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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20) - BMW
‘다이내믹한 고급차’ 강력한 브랜드 형성
고급차시장 집중 공략 … 벤츠 제치고 최고로 등극
헬무트 회장 “뚜렷한 정체성이 BMW 파워 제고” 2006/03/16
지난해 12월 말 미국의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이면서 세계 고급 승용차 시장을 양분해 온 다임러크라이슬러와 BMW의 승부가 BMW의 승리로 기울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메르세데스벤츠는 2005년 1월부터 11개월 동안 96만 1600대를 판매한 반면, BMW는 102만 156대를 판매해 2005년 시장의 승리는 BMW의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
<월스트리트저널>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양사의 2005년 판매량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BMW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9.9% 증가한 132만 8000대. 반면 벤츠의 판매량은 1.7% 증가한 122만 600대에 그쳤다. 지난 12년간 고급차 시장에서 2위 자리에 머물렀던 BMW가 실로 값진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고급차’ 하면 독일의 벤츠를 떠올린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본차의 수요가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 고급 차종에서는 독일차의 우위가 뚜렷하다. 그리고 그 고급차의 이미지를 선도하고 있는 차종이 바로 벤츠와 BMW다.
벤츠가 이처럼 고급차의 이미지를 확고부동하게 지키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역사는 1883년 칼 벤츠가 독일 만하임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이처럼 한 시장에 대한 선점 효과는 엄청난 것이었고, 1916년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로 시작한 후발주자 BMW는 아무리 애써도 벤츠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전신인 다임러벤츠는 1998년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의 하나인 크라이슬러를 전격적으로 합병하면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마저 삼키는 듯했다.
그러나 벤츠에는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뛰어난 품질에만 집착했을 뿐, 트렌드를 앞서 가는 디자인이나 감성 마케팅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벤츠의 고향인 독일에서는 ‘벤츠는 노인들이나 타는 차’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BMW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고품질의 다이내믹한 스포츠카를 BMW의 컨셉트로 삼고 이를 실현해 나 갔다.
1987년 BMW는 10여 군데에 흩어져 있던 개발, 연구실을 한데 모아 피츠 연구소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무려 6000여명에 달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차종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피츠 연구소의 규모는 BMW 본사보다 8배나 크다고 한다. BMW의 신제품들은 초현대식 기술장비와 정보 시스템을 갖춘 이 연구소에서 통합적으로 신소재·기술·디자인 등을 연구하여 탄생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BMW는 보통 6~7년 걸리는 신차의 개발기간을 평균 33개월로 단축했다.
또한 BMW는 생산차종의 60% 이상을 수출하며 독일 시장보다 수출에 주력했다. 그 결과, BMW는 21세기 들어 매년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10% 이상의 급성장세를 보였다. 2005년 3월에 발표한 3시리즈 세단 등이 호조를 보인 덕에 아시아 시장에서 최초로 판매량 10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들어 마침내 라이벌 벤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고급차로 우뚝 선 것이다.
BMW의 헬무트 판케 회장은 이 같은 성공비결에 대해 “강력한 브랜드는 기업의 정체성에서 비롯된다”며 “BMW는 저렴한 대중차 시장을 포기하고 프리미엄(고급차) 시장을 집중 공략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 했다.
판케 회장은 2007년에는 140만대 판매가 무난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침체에 빠져 있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에 대해서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고급차와 대중차 시장을 모두 장악하려 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BMW의 선호도는 국내에서도 굳건하다. 도요타의 렉서스와 수입차 시장을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지만 젊은 소비자들은 압도적으로 BMW를 선호한다. 최근 여론조사회사인 나우앤퓨처가 20~40대를 대상으로 ‘올봄에 외제차를 산다면 어떤 차를 사겠는가’라는 설문을 실시했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1.4%가 BMW를 사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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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9) - 스와치
고정관념 뛰어넘는 과감한 도전
기존 명품 이미지에 저가·패션형 접목
매년 30% 이상 성장 … 세계 1위 탈환 2006/03/09
최근 국내의 한 포털사이트가 전국의 여대생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손목시계는?’이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5%가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스와치(Swatch)’를 꼽았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예쁘고 과감한 디자인이 여대생들이 스와치를 선호하는 이유였다.
유럽의 소국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시계 강국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스위스 하면 영세중립국, 알프스 소녀 하이디, 스위스 군용칼 등과 함께 시계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이끄는 회사가 바로 스와치다.
스와치는 연간 1000만개 이상의 시계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시계업체다. 스와치 그룹(SMH)은 스와치 외에도 오메가, 라도, 론진, 티소 등 17개의 시계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스와치의 세계 시계 시장 점유율은 25% 내외. 스와치는 완제품 못지않게 시계의 부품인 무 브먼트(시침과 분침을 움직이는 장치) 생산에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쯤에서 기억을 한 20년 전으로 돌려 보자. 그때에도 스와치라는 브랜드가 있었던가? 아마 기억이 잘 안 날 것이다. 당시 젊은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했던 시계 브랜드는 ‘카시오’ 같은 일본의 전자시계였다. 1970년대 말까지 세계 시계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했던 스위스 시계는 1980년대 들어 세이코, 카시오 등 값싼 일본의 전자시계에 급격하게 시장을 빼앗겼다. 스위스 시계회사들은 디지털이라는 새 시대의 흐름을 부정하고 오직 아날로그 시계만 고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스위스는 일본의 전자시계에 세계 시장을 허무하리만큼 쉽게 내주고 말았다. 스위스의 시계 생산량은 1974년의 9100만개에서 1983년에는 4300만개로 급감했다. 1980년대 초의 2년 동안 스위스의 시계제조공 6만 2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인구 700만의 소국 스위스로서는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브랜드가 바로 스와치였다. 1983년 SMH의 전신인 ASUAG의 경영권을 인수한 하이에크 회장은 더 이상 초고가 브랜드로는 시계 강국 스위스의 명성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이에크 회장이 연구 끝에 내놓은 브랜드가 저가의 패션시계인 ‘스와치’다. 하이에크 회장은 ‘스와치’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가격대가 서로 다른 14개의 브랜드를 독립적으로 운영했다.
예를 들어 최고급 브랜드인 오메가나 라도 시계는 니콜 키드먼과 요요마, 미하엘 슈마허 등 예술과 스포츠 분야의 톱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해 명품다운 이미지를 유지했고, 패션 브랜드인 스와치에는 기존의 스위스 시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혁신적이고 발랄한 디자인을 도입했다. 피부와 촉감이 똑같은 스킨시계, 초콜릿 냄새가 나는 초콜릿시계 등은 스와치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이다. 이와 함께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 제품의 원가를 크게 떨어뜨려 ‘스위스 시계는 비싸다’는 고정관념도 깼다. http://www.drc.co.kr
스와치가 스위스 시계의 고급 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하이에크 회장은 자신의 경영방식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1988년부터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1994년까지 매년 3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한 스와치는 마침내 1994년 세계 시계 제조업체의 1인자 자리를 되찾았다.
현재 스와치는 개당 75달러 미만 브랜드부터 시 계 한 개의 가격이 1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최고급 브랜드까지 17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스와치는 이 다양한 브랜드를 프레스티지·고가·중가·저가의 피라미드 형식으로 구성했다. 스와치 시계를 산 고객이 나중에는 오메가 시계를 살 수 있도록 각 브랜드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연결되는 판매전략을 짠 것이다.
현재도 스와치 시계는 시계의 기본인 ‘애프터서비스’가 없다. 즉 스와치 시계는 옷이나 신발처럼 싫증나거나 떨어지면 버리고 새로 사는 패션 아이콘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젊은 소비자들은 서너 개의 스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새로운 디자인의 스와치를 산다. 중장년층 고객들은 그들대로 ‘세계 제일의 시계는 스위스 시계’라는 고정관념을 고수한다. 1980년대 위기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스와치는 당분간 세계 시장 1위의 아성을 굳건히 지켜 갈 듯싶다.
스와치의 특징
·세계 시계 생산량의 25%를 점유.
·스위스 내에 50개 공장, 세계 각지에 440개에 달하는 생산·판매 조직을 보유.
·2010년까지 올림픽을 비롯한 IOC의 국제 경기 공식 기록 측정업체.
·1999년부터 환경친화형 자동차인 스마트카(smart car) 생산ㆍ판매.
·고가 주얼리 브랜드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럭셔리 제품 부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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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8) - 존슨앤드존슨
100여년간 ‘정직·신뢰’ 명성 이어와
윤리·도덕성·소비자의 신뢰 등 갖춰
1932년, ‘모든 책임 다하자’ 신조 선포 2006/03/02
가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10선’ 같은 기사가 신문 경제면에 실릴 때가 있다.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인 <포천>,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인터브랜드, 시장조사업체인 해리스인터액티브와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 등이 매년 나름의 방식으로 전 세계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를 조사해 발표하는데, 각 기관의 조사방식에 따라 결과는 조금씩 다르다.
이 중 <월스트리트저널>이 주관하고 해리스인터액티브,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가 공동 실시하는 ‘기업연례평판지수’는 특이하게도 ‘가장 좋은 기업’과 ‘가장 나쁜 기업’을 같이 발표한다.
이 기업연례평판지수는 매년 세계의 기업인 6977명을 대상으로 가장 평판이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조사해 그 답을 합산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을 찾는 조사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12월에도 2005년의 기업연례평판지수를 발표했다. 1위는 존슨앤드존슨(Johnson &Johnson). 2004년에도 역시 존슨앤드존슨이 1위였다.
▶ 존슨앤드존슨은 <월스트리 트저널>이 발표한 기업연례평판지수에서 2004, 2005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우리는 흔히 존슨앤드존슨 하면 ‘로션’을 생각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를 만드는 회사 정도로 보이는 존슨앤드존슨이 그토록 존경받는 기업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뉴트로지나’, ‘클린앤드클리어’, ‘아큐브’ 등의 서브 브랜드를 갖춘 존슨앤드존슨은 연간 500억 달러대의 매출을 올리는 다국적 의료기업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활용품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매출은 얀센 등 제약과 의료 부문에서 나온다고 한다.
1886년 영국의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와 미국인 존슨 형제가 뉴저지에 설립한 붕대 제조회사가 존슨앤드존슨의 시작이었다. 이후 존슨앤드존슨은 각종 보건·의료용품을 개발하는 회사로 착실히 성장했다. 1961년에는 벨기에의 제약회사 얀센을 인수해 제약회사로 거듭났다.
