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마가복음 1:35-39, 누가복음 4:42-44
제목 :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마가복음 1:35-39)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귀한 날 이 복된 날에 저희들의 발걸음을 주의 전으로 향하게 하시고
주의 십자가의 능력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가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시간 말씀하셔서
주의 음성을 들으며 그 음성 가운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만약 4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어떤 것부터 해결할 것인가?
얼마 전, 제가 친한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 재미있는 내용의 메세지를 저에게 보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만약 4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4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어떤 것부터 해결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다음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집에 있는데, 4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요..
첫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둘째, 동시에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립니다.
셋째, 그런데 또 현관에서는 초인종 소리가 들립니다.
넷째, 그리고 욕조에 틀어놓은 물 소리가 점점 커져서 물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저 4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해결하시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10초 드립니다. 몇 번을 고르시겠습니까? - 1번? 4번?
물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답은 없지만, 고른 일에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씩 다 고르셨지요? 그럼 심리테스트의 풀이를 공개합니다.
1. 우는 아이를 달랜다 → 이 사람은 인생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사랑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입니다.
2. 전화를 받는다 → 인생에서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3. 누가 왔는지 확인한다 → 인생에서 친구가(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4. 목욕물이 넘치는 것을 잠그러 간다 → 인생에서 돈과 건물이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삶에서 우선순위를 삼고 있는 것과 잘 맞는 것 같습니까?
저는 참고로 1번을 택했어요.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일 번을 택할 겁니다.
왜? -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한 생명이 중요하니까...
우리가 사는 삶은, 사실 우리가 선택하는 이 우선순위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 주지요.
그러니 우린 나에게 주어진 24시간, 한 주일, 한 달, 365일...
이 시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2.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Redeeming Your Time)
이와 관련해서 저는 마침 지난 주에 출간된 책이 한 권이 제 눈에 탁 들어왔어요.
'조던 레이너'가 쓴 『Redeeming Your Time』 -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라고 번역을 했는데,
이 책은 에베소서 5장 16절 "세월을 아껴라" (Redeeming the Time)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세이브 해라', '세월을 구속해라' 하는 말이지요. 세월을 아끼라는 거지요.
이 책에서 이 말씀을 중심으로 너무나 바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며 구속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저자는,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의 시간을 구속(Redeeming)하려면, 세이브 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정하고 그에 따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 조던 레이너,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 라고 지적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본받아서
예수님은 목적으로 충만한 삶을 사셨고,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할 일이 많은 분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그 많은 일들 가운데 꼭 해야 할 일을 분간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던 레이넌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거하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아셨고,(내가 왜 이 땅에 왔는지)
그로 인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예수님이 뭐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아버지께서 주신 일을 마치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추려내실 수 있었다.(요 17:4)
그리고 그렇게 우선순위로 정하신 일에 온전히 집중하셨다."
- 조던 레이너,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
(이 문장은 여러분이 핸드폰에다 좀 담아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우리가 오늘 읽은 누가복음 4장과 마가복음 1장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어요.
두 본문에서 예수님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리고 "이 땅에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지"를 밝히셨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2024년 예수사랑 큰잔치 50일 선포 주일을 맞이한 우리들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3. 본문의 배경
먼저 본문의 배경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장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릴텐데..
마가복음, 누가복음 똑같은 사건을 지금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이제 갈릴리에서 본격적으로 그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주로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감당하셨지요.
그러자 곧 예수님의 소문이 온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고,
누가복음 4장 37절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 북부에 있는 가버나움에 있던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서
중한 열병으로 오랜동안 병상 생활을 하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가면 베드로가 살았던 집터가 있지요.
그때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사실이 온 가버나움에 퍼져서
예수의 소문을 듣고 환자들을 포함한 온 동네 사람들이 시몬 베드로의 집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마가복음 1장 33절 보면,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다." 그랬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왔다는 거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모여든 불쌍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하며 고쳐 주셨어요.
누가복음 4장 40절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셨다"
안수 기도해서 고쳐 주셨다는 거예요.
이렇게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밤 늦게까지 몰려든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또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을 하셔서 무척이나 피곤하셨을 텐데도,
오늘 누가는 그걸 좀 분명하게 표현을 안 했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다음날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오랫동안 기도하셨다" 미완료형으로 돼 있어요. 계속 기도하셨다라는것입니다.
계속되는 이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렇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따라가서
"주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찾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여기 '예수의 뒤를 따라가서' - 이 '따라가서'라는 단어가 '기어코 쫓아간다', '추격하여 따라붙다'라는 뜻으로
'상대방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따라붙어서 성가시게 한다.' 그런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깊이 교제하시는 예수님의 기도를 방해하면서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과 필요에 응해주실 것을 요구한 겁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목격한 갈릴리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메시아! 아! 구세주가 왔구나! 그 구세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에 흥분해서 예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던 겁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누가복음 4장 43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뭘 하러 오셨다고요?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사명선언을 마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은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사명은 뭐냐?
