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작라(門前雀羅)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권력이나 재물을 잃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門 : 문 문(門/0)
前 : 앞 전(刂/7)
雀 : 참새 작(隹/3)
羅 : 벌일 라(罒/14)
(유의어)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
(상대어)
문전성시(門前成市)
문정약시(門庭若市)
출전 :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이 성어는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이다. 이는 권세를 잃거나 가난해 지면 문 앞에 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방문객이 없어 진다는 의미다. 반대말로 문전성시(門前成市)가 있다. 문전(門前)은 '문 앞'의 뜻이고, 작라(雀羅)는 '새 그물'의 뜻이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라는 두 어진 신하가 있었다. 그들은 학문을 좋아하고 의협심이 강해 한때 9경(九卿)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지만 지조가 강하고 직언하기를 좋아하여 매번 무제(武帝)와 대신들을 무안하게 하였다.
다른 대신들이 그들을 책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천자께서는 공경들과 같은 보필하는 신하를 두셨는데, 어찌 신하된 자로서 아첨하며 뜻대로 따르기만 하여 옳지 못한 곳으로 빠지게 하겠는가? 또 그러한 지위에 있으면 설령 자기 한 몸을 희생시키더라도 어찌 조정을 욕되게 하겠는가?"
이 때문에 좌천과 면직을 거듭하다가 벼슬을 마쳤지만, 이들은 각기 협객을 자칭하며 찾아오는 손님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고, 봉록 따위를 빈객과 잘 나누었다. 그래서 현직에 있을 때는 방문객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들이 관직에서 물러나고 집안 형편이 나빠지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이들의 열전(列傳)을 쓴 사마천(司馬遷)은 그 말미에 다음과 같이 평을 달았는데, 여기서 문전작라(門前雀羅)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이 열배로 늘어나고, 세력을 잃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규(下邽)의 적공(翟公)은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 빈객들이 문을 가득 메우다가 벼슬에서 물러나자 대문 밖에 참새를 잡는 그물을 쳐도 될 정도로 빈객의 발길이 끊겼다(門外可設雀羅). 그러다가 적공(翟公)이 다시 정위(廷尉) 벼슬에 나아가자 빈객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적공은 다음과 같이 대문에 써 붙였다. "한번 죽고 한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一死一生卽知交情), 한번 가난하고 한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一貧一富卽知交態), 한번 귀하고 한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이 나타나네(一貴一賤卽見交情)."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역시 이와 같으니 슬프도다.
문전작라(門前雀羅)는 이와 같이 권력의 부침에 따라 변하는 인심을 나타내는 말로, 한국 속담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앞을 막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끊긴다'는 말과 통한다. 문외가설작라(門外可說雀羅), 문전가설작라(門前可設雀羅)와 같은 말이고, 문전성시(門前成市)와 반대되는 말이다.
인맥의 소중함은 비즈니스 세계와 승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공직사회나 직장생활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무능한 사람들의 경우 인맥(人脈; 줄서기)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이른바 줄서기는 기회 포착에 능해야만 성공할 수 있으며 운이나 아부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진정한 의미의 인맥은 자신의 실력을 반영하게 된다.
인맥을 쌓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실력부터 갖춰야 한다. 실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인맥을 쌓기 위해 애를 써도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인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줄 것이 있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맥도 재산과 마찬가지로 관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어도 인연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쌓이지 않는 법이다. 인연을 소중하게 다루는 비법 가운데 으뜸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아이들 가운데 친구가 유난히 많고 잘 어울리는 아이를 보라. 그러한 아이들은 상대방을 잘 배려한다. 상대방이 삐지면 자존심이 좀 상하더라도 달래고 보는 심성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장난감이나 과자를 잘 나눠줄 줄 안다. 생일날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준다.
어른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어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세계에서 인맥을 쌓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실력을 키운 뒤 배려하고 배려하고 또 배려하자. 그러면 두터운 인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以勢交者 勢退則節
以利交者 利窮則散
보통 인간의 마음 속성이 이러하다. 권세에 아첨하고 이해타산으로 사람에게 접근하고 그리고 어느날 아부했던 그 권세가 정승집 개만도 못할 때 미련없이 떠나고, 꿀을 보고 모여든 새 까만 파리떼가 꿀이 없어지자 다 사라지듯 조삼모사(朝三暮四)같이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물욕에 대해서는 오만가지 계산으로 이익을 쫓는다.
