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15』
 
로마군단 없이 로마제국도 없다
 
로마제국의 위대함은 로마군단의 전쟁수행능력을 통해서 가능
시민군·상무전통 등 유지…‘전쟁·군대·정치’의 상호작용 주목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okbang.dema.mil.kr%2Fnewspaper%2Ftmplat%2Fupload%2F20170808%2Fthumb1%2FYA_PG_20170808_01000176700007532.jpg) 칸나이 전투(BC 216)에서 카르타고의 한니발 군대에 포위된 로마군은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이 전투에서 집정관 파울루스를 비롯해 2명의 재무관, 29명의 장성급 지휘관, 그리고 80명의 원로원 의원급 인물을 포함 7만여 명의 로마군이 목숨을 잃었다. 이 그림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로마인의 기개를 잘 보여준다. 패배와 죽음의 공포가 휩쓰는 전장에서 파울루스는 도망치자는 부하의 제안을 거절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존 트럼벌. 1773. 「파울루스의 죽음」. 62.23 ×88.42 cm. 예일대 아트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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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okbang.dema.mil.kr%2Fnewspaper%2Ftmplat%2Fupload%2F20170808%2Fthumb1%2FYA_PG_20170808_01000176700007533.jpg) 시오노 나나미. 1992-2006[1995-2007]. 『로마인 이야기(ロマ人の物語)』 I-XV. 新潮社. | 김석희 옮김.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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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에 읽을 가장 좋은 군사고전은 무엇일까? 군사적 연관도 있어야 하지만 역사와 철학, 정치와 경제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인문학적 저술. 그리고 무엇보다 큰 부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책을 찾는다면 단연코 『로마인 이야기』다.
이 책의 제1권(‘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이 처음 번역돼 나온 것이 1995년이었다. 첫 번째 책이 출판되자마자 한국의 서점가는 로마인 이야기 열풍에 빠져들었다. 특이하게도 일반 독자보다 정·재계에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7년에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제15권(‘로마세계의 종언’)이 발행될 때까지 열기는 지속됐다. 12년간 모두 15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역사물에 이토록 열광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단순히 읽기 쉽고 재미있다는 장점만이 그 이유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 운영과 기업 경영에 필요한 빛나는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할 때부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1300년의 로마 역사의 흥망성쇠를 간결하면서 박진감 넘치는 필체로 다루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로마인이 그토록 위대한 제국과 문명을 일구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녀가 제1권 서문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민족인 로마인들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고 질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로마 문명의 조건
저자는 로마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 현실주의를 강조한다. 실사구시의 현실주의 사유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할 수 있는 관용정신과 개방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들의 공동체를 위한 헌신 또한 빠트릴 수 없다. 여기에 로마 엘리트들의 탁월한 역량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결합함으로써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헌신과 역량이 국가시스템으로 통합되고 동기부여되지 않았다면 로마제국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 능력과 헌신을 공동체적 역량으로 조직화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국가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 운영과 기업 경영을 책임진 이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로마제국의 위대함은 로마군단의 전쟁수행능력을 통해서 가능했다는 점이다. 로마는 1300년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전쟁을 치렀으며, 이를 통해 대제국을 건설했다. 전투에서 늘 이긴 것은 아니었지만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 평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 반대로 외부의 적을 막아낼 능력을 상실했을 때 로마는 망했다. 우리가 로마제국을 언급할 때 로마군단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로마군단 없는 로마제국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로마군대는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그리스 세계의 시민군 전통을 유지했다.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시민들은 자신의 비용으로 무장하고 전장으로 달려갔다. 페르시아나 이집트 전제군주의 징집병과 달리 시민군들은 자신의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웠기 때문에 더욱 헌신적이고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로마군단이 징집이든 모병이든 시민군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로마 문명은 그 위대함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군이 더 이상 시민군에 의존하지 못하고 게르만 용병을 운용하기 시작하면서 로마 제국도 흔들리게 된다. 용병을 운용하게 된 것은 시민군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었다. 로마 위정자들은 시민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값싼 용병으로 대체 가능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자신들이 고용한 용병에 의해 로마제국이 몰락하는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전쟁과 군대, 정치의 상호작용
더욱 독특한 것은 로마의 군 경험을 존중하는 상무전통이다. 로마 지도자들은 로마군단에서 10년 이상 복무하며 지도자로서의 헌신성과 자질을 확인받아야 출세할 수 있었다. 호민관이나 집정관에 선출되려면 전장에서의 빛나는 공헌을 인정받아야 했다. 전장을 함께 누볐던 전우들의 전폭적인 지지야말로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인 정치적 기반이었던 셈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전쟁과 군대, 그리고 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데 있다. 예컨대 기원전 2세기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개혁은 토지소유에 기반한 시민군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로마 시민군은 일정한 재산이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징집했는데 빈번한 전쟁으로 소규모 토지소유 시민들이 몰락하면서 무산자가 늘고 징집대상자가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결국 군대를 확보하기 위해 징집대상 재산 기준을 낮추게 되면서 시민병 수준이 크게 떨어져 연속적으로 패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구조적으로 시민들의 토지소유를 확대하지 않고서는 시민군 수준을 올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도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토지개혁이 실패로 끝남에 따라 로마는 사실상 징집제를 포기하고 자원병제로 전환하게 된다. 자원병인 만큼 훈련을 강화할 수 있고 규율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됐다. 재산상의 차이나 인종적 차별도 사라졌다. 오직 전투력 강화라는 목표에 따라 군대를 조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군단은 사실상 마리우스의 개혁 이후의 로마군대를 일컫는 것이다.
문제는 군단장과 충성스러운 지원병 군대 간 사적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흔히 ‘군대의 사병화’로 지목된 이 현상은 결국 카이사르의 등장과 함께 로마공화정의 몰락과 연결됐다. 군대조직의 변화가 정치적 격동의 물꼬를 튼 셈이다.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사병화된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했던 인물이 카이사르다.
로마군단의 의미
‘군의 정치화’는 어떤 식으로든 로마 역사를 관통하는 문제였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로마제국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유에도 제국의 국경은 늘 불안했다. 팍스 로마나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게르만과의 전쟁터를 떠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북방의 국경이 불안한 만큼 로마군단의 유지는 정치적 핵심 의제일 수밖에 없었다.
로마제국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정치공동체였다. 많은 연구자가 지적했듯이 로마는 관용정신과 개방성으로 100개의 민족단위를 통합해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한 역사는 적어도 로마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로마야말로 가장 혁신적인 군대의 나라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로마인 이야기』의 15권에는 말 그대로 로마인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간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정치공동체는 그 자체로서 구조와 시스템에 의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운용하는 것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과 생각, 실천이 만들어내는 역사를 간결하면서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저술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책의 논조가 과도하게 현실주의적이거나 지도자 중심이라는 점에 비판적이다. 그리스에 대한 폄하나 민중에 대한 거부감 역시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점은 전쟁사에 관련된 부분은 대부분 사료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픽션)이 그리 많지 않다. 1000년도 더 지난 일들에 대해 객관적인 기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로마 역사에 감추어진 지혜와 교훈을 배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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