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민을 위한 사법입니다.
고향(광주)에 갈 때나 그 외 어디에 갈 때나 장거리 시승에는 항상 기차만을 이용해 오던 중 10개월만에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이 글은 제가 버스매니아 카페에 올린 것을 수정 없이 옮겨 온 글이라 몇 군데 철도동호회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국민을 위한 사법입니다.
8일 '상당산성'님을 뵈러 청주에 다녀왔습니다. 2002년 8월 말에 뵌 게 마지막인데 그로부터 어느새 2년 3개월여가 지났네요. 인생무상이랄까,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청주에 갈 때에는 새서울고속의 GRANBIRD SDll Parkway 파워텍 엔진 차량을 탔습니다. 센트럴시티 터미널을 마지막으로 이용한 것이 올해 2월 말인데, 10개월이라는 시간이 기억을 지울 만큼 길지는 못했던지 특별히 오랜만에 터미널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미리 번호를 확인해 둔 로열박스 3번 좌석 승차권(15시 발차)을 구입하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차가 나들목을 빠져나와 막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니, 그래도 그 때는 이 도로를 달리는 게 참 오랜만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망이 좋은 자리에서 오랜만에 드라이브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게 참 좋았습니다. 버스는 줄곧 시속 105킬로미터를 유지하며 달렸는데, 나중에 기사님이 다른 기사님과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만, 속도 제한기가 작동되고 있어서 그 이상으로는 속도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새서울고속에 속도제한기라니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다소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지만, 하여튼 안전을 생각한 조치이니 토를 달 일은 아닙니다.
잠을 자 버리면 시승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일순간 쏟아지는 졸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가니, 어느새 청주의 상징인 가로수 도로가 저를 맞이하였습니다. 순간 2년 전 상당산성님을 뵈러 청주에 왔을 때 속리산고속 8기통 BH120F 일반고속(DV15T엔진, 충북 70 아 8010)의 맨 뒷자리에 앉아 이 길을 달릴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때에는 녹색 나뭇잎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바짝 마른 다소 황량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 모습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소 오버한다는 느낌이지만, 계절이 바뀜에 따라 적절한 형태로 모양을 바꾸는 나무의 모습에서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느낍니다.
그렇게 버스는 가경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소요시간 1시간 35분). 여기서 다시 상당산성님이 근무하는 청주대학교 옆 대성고등학교로 가기 위해 북청주행 차를 타야 합니다. 북청주행 승차권(850원)을 사고 충주행 대성고속 AERO SPACE LS(파워텍) 오버항 시트 차량을 탔습니다. 북청주 정류장까지 걸린 시간은 약 15분. 이 정도라면 북청주 정류장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서울고속 감차에 충분히 불만을 제기할 만한 거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잠시 길이 엇갈린 뒤 마침내 2년 3개월여만에 상당산성님과 상봉을 하였습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더군요. 달라진 것이라면 상당산성님도 이제 어엿한 승용차의 오너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상당산성님의 차로 이동하여 대청댐 근처의 소금구이 삼겹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소주의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상당산성님은 운전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술은 제가 모두 마셨습니다만, 소주 한 병은 거뜬합니다.