1932년 존슨앤드존슨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로버트 우드 존슨은 사장에 취임하며 ‘소비자, 직원, 지역사회, 주주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는 ‘존슨앤드존슨의 신조’를 작성했다. 이 신조는 한 세기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존슨앤드존슨의 기업윤리로 이어지고 있다.
우량기업 존슨앤 드존슨도 1982년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미국 시카고에서 괴한이 존슨앤드존슨의 진통제 ‘타이레놀’에 독극물을 주입, 이 약을 먹은 소비자 8명이 숨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 시장점유율 35%가 넘던 타이레놀의 판매는 7%대로 급락했고, 전 세계적으로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었다.http://www.drc.co.kr
이 일은 엄밀하게 말해 존슨앤드존슨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은 즉시 미국 전역에 판매된 타이레놀 3100만 병을 회수하고 소비자 문의와 제품 회수를 처리하기 위한 핫라인을 가동했다. 소비자에게 진행 상황을 철저히 알리기 위한 미디어센터도 열었다. 이 사건의 수습을 위해 존슨앤드존슨이 지출한 비용은 2억 4000만 달러가 넘었다.
한편으로 존슨앤드존슨은 타이레놀 상표를 포기하지 않고 재출시를 강행했다.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했고 소비자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상표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을 회복하는 데는 꼬박 3년이 걸렸으나 소비자들은 존슨앤드존슨의 신속하고 정직한 대처에 박수를 보냈다. 기업 이미지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윤리적인 기업’이라는 긍정 적 이미지가 높아졌다. 이 사례는 존슨앤드존슨이 왜 존경받는 기업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최선에 바탕을 둔 ‘정직’과 ‘신뢰’가 바로 그 이유다.
물론 존슨앤드존슨은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취약한 사업 부문을 과감히 매각하는 등의 경영감각도 갖춘 회사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불경기가 장기화될 때는 무려 15개 회사를 차례로 매각해서 경쟁력을 높이는 과감함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한 기업이 100년 이상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것은 이미 기술이나 경영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윤리성과 도덕성, 그리고 그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절대적인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존슨앤드존슨은 이 모두를 갖추고 있는 참으로 드문 기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존슨앤드존슨에서 지키고 있는 기업신조. 이러한 소비자 우선의 기업윤리가 한 세기 동안 소비자에게 존경받는 바탕이 됐다.
존슨앤드존슨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표한 기업연례평판지수에서 2004, 2005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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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7) - 보잉 BOE ING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이 승리한다”
시장변화 맞춘 신기종 개발로 세계 1위 탈환
‘자만심 버리고 고객시각에서 혁신’ 비결 2006/02/23
한때 ‘보잉’은 비행기의 대명사였다. 특히 ‘보잉 747’은 대형 여객기와 동의어처럼 일컬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보잉은 1916년 창사 이래 세계 민간항공기 시장 누적점유율 70%를 기록한 회사다. 그야말로 항공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이 보잉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강자는 없는 법. 21세기 들어 보잉은 ‘타도 보잉’을 외치며 독일, 프랑스, 스페인이 연합해 세운 에어버스에 밀리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보잉은 신규 항공기 수주 실적에서 계속 에어버스에 뒤졌다. 특히 2004년 수주 실적은 사상 최저인 272대에 불과했다. 뉴욕의 월가에서는 ‘보잉이 이제 힘든가 보다’는 수군거림이 나돌았다.
그러나 지난 2월 1일, 보잉의 2005년 4/4분기 실적이 발표되면서 뉴욕증시는 크게 상승했다. 보잉의 실적이 예상을 훨씬 웃돈 것이다. 보잉의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은 총 4억 6000만 달러로 2004년 4분기의 1억 8600만 달러의 세 배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해 순이익도 25억 7000만 달러로 2004년의 18억 7000만 달러에 비해 40%나 증가했다. 이와 함께 보잉은 해리스인터액티브와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가 공동 실시하는 기업평판지수에서도 8계단 뛰어오른 22위를 기 록했다.
보잉의 짐 맥너니 회장은 “보잉의 항공기 신규 수주가 2004년보다 3.7배 증가한 1029대로 이는 사상 최고 기록”이라고 밝히며 “2007년 수익은 2005년의 세 배가 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보잉의 역대 최고 수주 실적은 1987년에 기록한 877대였다. 보잉이 이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전략 때문이다. 1916년 윌리엄 보잉이 미국에서 설립한 보잉은 한 세기 가까이 세계 항공산업을 좌지우지해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보잉은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현실에 안주하는 기업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반면 보잉의 라이벌인 에어버스는 보잉이라는 공룡에 대적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성능을 갖춘 신규 기종을 속속 출시했다. 2000년 이후 보잉의 항공기 수주가 해마다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보잉은 위기를 자각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우선 신형 기종인 보잉 777의 개발에 주 고객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참여시켰다. 세계 1위라는 오만한 자세를 버리고 고객의 시각에서 항공기를 설계한 것이다. 또 개발과정의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관리했으며 컴퓨터상에서 조립 시뮬레이션을 실시, 모의 항공기 조립에 소 요되는 막대한 시간과 예산을 절약했다. http://www.drc.co.kr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보잉은 불과 4년 1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보잉 777 개발을 마쳤다. 새 항공기의 평균 개발기간은 보통 10년 이상이다. 보잉 777은 중대형 항공기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되며 에어버스의 경쟁 기종인 A330과 A340을 판매량에서 두 배 가까이 제쳤다. 또 보잉은 고유가 현상을 예견하고 중형 항공기도 함께 개발했다. 보잉의 중형 항공기 드림라이너는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5년 에는 235대가 팔렸다. 반면, 에어버스의 경쟁 기종인 A350의 지난해 판매량은 50대에 불과했다. 2005년 들어 보잉은 제트 여객기 분야에서 5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드디어 에어버스를 제치고 1위 자리를 재탈환했다.
그러나 보잉이 과거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다. 항공기 수주 실적만 따지면 아직 에어버스에 뒤진다. 에어버스의 2005년 수주 실적은 1111대였다. 다만 소형기는 에어버스, 대형 여객기는 보잉이 우세해 수주 총액은 보잉이 앞서고 있다. 양사는 이를 근거로 삼아 서로 자신이 1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잉의 추락과 반등은 어떤 기업도 영원히 1위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설사 1위에서 밀려났다 해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만한 길은 있다. 보잉은 고객인 항공사의 요구에 걸맞은 신형 기종 개발과 고유가 시대를 예견한 중형기 출시로 위기를 뛰어넘었다. 기업 간의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이 승리한다는 사실 또한 영원한 진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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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6) - 아이비엠 IBM
“모든 것을 소비자에 맞춰라”
1993년부터 컴퓨터관련 서비스 회사로 변신
‘기초가 튼튼하고 변화 주도하는 기업’ 명성 2006/02/16
▶ IBM은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책임지는 ‘고객맞춤형’ 서비스 회사로 거듭났다. 사진은 한 IT박람회의 IBM 부스 전경.
지난 1월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2006 인터내셔널 CES’에 참석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그는 기자들이 “구글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 아니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며 뜻밖의 대답을 했다.
“현재 컴퓨터산업의 최대 회사는 IBM입니다. IBM은 종업원이 우리보다 네 배 많을 뿐만 아니라 매출도 많습니다. MS의 최대 경쟁자는 항상 IBM이었습니다. IBM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산업의 향후 구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사입니다.”
빌 게이츠는 구글같이 ‘멋진 회사(Cool Company)’들은 과거에도 많았지만 금방 사라졌다면서 기본이 탄탄하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IBM 같은 기업들이야말로 무서운 경쟁상대라고 말했다.
굳이 빌 게이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IBM은 대단한 회사임에 틀림없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 톱5는 코카콜라, MS, IBM, GE(제너럴 일렉트릭), 인텔의 순이었다. 지난해 4/4분기 IBM의 순이익은 전년도 대비 13% 상승한 31억 9000만 달러, 매출액은 244억 3000만 달러였다.
IBM은 1981년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를 개발했다. 그후 IBM은 PC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아직도 IBM을 PC회사라고 생각한다면 최근 동향에 무딘 사람임이 틀림없다. 이미 IBM은 PC사업 부문을 매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2004년 IBM은 자사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PC사업 부문을 중국의 레노보 에 12억 5000만 달러를 받고 팔아 버렸다.
1993년 회장으로 취임한 루 거스너는 “IBM의 모든 것을 소비자 요구에 맞도록 바꾸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회사 전체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IBM 직원들은 고객이 요구하는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고객사로 파견돼 나갔다. 문제 발견부터 기술적 해결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온 디멘드 이노베이션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다. 심지어 다섯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IBM 연구소의 연구원들까지도 컨설턴트로 변신해 고객사로 파견됐다. http://www.drc.co.kr
이처럼 ‘고객맞춤형’으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 끝에 IBM은 컴퓨터 하드웨어 회사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책임지는 서비스 회사로 거듭났다.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지 꼭 10년째인 2002년에는 서비스 매출이 하드웨어 매출을 넘어섰다. 최근에도 유니레버, 갭 등 세계적인 회사들이 연달아 IBM과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펀더멘털이 튼튼한 동시에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기업, 아니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점, 이것이 빌 게이츠마저 두려워하는 IBM의 진정한 강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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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5) - 나이키
성공적 스포츠마케팅 … 신화를 만든다
적극적 스포츠마케팅으로 세계 1위 수성
막대한 제품개발 투자 … 성장 원동력 토대 2006/02/09
나이키(Nike)의 기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이다. 그 이름의 유래처럼 나이키는 승리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스포츠 기업이다. 콜라 하면 코카콜라, 햄버거 하면 맥도널드가 연상되듯이, 전 세계 젊은이들은 운동화 하면 나이키를 떠올린다. 나이키는 이미 1993년 1억 켤레의 운동화를 판매하며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부동의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현재 미국의 운동화 시장에서 나이키는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나이키는 단순히 운동화가 아닌 희망이자 꿈과 같은 존재다.
1964년 미국 오리건 대학의 육상코치 빌 바우어먼이 만든 운동화 ‘나이키’가 불과 30년 만에 이토록 강력한 브랜드로 올라선 비결은 무엇일까. 이는 바로 나이키의 탁월한 스포츠 마케팅이다.
