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없는 신자는 미신에 빠진다”(딤전 4:7b)
나는 수년 째 신학교의 신입생들에게 동계 그리스어 강좌를 지도하고 있다. 합격자들은 입학식도 하기 전에 고전어 강좌에 참석하려니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가 혹독한 이유는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며 문장을 깨우치기 위해서 강좌가 막 끝난 오후시간부터는 개인적으로든지 삼삼오오 그룹으로든지 새벽까지 공부를 하면서 머리에 쥐가 나는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중에 한동안 사회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비싼 값을 치르게 된다. 기도와 각오 끝에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되겠다는 감격을 안고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부푼 꿈은 그 강좌기간에 산산이 깨진다. 고전어 강좌에는 은혜가 없다. 그렇게 동계강좌를 지옥같이 보내는 동안 나는 독일 사람들의 짧은 격언을 자주 반복해서 말해준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연습 외에 왕도 없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저절로 경건해지지 않는다. 날 때부터 경건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가만있어도 경건하게 되었다는 것은 속임수이다. 경건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경건은 자연발생적인 현상과 거리가 멀다. 만일에 누군가가 가만히 있었는데도 경건해졌다면 그것 자체가 불경이다. 경건은 단순히 마음속에 소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건을 소원하는 것과 경건 그 자체는 엄격하게 다른 것이다. 경건이란 심정적인 무엇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건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는 너무나도 명쾌하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경건은 연습의 결과일 뿐이다. 연습하지 않으면 경건은 없다. 경건에 도달하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경건에 이르기를”이란 말보다 “연습하라”는 말에 더 강한 액센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경건 하라”고 권면하지 않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은 연습의 대가이다. 그러므로 연습해야 한다.
경건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이 의도하는 경건의 연습은 육체의 연습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흡사한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경건의 연습을 말하면서 육체의 연습을 대조시킨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딤전 4:8). 우리가 다 잘 알다시피 육체의 연습은 단련, 연마, 훈련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들은 육체의 연습을 통해서 근육을 강화하고, 지구력을 향상시키며, 민첩성을 얻는다. 그런데 이 같은 소득은 엄청난 육체적인 노력을 전제로 한다. 피땀 어린 훈련을 통과한 훌륭한 운동선수만이 세인의 주목을 받는 법이다. 이런 사실은 경건의 연습에도 마찬가지이다. 경건의 전제는 연습이다. 비록 그것이 방식에 있어서 육체적인 연습과 다르다 할지라도, 연습에 임하는 사람이 자기절제, 규칙적인 생활, 끝없는 도전, 이런 요건들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경건의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잡다한 것들에 대한 신경을 끊고 집중과 몰두를 필요로 한다. 최소한의 생활시간표가 없는 사람이 경건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의 바랄 수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영적인 목적을 설정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경건의 연습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경건의 연습도 연습이기 때문에 육체의 연습과 비슷한 요건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연습 없는 경건은 환상일 뿐
조금 뒤에 사도 바울은 경건의 연습과 관련된 몇 가지를 디모데에게 일러줄 것이다(딤전 4:13). 경건의 연습에 많은 사항들이 있겠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면 틀림없이 성경연구, 기도, 전도와 같은 사항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사항들에 전심전력으로 연습하지 않으면 결국 신자는 헛된 미신 (신화)이나 따르는 한심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사람은 마치 경건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처럼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못할 것이다. 연습은 경건을 만든다. 칭찬 받을만한 경건은 칭찬 받을만한 연습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연습하라.
“육체의 연단”(딤전 4:8a)
나는 자주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내가 만일에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 출생했더라면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누가 보든지 나의 왜소한 체구를 보면서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몸에 힘이 붙는 것을 느낀다. 다름이 아니라 거의 매일 밤 한 시간 이상 걷기 때문이다. 때로는 몸이 근질근질해서 또는 날씨가 좋아서 걷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분지 삼 이상은 아내의 득달같은 성화를 이기지 못해서 밤마다 천변을 걷는다. 처음에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걷다보니 허약하기만 하던 내 몸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동 때문에 좋아진 몸
사도 바울은 육체를 연단하는 것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육체를 연단하는 것에 “유익이 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달리기, 격투, 레슬링과 같이 육체를 연단하는 법에 관해서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육체를 연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창조원리와 관계가 있다. 그 까닭은 육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창조와 관련하여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육체를 만드시고 그 다음에 영혼을 불어넣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하나님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를 만드신 분이시다. 또한 육체를 연단해야 하는 이유는 구원원리와 관계가 있다. 그 이유는 육체도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육체에도 효과적이다. 그래서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성령이 거주하는 곳이 된다. 사도 바울은 이런 두 가지 원리에 기초하여 육체를 연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하지 않은 것도 불경이다. 몸을 연단하지 않는 것은 몸을 창조하시고 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코 사도 바울은 육체를 멸시하는 영지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몸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하지만 사도 바울의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육체의 연단과 관련해서 어떤 제한을 두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는 육체연단이 만사에 유익하다고 말하지 않고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토를 단다. 몸을 연단하는 것은 제한적인 의미에서 유익할 뿐이다. 이것은 몸을 연단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무엇을 연단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이미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경건이다. 하지만 육체의 연단에 약간의 유익이 있다는 말은 육체의 연단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다. 부정적이라면 경건의 연습에 비하여 그럴 뿐이다. 다시 말해서 육체의 연단이 부정적이라면 경건의 연습은 없이 육체의 연습만 하는 경우에 그렇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영혼을 부인하는 물질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경건을 연습을 하는 사람은 육체도 연습해야 한다. 육체의 연습에도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육체를 연단하는 것은 때때로 경건의 연습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육체가 약해지면 경건을 연습하는 것에 문제가 생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자주 일어나는 위장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사용하라는 말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경건 위해 건강한 육체를
그러나 역으로 육체를 연단하는 사람은 경건을 연습해야 한다. 경건을 연습할 때 육체를 연단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를 얻는다. 육체를 연단하지만 경건을 연습하지 않는 것은 몸을 얻고 영혼을 잃는 것이 된다. 그것은 땅은 알지만 하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소행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연구와 기도와 전도에 착념할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는 신화와 철학이 지배하던 시대로서 인간론에서 영혼만을 중시하는 영지주의와 육체만을 중시하는 물질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경건의 연습과 육체의 연단을 강조함으로써 영지주의도 물질주의도 거절하고 기독교의 새로운 이상을 펼치고 있다.
첫댓글 연습을 경건을 만든다.
칭찬 받을만한 경건은 칭찬 받을만한 연습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연습하라~
육체를 연단하는 것은 때때로 경건의 연습에 도움을 줍니다.
경건 위해 건강한 육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