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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의 혈기왕성한 세자는 어머니의 부고를 접하고 고려로 급거 귀국을 했어.
그런데 국상의 분위기가 전혀 안 나고 있었어. 남편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슬퍼하기는커녕 장례절차에 크게 신경도 안 쓰고 있었던 거지.
“어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향수병으로 돌아 가신 게 분명하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아버지의 정부 무비 때문이다. 그 년은 물론 그 잔당들까지 모조리 처형하라!”
어떻게 왕이 살아 있는데 세자 한 마디에 왕의 애첩과 일당이 죽을 수 있냐고?
혼혈왕자는 이미 왕의 권위를 넘어선지 오래야. 외할아버지가 칸 이잖아.
이미 5년 전에 둘 사이의 권력 역학관계가 역전 됨을 보여 주는 사례가 있었어.
원 나라 내에서 내란을 일으킨 합단적이 몽골군에 패하고 도주를 하면서 고려를 침공한 거야.
거사를 하려고 일어는 났으나 몽골 군에겐 역 부족이고, 호박이라도 자르자는 심정으로 고려로 돌격을 한 거지.
이때 충렬왕은 모든 대신에게 당당히 말했어.
“짐은 연로하여 전투에 참가하기 적절치 않다. 그러므로 강화도에서 훗날을 기약 하겠다. 합단적과 전투를 위한 모든 권한을 대신들에게 일임하니, 부디 건투를 빈다. 아자자!”
서바이벌 게임 같은 매 사냥으로 측근들과 친목만 다진 거였어. 어찌 이런 일이,,,
원나라에 머물던 혼혈왕자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 거지. 외할아버지 대전으로 뛰어 들어.
“할아버지! 합단적이 고려 국경을 넘었는데 아버지는 강화도로 36계 줄행랑 전법을 시연하고 있습니다. 저 에게 군사 1만을 빨리 주십시오. 이러다 할아버지 딸인 어마마마까지 위험 할지도 모릅니다.
몽골군을 이끌고 합단적을 물리친 세자는 고려로 금의환향을 하면서 아버지인 충렬왕에게 의전을 요구해. 의전의 내용이 다소 충격적인데 자신이 말을 타고 궁에 들어갈 때 아버지이자 현직 왕이 직접 나와 무릎을 끓으라는 요구였어.
이 일을 계기로 둘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고, 부자 지간이 아니라 왕좌를 두고 다투는 라이벌이 된 거지.
아무튼 세자는 어머니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아버지의 애첩을 죽여 버리고 다시 원나라로 돌아가 버려. 충렬왕은 5년 전 일도 열 받아 미칠 지경인데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던 여자를 죽이고 원 나라로 돌아가 버린 아들에게 어떤 공격을 취했을까?
그 것은 바로 ‘양위’ 였어.
‘왕 노릇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 이 철 없는 놈아. 네 놈이 왕 해 봐야 이 아비의 맘을 이해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이 아니고, 원 나라 황제의 압박이 있었을 거야.
충렬왕이 세자에게 양위를 한다는 문서를 작성한 정가신 이라는 신하가 문서 작성 후 자살을 해!
유서에는
‘ 모든 것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이 것은 충렬왕의 의견이 왜곡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애매모호한 결정이라고 보여 질 수도 있는 것이게…아 답답하구나, 아무튼 나는 먼저 간다.’
혼혈왕자는 26대 충선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고려로 드디어 귀국을 해.
그런데 말이야.
남자분들 중에 아버지의 이런 점만은 닮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며 자랐지만, 세월이 지나 아버지의 단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적들 있지 않아?
충선왕이 그랬어. 어떻게?
원나라 부인을 제쳐 두고 온갖 여자들과 스캔들을 뿌려 된 거야.
아니 이게 무슨 자기 어머니의 사망원인이 향수병과 화 병이라고 주장하며 아버지의 연인을 죽이더니, 자기 어머니와 똑 같은 상황에 있는 부인에게 똑 같은 화 병을 주는 건 머냐고!
