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암 박지원 소설집
지은이 : 박지원
옮긴이, 해설 : 간호윤
출판사: 새물결 플러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을 읽으며 인용된 박지원 소설이 궁금하여 선택해 보았다.
시간이 흘러도 현재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있고, 시대가 맞지않아 더이상 공감하기 어려운 글이 있다.
박지원 소설집 속의 이야기는 양쪽 다 속하는것 같다.
51쪽 : 예덕 선생전 중에서
선귤자는 엄행수를 이름 대신 '예덕선생' 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그런데 연암은 하필이면 왜 똥푸는 이를 이 글의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일신수필>이라는 글을 보면 똥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있다.
똥이란 지극히 더러운 것이지만 밭에 거름을 준다면 마치 금처럼 아까워 한다. 길에 버린 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삼태기를 메고서 말꽁무니를 따라 다닌다. 이러한 것을 네모나게 쌓거나 혹은 팔각으로 혹은 여섯모로, 혹은 누대의 모형처럼 만든다. 똥거름을 보니 천하의 제도가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거 말한다.
"기와 조각과 똥거름 이것이 장관이다."
연암은 "똥이란 지극히 더러운 것." 이라 하면서도 가로되, "장관(壯觀)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평생동안 실천한 실학사상과 이용후생이 그대로 담긴 연암 사상의 고갱이다.
연암이 분뇨 수거인 엄행수에게 '선생' 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며 공연한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것이 존중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68쪽 민웅전 중에서
"나는 특히 먹는게 싫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니,이것이 병이 되었나 봅니다."
그러자 민웅이 일어나 나를 축하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노인장께서는 무엇을 축하한단 말씀이시지요?"
"그대는 형편이 어려운데 다행히 먹는 것을 싫어 한다니 재산이 좋이 늘 것이고, 잠을 자지 못한다니 밤낮을 겸하여 곱절을 사는 셈이잖소.재산은 늘고 두배를 사니 오래 살고 또 부자가되겠구려"
웃음이 나는 장면이다. 비꼬는 걸까?
결국 이야기 속의 나는 민웅이 식사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열리고 콧구멍이 뚫리는 것 같아 전처럼 밥을 잘 먹게 되었다고 한다.
혼밥보다는 함께 먹는것이 최고!!
121쪽 김신선전 중에서
어떤 사람은 "仙이란 山에 사는 사람人이지." 했고 또 어떤 사람은 "山속으로 들어가면 入 바로 仙이 되는게야." 했다. 또 " 선僊 이란 춤추는 모양처럼 가벼이 하늘을 나는 뜻이다." 라고도 했다.
벽곡하는 자가 반드시 신선은 아니리라. 신선이란 마음 답답하니 뜻을 얻지 못한 자일 것이다.
195쪽 역학대도전중
참으로 어렵구나. 배운 사람으로서 인간 답기가.
難作人間 識字人
황현 선생의 절명시
황현(1855~1910)
전라도 광양 출신, 자는 운경, 호는 매천, 1888년 생원회시에 장원 급제했으나 조정의 부패를 개탄하고 귀향. 시문 짓기와 역사연구. 경제학 공부에 열중했다.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나서 망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서로 <매천집> <매천야론> <동비기략>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다.
죽으면서 남겼던 시
배운 사람으로 인간되기가 참으로 어렵다
평생 인간답게 살려면 이 한귀절을 잊지 말아야 할것같다.
고어들이 많아 해설을 읽으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열하일기....고미숙> 그책에 인용된 부분을 확인하며 이런 의미였구나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배경 지식이 부족하니 늘 이해의 폭이 좁아 답답하다.
첫댓글 이 나라에는 불과 16여년 전만하더라도 동성동본 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과여가 가정을 이루어도 그 자식은 사생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족보라는 것은 고려말에 생겨났습니다. 당연하게도 족보는 한나라 문자로 작성되어 한나라 문자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자들만 보유했었지요. 한마디로 권문세족과 왕족만 족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집집마다 족보가 다 있습니다. 현재 족보는 95%가 가짜라는 말입니다. 연암 선생은 "양반전" 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양반이라는 족속들의 파렴치함을 통렬하게 풍자함과 동시에 족보매매 행위와 족보 필사행위의 반사회적인 후폭풍을 일찌감치 예언한것입니다.
방장님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하지 못한 일들은 쉽게 수용하고 용인하기 어렵습니다만, 부족함을 알고 나아가려 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입니다.
낮은곳으로 임하시는 처하님~~
가뭄에 콩 나듯 하시니 더 반가운거 같아요.
댓글 한줄에 힘 내봅니다.
//열녀함양박씨전 줄거리요약입니다.
박상효의 조카딸인 박씨는 대대로 마을 아정을 지낸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려서부터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열아홉 살에 함양 임술증에게 시집갔는데
술증이 본래 병으로 혼인한 지 반년도 안 돼 돌아가셨습니다.
박 씨는 장례를 치른 뒤 며느리의 도리를 다해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편 대상 날 약을 먹고 죽습니다.//
연암이 열녀박씨전을 1787년에 썻고
100년쯤 후인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부의 개가가 허용되었군요.
맞아요.
이 이야기도 소개되어있었어요.
연암은 미망인에게 열녀문을 주는 제도를 비웃었다고.....
역쉬 참 박학다식 하세요.
참 아리랑을 읽다보니
호칭중 김센, 박센 이렇게 부르던데 선생님을 줄임말로 쓰는건 아닌거 같은데.... 혹시 아시면 설명을 부탁드려요.
@눈솔 깨복쟁이 시절부터
유재(이웃) 사람들이 허던 말이라
그런갑다 하제
나도 모르겠구만요
@만득이 그럼 전라도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부르나요?
박센 식사하셨나요?
이런 식으로?
@눈솔 "박샌 밥은 잡샸능가?" 로 인사합니다.
김氏 성을 가진 분들을 부를 때
좀 더 표준에 가차운 절라도 사투리는
칠득이'짐샌' 입니다.ㅎ
@만득이 역쉬 현지 표현이 감칠맛 나네요.
징개 망개는
김제 평야 만경 평야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