지난해 4월, 미국 프로골프 마스터스 대회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공이 러프에 빠진 상황에서 타이거 우즈 가 날린 칩샷은 그린을 미끄러져 홀 앞에 1.5초간 멈추어 섰다가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마술과 같은 이 샷으로 우즈는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공이 홀 앞에 멈춰진 순간, 긴장한 우즈의 표정이 카메라에 클로즈업되었다. 그때 우즈는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전 세계에 중계된 이 1.5초로 나이키는 1억 달러에 맞먹는 광고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나이키는 스타 플레이어를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에 제일 먼저 눈을 뜬 회사다. NBA의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을 비롯해 피트 샘프러스, 앤드리 애거시, 타이거 우즈, 호나우두, 피구, 박찬호 등이 모두 나이키의 모델이다. 나이키는 결코 최고의 선수를 놓치는 법이 없다. 지난해 프로로 전향한 미셸 위 역시 나이키와 1000만 달러에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 젊은이들에게 단순히 운동화가 아닌 희망이자 꿈과 같은 존재인 나이키. 현재 미국시장에서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 스포츠 마케팅의 주인공인 타이거 우즈.
소비자들은 나이키를 입고 신은 스타 플레이어들의 환상적인 기량을 보면서 자신을 스타와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나이키의 농구화 ‘에어 조던’을 신으면 자신도 조던처럼 멋진 덩크슛을 날릴 수 있을 것 같고, ‘나이키 골프’를 입으면 우즈처럼 정교한 샷을 구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나이키에 안겨 준 광고 효과는 실로 천문학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에어 조던의 생산라인은 52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나이키가 이 같은 탁월한 마케팅 기법만으로 세계 1위 브랜드로 성장한 것은 물론 아니다. 나이키는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제품 연구개발비에 투자하고 있다. 나이키의 디자인과 신기술, 마케팅은 미국 포틀랜드의 본사가 책임지며 생산라인 등 2차적인 문제는 동남아나 유럽의 지사들이 담당한다. 또 나이키를 착용한 세계적인 선수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나 문제점도 제품 개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브랜드 이름처럼 언제나 승리의 신화를 창조하는 나이키. 그 승리의 열쇠는 바로 뛰어난 품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ttp://www.drc.co.kr
나이키 vs 아디다스 ‘월드컵 광고전’ 불꽃
독일월드컵의 해가 밝았다. 최대 30억명이 지켜본다는 월드컵은 올림픽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의 스포츠 행사이자 국가 간의 자존심을 건 ‘축구전쟁’이다. 그런데 이 월드컵에서는 단순히 경기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계 스포츠 산업의 양대 산맥인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불꽃 튀는 광고전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유리한 쪽은 아디다스다. 아디다스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월드컵 공식 파트너로 지정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3680만 달러를 지원했고, 이 투자액을 넘어서는 광고 효과를 거두었다. 한·일월드컵 기간에 아디다스는 그 전해에 비해 2배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나이키 역시 만만치 않다. 비록 공식 파트너는 아니지만 본선 진출국 중 한국을 비롯해 미국, 브라질,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의 국가대표팀에 유니폼과 물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월드컵의 스타 플레이어가 입은 유니폼과 축구화는 강력한 광고 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아디다스 역시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의 후원사이다. 경기 결과에 따라 나이키와 아디다스, 두 거대 스포츠 기업도 울고 웃게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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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4) - 월마트
매력적인 가격으로 소비자 잡는다
전세계 5160여 점포서 150만명 종사
공익재단 설립 등 박애주의로 1위 지켜 2006/02/02
▶ 월마트는 세계 500대 기업 랭킹 1위, 2002년 이후 미국 최대 매출 기업 등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기업이다.
■ 세계 1위·미국 내 고용창출 1위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 미국 경제지 <포천>이 매년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 랭킹 1위, 미국 내 3000여개 쇼핑센터 소유, 2005년 매출 3100억 달러, 이 중 세후 순이익 100억 달러, 세계 전 매장에서 150만여명 근무, 2006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
이 엄청난 공룡기업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월마트(Wal-Mart)다. 미국 전체 인구의 84%가 월마트 고객이라는 통계 결과도 있다. 월마트라는 브랜드는 코카콜라,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함께 명실상부하게 미국을 대표한다.
이렇게 거대한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월마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1962년 미국 아칸소 주의 소도시 로저스에서 첫 점포를 열었다. 이후 10년 동안 월마트는 겨우 19개 점포를 확장했다. 경쟁사인 K-마트는 이미 미국 전역에 250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월마트가 40년 만에 미국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일까?
월마트 성공의 핵심은 바로 ‘가격인하를 통한 시장지배력 확대’라는 말로 요약된다. 월마트는 창고형 할인점을 잇달아 열고 대도시보다는 곳곳의 소도시로 유통망을 확대했다. 국내 할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최저가 보장제’를 맨 먼저 시행한 곳도 월마트다. 이를 위해 월마트는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하는 제조업체의 상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했다. 제조업체들은 월마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공장을 자동화하고, 인력관리 체계를 효율적으로 개선했다. 오늘날 미국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킨 주인공이 바로 월마트인 셈이다.
이런 전략으로 월마트는 매년 40%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마침내 정유업체 엑슨을 누르고 미국 최대 매출기업으로 올라섰다.
■ 변화하며 전통을 지킨다
그러나 월마트의 박리다매 정책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월마트 역시 이 같은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월마트가 경영진 구조를 재구성하고 마케팅을 활성화하는 등 대대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리 스콧 월마트 회장은 “환경친화적 점포를 개발하고 글로벌한 공급 체인을 개선하는 데 연 5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월마트는 올해 인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해 인구 10억의 인도 시장을 두드릴 예정이다.
월마트의 성공비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월마트가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창업자인 샘 월튼은 억만장자가 된 후에도 비행기 1등석을 타지 않았고 직접 픽업 트럭을 몰고 다녔다. 1992년 샘 월튼이 암으로 타계한 후, 그의 아들 존 월튼은 유산 1000억 달러 중 200억 달러를 출연해 미국 최대의 공익재단을 설립했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샘 월튼의 유지였다고 한다. http://www.drc.co.kr
이 같은 월튼가의 박애주의가 바로 오늘의 거대기업 월마트를 일궈 낸 밑거름인 것이다.
■ 타깃, 월마트 아성에 도전한다.
월마트는 항상 여러 도전에 직면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리 만만치 않다. 바로 세련된 고품격 할인점 ‘타깃’이 도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타깃의 매출은 아직 월마트의 2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순익증가율에서는 이미 월마트를 앞서고 있다.
타깃은 월마트의 강점인 ‘가격’ 대신 ‘가치’를 내세운다. 타깃에서 파는 물품의 가격은 대부분 월마트보다 더 비싸다. 대신 타깃은 백화점을 연상케 하는 세련된 디스플레이와 디자이너 브랜드 입점, 비싼 광고 등으로 월마트보다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항한 할인매장들은 모두 월마트를 이기지 못했다. 그것은 가격이라는 승부수에서 도저히 월마트를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깃은 아예 가격경쟁력에서 월마트와 대항하기를 포기하고 ‘우리는 월마트와 다르다’는 점을 내세워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 들어 월마트는 고급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월마트마저 타깃의 약진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지 <포브스>는 이를 두고 ‘타깃이 대형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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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3) - 인텔
변화를 예견하고 미래에 투자한다
평가액 340억원 ‘인텔 인사이드’ 슬로건 폐기
칩 제조업체 이미지 버리고 가전전문기업 변신 2006/01/26
■‘지금 만나는 미래’ 새 슬로건
지난 1월 5일, 전 세계 IT 업계 관계자들의 눈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전시회 ‘2006 소비자 가전 쇼(CES)’에 쏠렸다. 이 자리에서 인텔(Intel)이 16년 동안 쓰던 로고와 슬로건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를 버리고 새 로고와 슬로건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인텔이 새롭게 발표한 로고는 기존의 로고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로고보다 더 유명한 인텔의 슬로건은 완전히 바뀌었다. 새 영문 슬로건은 ‘립 어헤드(Leap Ahead)’, 즉 ‘미래를 향해 도약하라’는 뜻이다. 한글 슬로건은 ‘지금 만나는 미래’라고 표기하기로 했다.
한국인으로 인텔의 영업마케팅 그룹을 총괄하는 에릭 김 수석 부사장은 “‘지금 만나는 미래’라는 의미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 주는 표현”이라고 설명하면서 “인텔의 미션은 기술과 교육, 사회활동, 제 조 등 다양한 분야에 계속 도전하고 미래를 발견하며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회사로 변화 모색
지난 1991년에 만들어진 ‘인텔 인사이드’로고와 슬로건은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PC나 노트북, 서버에 인텔의 칩이 탑재돼 있다는 것을 겉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 로고는 소비자에게‘이 컴퓨터는 믿을 수 있다’는 보증수표 같은 기능을 했다. 이 로고를 통해 인텔은‘인텔 반도체 칩이 PC의 가장 기본적인 사양’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인텔 인사이드’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동시에 인텔이라는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왜 인텔은 이 훌륭한 로고와 슬로건을 자진해서 포기했을까? 최근 시장에서 인텔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텔은 세계적인 브랜드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2005 글로벌 브랜드 톱 5’에 IBM,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등과 함께 당당히 선정됐다. 시장조사업체 해리스인터액티브와 레퓨테이션인스티튜드가 매년 실시하는 기업평판지수에서도 9위에 올랐다.
한마디로 말해 인텔은 현재의 자리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충분히 우량 기업인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 역시 다른 어떤 회사 못지않게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인텔은 왜 변화를 선택했을까? IT 업계는 인텔의 새 전략이 ‘우리는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가전제품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평가한다. 인텔은 1992년 이래 세계 최대 반도체 칩 제조업체 자리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반도체 1등’이라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 인텔의 전략이다.
