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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했던 시절.
밤통과 낮통이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회장님이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던데 무슨 말입니까?”
“지가 밤의 대통령이면 각하는 왕입지요.”
호시절이었다. 청운각, 삼청각, 대원각, 오진암의 밤이 그립다. 어린 처자들의 권주가에 흥이 나고, 꽃 같은 탤런트와 그림 같은 여배우 무릎에 앉히고 주무르던 그 시절이 그립다.
‘사나이 배꼽아래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던 그때가 좋았다. 여기에서 파생된 여인이 정인숙이다. 그녀가 아기를 가졌을 때 “총리꺼야? 총통꺼야?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하늘을 뚫고 총구를 열었다. 리갈 먹고 알딸딸한 기분에 총알 먹고 님은 갔지만 밤통은 살아있다. 아~옛날이여. 주지육림, 환락의 그 밤.
2017년 4월 30일. 박근혜가 파면될 때, 이해찬의원이 ‘20년 진보정권’을 말했다. 희망사항이었지만 진보진영은 들떴고 보수그룹은 경악했다. 진보진영에선 인물이 넘쳤지만 보수그룹에선 눈 씻고 찾아봐도 대선주자가 없다. 그렇다고 20년을 허송세월할 수 없잖은가? 아(我)에 장수가 없으면 적의 장수를 주저앉히면 된다.
손자는 그의 병서에서 승전의 으뜸 항목에 계(計)를 놓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謀攻)이 제일 이라고 했다. 그 또한 계(計)의 하위 개념이다.
전쟁은 이기기 위해 벌이는 게임이다. ‘유인하여 혼란시키고,’ ‘노엽게 만들어 뒤흔들고,’ ‘방비가 없는 곳을 공격하고,’ ‘뜻하지 않을 때에 무찌른다.’ 고 손자(孫子)는 설파했다.
검찰-재벌-언론, 가공할 삼각편대의 편대장은 누구냐?
검찰과 언론의 관계를 악어와 악어새라 하지만 그건 언론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동훈을 못 보았는가 검사는 한방에 날라 가기도 하고, 검찰 조직 자체가 여의도의 융단폭격을 받기도 하지만 언론은 세세년년 철웅성이다. DJ와 노무현이 벼렸지만 번번이 패퇴했다.
교회는 세습하면 뒷말이 많지만 언론은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이를 누가 감히 언론과 검찰을 갑을 관계라 하는가? 가소로운 소리다. 대한민국을 검찰공화국이라고 하는데 검찰조직을 모르는 얕은 추론이다. 대한민국은 무늬만 민주공화국이지만 언론왕국의 삼두(三頭) 체제다. 세습이 그것을 방증한다. 천하의 손석희도 사용기한이 다되면 팽(烹)하고 모종의 껀수를 터트리려했던 이동제도 꼬리 자르기 하면 그만이다.
검찰을 검사동일체 상명하복 조직이라고 말하지만 그 조직의 수장은 2년 임기의 국가공무원일 뿐, 최장 2년이면 조직을 떠나야 한다. 재임 중이나 퇴임 후에도 언론이 나팔을 불어대면 감옥에 가야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그 수장 검찰 총장도 검찰을 떠나면 재벌에서 일거리를 따와야 하는 로펌의 비즈네스 맨 일 뿐이다. 총장이 그러할 진데 평검사는 어떠하겠는가?
여의도에서 목소리 큰 정치인도 이들의 위력 앞에 한방에 날아가고 대통령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감방으로 직행한다. 이들의 동맹 앞에 모두는 졸(卒)이다. 그렇다면 재벌과 언론의 위상은 어떠한가? 포토라인에 재벌회장은 가끔 보이지만 언론사 회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거 하나로 서열이 명확해진다.
결이 다르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딱 하나 있다. 민족일보사건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자신의 빨갱이 전력을 세탁하기 위하여 반공을 국시로 내걸었고 용공분자 색출이라는 미명 하에 평화통일을 거론하는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총칼의 위세에 얼음이 된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61년 12월 20일 박정희가 형을 재가한 다음날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 대한 사형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집행되었다. 사법살인이다. 당시 1심 재판부에는 전 한나라당 총채 이회창이 배석했다.
31세 청년 조용수는 사형을 당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민족을 위해 할 일을 못하고 가는 것이 억울하고, 신문을 만들기 위해 동지에게 꾼 돈을 갚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대한민국 언론사상 언론인이 재판에 의해 처형된 것은 조용수가 처음이었다.
재벌과 언론은 어떤 관계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된다 ’라고 말하지만 돈 가지고 안되는 게 있다. 쌍나팔이다. 신문과 방송으로 불어대면 당해낼 재벌이 없다. 하여, 재벌이 매체 갖기를 소망하고 일부 재벌은 가졌다. 재벌이 흘려주는 광고비를 언론이 감지덕지 받아먹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변방의 군소언론이 그렇고, 주류 언론은 “쳐 잡수세요” 라고 바칠 때 널름 받아먹는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은 보수정부이고 가장 껄끄러운 집단은 진보세력이다. 재벌이 가장 장사하기 좋은 토양은 독재정권과 보수정권이다. 1박스 갖다 바치면 천배 만배 뽑아 먹을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장사가 어디 있는가? 때문에 차떼기가 성행하고 회장의 입에서 “편하기 위해 바쳤다”는 말이 나온다. 진보 정권에서는 이게 안 통한다.
