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교육을 제대로 하기가 참 어려운데...여러 불협화음이 생기니 참 불편합니다. 최소한 독서교육을 왜 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의도와 실제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사전에 충분히 고민했다면 이렇게 불필요한 소모적 시간들을 보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책읽기와 시험, 그리고 철학
- 전국독서새물결모임과 독서능력검정시험 -
허병두(숭문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모임 대표)
지난 4월 17일 제1회 독서능력검정시험이 전국적으로 치러졌다. 주최측인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의 취지대로라면, 이는 ”우리 사회에 독서하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하고자”한 것으로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전국에서 이른바 독서 인증제가 어지럽게 시행되는 때 독서지도 경험이 풍부한 교사 중심의 단체가 나선 셈이니 그 또렷한 문제 의식과 강력한 실천 자세에 박수 갈채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험과 관련하여 시행 전부터 크고 작은 독서관련 모임과 단체, 학부모/교사 단체, 문화 단체 등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한결같이 냈으니 어찌 된 일인가. 더구나 어린이도서연구회의 경우에는 시험이 끝난 지금까지도 전국적으로 반대 서명 운동을 하는 등 강력하게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을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 나라 독서교육의 발전을 위해 의도와 실제의 측면에서 몇 가지 간단하게 짚어 보자.
전국적으로 거의 1천여 명 이상 응시했다는 이번 독서능력검정시험은 사단법인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 시행하였다. 이 단체는 독서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가 시행하는 독서대상 대회에서 지도상을 받은 현장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독서지도연구모임으로서 몇 년 전에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건은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 올해초 전국적인 독서능력검정시험을 보겠다고 나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비롯되었다. 독서능력검정시험이란 일종의 독서인증시험, 모두 400여 권의 책을 10단계로 나누어 시험을 보게 하여 그 결과를 인증해 주겠다는 것이다.
사실 별별 인증능력시험들이 판치는 현실이고 보면 언젠가 독서능력도 인증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면 현직 교사들이 중심이 된 권위 있는 단체에서 이를 집중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의 시험 계획에 대해 전반적인 여론은 격렬한 비판 그 자체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우리 현실에서 책읽기가 시험과 연관된다면 자칫 왜곡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 모두 걱정하고 두려워 한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즐겁게 책을 읽는 대신 등급을 따기 위하여 매달리는 사태가 걱정된 나머지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중심으로 가장 크게 반발하였다. 여기에 인증 결과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대입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 오해할 만한 안내문까지 있어 이제는 독서까지 또 하나의 입시 교육 대상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중고등학교 교사와 문화계 인사들의 우려로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대학 입시와 관련되어 성공한 교육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걱정과 우려는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이에 대해 별다르게 깊이 성찰하지 않아 문제를 더욱 불거지게 만들었다. 즉, 독서지도방법은 다양할수록 좋은데 시험이라는 방법을 하나 덧붙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냐는 태도로 가볍게 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독서교육에 대한 철학 부재야말로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만일 독서능력검정시험을 원만하게 치르고 싶었다면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모든 독서 행위가 인증제와 연관되어 강제되고 왜곡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걱정과 우려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시험 시행에 앞서 내놓아야 했다. 독서 능력이 과연 인증 대상의 시험이 될 수 있는 것인지부터 철저하게 짚어야 했으며, 만에 하나라도 의도와 실제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관련 모임과 단체, 전문가들과 공청회나 발표회를 열어 시행 여부와 방식을 사전에 집중적으로 논의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문제가 제기된 이후에도 안이하게 자신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고집하며 충정을 이해해 달라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특히 시험 반대 의견에 대해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 보인 감정적인 반응은 그야말로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왜 미리 협의했으면 해결될 일인데 싸움하자는 거냐?', '무슨 이념 단체처럼 머리띠 두르고 나서겠다는 거냐?',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학교 독서교육을 해보기나 했냐?', '우리가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하느라 얼마나 힘든데!', '시험을 반대하면 안 보면 될 거 아니냐!' 등 논리학 교과서에 나올 만한 전형적인 오류들을 순식간에 무수히 남겼던 것이다.
더구나 독서새물결모임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마저 일방적으로 삭제함으로써 스스로의 정당한 권위를 잃고 말았다. 이는 정작 독서토론회를 제안했을 때 스스로를 무력화시키는 자충수가 되기까지 했다. 자유 게시판의 글마저 마음대로 삭제하는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 어떻게 토론 상대가 되겠냐는 불만 섞인 게시글(어린이도서연구회 게시판 참조)은 이를 웅변한다.
안이하고 일방적인 태도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독서능력검정시험을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공론화시키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 역시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비롯되었다.
이를테면 독서능력검정시험을 후원한다는 업체로 관련 사교육업체를 확보한 것부터 문제였다. 이 업체는 작년에 600권의 도서목록을 개발하여 이를 기반으로 하는 독서논술상품을 특허로 낸 바 있다. 이때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 자문해 주었다는 신문 기사가 있으며, 회원 일부는 해당 사교육 사이트의 집필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독서새물결의 회장인 현직 교사는 이 업체의 독서논술프로그램이 개발된 데 대하여 축하사를 썼고, 현직 교육청 연구사는 '이제 학교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지났습니다'는 실로 엽기적인 발언에 해당사교육업체를 광고하는 문안까지 담아 칼럼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교육 업체가 후원까지 한다고 나선다면 독서능력검정시험이 공정하게 진행되리라고 어느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독서능력검정시험이 그렇게도 중요한 독서프로그램이었다면 그 공정하고 투명한 진행을 위해서도 처음부터 사교육업체와는 일정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해당 사교육업체가 순수하게 후원하는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매도하지 말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무엇인가를 먼저 시도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처음 의도와 달리 실제가 달리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미리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괴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여 현실에서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상되는 문제점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어야 하며, 제시하는 비젼들은 현재의 질곡을 박차고 나가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어떤 노력이라도 아껴서는 안 되는 바, 특히 독서교육의 의미가 더없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독서능력검정시험에 대해 인문적인 성찰과 과학적인 검토가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
특히 그가 누구라도 의혹이 제기되면 이를 해명할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권위 있는 모임이라면 그 권위를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공개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그저 매도하지 말라고 되풀이 하면 의혹만 계속 부풀려질 뿐이다.
원래 기대가 크면 비판도 매서운 법이다.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독서능력검정시험과 관련하여 물의를 빚은 데 대하여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특히 고압적이고 감정적인 태도, 일방적이고 비공개적인 자세를 하루 빨리 버려야 바람직한 독서교육 활성화와 독서 문화 조성의 큰 마당에 함께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의도와 실제를 통일시켜 나가기란 늘 어려운 법이다.
* 사족: 책읽기에 그래도 약간의 강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독서능력검정시험도 필요하다고 믿는 분에게 최근에 나온 책 한 권을 권해 드린다. 다니엘 베나크의 {소설처럼}(문학과지성사). '소설은, 그냥 소설로, 소설처럼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