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을 보러 가기는 했지만 여행 다녀 온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또 여행을 하기가 민망했지만 남편도 흔쾌히 여행을 다녀 오라고 했다.
늘 무언가 두세가지 일을 가지고 가곤 했는데 오롯이 놀기만 하려고
여행을 가기는 오랫만이다.
며칠전 가까이 지내는 가을바람님 내외와 단지님 내외가 부산으로 일을 보러 온다고
나도 올 수 있으면 얼굴이라도 보자고 연락이 왔다.
농부에게 있어서 겨울은 재충전의 기회이며 시간이다.
어떤 농부는 11월부터 4월까지 꼬박 아무일도 안하고 노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길고 짧은 사연이 있는 법
놀기만 해서 좋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무료하고 때로는 아무 소득이 없어서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오로지 농사만 해서 사는 이웃들은 이 긴 겨울동안 단돈 만원도 어디서
생길데가 없어 일꺼리만 있으면 서로 하려고 야단이시다.
거기에 비하면 시골에 살면서도 늘 일꺼리가 많은 우리와 가을바람님
단지님 등은 참으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부산이라는 멋진 도시로 오롯이 놀러 가는 내 마음은 괜시리 설레였다.
남편이 제천까지 태워다 주어서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가면서 책을 읽었다.
우리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제천에서 동대구를 고속버스로 간 다음에 거기서 부산행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렇게 가면 부산역까지 세시간이면 가니 무척 빠른 편
그러나 나는 놀러 가는 사람이다.
빨리 갈 필요가 없다.
더구나 다른이들은 어느정도 일을 보고 온다고 하니 빨리가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의 좋은 것은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책을 읽어도 좋은 것
나는 어디를 여행하면 첫번째로 챙기는 것이 책이다.
늘 가방에 책한권 정도는 들어 있는데 돈이 없는 것 보다
책이 없으면 더 불안하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대전에 가까이 가다가 문득 경미씨가 생각 났다.
영월에 별장이 있는 경미씨네는 우리 때문에 알지도 못하던 영월에 터를 잡았다.
일 할 수 있는 때까지는 주말만 왔다갔다 하다가 나중에 일을 놓으면
그곳으로 내려 와 살 생각이라고 한다.
요즘에 경미씨는 남편을 돕던 일을 놓고 집에서 쉬고 있기에
혹시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가자고 했더니 남편 운학님이 더 적극적으로
우리 집사람도 데리고 가세요 라고 나에게 부탁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점심 먹다 말고 경미씨는 택시를 타고 역으로 와 나와 합세하였다.
경미씨는 먹고 나는 점심을 못 먹어서 대전역 안에 있는 어묵집에 요기를 하러 가다가니
어떤분이 남편과 손주를 데리고 역 안으로 들어 가다가
<어머 금자씨 아니에요?>
하고 물었다.
물론 하고 금자씨다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 인사를 받고 ........
알고 보니 오래 된 카페회원이시다.
진주에 사시는데 손주를 데려다 주러 수원에 가신다고
아이구 아쉽다 사실 오늘같이 시간 많은 날
더 보아도 되는데 그렇게 스치듯 헤어지다니
지난번에 혼자 부산에 갈적에도 이곳에서 어떤 신사분을 만났다.
무심히 지나는데
<어! 금자씨네 >
하고 말씀 하셔서 보니 역시 오래 된 블러그 친구였다.
그날도 시간이 없어 역시 제대로 얼굴도 못 보고 헤어 졌는데
대전은 역시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만남의 장소인가 보다.
그래서 옛노래중에 대전발 0시 50분 하는 노랫말이 있을까......
아무튼지 나는 허튼짓 하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대전에서 갈아 탄 KTX는 무척 빠르다.
사실 오늘 같이 시간 많은 여행자에게 비싼 KTX 는 사치인데
어떻게 가야 할지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그 수가 제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늘 도시를 가려면 약간의 주눅이 드는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대전에서 중간 어디메에 한번 대구에 한번 신경주에 한번 그렇게 서고 기차는
1시간을 조금 더 걸리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역은 몇번을 와 보았지만 늘 동남아 국가 공항 같은 분위기이다.
아무튼 멋지다는 이야기이다.
부산역으로 마중을 나온다는 햇사레님의 호의를 마다하고
미리 연락이 된 소산님과 만났다.
이번에는 놀러 가는 판이라 아무 지인에게도 연락을 않으려 했는데
다른 일로 연락을 드렸다가 부산에 가는 것을 이야기 했더니
기꺼이 오늘 오후를 책임져 주시겠다고 스케줄을 다 짜 놓으셨다.
그리고 일 하다 말고 마중을 나와 주셨다.
도시에 갔을적에 누군가 마중을 나오면 왠지 도시 전체가 나를 마중해 주는 느낌이다.
서울을 가면 내 친구 은옥이 늘 마중을 해 주거나 배웅을 해 주는데
느낌이 참 좋다.