검찰은 언론의 하수인이다
검찰이 흘려주는 쓰레기를 받아 적는 게 기레기라고 입에 개거품을 품지만 검찰 인사를 언론이 좌지우지 하지 않은가. 검찰에 빨대를 꽂고 그들이 흘려주는 미끼를 특종이라고 배설하는 게 언론이라고 말하지만 언론이 숙주이고 검찰이 기생충이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듯이 목적이 달성되면 날려버린다. 기세등등하던 왕년의 총장도 최근 동정 기사 찾아보기 힘들다. 김기춘 이후, 정권의 시녀스럽게 성장한 검찰은 독재 정권과 보수정부를 좋아한다. 적당히 냥이노릇을 하면서 권세를 부리면 된다.
언론의 삼각편대, 누가 부대장이냐?
언론의 삼각편대가 조, 중, 동이다. 그들이 터트리면 다른 신문과 방송은 “00일보 보도에 의하면”이라고 확인 없이 뒤 따라간다. 펙트체크는 남의 얘기다. 낙종도 서러운데 뒤쳐질까봐 조바심이 난다. 그들이 놓친 다른 부분을 파고 또 파서 특종이라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이 때 조, 중, 동은 한발 비켜선다.
여론재판과 분탕질이 끝나고 사실이 아니었을 때, 모른척하고 넘어가거나 “바로잡습니다” 정정기사 한 줄로 끝이다. 이게 바로 언론제국주의다. 멀쩡하던 사람도 언론고시 찍고 이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사람이 확 변한다. 세뇌까지는 아니지만 환경과 분위기에 길들여진다. 그리고 전사가 된다.
조, 중. 동 그들은 태생적으로 반민족적 친일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선일보 방응모는 <조선 임전보국단>과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에서 활약했으며 동아일보 김성수는 <흥아보국단>과 <국민총력조선연맹> 총무위원으로 일제에 부역했다. 중앙일보 홍진기는 일제치하에서 판사를 역임하며 조선민족과 동포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었다.
동아는 해직사태를 겪으며 흔들렸고, 중앙은 4.19당시 이승만정부 내무부장관 홍진기가 학생의거를 공산당 사주로 몰아붙여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그의 부하 치안국장 최인규와 경무관 곽영주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박정희의 구명으로 구사일생 살아난 전력 때문에 막둥이 취급을 받고, 초지일관 기조를 유지한 조선이 맏형격이다.
정부가 인허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만 보수언론은 보수정부가 수영장이다. 배영도 할 수 있고, 접영도 할 수 있고, 개구리헤엄도 칠 수 있다. 때론 물속에서 ‘쉬’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진보정권 20년’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보수정권은 돈, 진보정권은 도덕이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다. 충격에 내성이 생긴 국민은 위장전입 정도는 시큰둥하지만 찬스사용과 여자문제에선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덫에 몇몇 사람이 걸려들었다. 그들이 집요하게 얻어맞고 치졸하게 조리돌림 당하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박시장은 다른 길을 택했다. 선제적 방어다. 그 선택이 현명했는지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아무튼 그는 그렇게 갔다.
감시견이라는 미명하에 집권층과 일정부분 거리두기를 하던 진보매체들도 여성과 젠더라는 먹이가 포착되면 보수 언론보다도 더 극렬하게 물어뜯는다. 여성과 성인지감성은 자신들이 선점한 신성불가침한 의제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밝히는 보수언론과 선명성 경쟁이며 차별화 정책이다.
현대인들은 신문을 안 본다
토마스 제퍼슨이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아득히 먼 옛날 얘기다. 매체의 범람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신문 자체를 안 본다. 텍스트가 진부하다. 사진이 좋다. 동영상에 눈길이 간다.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문이 기형적으로 성장했다. 권력과 야합이다. 거기까지 그들의 생존한계다. 존재에 위협을 느낀 그들이 발악을 하고 있다. 그들이 최근 설정한 목표물이 선제 방어에 나섰다고 해서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들의 미친 널뛰기로부터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려면 가짜 뉴스를 생산한 실명 기자에게 그가 살고 있는 집 한채 값에 버금가는 거액의 징벌적 배상금을 부담하게 하고, 회사에는 삼진아웃제를 적용하여 세 번 이상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전파한 언론사는 폐간도 불사하여야 진정한 의미의 언론개혁이 이루어 질 것이다.
법이 없어 못한다고?
그정도 독재는 용인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백성들이 180석을 만들어 주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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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중동 뿐만 아니라 진보 개혁 성향이라던 언론들도 내내 한통속이라는게 참
비통하죠. 언론이 바로서면
이 나라는 제대로 될텐데요.
좋은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