사람의 마음이 잠시도 가만 있지 않으려는 원숭이와 같을까? 사람의 마음이 다 이럴까? 다는 아니라 믿는다. 친구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이들도 있으니까... 이웃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이들도 있으니까... 진정한 마음으로 많고 적음 없이 높고 낮음없이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한결같이 노력하면 좋겠다.
■ 문전작라(門前雀羅)
문앞에 참새 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짐을 비유하는 말이다.
권력이나 부를 얻은 사람의 주위에는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시장에 사람이 몰리는 문전성시(門前成市)는 괜찮지만 세력가의 집에 뇌물을 바치기 위해 복작대면 한심하다.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사람이 몰리는 문정약시(門庭若市)는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말 죽은 데는 간다는 속담이 있다. 대감이 죽으면 잘 보일 필요가 없지만 말이 죽었을 때는 환심을 살 필요가 있어 조문을 한다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꼬집은 말이다.
대문 앞(門前)에 참새 그물을 친다(雀羅)는 이 말은 방문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던 권세가의 집에 세력을 잃는 날부터 발길이 뚝 끊겨 문밖에 새 그물을 칠 정도로 한산해졌다는 것을 나타냈다.
사기(史記)의 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유래한 내용을 보자. 전한(前漢)의7대 황제인 무제(武帝)때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이 있었다. 이들은 사람됨이 깨끗하고 불의를 보면 거침없이 바로잡았다.
임금에게도 충간을 굽히지 않아 높은 직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주위의 모함도 많이 받아 좌천과 면직, 재등용을 되풀이했다. 두 현신이 현직에 있을 때는 방문객이 들끓었지만 벼슬을 내려놓자 발길이 뚝 끊겼다.
사마천(司馬遷)은 한나라 정위(廷尉)라는 벼슬을 했던 적공(翟公)의 예를 들면서 벼슬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문 앞에 새그물을 쳐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적공이 문에 걸어놓은 글을 소개한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一死一生 乃知交情),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一貧一富 乃知交態),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이 나타나네(一貴一賤 交情乃見)."
현직 정승의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 문상을 가는 세태를 지탄을 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자신도 벗어나지 못한다. 권세가는 오히려 발길이 끊어졌을 때 번잡한 생활을 떠나 한가로운 정취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고언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문 앞이 시장을 이뤄도, 거미줄을 쳐도 모두 세상사이니 하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세상은 돌고 돈다.
■ 잠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세속적 가치추구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세속적인 가치에 너무 집착하고 매달리면 추하다. 반면에 세속적 가치를 너무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멀리 하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철이 들고 세상을 알아 갈수록 진정성을 가지고 정의와 원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순식간에 바꾸는 속물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결국 이익을 보는 모습도 자주 접하게 된다. '진정성'이 번번이 '속물성'에게 밀려서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속물성'만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허망하다.
아무리 가식과 속물성이 이익을 보고, 진정성이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내면 깊은 곳에 '진정성'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양심이란 것이 있고, 우리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을 버리거나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않고 살다보면 꼭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네 삶에서 속물성으로 드러나는 '현실'과 진정성으로 나타나는 '이상'은 늘 함께 공존한다. 현실(속물성)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이상화 되고, 반대로 이상(진정성)은 끊임없이 현실화 된다고 했다. 진정성과 속물성이 공존하는 삶이 우리의 모습이다.
세속적인 지위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대문 앞에 사람들로 가득차고(문전성시 門前成市), 세속적인 지위와 돈을 잃으면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더라도 그의 대문 앞은 참새그물을 칠 정도로 한산해진다(문전작라 門前雀羅).
