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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삼거리
창: 김옥심
천안 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 늘어 졌구나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세월이 가기는 흥 흐르는 물 같고 흥
사람이 늙기는 바람결 같구나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대안에 중님은 흥 눌을 두르고 흥
비봉산 가경이 눈에 어리네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발그레한 저녘 노을 돋는 저곳에 흥
넘어가는 낙일이 물에 비치네
에루화 좋다 흥 성화로구나 흥
휘: 축 이라고도 부른다. 첫번 장절은 남성의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은유하기도 함 . 축 늘어졌구나 ^++++^
대안: 강 건너
눌: 누구를
두르고: 끌어 안고
비봉산 가경: 여성의 신체 일부를 은유함
천안삼거리에 얽힌 전설
고려 말 이조 초엽에 무관공신 '
능수는 나이 7세에 운일지십하는 탁월한 재능과 보기 드문 미색을 갖추고 더욱이 효성이 지극하여 동리 사람들로 하여금 총애를 받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이러던 차 왜적을 물리치라는 명령을 받은
“이 나무가 무성히 자라서 잎이 필 때 나의 딸도 몸 성히 자라거라.”
이 말을 남기고 몸부림을 치는 능수를 뒤에 두고 눈물을 뿌리면서 발걸음을 돌렸던 것이다.
그 후 세월은 십수년이 흘러 세종대왕 시절 전라도 고부에서 선비 '
발이 부르트고 몸이 괴로운 것도 능수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참고 견딜 수 있었으며 과거에는 꼭 급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능수 때문에 더 높아만 갔다. 결국 십년공부가 헛되지 않았는지 장원으로 급제하여 삼남어사의 직품을 배명 받고 행차 노정에 다시 삼거리에 들려 능수를 만나 서로 얼싸안고 그 피웠던 정을 나누면서 백년가약을 맺으니 서로의 기쁨은 무한하였으나 부친을 생이별하고 십여 년간 고생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설움이 복받쳐 박어사의 품에 안겨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한편,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제 멋에 겨워서 축 늘어졌구나 흥”.
그 후 매년 단오절이 오면 그 옛날 능수를 상기하는 인근 주민들은 창포를 뜯어 연못에 머리를 감고 능수버들에 그네를 재어서 즐겼으니 오늘날까지 매년 행사의 하나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