아버지의 애첩은 무비, 아들의 애첩은 조비 였다고 해. 설마 라임을?
충선왕이 조비를 끼고 히히 득 거리던 어느 날 신하 한 명이 머 씹은 표정으로 왕 에게 다가와.
“전하. 최근 전하 사생활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찌라시가 나돌고 있습니다. 워낙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 적극 대응을 하지 않았더니 급기야는 오늘 궁을 비롯하여 수도권 일대에 대자보가,,,,”
“어허..참으로 사람 피곤하게 하는 구나! 과중한 나라 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늘 왕이 사생활 부분까지 일일이 체크를 해야겠느냐? 무능한 자들 같으니라고. 내용이 무엇이냐? 들어나 보자.”
“저기……그게……”
“조비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조비와 관련된 이야기 구만. 괜찮다. 여기서 아뢰거라. 조비는 그런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여자가 아니다. “
“ 찌라시의 내용인 즉. 조비께서 왕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고 계국대장 공주를 저주하기 위해 무당을 고용하여 온갖 주술과 굿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충선왕의 부인인 계국대장공주의 귀 에도 이 소식이 들어갔고, 안 그래도 실오라기 같은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기만 해봐라 벼르고 벼르던 그녀었어. 원나라 공주는 바로 원나라에 보고를 했고, 조비는 물론이요, 부모님과 측근들까지 바로 교무실. 아니 원나라로 소환.
“딸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라 해! 우리나라 공주를 라이벌 삼아서 너 그들 신상에 좋을 거 하나도 없다 해. 우리 사람 맘만 먹으면……더 이상 긴 말 않겠다 해.”
하지만 계국대장공주의 화는 전혀 풀리지 않았어. 일은 일파 만파로 퍼져서 세자 부부가 원나라로 함께 불려갔고, 결과는?
충격적인 소식이 고려를 뒤덮어.
‘충선왕 즉위 8개월 만에 폐위! 아버지인 충렬왕이 다시 왕좌를 찾다.’
아버지 충렬왕은 다시 찾은 왕위가 반갑고 좋기도 하지만 혈기왕성한 충선왕이 두 눈 부라리고 있는 것이 영 불안했어. 그렇다고 칸의 손자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측근들과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어.
그 방법은 바로 미남 계! 무슨 소리냐고? 자 다음의 대화를 보면 궁금증이 풀리니 조금만 기다려.
“여봐라. 충선왕을 제거하기는 불가능 하기만 재기 불가능으로 만들 방법은 있지 않겠냐? 아니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힘을 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란 말이다.”
“전하께서 지난 번에 실각 하신 것도 부인인 원나라 공주의 부재였습니다. 충선왕의 가장 큰 버팀목도 원나라 공주인 부인입니다. 그 부인만 없다면……”
“아씨! 미친놈아! 원나라 공주 암살 시도 자체 만으로도 우린 다 죽어! 어험..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말투가 조금 경박했다. 아무튼 그 것은 논의 할 가지도 없다..”
“전하 누가 죽이자고 했습니까? 제 말은 그 둘을 이혼을 시키자는 겁니다. 충선왕은 당연히 이혼을 생각도 안 할 테지요. 허오나 공주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공주 측에서 이혼을 요구 한다면? 충선왕은 원 으로부터 완전히 버림 받을 것입니다.”
“오호라! 괜찮은 계책이로구나. 마침 내 처남의 아들 중에 서흥후 라는 꽃 미남이 있는데, 어디 한 번 미끼를 던져 보자꾸나.”
다음 날부터 꽃 미남 미끼는 왕의 부름을 받고 뻔질나게 궁을 드나 들기 시작을 했던 거야. 며느리의 산책코스와 취미생활을 즐기는 동선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왕은 미끼를 던져 낚시질을 시작했던 거지. 남편이란 인간이 자기한테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자기는 외국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어. 더군다나 남편이 왕에서 쫓겨나기 까지 했으니 능력도 상실. 공주의 입에서는 한숨만 쏟아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인가 강동원 같은 사내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니 마음이 동하겠어 안 동하겠어?