이런 세태는 이미 약 2천 1백 년 전에 사마천이 '급정열전'에서 언급한 바 있다. 사마천은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서도 아침시장에는 밀물처럼 몰려드는 사람과 저녁시장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로 들면서 속물적 세태를 간파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소개되는 조나라의 장군 염파는 세상 사람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처럼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한탄하면서 이러한 행태를 '시도지교(市道之交)'라고 하였다. 세상이 아무리 최첨단 기술시대로 진입하고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이기심과 본성과 인간관계는 2천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사마천은 이미 기원전에 도적 같은 친구 적우(賊友), 놀 때만 함께하는 친구 일우(逸友), 마음과 어려움을 나누는 밀우(密友), 서로 존경하는 친구 외우(畏友)로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한비자는 춘추시대 교사(巧詐)의 상징인 위나라의 악양과 졸성(拙誠)의 상징인 노나라의 진서파의 고사를 통하여 교묘하게 속인다는'교사'와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성을 다하는'졸성' 가운데 졸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巧詐不如拙誠) 역시 기원전에 밝힌 말이다.
주자도 겉모습의 바탕만을 말하는 '사(史)'와 사람의 손때가 묻었지만 진정성을 말하는 '야(野)', 이 두 가지 가운데 '야(野)'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1천 년 전에 한 말이다.
이처럼 옛 성현들이 고전을 통해 후세에 전해주는 삶과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의식들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성과 속물성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면서도 순환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진정성과 속물성이 제각각 드러나기도 하고, 한 때는 진정성이 넘친 모습이었다가도 시간이 흐른 뒤에 속물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 인간의 한계일 것이다.
잠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진짜로 자고 있는 사람은 흔들어 깨울 수 있으나, 실제로는 잠을 자지 않으면서 잠자는 척하는 사람은 아무리 심하게 흔들어도 깨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성 있는 태도로 임하는 사람은 비록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그 잘못과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으나, 진정성 없이 가식적인 태도로 하는 척만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소통과 공감을 나눌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식으로 하는 척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행동하면 그 안에 해답이 있다. 많은 옛사람들이 사람관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결국 '진정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식과 통속성으로 메마른 우리 인생을 촉촉이 적셔줄'진정성'은 우리가 살면서 내면으로부터, 반드시 길어 올려야 하는 마중물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진짜로 하지 않고 가짜로 하는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돌아 볼 일이다.
한거(閑居) / 사마광(司馬光)
(한가한 생활)
故人通貴絶相過,(고인통귀절상과)
옛 친구들 고관대작과 사귀느라 발길 뚝 끊었으니
門外眞堪置雀羅(문외진감치작라)
문밖은 그야말로 참새 그물을 놓아도 될 지경.
我已幽慵僮更懶(아이유용동갱라)
내 진작부터 빈둥거렸지만 일하는 아이마저 더 게을러져
雨來春草一番多(우래춘초일번다)
비 온 뒤 봄풀이 곱절이나 늘어났네.
분주하던 친구들의 발길이 끊기자 집안은 참새 덫을 놓아도 될 만큼 적적하다. 주인이 할 일 없이 빈둥대니 손님 접대할 일이 없어진 아이조차 아예 일손을 놓아버린 모양이다. 봄비 오자 집 안팎이 잡초로 뒤덮여 어수선하다.
사마광은 정치개혁을 둘러싸고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법파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고 그 와중에 격심한 관직의 부침을 겪었다. 그가 15년간 낙양에 은거하며 ‘자치통감(資治通鑑)’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정치적 좌절이 안긴 이런 ‘한가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내심 염량세태를 좇는 야박한 인심을 탓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바람에 생활은 오히려 더 한가해졌다고 말하는 여유 뒤에 시인의 탄식 아닌 탄식이 묻어난다. 권력 앞에 조변석개하는 이악스러운 우정에 대한 푸념 어린 자조 같기도 하다.
‘참새 그물’의 비유는 사마천이 ‘사기열전(史記列傳)’에서 소개한 한나라 적공(翟公)의 말에서 유래한다. 적공은 자신이 관직에 있을 때는 손님이 집안을 가득 메우더니 관직에서 물러나자 ‘문밖에 참새 그물을 놓아도 될 지경’이라고 개탄하면서 대문에다 글귀 하나를 써 붙였다.
사람은 죽었다 되살아나거나 가난했다 부유해지나 혹은 귀했다 천해져봐야 사귐의 정과 태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권력이나 재물을 잃으면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어진다’는 성어 ‘문전작라(門前雀羅; 문앞에 참새 그물을 친다)’가 여기서 나왔다. 문전성시와 정반대다.