앞으로 인텔은 단순히 컴퓨터 하드웨어를 제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와 그 위에 얹혀지는 소프트웨어까지 개발, 지원하는 플랫폼 솔루션 회사로 기업의 주력사업을 바꿀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인텔은 이미 플랫폼 모델을 중심으로 회사 조직을 개편했다. 올해 초에는 새로운 디지털홈 플랫폼인 ‘인텔 바이브’ 기술을 출시할 예정이다. http://www.drc.co.kr
■세계 5위 브랜드 버리는 도전정신
이 같은 주력사업의 변화를 외부에도 확고히 알리기 위해 인텔은 ‘인텔 인사이드’라는 신뢰성 높은 슬로건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다. 칩 제조사라는 인상을 주는 ‘인텔 인사이드’는 이미 효력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미래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는 게 최고경영진의 판단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1월 9일자 커버스토리로 이런 인텔의 변화를 보도하면서 ‘인텔의 CEO인 폴 오텔리니가 반도체 칩 제조업체를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끌고 가는 대담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무려 339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세계 5위 브랜드까지 바꾸는 대모험을 감행한 인텔. 인텔의 도전이 과연 어떤 결과를 거둘지는 아직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15년 동안 세계 반도체 시장 1위를 지켜온 인텔마저도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 할 정도로 IT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는 기업에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변화를 예견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기업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리일 것이다.
인텔 CPU개발 연혁
1971년 인텔 4004 발표. 1946년 개발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과 맞먹는
컴퓨팅 능력 가져
1979년 8088 개발, 최초 PC에 채택
1982년 i286 발표
1985년 i386 발표
1989년 i486 발표
1993년 펜티엄 발표
1995년 펜티엄 프로 발표
1997년 펜티엄 II 발표
1998년 모바일 펜티엄 II 프로세서
셀러론 프로세서 발표
2000년 펜티엄 III, 모바일 펜티엄 III
펜티엄 4 프로세서 발표
2002년 서버용 펜티엄 III
모바일 펜티엄 4-M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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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2) - 피앤지
“소비자는 왕”·“고객을 두번 감동시켜라”
170여년 이어온 고객사랑
미용·유아·가정용품 등 역량 집중 상품화
300여 브랜드 개별마케팅 전략 관심 끌어 /2006/01/19
▶ P&G는 1837년 창립 후 생활용품 생산·판매로 세계 정상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은 미국 신시내티의 P&G 빌딩.
■ 2005년 성장률 10% 달성
2005년은 유니레버, 콜게이트 등 가정용품 업체가 일제히 경영난에 시달린 해였다.
그런데 유독 프록터앤갬블(이하 P&G)만은 10%의 성장률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단순히 성장률만 높아진 것이 아니다. 2005년 초, P&G는 세계 최고의 면도기 제조업체 질레트를 합병했다.
면도기 말고도 오랄비 칫솔, 듀라셀 건전지, 브라운 커피메이커 등을 보유한 질레트는 전 세계 면도기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는 탄탄한 업체다.
그런데 이 두 업체의 합병은 P&G 측의 주도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질레트의 짐 킬츠 회장이 제안해 성사된 것이라고 한다.
두 회사의 합병 이후 밝혀진 뒷이야기에 따르면, 질레트는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남성용품 시장을 선도하려면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질레트가 선택한 ‘가장 강력하고 혁신적인 브랜드’가 바로 P&G였다.
■ ‘독창적 경영혁신’ 강조
17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P&G는 샴푸, 비누, 생리대, 기저귀 등 각종 가정용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이처럼 자잘한 일상용품들을 생산하는 업체가 ‘존경받는 기업’이나 ‘강력한 브랜드’가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P&G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 시장조사업체인 해리스인터액티브와 레퓨테이션인스티튜드가 매년 실시하는 기업 평판지수에서 올해 P&G는 13위에 올랐다. 이 순위의 상위 기업은 대부분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업체다.
기저귀나 샴푸 등을 생산하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어떻게 이토록 강한 것일까?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P&G의 경영혁신에는 다섯 가지 열쇠가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독창적 사고의 힘’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가 밝힌 비밀의 열쇠는 다음과 같다. 1.고객이 최우선 2.고객수요 면밀히 파악 3.디자인 개발을 상품 개발과 동시 진행 4.아이디어 넘치는 근무환경 조성 5.필요하면 ‘적과도 동침’이다. http://www.drc.co.kr
P&G라는 기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다섯 가지 열쇠가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위스퍼, 팬틴 등 P&G의 제품들은 성능뿐만 아니라 제품 디자인에서도 단연 우수하다. 특히 엇비슷한 가정용품에서는 디자인이 제품 성능 못지않게 고객의 선호도를 결정하는 큰 요인이 된다.
또 직원들은 고객의 의중을 알기 위해 고객수요 조사를 꾸준히 실시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제품 샘플을 나눠 주며 설문조사를 하는 P&G 직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질레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P&G는 필요하면 합병도 주저하지 않는다. P&G 외부사업개발부서의 제프 위드만 부사장은 “우리는 우리가 개발하지 않은 제품을 상품화하는 데도 최고다”라고 설명했다.
■ 철저한 개별 브랜드 고수
여기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P&G의 개별 브랜드 전략이다. 놀랍게도 현재 P&G가 보유한 브랜드는 300개가 넘는다.
질레트와 위스퍼, 팬틴 외에 감자칩 프링글스, 섬유탈취제 페브리즈, 화장품 SK-II, 비달사순 샴푸 등도 P&G 제품이다. P&G는 이들 브랜드에 대해 철저한 개별 브랜드 위주 전략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P&G의 개별 브랜드 위주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 성장비결은 ‘시장 개척’
2000년 6월 P&G의 CEO로 취임한 이후 5년 만에 P&G의 매출액을 392억 달러에서 567억 달러로 끌어올린 앨런 래플리 회장은 2006년 매출액은 70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는 P&G의 고속 성장이 “핵심역량에 집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P&G의 모든 브랜드는 미용, 유아·건강, 가정용품이라는 3대 핵심역량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통해 종이기저귀, 섬유탈취제, 비듬샴푸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왔습니다. 그것이 P&G가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래플리 회장은 이에 덧붙여 ‘소비자가 왕’이라는 명제에 충실해야 한다며 모든 P&G 직원에게 ‘제품을 구입하는 순간과 사용하는 순간에 고객을 두 번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한 기업 P&G의 성공 비결은 가장 단순한 진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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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1) - 펩시
`영원한 2등은 없다`
펩시, 시가총액 코카콜라 제쳐
2005년말 987억달러로 100년 2등 설움 벗어
미래 내다본 상품다각화·아동마케팅 등 성과 2006/01/12
2005년 12월 29일, 세계 음료업계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콜라업계의 ‘만년 2등’ 펩시콜라가 시가총액에서 코카콜라를 제친 것이다. 이날 펩시의 주가는 전날보다 0.3% 오른 59.50달러. 시가총액은 987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코카콜라는 0.4% 하락한 40.60달러로 시가총액은 965억 달러로 떨어졌다. 2005년 한 해 동안 펩시의 주가는 14% 상승한 반면, 코카콜라의 주식은 1.2% 하락했다.
1919년 뉴욕증시에 상장된 이래 코카콜라가 1등 자리를 뺏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펩시의 시가총액은 코카콜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펩시와 코카콜라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1893년 탄생한 이래 펩시는 무려 100년 이상 코카콜라의 뒤를 쫓는‘만년 2등’이었다. 그런 펩시가 어떻게 코카콜라를 누르게 된 것일까?
1975년, 펩시는 기발한 홍보 전략을 짰다.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 콜라를 시음해 보면 대부분 펩시를 선택한다는 ‘블라인드 마케팅’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코카콜라와의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을 뿐, 여전히 1등 자리에 올라설 수는 없었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가 너무 막강해 어떤 마케팅으로도 그 아성을 넘어설 수 없었다.http://www.drc.co.kr
사실 콜라로만 보면 아직 펩시콜라는 코카콜라를 추월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펩시는 앞으로는 탄산음료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콜라 대신 스포츠음료, 웰빙 주스 등으로 과감하게 업종을 다각화했다. 게토레이, 마운틴듀, 세븐업 등을 주력 상품으로 내놓고 과일주스업체인 트로피카나와 프리토레이 스낵을 인수했다. 현재 펩시 수익의 절반 이상은 프리토레이의 감자칩 등 스낵 부문에서 나온다.
콜라에서도 펩시는 어린이와 신세대를 타깃으로 한 광고를 내보냈다. 어차피 코카콜라에 길들여진 기성세대의 입맛을 바꿀 수는 없다고 보고 아예 어린이들을 공략한 것이다.
‘다음 세대의 선택’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마케팅 전략은 결국 20여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펩시콜라를 마시며 성장한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펩시콜라를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펩시의 성공은 아무리 막강한 브랜드라도 항상 1등을 고수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펩시는 미래를 내다보고 기업의 주력 상품까지 과감하게 포기하 는 전략을 실천했다. 현재가 아닌 미래의 트렌드를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펩시는 100년간의 2등 자리를 박차고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에게도, 그리고 기업에도 만년 2등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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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맞은 코카콜라, 어떻게 변화할까?
미국의 전문가들은 올해 CEO가 자리를 보전하기 위태로운 기업으로 코카콜라와 갭, 웬디스 인터내셔널 등을 꼽고 있다. 펩시에 밀렸다는 것 외에도 코카콜라를 둘러싼 악재는 한둘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독점 관련 소송에 걸렸고 콜라 원액 가격인상을 둘러싼 남미 업체들과의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는 코카콜라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코카콜라는 맥도널드,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함께 브랜드 파워 1, 2위를 다투는 업체다. 그런 코카콜라가 어째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을까.
코카콜라의 가장 큰 문제는 ‘만년 1등’에 만족한 나머지 신상품 개발에 소홀했다는 데 있다. 경쟁사인 펩시가 게토레이 등 새로운 상품을 매년 출시한 데 비해 코카콜라 는 1982년의 다이어트 코크 외에 이렇다 할 신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전세계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탄산음료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데도 거기에 대처할 만한 전략을 세우지 않았다. 코카콜라의 경영진은 사업 다각화에 쓰기 위한 자금을 축소하는 시대착오적인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코카콜라의 아이스델 회장도 전임 경영진이 단기수익에 집착해 중장기 전략 마케팅에 소홀했다는 점을 시인한 바 있다.