어느 정도 일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충렬왕은 최 측근인 왕유소를 대동하고 원 나라로 직접 갔어. 현직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대 놓고 힐난하기는 체통이 서지 않으니 왕유소의 입을 빌렸던 거야.
“황제 폐하, 전직 왕인 충선왕은 아직도 대 원 제국의 공주를 매일 밤 눈물짓게 하고 있사옵니다. 부디 계국대장공주 개인의 행복을 위하여 재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현직 왕인 충렬왕이 며느리를 극진히 아끼는 충심의 발로이옵니다.”
충렬뢍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어.
“충선왕은 원 황제의 손자인 거 모르나 해? 너는 어찌해서 아버지 왕과 아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려 한다 해? 이것은 대 원 제국을 우습게 보고 기만 하는 행위라 해. 저 놈을 당장 감옥에 가두라 해. 그리고 충렬왕! 꼴 보기 싫으니까 당장 고려로 돌아가서 민생에 신경 쓰라 해.”
충렬왕은 겨우 화를 면하고 고려로 돌아왔고, 충선왕은 아버지를 피해 고려를 떠나 원 나라에서 10년이란 시간을 머물게 되었어. 충선왕은 원 나라에 머무는 10년 동안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였고 그 만의 인적 네트워크도 완성 하기에 이르렀어. 그리고 마침내 두 부자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어.
1307년 원 나라 6대 황제 성종 테무르가 사망을 하면서 왕좌의 게임이 시작 되었던 거야. 나비효과라고 원 나라 왕좌 쟁탈전은 고려에도 선택을 강요해.
충선왕은 원 나라에서 유년기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성종 테무르의 조카인 카이샨 형제와 우애를 나누었고, 이 쪽 라인에 줄을 대었어.
반면 고려에 있던 충렬왕은 성종의 사촌인 ‘아난다’에 줄을 대고 있었어.
누가 이겼을까?
조카 카이샨 후원 by 충선왕 vs 사촌 아난다 후원 by 충렬왕.
1307년 원 나라의 새로운 카이샨이 황제로 등극하고, 고려에서 계국대장공주의 재가를 추진하던 일당과 충렬왕 측근은 모조리 제거 되었어. 권력을 다시 잃으니 살 맛이 안 났는지 이듬해 충렬왕은 사망을 하게 되고 충선왕이 다시 고려의 왕이 된 걸로 나비효과 마무리. 이로써 아들과 아버지가 왕좌를 두고 다투던 게임은 대단원의 막을 내려.
이리하여 고려로 돌아온 충선왕은 백성들을 위한 어진 정치를 펼치고 , 아들 딸 잘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라고 마치면 좋았을 텐데. 놀라운 반전이 있었어.
원 나라 현지에서 충선왕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해.
“친애하는 고려 국민 여러분! 제가 다시 왕이 된 것을 축하해 주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조만간 직접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릴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저는 원 나라 황제로부터 심양왕 으로도 책봉이 되어 고려 국왕을 겸직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두 나라의 피가 반반씩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을 쉽게 선택 할 수 없는 점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저는 몸은 비록 이억 만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고려 국민과 함께 라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라며, 고려의 대소사는 원나라 현지에서 교서를 직접 내려 아무 무리 없이 일 처리를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시방 저것이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랴? 아니 고려 왕 인디 원 나라에서 왕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여?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시사항을 교서로 써서 보내겠다는 말이잖여? 고려까지 서신이 오는데 며칠이 걸릴 것 인디? 참 말로 이게 먼 조화랴?”
“먼 조화는 먼 조화여. 양 손에 쥔 금, 은 다 안 놓치겠다는 거지. 그라고 심양왕 직급이 고려 왕 직급 보다 높은께 우리 고려는 은 덩어리인 겨. 더군다나 자기 인맥이랑 지지기반이 고려보다 원나라에 훨씬 많은데 미쳤다고 금 덩어리를 버리고 은 덩어리 찾아 오겄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헛 똑똑히 같은 소리 하덜말어. 아 이게 개인의 문제라면 그리 말해도 되겄지만. 이 것은 백성들의 생명이 직결된 나라의 문제인디, 어느 것이 더 중하고 덜 중하고 어디 있디야? 아 그럼 고려왕을 내려 놓던가! ”
충선왕은 왕 취임식을 위해 고려에 잠시 들른 후 원 나라로 돌아가 5년 동안 한 번도 귀국을 하지 않았어.