▶️ 門(문 문)은 ❶상형문자로 门(문)은 간자(簡字), 閅(문)은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문짝이 있는 문의 모양으로 문짝을 맞추어 닫는 출입구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門자는 ‘문’이나 ‘집안’, ‘전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門자를 보면 양쪽으로 여닫는 큰 대문이 그려져 있었다. 戶(지게 호)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을 그린 것이라면 門자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큰 대문을 그린 것이다. 門자는 대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이외에도 ‘집안’이나 ‘문벌’과 같이 혈연적으로 나뉜 집안을 일컫기도 한다. 다만 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문과 관련된 행위나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門(문)은 (1)담이나 판장 따위로 둘린 안팎을 연결하기 위하여 드나들거나 통할 수 있도록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구조물. 판자문, 골판문, 띠살문, 완자문, 정자살문, 빗살문 따위가 있음 (2)생물의 분류학(分類學) 상 단위의 한 가지. 강(綱)의 위 계(界)의 아래임. 동식물을 합하여 10여 개의 문으로 나뉨 (3)칠사(七祀)의 하나로 출입(出入)을 맡아 본다는 신 (4)성씨(姓氏)를 함께 하며 혈연적으로 나뉜 그 집안을 가리키는 말 (5)성(姓)의 하나 (6)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 등의 뜻으로 ①문(門) ②집안 ③문벌(門閥) ④동문(同門) ⑤전문 ⑥방법(方法) ⑦방도(方道) ⑧가지 ⑨과목(科目) ⑩부문(部門) ⑪종류(種類) ⑫분류(分類) ⑬비결(祕訣) ⑭요령(要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문도(門徒),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문호(門戶),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중(門中),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문벌(門閥), 문의 안이나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내(門內), 문 앞이나 대문 앞을 문전(門前),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를 문인(門人), 문객이 드나드는 권세가 있는 집이나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를 문하(門下),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를 문성(門聲), 대문 또는 중문이 있는 곳을 문간(門間), 세력이 있는 대가의 식객 또는 덕을 보려고 날마다 정성껏 문안을 드리며 드나드는 손님을 문객(門客), 문지기를 문사(門士), 한 집안의 가족들의 일반적 품성을 문품(門品), 문벌이 좋은 집안이나 이름 있는 학교 또는 훌륭한 학교를 명문(名門), 갈라 놓은 분류를 부문(部門), 한 가지의 학문이나 사업에만 전적으로 전심함을 전문(專門),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벽에 만들어 놓은 작은 문을 창문(窓門), 집안과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신분을 가문(家門), 큰 문이나 집의 정문을 대문(大門), 정면의 문이나 본문을 정문(正門), 성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성문(城門), 어떤 일에 바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문외한(門外漢),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빌어 먹음을 문전걸식(門前乞食), 집에 사람이 많이 찾아 온다는 말을 문정여시(門庭如市),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을 문전작라(門前雀羅),집 앞 가까이에 있는 좋은 논이라는 뜻으로 곧 많은 재산을 일컫는 말을 문전옥답(門前沃畓) 등에 쓰인다.