올해 코카콜라는 커피 추출물이 들어간 ‘코카콜라 블랙’ 등의 신상품을 내놓는다. 전세계적으로 광고 캠페인도 새로이 진행할 예정이다. 100년간의 1등 자리를 빼앗긴 코카콜라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흔들리는 코카콜라>
● 시가총액 2위로 펩시에 밀려
● 유럽에선 독점 관련 소송
● 남미업체와는 콜라 원액가격 분쟁
● 미국내 대학가 불매운동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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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0) - 노키아
인간과 인간을 잇는 투명 경영 2006/01/05
1991년 ‘인간중심’ 선언 … 소비자 신뢰 얻어
1998년이후 기술력·믿음으로 ‘부동 1위’ 수성
■ 휴대폰 판매량 세계 1위 ‘노키아’
▶ 노키아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슬로건을 모토로 소비자 중심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사진은 인체공학적 디자인으로 인기를 끈 ‘nokia 7610’ 모델.
‘IT 강국 대한민국’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즈음이다. 특히 휴대폰에서는 삼성, LG 등의 한국 회사들이 해외 각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애니콜’도 아직 세계 1위 브랜드로는 등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휴대폰은 과연 어떤 회사 제품일까? 정답은 노키아다. 지난 11월 발표된 2005년 3/4분기 휴대폰 시장 점유율을 보면, 노키아가 전세계 시장의 32.6%를 점유함으로써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2위는 18.7%의 모토롤라이며 삼성전자는 3위, LG전자는 소니-에릭슨에 이어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노키아는 지난 3분기 동안 전세계에서 6660만대의 휴대폰을 팔았는데 이는 전년도 대비 29% 증가한 실적이다. 2위인 모토롤라의 판매실적(3870만대)과는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노키아는 브랜드 가치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미국 시사주간지인 <비즈니스 위크>와 인터브랜드가 매년 실시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 조사를 보자. 2005년 조사 결과에서 노키아는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에 이어 세계 6위 를 차지했다. 노키아의 추정 브랜드 가치는 264억 달러. 1위부터 5위까지는 모두 미국 회사다.
■ 노키아, 국가가치도 상승시키다
노키아의 모국 핀란드는 인구가 514만명에 불과한 북유럽의 작은 국가다. 노키아의 약진 이전까지는 산타클로스의 나라로만 알려졌던 변방 국가 핀란드는 이제 노키아 덕분에 국가신인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어떻게 이 작은 나라의 회사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휴대폰을 만들게 된 것일까? http://www.drc.co.kr
노키아의 역사는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5년 핀란드의 템페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프레데리크 이데스탐이 만든 제지회사가 노키아의 시작이었다. 종이와 포장용 판지 등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노키아는 꾸준히 성장했다. 그런데 노키아는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20세기 들어 기술이 발전하고 트렌드가 변화하자 노키아는 제지회사에서 고무회사, 케이블회사, 전자제품 회사 등 새로운 기업으로 변신을 거듭했던 것이다. 원래 핀란드인들은 ‘내던져도 네 발로 안전하게 땅에 내려앉는 고양이같이 적응력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평가된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국민성처럼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변화에 잘 대처하던 노키아는 1990년대 초, 위기를 맞는다. 지나치게 많은 사업에 손을 댄 ‘문어발 경영’으로 회 사의 자금 사정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1991년 새 CEO로 임명된 요르마 울랄라는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오직 통신사업에만 집중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울랄라는 통신업계의 새로운 기술을 선도하는 동시에, 사람을 최우선으로 삼는 투명하고 인간적인 경영을 노키아의 모토로 내세운다.
이때부터 노키아의 브랜드 슬로건은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 즉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가 되었다. 휴대폰의 특성을 잘 간파한 이 슬로건은 바로 노키아의 기업정신이기도 하다.
▶ 헬싱키에 있는 ‘노키아 하우스’는 노키아와 소비자 사이에 장벽이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고객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는 노키아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소비자들은 노키아를 기술이 뛰어난 기업, 그리고 ‘휴먼테크놀로지 기업’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핀란드에서는 유산을 노키아에 모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나는 노인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 같은 기술과 신뢰를 바탕으로 노키아는 1998년에 휴대폰 세계시장 점유율 22.9%를 기록, 부동의 1위 회사였던 모토롤라를 제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1위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다.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노키아의 본사‘노키아 하우스’는 2만 6000장의 유리로 둘러싸인 투명한 빌딩이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다리까지도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이 건물은 노키아와 소비자 사이에는 어떤 장벽도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100년이 넘도록 탄탄하게 성장해 마침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선 노키아의 기업정신을 잘 상징해 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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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9) - 애플
CEO의 ‘열정·감각’으로 부활하다
1997년 부도직전, 창업주 스티브 잡스 재영입
iPod·iMac 등 세련된 디자인으로 시장 석권 2005/12/22
▶ 애플사가 전세계에서 히트시킨 차세대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 iPod, 올해 일본에서만 150만대가 팔렸다.
올해 미국에서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기업은 어디일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정답은 애플컴퓨터다. 애플은 12월 9일까지 연초 주가 대비 131%의 상승률을 기록해 2위인 구글(112%)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올해는 애플컴퓨터가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는 1975년 부모님의 차고에서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컴퓨터를 창립했다. 직원 두 명의 이 초미니 기업은 시작한 지 불과 10년 만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시가총액 20억 달러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바로 예쁜 디자인의 컴퓨터‘매킨토시’때문이었다.
창립 10주년인 1985년, 애플에서는 엄청난 쿠데타가 일어났다. CEO인 스티브 잡스가 해고된 것이다. 잡스의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회사에서 분란이 끊이지 않자 결국 잡스가 임명한 이사들이 연대해 그를 해고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애플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애플의 주력 상품인 매킨토시는 IBM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체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제품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급기야 회사는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결국 1997년 애플은 스티브 잡스에게 ‘임시’라는 딱지를 붙여 다시 CEO로 추대한다. 잡스는 비슷비슷한 기술 체제에서는 디자인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보고, 다양하고 세련된 디자인 개발에 주력한다. 그 결과가 바로 ‘아이맥’‘파워맥’‘아이포드’등이다. 원색의 컬러를 사용한 누드컴퓨터 ‘아이맥(iMac)’은 젊은층에 큰 인기를 얻으면서 고사 직전의 애플을 살려낸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애플은 새로운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팟은 단순한 MP3 플레이어가 아닌, 4기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가 달린 ‘작은 컴퓨터’다. 아이팟은 음악 파일 저장기기의 흐름을 CD에서 휴대용 하드디스크로 옮겨 놓았고, 수많은 젊은이가 아이팟에 열광했다. http://www.drc.co.kr
아이팟 애용자를 가리키는 ‘파디(poddy)’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아이팟의 히트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최고 히트 상품 역시 아이팟이다.
아이팟은 올해 일본에서만 150만대가 팔렸다. 또 영국의 뉴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팟캐스트(Potcast)’를 선정했다. ‘아이팟’과 ‘방송(Broadcast)’의 합성어인 ‘팟캐스트’는 아이팟으로 보는 개인 방송을 의미한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행로는 한 기업에서 경영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경영자의 열정과 그 열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 특히 디자인 개발이 오늘의 애플을 있게 한 것이다.
▶ 애플사가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컴퓨터를 표방하며 출시한 iMac G5 . 기존 매킨토시의 수려한 디자인에 화상채팅, 무선 마우스·키보드, 디지털기기와의 직접 연결 등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화돼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역정
2005년 6월, 애플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인상 깊은 축사를 했다. 췌장암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서 이렇게 가까이서 졸업식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라는 말로 축사를 시작했다.
잡스는 오클라호마의 리드대에 입학한 지 1년 만에 중퇴하고 스무 살에 ‘애플’을 설립해 매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했지만 꼭 10년 만에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해고됐다.
잡스는 이후를 ‘2막’으로 표현했다. 애플에서 쫓겨난 후 ‘넥스트’와 ‘픽사’를 설립했으나 경영은 수월치 않았다. 빚더미에 올라 집과 자동차까지 뺏길 뻔한 순간에 픽사의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흥행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애플로 금의환향하기에 이르렀다. 단 50년의 인생에서 그는 추락과 재기를 거듭했고 암이라는 병마마저도 이겨 낸 것이다. 잡스는 졸업생들에게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처럼,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미련할 정도로 자기의 길을 가라”는 말로 축사를 마쳤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세계의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을 선정한다. 올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1위는 빌 게 이츠, 2위가 스티브 잡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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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8) - 산토리
‘문화·환경’을 파는 주류기업
1899년 창사 후 ‘주류사업 외길’ … 국민기업 자리매김
문화 운동 후원·절주 캠페인 등 고급 마케팅 ‘차별화’ 2005/12/15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미국인 남녀 주인공이 일본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남자 주인공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을 위해 일본에 온 할리우드 배우로 나오는데, 밥이 모델이 된 위스키 회사는 일본의 국민기업 ‘산토리’다.
■ ‘철학’을 가진 브랜드, 산토리
어떤 사람들은 이 설명에 의구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술 만드는 회사가 어떻게 국민기업이란 말인가?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나? 하고 말이다. 사실 술이나 담배 등 중독성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사회의 필요악이다. 그러니 주류 회사가 국민기업이라는 설명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분명 산토리는 일본의 국민기업이자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중의 하나다. 1899년 오사카에서 ‘토리 상점’을 연 것을 기업의 창립 시점으로 삼는 산토리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위스키와 와인을 생산한 역사적인 회사이기도 하다. ‘산토리’라는 이름은 ‘태양(Sun)’과 창업자인 토리 신지로의 ‘토리’를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산토리가 가진 경쟁력의 핵심은 이 브랜드가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주류라는 한 우물을 파는 동시에, 주력 업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관된 사업 확장, 문화와 환경운동을 후원하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마케팅, 절주 캠페인 등 회사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장기적인 안목 등이 오늘날의 존경받는 기업 산토리를 키운 것이다.
산토리는 위스키 회사로 잘 알려 져 있지만 산토리가 맨 처음 생산한 것은 와인이다. 와인은 1907년부터, 위스키는 1923년부터 생산했다. 현재도 산토리는 자사의 주류 생산을 위해 양조장과 포도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산토리의 포도농장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다. 1960년대에 맥주 시장에도 뛰어들었지만 산토리 맥주는 아사히와 기린 등 선발주자들에 밀리는 편이다. 그러나 와인과 위스키에서 산토리는 100년 가까이 선두 자리를 뺏긴 적이 없다.