치유와 기적의 역사를 통해서 자신이 영광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왔다" - 전도하러 오셨다
우리는 누가와 마가의 기록들을 통해서 종합해서 예수님의 사명인 전도가 무엇인가를 이 말씀을 품어야 하는데,
즉,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파송을 받아 이 땅에 오셨다 하는 것을
예수님 스스로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메시지를 발견하지요.
첫째, 예수님의 소명 의식과 관련된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
둘째,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먼저, 우리는 이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그의 삶에 우선순위로 삼으셨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예수님은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그의 삶을 사셨고,
그 소명의식에 따라 그의 삶과 사역의 우선순위를 정하셨다 그 말입니다.
4. 예수님의 소명의식과 삶의 최우선 순위는 전도
우리가 앞서 본문의 배경에서 보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정말 바쁘게 감당하셨어요.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어요.
이게 마태복음 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썸머리하고 있는 내용이지요.
오늘 누가복음 본문의 사건 바로 앞에도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이 권위가 있었다. 그 당시 서기관과 같지 않았다.] 그랬어요.
그런데,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있었는데,
누가복음 4장 34절 "그가 소리 질러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외쳐요.
이에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꾸짖고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37절 보면,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이 곧 갈릴리 사방에 퍼져 나갔어요.
그날 오후에, 예수님은 이제 회당에서 나와서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가셔서 베드로의 장모의 중한 열병을 고쳐주셨지요.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해질 무렵에 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환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데리고 와서 치유해 줄 걸 요청한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각종 병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안수기도 하심으로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을 하셨어요.
따라서 주님은 이렇게 하루 종일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그의 공생애 동안 매일같이 많은 사역을 감당하셨지만,
그러나 그의 사역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계셨어요.
다시 말해서, 당신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에 대한,
즉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그 우선순위에 의해서 사역을 하셨다라는 말씀이에요.
그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필요로 했어요.
각종 병든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 심지어는 멀쩡한 사람들도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 그들이 그동안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찾아온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 많은 요청을 거절하셨어요.
제자들이, "선생님, 지금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의 치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속히 가셔서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어제처럼 놀라운 치유 사역을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였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마가복음 1장 38절 보면,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서 거기서도 전도하자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왔다"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사명을 결코 잊지 않고 계셨어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혹은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눅 4:43)
그 사명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시고 그의 사역과 삶을 하셨던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최우선순위는 무엇? =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고,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이자 사명은 바로 전도하는 것이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도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 그랬어요.
전도란 뭐냐?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에 있었어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시되 그 일을 우선으로 삼지 않았고,
귀신을 쫓아내시되 역시 그 일도 우선으로 삼지 않았어요.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5천명을 먹이시고
칠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4천명을 먹이셨지만, 역시 그 구제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 즉 전도하는 일을 최우선의 사명으로 감당하셨고,
그래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시면서 친히 복음을 전하셨어요.
[전도]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함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에 최우선 순위였고 핵심사역이었습니다.
5. 우리의 사명과 사역의 최우선 순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전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사명과 사역의 최우선 순위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었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았어요.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 된 우리의 사명과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을 쓴 '고든 맥도날드'는 현대인들에게 두 가지 삶의 유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랬어요.
하나는, 끌려다니는 삶, 또 하나는 소명을 위한 삶,
그는 설명하기를 끌려다니는 삶이란 별로 의미 없는 일에 바쁘게 끌려다니는 삶을 말하고,
소명을 위한 삶이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깨닫고 그 소명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의 삶은 그 소명을 따라 살았던 삶이었지요.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이라면,
우리도 당연히 소명을 깨닫고 그 소명에 따라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가는 사명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을 깨닫고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제가 이번에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삶을 많이 돌아봤어요.
'내가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구나' '내가 지금 왜 이렇게 바쁜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지금 이렇게 바쁘지?'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다르고 은사가 다르고 그 소명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하는 일과 혹은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요.
또, 어떤 사람은 예체능의 재능을 통해서, 음악적인 재능을 통해서 여러가지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지요.
또, 어떤 이는 학문을 통해서, 과학적인 지식을 통해서
또, 어떤 이는 가르치는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 이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아야 할 선교적 삶은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소명을 위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큰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두가 깨닫고
그 사명을 따라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먼저 할 것을 먼저 하고, 나중 할 것을 나중 하는
그런 지혜로운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각자 다 은사가 달라요. 소명이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 제자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공통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통해 이루어야 될 사명 외에 주님께서 모든 제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사명 - 그게 뭘까?