평일이라 회사일을 하고 계신 햇사레님과 다른 이들을 만나려면
몇시간의 공백시간이 있었다.
소산님이 그 공백시간을 보낼 만한 스케줄을 짜 놓으셨는데 거기에 짐이 되는 무엇이 있었으니
내가 가져 간 커다란 가방이었다.
그 가방에는 이 여행에 쓸 갈아 입을 약간의 옷이 들어 있기는 했지만
조금 나누어 먹을 먹을꺼리가 들어 있었다.
그 중에 지난번 속초에서 사 온 먹태며 조청 그리고 유정란 알이 들어 있었는데
택배로 보내려다가 깨질까 봐 일부러 가방에 넣어 들고 온 판이었다.
가방 걱정을 했더니 소산님이 걱정을 말랜다.
바로 지하철역에 있는 물품보관함이라고 한다.
시골에는 그런것이 도대체 없고 도시에만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있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열쇠가 달린 캐비닛에 가방을 넣고 동전으로 천 3백원을 넣으니
밤 열두시까지 걱정 말고 어디든 다녀 오라고 한다.
그 참 편리하다.
무거운 짐을 그렇게 가뿐하게 처리하고 났더니 날아갈 것 같았다.
소산님이 우리를 데려 간 첫번째 장소는 부산역 근처에 있는 초량시장이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여러가지 해물도 있고 일반 시장과 비슷하다.
이 사진은 왜 찍었는고 하니
아래에 쫙 있는 무엇을 고는 무쇠솥 때문에 찍었다.
우리는 그것을 들여다 보며 이 솥에는 우족이, 요 솥에는 갈비탕이,
조 솥에는 사골이, 그리고 저 솥에는 꼬리곰탕이 들었나 보다고 짐작해 보았다.
세 여자가 그렇게 구경을 하고 섰으니 안에서 종업원이 아는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 시장에 소산님의 오래 된 어묵 단골집이 있었다.
손가락 어묵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맛 보여 준다고 데려 오셨다.
손가락 어묵 뿐만이 아니라 어묵 고로케도 있어서 하나씩 먹으니 배가 불렀다.
나는 어묵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어디 가든 어묵 파는 곳을 그냥 못 지나친다.
길을 가다가도 꼬치어묵 파는데를 그냥 못 지나쳐서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에 홍대언니가
아이도 아니고 하며 핀잔 섞인 웃음을 웃던 생각도 난다.
난 어째 산골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바다가 관련 된 음식이 그렇게 좋은 것인지......
그 초량시장을 지나 언덕길을 좀 걸어 가서 있는
갤러리형 음식점으로 소산님이 우리를 데려다 주셨다.
이곳은 옛날에 도청 관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수령이 꽤 오래 된 모과나무 한 그루가 들어 가는 입구에 서 있다.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그 나뭇결이 화려하여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털머위도 그 꽃은 다 지고 솜털 같은 씨앗만 남았지만
단단하고 두터운 잎의 푸르름 덕에 풍성해 보이는 모습이다.
실내는 꽤 넓고 여러 공간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갤러리에는 여러가지 그림이 있었으나 내 관심사와는 좀 다른 취향이라
사진을 찍지는 않았고
한켠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마음이 끌려 가 보니
역시나 오래 된 엘피판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조미미, 하남석, 70년대 가수이다.
전축~
우리는 사발만한 그릇에 한방차를 시켰다.
소산님은 따로 보온병에다 대추차도 달여 가지고 오셔서
그 것 까지 다 마셨더니 배가 빵그라니 일어났다.
아직 시간이 많아 음악을 들으며 격자무늬의 유리창이 있는 공간에서
지끈으로 잠자리 접는 법을 배웠다.
일전에 만났을 때 배웠는데 여러가지로 쓰임새가 많았다.
짧은시간에 배울 수 있고 응용도 가능하다.
특별히 솜씨가 없는 사람도 조금만 집중하면 금방 배울 수가 있다.
사방이 어둑해질 무렵 햇사레님과 일행들이 국제시장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갤러리에서 나와 부산역까지 걸어 내려 오다가
6거리를 만났다.
나는 태어나서 6거리를 처음 보았다.
이 사진에는 겨우 내가 서 있는 곳을 포함해 4거리 밖에 안 보이지만
나에게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하고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내가 어릴적에 서울 외가에 다녀 오면서 4거리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노래도 한가지 배워 왔다.
<차들은 오른쪽길 사람들은 왼쪽길
맘 놓고 길을 가자 새나라의 네거리
냉냉 뚜뚜 빵빵~
따릉따릉 따르릉 사람조심 차조심
너도 나도 길조심......>
하는 노래였는데 그 노래에 나오는 사거리도 대단했던 기억이있다.
산골에 사는 내 친구들에게 네거리에 대해 뻐기면서 설명을 하고
신호등도 자랑을 해 대던.....
그리고 지하철역으로 일행을 만나러 가면서 작은 소품가게도 구경했다.