재미있게도 산토리는 주류 외에 스포츠 음료와 직영 레스토랑, 약품, 화훼 등의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들 사업은 모두 산토리의 핵심인 주류 사업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와인 생산을 위해 외국 포도나무를 들여와 일본 식생에 맞게 개량하는 과정에서 화훼 사업이 시작되었고,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다 신약을 개발, 약품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식이다. 산토리는 세계 최초로 푸른 장미와 푸른 카네이션을 재배하는 데 성공한 진기록도 남겼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일본 산업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산토리는 해외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산토리의 해외 매출은 2000억엔 수준으로 기업 전체 매출의 15%에 달한 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산토리는 ‘매년 음주운전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등의 항의에 시달렸다. 그러자 산토리는 과감하게 ‘술을 적게 마시자’는 절주 캠페인을 시작했다. 술을 적당히 마심으로써 건강을 지키고 즐거운 음주문화를 확립하자는 산토리의 캠페인은 기업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은 ‘술을 판다 해도 산토리는 무언가가 다르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산토리는 1991년부터 음주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http://www.drc.co.kr
■ ‘술을 팔아도 산토리는 다르다’
또 산토리는 1961년 일본 전통미술 전문 박물관인 ‘산토리 미술 박물관’을 열었으며 1986년에는 클래식 음악 전용 홀인 ‘산토리 홀’을 도쿄에 개관했다. 산토리 홀은 일본에서 가장 훌륭한 클래식 홀로 손꼽힌다. 이 문화 마케팅의 이면에는 산토리의 전략이 숨어 있다.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산토리의 위스키를 마신다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 양주 일변도인 시장에 뛰어들어 국산 양주 생산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점이나 주류 회사이면서도 국민기업의 이미지를 심는 데에 성공한 점 등 산토리는 여러 모로 특이한 기업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100년 이상 한 가지 사업영역에서 꾸준히 성공하고 있는 기업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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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7) - 뉴 비틀
디자인·실용성으로 50년 이어와
1934년, 첫 생산 후 저가 모델로 전세계서 인기몰이
1998년, 성능 개선형 ‘뉴 비틀’ 출시로 전성기 재현 2005/12/08
▶ 폭스바겐은 뛰어난 디자인과 감각적 마케팅으로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사진은 이런 진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동독 지역에 설립한 ‘미래형 투명유리공장’.
노란색 또는 연두색의 동그란 소형차가 거리를 돌돌돌 굴러 간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 이 소형차에 집중된다. 엇비슷한 모양에 무채색 차들 일색인 거리에서 파스텔톤의 차는 선명하게 눈에 띈다. 마치 회색 아스팔트에 내려앉은 귀여운 풍뎅이 같다. 바로 독일 폭스바겐(Volkswagen)이 내놓은 딱정벌레차 ‘뉴 비틀(New Beetle)’이다.
■ ‘20세기 최고의 산업디자인’ 각광
원래 이름보다 딱정벌레차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비틀은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이기도 하다. 미국, 일본과 함께 자동차 강국인 독일은 벤츠, BMW 등 성능이 뛰어난 차들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이런 ‘독일병정’들의 무리에서 가장 오래 팔린 차는 실용적이고 싼 데다 귀엽기까지 한 비틀이다. 비틀은 1934년 처음 생산된 이후 50년 가까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전통적인 자동차 왕국 미국마저 이 딱정벌레차에 반해 버렸다.
1949년 비틀이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미국인들은 이 차를 사기를 꺼려 했다. 비틀은 미국인들이 타기에는 너무 작았고, 부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전통적으로 유럽인들은 소형차를, 미국인들은 대형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독일차는 소비자에게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를 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내고 미 전역을 조직화한 치밀한 영업과 애프터서비스로 단숨에 미국 시장을 정복했다.
독일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비틀은 1960년대 미국에서 당당히 국민차로 군림했다. 1965년 미국 수입차 시장의 67%를 비틀이 차지했다는 사실만 봐도 폭발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비틀의 성공에 자만한 나머지, 대형 고급차로 생산 기종을 다양화하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른다. 소비자에게 비틀은 작고 실용적인 차였지 비싼 고급차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마르크화의 강세로 인해 해외 시장에서 비틀의 소비자 가격이 날이 갈수록 오르는 악재까지 겹쳤다. 결국 비틀은 50년을 채우지 못한 채 1978년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비틀의 생명력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 앙증맞은 차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고 폭스바겐측은 그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알아차렸다. 1998년, 폭스바겐은 과거 비틀의 외관은 그대로 살린 채 성능을 대폭 개선한 신기종 ‘뉴 비틀’을 출시했다. 뉴 비틀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한 세대 전 폭스바겐이 누렸던 전성기를 재현하고 있다.
■ 감성마케팅 통한 복고 바람 ‘뉴 비틀’
그렇다면 뉴 비틀이 이토록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케팅 전문가들은 뉴 비틀의 성공 이유로 ‘복고’와 ‘감성’을 든다. http://www.drc.co.kr
우선 1990년대 들어 자동차 업계에는 대대적인 복고 바람이 불었는데 폭스바겐의 페르디난트 피치 회장(그는 비틀을 개발한 포르셰 박사의 손자다)이 이 점을 간파한 것이다. 실제로 포드의 ‘선더버드’, 크라이슬러의 ‘크루저’ 등 자동차 회사들은 1940~50년대에 유행했던 차들의 디자인을 응용한 신제품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장년층 소비자들은 여전히 튼튼하고 값싼 차 비틀을 기억하고 있었고, 뉴 비틀은 이 같은 이미지에 힘입어 손쉽게 인기 차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젊은 소비자들을 자극한 감성 마케팅이다. 코카콜라병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산업디자인으로 꼽히는 비틀의 외관에 노랑과 연두, 은색 등 각종 파스텔톤의 색상을 입힌 뉴 비틀은 젊은층의 입맛에 맞았다. 그리고 ‘일생에 딱 두 번’ 같은 감각적인 광고 문구와 뉴 비틀을 꽃잎 모양에 대비시킨 여성 취향의 TV 광고 시리즈들은 신세대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뉴 비틀의 뛰어난 성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이 같은 성공이 불가능하다. <보랏빛 소가 온다>의 저자 세스 고딘은 뉴 비틀의 성공 이유를 ‘소비자의 좋은 평가와 입소문, 그리고 탁월한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RV, SUV 등 레저용 차량들이 물결을 이룬 도로에 동그랗게 생긴 뉴 비틀이 지나가기만 해도 그 자체가 마케팅이었다는 게 고딘의 평가다.
즉, 아무리 좋은 디자인과 센세이셔널한 광고가 있다 해도 제품 자체의 성능이 좋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조 비틀에 이은 뉴 비틀의 성공은 뛰어난 디자인과 감각적인 마케팅, 그리고 우수한 성능이 결합해서 이루어 낸 합작품이다.
▶ 독일 폭스바겐의 ‘비틀’은 1934년 처음 생산된 이후 싼 가격과 높은 실용성으로 50년 가까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사진은 폭스바겐이 1998년 제2의 도약을 다짐하며 출시한 ‘뉴 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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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6) - 더 바디샵
상품이 아닌 ‘꿈과 메시지’ 팝니다
‘화장품 - 환경보호’ 결합으로 차별화 성공
30년만에 세계 1900매장 … 마케팅 스탠더드로 2005/12/01
▶ 바디샵의 서울 명동매장에서 고객들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더 바디샵(The Body Shop)’은 확실히 특별한 가게다. 보통 화장품 가게들은 엄청나게 화려한 장식과 색색가지 데커레이션으로 100m쯤 앞에서도 눈에 띈다. 백화점 1층에 입점한 화장품 코너들은 보석이나 명품 코너들보다도 더 번쩍거리며 갖가지 향수 냄새를 퐁퐁 풍긴다. 거기에 비해 초록색 간판에 멋없는 플라스틱 병에 담긴 화장품들을 진열한 것이 전부인 바디샵의 매장들은 영 초라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나 별 볼일 없는(?) 화장품 회사가 불과 30년 만에 전 세계 1900곳의 매장을 연 세계 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디샵의 성공 사례는 마케팅 교과서의 단골 주제일 정도로 특별하다. 영국 브랜드인 바디샵은 샤워용 비누나 로션, 샴푸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과일이나 꿀 등의 천연 원료를 쓴다고는 하지만, 그런 화장품들은 바디샵 외에도 많다.
그렇다면 바디샵만의 차별화된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바디샵은 ‘화장품’과 ‘환경보호’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를 결합한 최초의 기업이다. 이 점 때문에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이 바디샵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1976년 영국의 평범한 주부 아니타 로딕은 영국 남부의 해안도시인 브라이튼에 ‘바디샵’이라는 간판을 단 작은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 로딕의 남편이 2년이나 장기 여행을 떠나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궁리 끝에 로딕은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로딕은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면서 아마존 등지의 원주민 여자들이 천연 재료로 비누를 만들어 쓰는 모습을 많이 보았던 것이다. 로딕은 이런 천연 재료 비누 몇 가지를 직접 만들고 자신이 사용한 재료를 플라스틱 병에 써 붙였다. http://www.drc.co.kr
이것이 바디샵의 시작이 었다. 그러나 바디샵은 분명 다른 화장품들과는 달랐다. 바디샵의 제품들은 환경보호라는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디샵의 모든 제품 용기에는 ‘Against Animal Testing’, 즉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또 화장품의 주된 재료로는 꿀이나 바닐라, 과일, 코코넛 오일 등 천연 재료를 썼다. 환경과 동물보호를 중시하는 영국에서도 이런 화장품은 없었다.
화장품은 어디까지나 사치스러운 소비재다. 화장품 용기를 가리키는 영어 속어로 ‘Vanity Bag(허영을 담은 봉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바디샵은 화장품을 사는 일이 단순히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행위가 아닌, 환경과 인권을 돕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바디샵은 불과 3년 만에 벨기에에 첫 해외 점포를 냈고 1984년에는 ‘바디샵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으로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95펜스에 상장된 바디샵 인터내셔널의 주식은 상장 당일 다섯 배인 4파운드 80펜스로 마감되었다. 단 하루 만에 로딕은 영국 내 서열 5위의 갑부가 되었다.
2006년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바디샵은 현재 전 세계 51개국에 1900여 매장을 연 거대 기업 으로 성장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바디샵은 동물 실험 반대, 커뮤니티 트레이드(원료 생산지의 원주민과 회사가 직거래를 하는 방식), 지구환경 보호 등 화장품 회사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다섯 가지 기업이념을 내걸고 있다.