너무나 분명하지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 다시 말해 전도하는 것,
즉,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맡기신 지상 최대의 명령이고
그래서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사명입니다.
에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유언과도 같이 우리에게 맡기신 그 말씀,
(마 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복음 전해서 제자 삼으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목적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최대의 사명과 목적은
한마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전도하는 일과, 또 새로운 교회를 분립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일과,
또 전 세계를 향해서 선교사를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우선을 하지 않고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이나 혹은 봉사활동 등을 더 우선시한다면, 그것은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물론, 교회는 구제도 해야 하지요. 사회봉사도 해야지요. 치유 사역도 해야 돼요. 축사 사역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역들이 전도보다 앞서고 선교보다 앞선다면, 그것은 우선순위가 뒤바뀐 겁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일도 복음 전도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되는 너무나 분명한 예수님의 가르침이에요.
마가복음 1장 38절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누가복음 4장 43절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노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예수님처럼 오직 전도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것만이
이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가장 자랑스럽고 인정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바라기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최종적인 목적은 영혼 구령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것도 결국은 복음을 전도하기 위함이었고, 귀신을 쫓아내심도 전도하기 위함이었고,
배고픈 이들을 먹이시고 봉사를 하신 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어느 곳에 방문하시는 것도, 다 결국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를 들어서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칠 때 먼저 학생들의 영혼 구원을 생각하고,
우리가 시장에서 장사를 해도 만나는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생각하고,
사업을 할 때 바이어를 만나도 상대방의 영혼 구령을 먼저 생각하고, '저 사람은 구원 받았을까?'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할 때도 동료의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병원에서 환자를 치유하고 도울 때에도 그들의 영혼 구원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오직 복음 전함을 최우선순위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예화 : 이 집사님의 간증
여기,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이 집사님인데,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어요.
그러던 중, 사회생활 하다가 불교 집안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내 둘은 종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가 어른들을 설득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이집사님은 종교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요.
정기적으로 절에 다니며 불교에 심취해 있던 시어머니와 시댁 친구들은 기독교인 며느리를 여러모로 핍박하기 시작했고,
제사를 비롯한 시댁의 이 비신앙적 문화들로 인해서 이집사님은 점점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 갔습니다.
무엇보다 결혼하면 꼭 교회에 다니겠다고 했던 남편마저 약속을 어기고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대부분의 안 믿는 사람들 남자들이 그렇지요..
하지만, 이 집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남편을 먼저 전도하고 믿음의 동역자를 삼아야겠다 결심을 하고
남편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특심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에스더의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끝까지 교회 나오는 것을 거부하고 불신앙을 택한다면, 헤어질 것까지도 각오를 합니다.
아내의 전과 다른 이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는지 남편은 어느덧 이집사님을 따라 교회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지 못해 온 거지요. 하지만, 이 남편 되는 분은 교회에 발만 들여놓았지 예배에 전혀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이집사님은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남편의 마음이 열리게 해 주옵소서!"
처음에는 화가 나서, 남편의 그런 예배드리는 자세를 보고 확 쏘아붙이려고 했는데
기도를 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놀랍게 마음 속에 평안한 마음과 지혜를 주셨어요.
한번은 예배 중이었지만, 집사님이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여보, 힘들지요? 힘들면 같이 밖으로 나갈까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부드럽고 또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말에 남편은 감동을 받았는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순간부터 예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예배를 드린 남편은 차차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이제 그 남편은 주일 예배 시간에 들려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직장에서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고자 고민하기 시작했고, 기도하며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남편으로부터 시작한 복음의 역사는 이제 시댁 식구들 안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고,
이집사님은 시댁 식구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되기까지 계속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붙잡고 전하기로 결심하고 기금도 기도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 나가는 말 : 2024 예수사랑 큰 잔치 "함께 동참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전도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삶에서 최우선순위로 삼고 살아가야 할 우리의 지상 최대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우리 교회는 어김없이 우리의 그 최대 사명을 감당하고자 2024년 예수사랑 큰 잔치를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 해마다 반복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앞으로 50일 동안 우리가 영혼 구령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할 그 첫날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에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영혼 구령의 열정을 가지기를 원하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참한 영혼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고 계세요.
여러분의 주변에 사랑하는 가족들, 친척들, 직장 동료들 가운데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죄와 사망 가운데 신음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은 그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이제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일어나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 한두 번 시도하고, 절대로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굳건한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복음의 씨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 2024년 예수사랑 큰 잔치를 통해 하늘 보좌에서도 큰 기쁨의 소리가 넘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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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교회가 영혼 구원을 위한 큰 잔치를 갖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라기는, 주안의 모든 성도들이 전도를 우리의 삶의 최우선순위로 삼고
이번 예수사랑 큰 잔치를 통해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구원 받는 이들이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