▶️ 前(앞 전/자를 전)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歬(전)으로 이루어졌다. 歬(전)은 舟(주; 배, 탈것)와 止(지; 발의 모양, 나아가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前자는 '앞'이나 '먼저', '앞서 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前자는 月(달 월)자와 刀(칼 도)자와 함께 상단에는 머리 모양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前자의 금문을 보면 舟(배 주)자와 止(발 지)자가 결합한 歬(앞 전)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배가)앞으로 가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갑골문과 금문, 소전에서는 歬자가 '앞'이나 '앞서 나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舟자가 月자가 바뀌었고 止자는 ()로 변형되었다. 여기에 刀자까지 더해지면서 지금의 前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해서에서 刀자가 더해진 것은 '가위'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후에 '자르다'라는 뜻은 剪(자를 전)자로 따로 만들어지면서 뜻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前(전)은 (1)이전(以前) (2)막연하게 과거를 이를 적에 쓰는 말. 그건 (3)어떤 직함이나 자격 등을 나타내는 명사(名詞) 앞에 붙여 전날의 경력을 나타내는 말 (4)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전기(前期)의 뜻을 나타냄 (5)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앞부분의 뜻을 나타냄 (6)연대(年代), 연호(年號) 앞에 붙어 기원전(紀元前)의 뜻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앞 ②먼저 ③미래(未來), 앞날 ④미리, 앞서서, 사전에 ⑤거무스름한 빛깔 ⑥가위 ⑦앞서다 ⑧나아가다 ⑨인도하다 ⑩뵙다, 찾아뵙다 ⑪소멸하다 ⑫자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뒤 후(後)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을 의논할 때 먼저 내세우는 기본이 되는 것을 전제(前提), 앞과 뒤와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전에 가졌던 직업 또는 벼슬을 전직(前職), 지난해나 작년을 전년(前年), 앞으로 나아감을 전진(前進), 이미 있었던 사례를 전례(前例), 앞쪽이나 일선을 전방(前方), 앞쪽에 친 진을 전진(前陣), 지나간 시대를 전대(前代), 앞서의 경력을 전력(前歷), 미리 나타나 보이는 조짐을 전조(前兆), 전번의 시기를 전기(前期), 직접 뛰어든 일정한 활동 분야를 전선(前線), 글이나 편지 전문을 생략함을 전략(前略), 전에 그 임무를 맡았던 사람을 전임(前任), 앞에서 이미 서술함을 전진(前陳), 앞의 부분을 전부(前部), 앞으로 갈 길을 전도(前途), 앞에 게재함 또는 지난해를 전재(前載),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자정으로부터 낮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전(午前),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실행하기 전을 사전(事前), 이전이나 이제까지를 종전(從前), 바로 앞이나 일이 생기기 바로 전을 진전(直前), 식을 거행하기 전을 식전(式前),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전거복철(前車覆轍), 앞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뒷수레가 경계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로 전인의 실패를 보고 후인은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전거가감(前車可鑑), 지난 시대에는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으로 매우 놀랍거나 새로운 일을 이르는 말을 전대미문(前代未聞), 이전 세상에는 듣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지금까지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임의 비유하는 말을 전고미문(前古未聞),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손을 대거나 발을 디딘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전인미답(前人未踏),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려니까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뜻으로 재앙이 끊임 없이 닥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전호후랑(前虎後狼), 앞으로 갈 길이 아득히 멀다는 뜻으로 목적하는 바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남은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요원(前途遙遠),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음 또는 장래가 유망함을 이르는 말을 전도유망(前途有望), 일에 부닥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앞뒤를 재며 머뭇거림을 이르는 말을 전첨후고(前瞻後顧),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전무후무(前無後無), 처음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으로 상대의 입지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전거후공(前倨後恭), 앞길이나 앞날이 크게 열리어 희망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양양(前途洋洋), 앞길이나 앞날에 어려움이나 재난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다난(前途多難),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문전성시(門前成市),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화(風前燈火), 범에게 고기 달라기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어림도 없는 일을 하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호전걸육(虎前乞肉) 등에 쓰인다.
▶️ 雀(참새 작)은 회의문자로 小(소; 작다)와 새 추(隹; 새)部로 이루어지며, 작은 새, 참새의 뜻이다. 작의 음은 躍(약; 뛰다)의 바뀐 음이다. 그래서 雀(작)은 ①참새 ②다갈색(茶褐色) ③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공작의 모양을 수 놓아 만든 허리띠를 작대(雀帶), 성의 안쪽에 쌓아 놓은 대를 작대(雀臺), 도자기에 달린 발을 작구(雀口), 참새의 알을 작란(雀卵), 밤눈이 어두운 눈을 작목(雀目), 참새의 고기를 작육(雀肉), 새를 잡는 그물을 작라(雀羅),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며 기뻐함을 작약(雀躍), 주근깨로 얼굴의 군데군데에 생기는 잘고 검은 점을 작반(雀斑), 제비와 참새로 도량이 좁은 사람을 연작(燕雀), 옷끈을 꾸미는 일을 입작(入雀), 참새를 잡음을 포작(捕雀), 새와 참새 또는 참새 따위 작은 새를 조작(鳥雀),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로 권세가 약해지면 방문객들이 끊어진다는 말을 문전작라(門前雀羅), 기뻐서 소리치며 날뜀을 환호작약(歡呼雀躍), 수후의 구슬로 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수주탄작(隨珠彈雀), 참새가 날아 오르듯이 춤춘다는 뜻으로 크게 기뻐함을 이르는 말을 흔희작약(欣喜雀躍), 눈을 가리고 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일을 건성으로 함을 이르는 말을 엄목포작(掩目捕雀),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위총구작(爲叢驅雀), 안심하고 있어 재앙이 닥쳐오는 것도 모름을 연작처당(燕雀處堂) 등에 쓰인다.