바디샵의 신화는 하나의 컬트 브랜드가 어떻게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충실한 소비자를 양산시키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애덤 모건은 저서 <큰 고기를 낚는 방법>에서 “당신은 지구의 환경보호를 위해 외국 대사관 앞에서 플래카드를 흔들며 시위를 하겠는가, 아니면 과일 향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욕조에 드러누워 목욕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모건의 말처럼 바디샵의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입하면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자부심은 바디샵 제품에 대한 지속적인 소비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현대는 상품이 아니라 메시지와 꿈을 파는 회사가 성공하는 시대다. 미국의 광고전문가인 더글러스 애트킨은 “바디샵의 제품들은 모두 기존 제품과 비슷하다. 그러나 아니타 로딕은 자신의 신념 위에 거대한 기업을 세웠다. 지금 바디샵이 하나의 제국 이 된 것도 바로 이 같은 신념 때문이다”라고 바디샵의 성공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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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5) - 구글 Google
IT업계 새바람, MS를 위협하다
맞춤검색 기술로 인터넷검색 세계 최고 등극
‘혁신·고객 감동’ 최우선 … 창업후 약진 거듭 2005/11/24
2005년 11월 17일 미국 나스닥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220선에 안착했다. 이 같은 나스닥의 호황 뒤에는 ‘구글(Google)’이 있었다.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 구글이 17일 마침내 주당 400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이 여파로 야후 등 다른 인터넷주까지 강세를 나타내 나스닥지수 2220선 돌파를 견인했다.
구글은 불과 1년 3개월 전인 2004년 8월 공모가격 85달러에 나스닥에 상장했다. 1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5배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한 것. 물론 구글 투자자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17일 구글은 온라인 경매 업체 ‘이베이’에 도전하는 새로운 서비스 프로그램 ‘구글 베이스’를 공개해 주가 급등세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글은 지난 10월 말에 시가총액 1000 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 액수는 온라인의 경쟁 업체인 야후(490억 달러)의 두 배 이상인 것은 물론, 오프라인 미디어의 대표주자인 타임워너(790억 달러)나 월트디즈니(520억 달러)보다 높은 액수다. 상황이 이러니 IT 업계의 절대지존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스티브 발머는 공개석상에서 “구글을 죽여 버리겠다”는 거친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의 역사는 이제 겨우 7년에 불과하다. 구글은 1998년 스탠퍼드 대학원생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친구 집 창고에서 창업한 회사다. 이 두 친구는 유명 검색엔진 회사들로부터 문전박대당하는 데 지쳐 있었다. 이들은 쓰레기 정보들이 넘치는 인터넷 환경에서 보다 양질의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맞춤 정보검색 기술(Back Rub)’을 개발했으나 야후를 비롯한 어떤 회사도 이 연구 성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단어인 ‘googol’에서 본뜬 ‘구글’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구글’은 인터넷의 모든 것을 담아 내겠다는 두 창업자의 의지를 담은 이름이었다.http://www.drc.co.kr
좋은 정보를 단시 간에 찾아 주는 구글의 맞춤 검색 기술은 정보의 홍수에 지친 네티즌에게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구글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구글의 전략은 ‘고객 감동’과 ‘혁신’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변화에 민감하고 효율성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네티즌의 기호에 맞는 혁신을 끊임없이 일으켜 고객들을 구글의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글은 메일박스의 용량이 넘쳐 자주 메일박스가 터져 버리곤 하는 대다수 네티즌의 고충을 간파하고 아예 1기가의 용량을 주는 ‘G-메일’을 선보였다. 1기가면 메일박스가 아니라 웬만한 웹하드 수준이다. 네티즌은 두세 달마다 메일박스를 비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G-메일’로 몰렸다. 또 구글은 인터넷 검색뿐 아니라 웹브라우저, 운용체제, 무선인터넷, 그리고 유통과 부동산까지 사업영역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기존 IT업계에 일대 새바람을 일으켰다.
기존 인터넷 업체들은 구글을 ‘피라미드 조직 같다’고 비난하지만, 이미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구글 편으로 돌아섰다. 구글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2005년 6월 조사한 최근 4년간의 브랜드 가치 상승률 3위에 올랐다. 구글의 올 3 /4분기 수익은 전년 동기의 7배인 4억 달러에 달했다.
구글의 시가총액은 현재 IT 업계의 공룡 마이크로소프트의 절반 정도다. 그러나 구글이 약진을 거듭하는 데 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최근 6년간 1/2 수준으로 떨어졌다. 드디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장 빌 게이츠가 구글에 대해 “위협적이지만 두렵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 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을 자신들의 경쟁 상대로 인정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도전자 구글과 챔피언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사이버 매치’가 시작된 셈이다.
변화와 혁신은 모든 기업이 달성하기를 원하는 목표이지만, 실제로 구글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변화와 혁신을 향해 달려가는 기업은 찾기 어렵다. 구글의 사례는 고객이 진정 변화하는 기업에는 절로 감동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이제 구글의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소비자들과 IT 관계자들은 두려움 없는 도전의 대명사 구글의 미래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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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4)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포츠비즈니스의 지평을 열다
세계 스포츠구단 중 자산가치 1위 … 브랜드파워 ‘최강’
TV중계·테마 파크형 구장 운영 등 다양한 수익원 확보 2005/11/17
▶ 테마파크 형식으로 설계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용 구장 ‘올드 트래퍼드’. 축구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아 수익창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1월 12일 서울 상암구장에서 열린 한국과 스웨덴의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은 아쉽게 무승부로 끝났다. 그러나 한국 대표선수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과 이영표는 전후반 내내 차원이 다른 축구를 선보여 ‘과연 프리미어 리거!’라는 찬사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소속되어 부쩍 관심을 끄는 영국 최고의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FC). 그런데 우리에게 뛰어난 축구 클럽으로만 알려져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사실 일류 기업이기도 하다.
여러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축구는 한 해 동안 15억 달러가 넘는 돈이 몰릴 정도로 인기 있는 종목이자 산업이다. 그리고 유럽의 축구구단들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곳이 바로 ‘맨유’, 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4년 한 해 동안 2억 5000만 유로(약 325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구단의 자산 가치 역시 세계 프로 스포츠 구단 중 1위다. 맨유의 브랜드 파워는 여느 일류 기업 못지않다.
맨유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축구를 잘하는 클럽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통 프로 스포츠 구단들은 수익의 대부분을 TV 중계료에 의존한다. 미국의 프로야구나 프로농구팀은 매출액의 3분의 2 이상을 TV 중계권료에서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입장권 판매와 TV 중계료, 스폰서 및 캐릭터 상품 판매 등으로 수익구조가 골고루 나뉘어져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축구경기에서만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나선다. 맨체스터에 있는 맨유의 전용 구장 ‘올드 트래퍼드’는 단순한 경기장이 아닌 테마파크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그래서 축구경기가 열리든 열리지 않든 항상 소비자들이 들끓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메가스토어는 유니폼이나 축구공 등 축구 관련 상품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활용품과 맨유 신용카드, 심지어 보험까지도 판매한다. 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스포츠 구단으로는 사상 최초로 전용 방송국(MUTV) 을 개국해 선수와 팬들이 좀더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http://www.drc.co.kr
이처럼 다양한 경로의 수익원을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세계 축구시장에서 부동의 매출액 1위를 지키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영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진짜 기업’인데 시가총액이 4억 66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사례는 스포츠 역시 하나의 훌륭한 비즈니스임을 보여 준다. 국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단은 한 해 50억원에서 10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빈약한 입장료 수입과 모기업 후원에만 의존하고 있는 국내 프로구단들에 다양한 마케팅과 수익원 창출로 일류 기업이 된 맨유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극적인 어린이마케팅 … 30년 후를 생각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메가스토어에는 어린이 고객을 위한 상품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아예 어린이 팬 전용 마스코트 ‘프레드 더 레드(Fred the Red)’까지 만들 정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린 고객을 사로잡는 데 열심이다. 또 소아암과 천식을 앓는 어린 환자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으며 유소년 축구 클럽을 운영해서 유망한 선수들을 발굴해 내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어린이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맨유’의 팬으로 만들겠다는 장기적 전략이다. 맨유의 팬이었던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맨유를 응원하게 마련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어린 유망주들을 발굴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핵심 멤버로 키운다는 전략. 유망주를 발굴해서 육성하면 팀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될뿐더러 훗날 다른 팀으로 이적시킬 때도 막대한 이적료를 챙길 수 있다. 현재 맨유를 구성하는 선수 중 유소년 축구 클럽 출신은 70%를 넘으며 한때 팀의 간판 스타였던 데이비드 베컴 역시 맨유의 유소년 축구 클럽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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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 드, 무엇이 다른가(3) - 질레트 Gillette
최초의 면도기, 최고의 면도기
1903년 창업 … 현재 세계점유율 73% 차지한 최강자
‘수익 40%는 신제품에서’ 공격형 기술개발 전략 주효 2005/11/10
▶ 1992년부터 8년간 무려 7억 5000만 달러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개발한 ‘마하3’.
성인 남자 한 명이 평생 면도하는 데 보내는 시간은 3000시간, 날짜로 따지면 140일 정도 된다. 그런데 매일 아침 잠이 덜 깬 상태로 욕실에서 면도기를 들고 있는 남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까? 뛰어난 면도날을 개발하는 데는 막대한 연구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 최대한 얇으면서 최대한 내구성이 강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
칼날이 얼굴을 베지 않는 ‘안전 면도기’는 1901년 킹 질레트라는 미국인에 의해 개발되었다. 질레트는 이발사의 빗에서 힌트를 얻어 얼굴 피부를 벨 위험이 적은 안전 면도기를 개발했다. 그는 이 발명품을 창업으로 연결해 1903년 보스턴에 면도기 회사 ‘질레트(Gillette)’를 차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최초의 면도기’인 질레트가 창업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최고의 면도기’라는 사실이다. 질레트는 현재 전 세계 시장의 73%를 점유하고 있는 면도기 왕국이다. 매일 1억 3000만명의 소비자들이 질레트 면도기를 사용한다. 또 오래된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투자가치나 성장잠재력이 뛰어나다. http://www.drc.co.kr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는 주식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투자한 다섯 가지 브랜드가 코카콜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질레트, 듀라셀, 버드와이저라고 보도했다.