5년 후에는 돌아왔냐고?
“충선왕! 왕 2개 겸직은 더 이상 곤란하다 해. 둘 중 하나는 빨리 내려 놓으라 해. 내”
“황제 폐하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전 고려 왕 자리를 둘째 아들에게 양위 하겠습니다.”
얼마나 돌아오기 싫었는지 귀국 한 번 안하고 고려 왕 자리를 차남에게 넘겨.
말년이 어땠냐고? 정치란 게 말이야. 영원한 승자가 없는 거 같아.
자신을 지지하던 황제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저 멀리 티베트까지 귀향을 가게 되고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고 해.
이 부자의 삶이 어떻다고 생각해? 여러 가지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이만 줄일게.
http://blog.naver.com/jy3180
P.S : 이 글을 정독 해주신 당신의 러블리한 댓글은, 다음 글을 위한 산삼보다 귀한 자양 강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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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에서 웃음이 나왔네요. ㅎㅎ
포인트를 잘 잡으셨군요^^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재밌게 쓰셨네요.
그런데 소소하지만 오류가 몇 가지 있어 알려드려요.
1. 충렬왕이 아들(충선왕)에게 양위한 것이 원 황제 쿠빌라이칸의 압박 때문이라는 부분
양위(1298)는 쿠빌라이의 사망(1294)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양위가 이루어질 때의 원 황제는 쿠빌라이의 손자인 테무르(원 성종)였지요.
2. 충렬왕이 원나라에 가서 원 황제에게 며느리(충선왕의 아내)인 계국대장공주의 개가를 말하는 부분에서, 원 황제가 충선왕을 '내 손자' 라고 말하는 부분
이 때의 원 황제는 쿠빌라이가 아니라 그 손자인 테무르이므로 충선왕과는 같은 항렬입니다. 사촌 뻘 되죠. ^^
오~~~그러내요.^^ 1번도 쿠빌라이가 아니라 그냥 원 황제라고 바꾸고 2번도 내 손자가 아니라 원 황제의 손자다 라고 수정했습니다.^^
@슈거 팩토리 공장장 고려말 역사는 완전 무지해서... 왕이 충선왕이 혼혈이라는걸 지금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단수천공 고려사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이 조선시대 보다 잘 모르고 계시는게 현실이죠^^
@부단수천공 공민왕의 왕비가 원나라 여자인 노국대장공주인 것처럼, 고려 말에는 고려 왕들이 원나라 공주들을 아내로 맞았다고 하니 이 시기에는 고려 왕자들 중에는 '혼혈 왕자' 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충선왕' 이후의 모든 고려왕(제일 마지막의 공양왕만 제외)은 충선왕의 후손들이므로 죄다 몽골과의 혼혈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사극에 잘 나오는 공민왕이라든가, 우왕 등도 모두 혼혈왕인 셈입니다.
심지어는 왕들에게 몽골식 이름들도 있었죠. 일제시대에 창씨개명 하듯, 이 시기 고려 왕족들은 몽골식 이름도 하나씩 갖습니다. 공민왕은 '바얀 테무르[伯顔帖木兒]', 충선왕은 '이지리부카'
@부단수천공 [益知禮普花] 식으로 말이죠.
@수돌예돌 맞아요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부인으로 알았는데 왜 원나라사람과 혼인했는지까지는 몰랐답니다 사실은 이것도 사극에서 봐서 알게 된거고요ㅠㅠ 원나라가 몽골이었으니 생김새가 비슷해서 생김으로 혼혈을 판단하기는 어려웠겠네요. 이름까지 원나라식을 갖고 있었던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