오래 된 소산님의 단골집이라고 한다.
나는 이런 소품 구경하는 것도 좋아 하는데 정말 별별것이 다 있었다.
그 중에 나는 개구리 소품들이 제일 맘에 들었다.
촌에 사는 나를 어쩔 수가 없다.
그러고도 시간이 약간 남아
지하철 부근에서 하는 수제품 전시판매 하는 곳도 구경을 했는데 사진은 못 찍었다.
드디어 모두 만났다.
전라도 장성도 경상도 상주도 그리고 강원도 영월도 모두 산골에 산다.
그 산골에 살면서 이렇게 가끔 도시를 구경해 주는 것
역시나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빛의 거리도 구경하고
키 큰 기린도 구경했다.
빛 축제는 끝났다는데 우리가 오기를 기다려 주었는지 아직 철거하지 않아서
그도 감상하고......
지난번을 포함해 세번째 오는 국제시장인데 오늘은 느낌도 마음도 좀 다르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왜 부산에 이북에서 온 피난민 출신이 많은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국제시장 일대가 영화의 중심지가 되었었다.
내가 국제시장을 보고 가장 많이 깨달은 것은 외국노동자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도 그런 시절을 살았는데 반은 보며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우리의 과거였다.
조금 더 그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세대에 대해
관대해 지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늘 우리는 저녁을 따로 안 먹고 이 국제시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길거리 음식으로 대신 하려고 계획을 잡았고 소산님이 앞장을 섰다.
첫번째 간 곳은 부산분들에게는 유명한 유부전골집
대단할 줄 알았더니 간판도 없는 포장마차식이다.
위에 간판은 유부와는 상관도 없는 도기 집~
유부주머니에 만두속 같은 것이 들었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무방부제로 하며 주문하면 우리 같은 산골에서도 받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한그릇이 꽤 많아서 한끼 식사로도 괜찮을 듯 싶다.
담백하고 맛있다 ~
유부전골로 일단의 배를 채우고 골목골목을 돌아 다녔다.
좀 늦어서 대부분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영화에 나왔던 꽃분이네 가게도 우리가 갔을적에 막 문을 닫는 중
이 즈음에는 스카프와 가방가게 ~
영화가 끝나고 이제 손을 놓으신 모양이다.
대표로 단지님이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에는 진짜 국제시장 속의 미제물건 파는 곳이 즐비하다.
정말 별별것이 다 있다.
실제로 국제시장에는 처녀 붕알만 빼고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한다.
영화의 대사 속에 주인공의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대사가 있다.
요즘 누가 미제물건을 사느냐고 국산이 얼마나 좋은데 ......
그래도 이 물건들을 사는 사람이 있으니 그만큼 건재 하겠지~
깡통시장등 한바퀴를 돌며 구경하고~
두번째 먹거리집은 깡통시장 안에 있는
유명한 순대집
사람이 엄청 많아서 가게 밖 귀퉁이도 간신히 차지하고 ~
찹쌀 순대를 먹었다.
그 중에 막창순대가 가장 맛있었다.
바로 이어서 끝으로 간 길거리식당
이번에는 옛날식 닭튀김가게 ~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는다고 하면서 따라 들어 갔는데
웬걸 고소하고 바삭한 맛에 반해서 나 혼자 반마리는 먹은듯~
이곳은 가을바람님 덕에 오게 되었다.
가을바람님도 산골에 살아서 가끔 이런 호사가 그리운데
남편인 사또님이 몸에 안 좋다고 잘 안사주신다고
전번 눈내리는 날 혼자 닭튀김 타령하는 글이 있어서
모두들 함께 하기로 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같은 산골이지만 그래도
생맥주와 치킨이 밤 열한시에도 배달이 된다.
아무튼 산골에 사는 우리 세 집이 해 보지 못했던
생맥주와 치킨도 먹고 도시밤문화를
마음껏 누려 보는 날이다.
또 막간을 이용해서 소산님이 지끈 공예를 가르쳐 주셨다.
모두들 손재주가 있어 금방 배우고~
이것은 쓰임새가 많지만 이렇게 이용해도 된다.
머리장식으로 ~
코사지로도~
소산님이 오늘 모인 우리들 모두에게 직인이 찍힌
네잎클로버 책갈피도 만들어 주셨다.
이 책갈피를 받고 좋아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업이 번창하고
건강이 좋아지고
가족이 화목해지고......
이 행운의 책갈피를 보는 것 만으로도 그 마음이 전해지길~
집을 떠나 온지가 몇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사나흘은 지난 것 같다.
어쩌면 국제시장이라는 특이함 때문일지도~
첫댓글 먼 나들이를 하셨습니다..![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분이네'가게가 실제로 존재하는군요. 놀랍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
물론 유익한 여행길 되었길 바랍니다.
와 ~~~~
신나게 덩달아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네요
무쟈게 재밌었어요
부럽다
길거리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