어떻게 질레트는 100년 이상 최고의 브랜드로 군림할 수 있었을까? 그 열쇠는 꾸준한 연구개발과 적극적인 신제품 개발에 있다. 즉, 과감한 ‘자기 공격 전략’인데 질레트는 수익의 40%가 신제품에서 나와야 한다는 기술전략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질레트는 1970년대에 큰 위기를 맞았다. 경쟁사들이 싸고 편리한 일회용 면도기를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질레트 역시 일회용 면도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후발 주자인 데다가 일회용 면도기의 가격이 워낙 싸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자 질레트는 저가 제품을 과감히 포기하고 보다 비싸고 좋은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센 서 프로젝트, 마하3 등의 신제품이다.
특히 세 개의 면도날을 한 대의 면도기에 부착한 마하3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7억 5000만 달러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개발한 제품이다. 이 금액은 같은 기간 동안 한국 자동차산업이 투자한 연구개발비 총액과 맞먹는다.
마하3는 첫 출시 당시인 1999년의 미국 내 소비자가격이 1달러 60센트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6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이 되었다. 경쟁사 제품보다 50% 이상 비싼 가격이었지만 소비자들은 ‘항상 뛰어난 제품을 내놓는 질레트라면 비싸도 써볼 만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 준 것이다.
지난 9월 14일 질레트는 세계 최초의 5중날 면도기 ‘퓨전’을 공개했다. 경쟁사인 쉬크의 4중날 면도기 ‘콰타로’를 뛰어넘는 5중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적극적인 연구개발이 최초의 면도기 질레트를 언제나 최고의 면도기로 군림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자산임이 분명하다.
고유방식 지키는 사업다각화로 성장 앞당겨
■ 질레트의 사업영역 확장
사람들은 ‘질레트’ 하면 면도기만 떠올리지만 질레트는 면도기 말고도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왔다. 질레트는 현재 만년필 브랜드인 파커, 오랄비 칫솔, 듀라셀 건전지, 브라운 전기용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한결같이 업계 1, 2위를 다투는 브랜드들을 갖고 있는 셈.
그런데 질레트가 인수한 브랜드들을 잘 살펴보면 어떤 공통분모가 눈에 띈다. 질레트는 기존의 면도기 유통망을 강화시킬 수 있는 사업들을 주로 인수했다. 칫솔, 건전지, 볼펜 등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의 계산대에 질레트 면도기와 함께 디스플레이될 만한 제품들이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질레트 면도기를 집어든 고객은 그 옆에 나란히 있는 듀라셀 건전지나 오랄비 칫솔도 함께 사기 마련이다.
이처럼 오직 면도기 사업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사업다각화를 차근차근 이루어 나간 것도 질레트의 꾸준한 성장 원동력 중 하나다. 질레트는 1999년 한국 브랜드인 로케트 건전지의 상표권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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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2) - 리복 Reebok
운동화 대신 ‘패션과 희망’ 팝니다
패 션운동화 등 틈새 공략에 ‘고급이미지’ 차별화 성공
인권보호에도 적극 참여 … 브랜드 가치상승 일궈내 2005/11/03
■ 작은 중소기업서 세계 2위 대기업으로
가죽 구두보다 헝겊으로 만든 운동화가 더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운동화가 단순히 운동할 때 신는 신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명품이나 자동차, 보석으로 사회적 신분을 과시한다면, 10대들은 운동화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 그래서 운동화의 매출은 밖에서 운동하기 어려운 장마철에도 거의 줄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의 운동화 업체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중에서 굳이 업계 선두주자도 아닌 리복(Reebok)을 주목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895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리복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중소기업이었다. 1980년대 초, 조깅화를 만들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는 했으나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리복은 미국 시장을 면밀하게 조사해서 두 공룡 기업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틈새 시장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기능과 패션을 결합한 패션 운동화 시장이었다. 리복은 부드러운 가죽을 대고 여러 가지 색깔을 갖춘 멋진 패션 운동화 ‘프리스타일’을 개발, 불과 5년 만에 미국 시장 점유율을 31%까지 끌어올리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제품 종류에 따른 포지셔닝’을 통해 작은 영국 기업에서 세계적인 상표로 떠오른 것이다. 이어서 리복은 1989년 농구화에 공기를 주입한 ‘펌프(Pump) 운동화’를 내놓아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농구 열풍을 가속화시켰다.
현재 세계의 스포츠용품 시장은 마이클 조던과 타이거 우즈를 앞세운 나이키가 선도하고 있다. 그리고 리복, 아디다스 등의 업체가 그 뒤를 쫓는 양상이다. 그러나 단순히 시장점유율이 처졌다고 해서 리복을 나이키보다 못한 브랜드로 평가할 수는 없다. 리복은 나이키가 따라올 수 없는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http://www.drc.co.kr
예를 들면 리복은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국제 인권보호 운동에 참여해 왔다. 이는 ‘저개발국가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회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쟁업체들과 리복을 차별화시켜 주 는 중요한 마케팅 전략이다. 리복은 1988년 국제인권위원회가 주최하는 세계순회공연 ‘휴먼 라이츠 나우(Human Rights Now)’를 후원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턴, 스팅, 피터 가브리엘 등 쟁쟁한 팝 스타들이 참여한 이 순회공연에 리복은 1000만 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내놓았다. 리복의 한 해 마케팅 금액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투자였다.
또 리복은 일회성 후원에 그치지 않고 ‘리복 인권상’을 제정해서 매년 인권보호를 위해 헌신한 네 명의 젊은이들에게 이 상을 수여한다. 이 같은 후원을 통해 리복은 단순히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함께 걸어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공익 마케팅>의 저자 해미시 프랭클은 “인권보호는 리복의 확실한 기업문화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리복 직원들도 도덕적인 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며 리복의 지속적인 인권보호 운동 참여를 높이 평가했다.
■ 아디다스와 ‘한 지붕 두 가족’
2005년 8월, 아디다스가 리복의 인수를 발표했다. 아디다스는 리복의 브랜드 가격으로 38억 달러를 내놓았다. 리복의 인수로 아디다스는 세계 스포츠용품 1위 업체인 나이키와 양강 구도를 이루며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누가 월드컵을 차지하느냐에 못지않게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장외 전쟁’을 지켜보는 것도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재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작은 기업에서 세계적 상표로 떠오른 리복의 약진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아무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틈새 시장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기업의 공익 마케팅은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특히 공익 마케팅을 통해 기업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우리 회사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투자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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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브랜드, 무엇이 다른가(1) - Canon
작은 거인 캐논, 소니를 제치다
연 3천건 이상 특허 취득, 세계 최고 기술기업
‘기업의 근본, 기술과 사람’ 새 기업문화 성과 2005/10/27
▶ 일본 최고였던 소니를 꺾고 캐논의 명성을 만들어 낸 캐논 도쿄 본사.
■ 기술력 바탕으로 일본 최고 등극 - 한때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소니’가 손꼽힌 적이 있었다. 가볍고 작은 워크맨과 품질 좋은 브라운관으로 상징되는 소니는 코카콜라, 맥도널드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우수 브랜드였다.
그러나 ‘일본 대표 브랜드=소니’의 공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소니 대신 캐논이 들어서 있다. 캐논은 지난 3월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닛케이 리서치가 2200여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수기업 평가에서 도요타와 소니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현재 일본에서는 적지 않은 기업들이 ‘캐논 배우기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서점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캐논 관련 서적이 출간되고 있다.
1937년 설립된 캐논은 복사기, 프린터 등 사무용 기기를 주로 생산하는 중견 기업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캐논은 사업다각화에 성공하면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캐논이 거둔 영업 이익률은 15.7%. 대부분의 일본 제조업체들이 1~3%의 이익률을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16.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8월 발표된 2분기 실적에서는 매출 9125억엔으로 전 분기 대비 8% 증가에 순이익 822억엔을 기록했다. 이 정도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일본의 대표 기업으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http://www.drc.co.kr
캐논의 성장에 대해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은 “핵심은 기술력이다”고 단언한다.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이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것. 캐논은 매년 3000건이 넘는 특허를 취득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이다. 대부분의 기업 연구개발 부서들이 단기간에 실용화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목표로 하는 반면, 캐논은 연구원들에게 10년 후 새로운 고객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연구 테마를 찾도록 독려한다. 캐논은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무기기 생산 위주의 기업구조를 과감히 바꾸어 디지털카메라, 디스플레이 등 새로운 수익원에 뛰어들었고, 이 전략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특이하게도 캐논은 소니 등의 일본 기업들이 미국식 경영을 받아들인 데 비해 일본식 경영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여전히 종신고용제의 틀을 지키 고 있으며 최근에는 오히려 중국 내의 생산공장들을 일본으로 다시 들여오고 있다. 노동집약적 생산은 인건비가 싼 해외에서, 그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제품은 첨단 생산방식으로 일본에서 생산한다는 전략이다. 캐논의 해외 생산비중은 40% 선.
중견 기업에서 일본 대표 기업으로 급성장한 캐논의 사례는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기업의 근본은 기술과 사람’이라는 교훈이 그것이다. “서구식 고용제도는 사원 이동이 잦아 개인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없다. 반면, 종신고용제는 사원을 교육시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며 사원들의 애사심도 강하다”는 미타라이 사장의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기술력의 상징’ 캐논 연구소.
■ 이유 있는 소니의 추락 - 캐논이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데 비해 과거의 일본 대표기업 소니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하트 스트링거 신임 CEO를 맞아들인 소니는 2008년 3월까지 1만명을 감원하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현지에서 4000명, 그리고 해외에서 6000명을 감원하며 전 세계 65곳의 제조공장 중 11곳을 폐쇄한다는 것. 현재 소니의 전 세계 종업원 수는 15만 1400명 선이다. 이중에서 1만명을 감원하면 전 종업원의 7%가 해고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소니의 자구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소니의 구조조정 계획이 충분치 못하다고 보고 있다며 소니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소니의 무디스 신용등급은 최상위 등급보다 네 단계 아래인 ‘A1’다.
지난 5년간 소니의 주식 가치는 3분의 2나 떨어졌다. 왜 소니는 이처럼 급격한 하락세를 겪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소니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은 “삼성을 비롯한 후발업체들이 반도체, 디 스플레이 등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부품과 관련 기기에 힘을 쏟는 동안, 소니는 고집스럽게 브라운관에만 매달렸다. 소니의 부진은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기업은 언제든 낙오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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