행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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