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인내하라는 뜻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엔 "끝까지 인내하고 인내하라. 끝까지 견디고 견뎌라" 라는 당부의
기록이 수없이 많다. 끝까지 견디는 자, 즉 끝까지 인내하는 자는
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며 왜 구원을 받게 되는가?
이에 대한 원천을 올라가보면 아담과 그의 아내가 따 먹은 선악과에
그 맥이 닿아 있다. 하나님이 엄히 경계하신 금기의 선악과를
인내하고 멀리하여 순종했다면 그들은 이미(이천년전에) 영생(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에덴의 첫 아담은 실상으로 오신 초림 예수님이고, 그의 아내는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은 복음백성(기성교단)을 예표한 창조의 각본이기 때문이다.
선악과는 여자(기성교단)가 보기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도 해서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따 먹고 말았다.
그리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다. 예수님으로 예표된 아담은 그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만 했으나, 그의 백성으로 예표된 여자의 죄짐을 져주시기 위해
군말 없이 받아먹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까닭에서다.
그러므로 저 이천년전 실상으로 오신 초림예수님 때부터 기독인들 모두는
지금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주야장천 따먹어 왔던
것이다. 기독인만 먹은게 아니고 예수님까지 먹게 해서 우리들의 죄짐을
뒤짚어 씌우는 몰염치까지 범하면서… 그러면 선악과란 무엇인가?
선악과는 예수님을 믿는 나는 구원받은 선이고, 불신자는 지옥에 떨어질
악이라고 하는 선과 악의 구별심이 된다.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주셨기
때문에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아직은 그 누구도 영생의 구원이 없으며
그 누구도 지옥에 떨어질 악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기독인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그대로 참뜻으로 먹어버린다면
그것은 흑암의 비진리(악)가 된다는 뜻이다. 내면의 참뜻을 비유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신 말씀이 초림 예수님의 복음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은 비유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그것이 비유가 아닌 것이 없다고 분명히
하셨다. 그럼에도 기독인들은 그분의 말씀을 비유로 받지 아니하고 그대로
받아먹으면서 그 즉시 성급하게 영생을 받았다고 믿었던 것이니,
이것이 인내함이 없이 따먹은 선악과였다.
즉 비유임에도 그것이 곧장 구원이라고 믿었으니 그야말로 보기 좋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서 따먹게 되는 탐욕의 선악과였던 것이다.
구원이란 반드시 인내함 끝에 오는 것이다. 초림예수님(첫아담)은 우리에게
먼저 인내하도록 하는 비유의 율법을 주시고, 재림 예수님(둘째아담)은
나중에(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의 내면적 말씀을 주시도록 창세부터 마련되었고
그대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먼저는 율법이요, 나중은 구원인 것이다. 초림주는 먼저 말씀을 비유로
주시는 율법주요, 재림주는 나중에 그 비유의 말씀을 마침내 속속들이
풀어주시는 구원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이천년전부터 바울을 비롯한 신약필자들이나 예수님 제자들부터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율법의 말씀)을 인내하며 재림 때 이루어질 비유로
받지 아니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서 그 때부터 즉시 구원을 받아버렸다고
성급하게 믿었으니 그게 곧 선악과를 따먹어버린 죄과를 범한 것이 된다.
그 한예를 든다면
신약성경 필자들 중에 의뜸인 바울부터 초림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보았고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신 분으로 보았던 것이다. 바울부터 인내하지 못하고
그 때 벌써 구원받고 영생을 확정받은 자로 자처했던 것이며, 우리 모두도
그 뒤를 따라 동일한 죄과에 빠지게 하는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이다.
이같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 가운데 그 소경의 복음은 땅끝까지 전해졌고
예수님은 약속대로 재림하셔서 이제야 마침내 비유속에 감추어진 구약의
말씀과 초림때의 비유의 말씀(신약,사복음서)을 풀어주시는 때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재림주보다 한발 앞서 오늘날 적그리스도(사이비 재림주들)가
먼저 출현하여 기성교단을 사로잡아 군림하고 있다. 기성교단은 비유의
말씀을 전혀 풀지도 않고 풀어볼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깜깜한 소경인
반면, 사이비 재림주들은 재림주처럼 조금은 유사하게 말씀을 풀어내는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에 사로잡히는 꼴이 되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포박하는 원리)
이제 기성교단의 소경들과 사이비 재림주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자들은
재림주의 빛 밝은 진리의 새 말씀으로 도망가야만 하는 전무후무하게 절박한
마지막 때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오늘의 도망가야 하는 때를
이렇게 미리 말씀해 주셨다.
[마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막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도망이라는 것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즉 비진리에서 진리의 새말씀으로
넘어가는 유월절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때
인내하지 못하고, 우리의 신앙심이 얼어붙어 냉담한 상태로 있다면
도망갈 일(구원받을 일)이 없으므로, 도망가는 일이 겨울이 되지 않도록
당부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내하지 못하고, 어느 한곳에 우리의 신앙심이 안주하고 있다면,
즉 짐승의 표를 받고 평안하다 안전하다를 외치며 지조를 지켜(?) 한 자리에
굳게 정착하고 있다면 도망가야 할일(구원받을 일)이 없으므로, 도망가는 일이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믿는 기독인들을 뜻한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의 믿음이란 초림주가 주신 비유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먹고
있는 소경된 자의 기성교단이며, 기껏해야 적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있는
믿음이다.
그러한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이 유대에 있는 자들이 된다.
그들은 인내하며 진리의 새 말씀이 들려오는 곳으로, 즉 오늘의 영적
시온산으로 도망 나와야 구원받게 된다(계14:1~).
인내란 무엇인가? 우리의 신앙양심이 배고파서 아사지경에 빠져 있을지라도
우리 신앙양심을 깨끗케 하는 진리의 빛밝은 말씀이 아니라면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즉 인내가 요구된다.
조금이라도 부정하다면 먹지 못하고 참고 참야만 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냉담자(겨울) 가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현세의 교회들이 외쳐대는 비진리에 정착하지는
말아야 하니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다시 말해 우리 코앞에 차려놓은 영적 진수성찬임에도, 그래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싶어서 당장에 먹고 싶지만 그것을 참고 나홀로 외롭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향해 찾고 찾아야만 하는
거지 나사로 반열에 들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영적 거지, 나사로 반열을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
기성교단 어디서든지, 자칭 재림주교단 어디서든지, 저희들에게 기꺼히
합류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을 경멸하며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까지 거느려 왔던 많은 양떼를 버려두고
이같이 길 잃고 헤메는 양 한마리(거지 나사로반열) 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하시기 위해 오신다는 점을 밝히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곧
ㅡ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4 ㅡ 이다.
첫댓글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행복을 담아 나의 인연 모든 분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미소와 함께 전해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