▶️ 羅(벌일 라/나, 그물 라/나)는 ❶회의문자로 罖(라/나)는 통자(通字), 罗(라/나)는 간자(簡字)이다. 그물망머리(罒=网, 罓; 그물)部와 維(유)의 합자(合字)이다. 그물(罒)에 벼릿줄(維)을 꿴다는 데서 새를 잡는 그물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羅자는 ‘벌이다’나 ‘늘어서다’, ‘그물 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羅자는 网(그물 망)자와 維(밧줄 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維자는 새의 다리에 밧줄이 걸려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羅자의 갑골문을 보면 网자에 새를 뜻하는 隹(새 추)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를 잡기 위해 그물을 펼쳐놓은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에는 새가 잘 다니는 나무 사이에 그물을 쳐놓아 새를 잡곤 했다. 갑골문에서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져 그물을 늘어놓았다는 의미에서 ‘벌이다’를 뜻했다. 다만 금문에서는 여기에 糸(실 사)자가 더해지면서 마치 다리에 밧줄이 걸린 새가 그물에 잡힌 듯한 모습의 羅자가 되었다. 그래서 羅(라)는 ①벌이다(일을 계획하여 시작하거나 펼쳐 놓다) ②벌이어 놓다 ③늘어서다 ④두르다 ⑤그물치다, 그물질하다 ⑥망라(網羅)하다 ⑦체질하다, 체로 치다 ⑧맞딱뜨리다, 걸려들다 ⑨막다, 차단하다 ⑩포괄하다, 총괄하다 ⑪그물 ⑫비단(緋緞), 깁(명주실로 바탕을 조금 거칠게 짠 비단) ⑬체(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밭거나 거르는 데 쓰는 기구) ⑭징(타악기의 일종) ⑮나선형(螺旋形)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벌일 렬(列)이다. 용례로는 여러 물건들을 평면 위에 죽 벌이어 놓는 것을 나열(羅列), 성 밖으로 겹으로 쌓은 성을 나성(羅城), 엷은 비단과 무늬가 있는 비단 곧 화려한 의복을 나기(羅綺), 얇고 가벼운 비단으로 지은 치마를 나상(羅裳), 감쌈으로 감아서 얽음을 나락(羅絡), 엷은 비단 치마를 나군(羅裙),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날짐승을 잡는 그물이란 뜻에서 모두 휘몰아 넣어 포함 시킴을 망라(網羅), 무늬가 있는 두꺼운 비단과 얇은 비단을 능라(綾羅), 가볍고 얇은 비단 또는 그 비단으로 지은 옷을 경라(輕羅), 무늬 있는 집을 문라(文羅), 푸른 비단을 벽라(碧羅), 시끄럽고 수선스러움을 번라(煩羅), 새를 잡는 그물을 작라(爵羅), 숲의 나무처럼 무척 많이 벌려 서 있음을 삼라(森羅), 나부산의 꿈이라는 뜻으로 덧없는 한바탕의 꿈을 이르는 말을 나부지몽(羅浮之夢),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나작굴서(羅雀堀鼠), 하늘과 땅의 그물이라는 뜻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경계망이나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천라지망(天羅地網), 토끼 그물에 꿩이 걸린다는 뜻으로 소인은 계교로 좌에서 벗어나고 군자가 도리어 화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토라치리(兔羅雉罹), 별같이 벌여 있고 바둑돌처럼 늘어 놓였다는 뜻으로 물건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있음을 성라기포(星羅碁布), 전란이나 그밖의 일로 인하여 큰 혼란 상태에 빠진 곳 또는 그 상태를 아수라장(阿修羅場), 우주 안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을 삼라만상(森羅萬象),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로 권세가 약해지면 방문객들이 끊어진다는 문전작라(門前雀羅)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