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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서울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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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독서일기방 13.독서일기# 연암 박지원~
눈솔 추천 1 조회 122 24.04.12 20:39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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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4.14 22:04

    첫댓글 이 나라에는 불과 16여년 전만하더라도 동성동본 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과여가 가정을 이루어도 그 자식은 사생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족보라는 것은 고려말에 생겨났습니다. 당연하게도 족보는 한나라 문자로 작성되어 한나라 문자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자들만 보유했었지요. 한마디로 권문세족과 왕족만 족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집집마다 족보가 다 있습니다. 현재 족보는 95%가 가짜라는 말입니다. 연암 선생은 "양반전" 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양반이라는 족속들의 파렴치함을 통렬하게 풍자함과 동시에 족보매매 행위와 족보 필사행위의 반사회적인 후폭풍을 일찌감치 예언한것입니다.
    방장님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하지 못한 일들은 쉽게 수용하고 용인하기 어렵습니다만, 부족함을 알고 나아가려 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입니다.

  • 작성자 24.04.14 22:02

    낮은곳으로 임하시는 처하님~~
    가뭄에 콩 나듯 하시니 더 반가운거 같아요.

    댓글 한줄에 힘 내봅니다.

  • 24.04.15 10:45

    //열녀함양박씨전 줄거리요약입니다.
    박상효의 조카딸인 박씨는 대대로 마을 아정을 지낸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려서부터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열아홉 살에 함양 임술증에게 시집갔는데
    술증이 본래 병으로 혼인한 지 반년도 안 돼 돌아가셨습니다.
    박 씨는 장례를 치른 뒤 며느리의 도리를 다해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편 대상 날 약을 먹고 죽습니다.//

    연암이 열녀박씨전을 1787년에 썻고
    100년쯤 후인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부의 개가가 허용되었군요.

  • 작성자 24.04.15 11:45

    맞아요.
    이 이야기도 소개되어있었어요.
    연암은 미망인에게 열녀문을 주는 제도를 비웃었다고.....

    역쉬 참 박학다식 하세요.

    참 아리랑을 읽다보니
    호칭중 김센, 박센 이렇게 부르던데 선생님을 줄임말로 쓰는건 아닌거 같은데.... 혹시 아시면 설명을 부탁드려요.

  • 24.04.15 13:21

    @눈솔 깨복쟁이 시절부터
    유재(이웃) 사람들이 허던 말이라
    그런갑다 하제
    나도 모르겠구만요

  • 작성자 24.04.15 13:22

    @만득이 그럼 전라도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부르나요?
    박센 식사하셨나요?
    이런 식으로?

  • 24.04.15 14:06

    @눈솔 "박샌 밥은 잡샸능가?" 로 인사합니다.

    김氏 성을 가진 분들을 부를 때
    좀 더 표준에 가차운 절라도 사투리는
    칠득이'짐샌' 입니다.ㅎ

  • 작성자 24.04.15 20:57

    @만득이 역쉬 현지 표현이 감칠맛 나네요.
    징개 망개는
    김제 평야 만경 평야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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