식사 중 통화를 한 목포역님의 권유로 서울로 돌아갈 때에는 속리산고속 8기통 BH120F 일반고속을 타기로 하고, 식당을 출발하여 대청댐을 지나 신탄진 방면으로 드라이브를 하고 20시 30분경 청주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8기통 고속버스를 탄 것이 올해 2월 말이고, 8기통 차량의 맨 뒷자리에 앉아 시승을 한 지는 1년이나 되었기에 이번에는 꼭 BH120F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8기 차량을 타겠다는 일념으로 터미널에 들어섰건만 왠걸, 승차장에 서 있는 차들과 그 차들을 보낸 뒤 들어오는 차들은 중앙고속과 속리산고속, 서울행과 동서울행 모두 Q엔진 그랜버드 선샤인이나 블루스카이, 심지어는 파크웨이 일반고속까지 나타나는 등 정면으로 저의 기대를 배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30여분을 보내는데, 마침내 박차장에 서 있던 속리산고속 충북 70 아 8013호가 동서울행 승차홈으로 들어오더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8013호는 속리산고속에 단 한 대뿐인 AERO EXPRESS HSX(8기통)입니다. 레어 차종을 보고 기뻐하며 이 차를 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시 다른 곳을 둘러보고 오던 상당산성님이 또다른 낭보를 전해 오셨습니다. 중앙고속의 21시 55분발 동서울행 비유선형 AERO QUEEN과 서울행 8기통 BH120F가 곧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줄줄이 들어오는 Q엔진 차량들을 보고 실망하다가 갑작스럽게 주어진 세 개의 선택권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생각을 해 보니,
일단 세 차량 모두 제가 요구하는 기준인 8기통 차량이라는 점은 충족시켰는데,
1. AERO EXPRESS HSX는 속리산고속에 단 한 대 뿐인 희귀 차종이고,
2. 8기통 BH120F는 현존하는 모든 버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종이며,
3. 비유선형 AERO QUEEN은 고속버스에서는 곧 사라질 차량으로 현재 제가 가장 타 보고 싶은 차종이라는 점입니다.
계속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하다, 마침내 3번을 선택하기로 잠정 결정을 내리고 버스가 승차홈에 들어오면 운전석 줄의 맨 뒷자리 좌석 번호를 확인한 뒤 곧바로 승차권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행복한 선택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중앙고속의 BH120F(경기70아 5304, V365T 엔진)가 21시 30분발 서울행 일반고속 전용 승차홈에 들어오길래 기사님이 착오를 일으켰거나 그냥 우등 승차홈을 무시하고 일반 홈에 차를 댔겠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들어오던 '일반고속 시간에 우등고속이 투입되는' 경우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자 순간적으로 'OK' 사인이 머리속을 스쳐갔고, 과감히 생각을 바꾸어 BH120F를 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차에 올라 제가 원하는 좌석 번호가 27번이라는 것을 확인하여 매표소에서 해당 좌석 승차권을 샀고, 상당산성님과 석별의 인사를 나눈 뒤 버스에 올랐습니다.
얼마만에 앉아 보는 8기통 차량의 엔진룸 좌석인가.. 버스가 정시로 터미널을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그토록 원하던 차를 타고 간다는 생각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차량의 실내 보존 상태는 아주 좋았으며, 엔진룸 좌석에서의 소음도 여느 V365T 엔진 차량이 그러하듯 OM442A의 수준으로 정숙했습니다.
항공기와 철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간 실내 소등 상태의 아늑함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초기형 헤드레스트 일체형 시트의 편안함, 히터가 뿜어내는 따뜻한 공기의 포근함을 느끼며, 가장 좋아하는 차종(8기통 BH120F)의 가장 좋아하는 자리(운전석 줄의 엔진룸 좌석)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트(초기형 헤드레스트 일체형 시트. 현재 금호고속에 장착되는 배개형 시트 절대로 아님)에 앉아 가는 기분을 마음껏 만끽하였습니다. 다소 유치한 표현이지만, '버스에 안겨 간다는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이번 중앙고속 시승은 근래 일 년, 아니 매니아가 된 뒤 제가 해 온 버스 시승 중 최고였습니다.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는 1시간여 동안 제가 처음 버스매니아계에 입문했던 당시의 느낌과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버스가 서울 경부선 터미널에 도착한 뒤 우렁찬 목소리로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드리고 차에서 내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토록 우수하게 차량 상태를 보존한 중앙고속에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전날의 차량 수리로 피곤하신 와중에도 저를 위해 후의를 배풀어 주신 상당산성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아참-_-) 새서울 고속 센트럴시티에서 쫒겨나게 생겻더군요... 들은 말로는-_- 중앙하고.속리산이 소송걸어서..새서울이 완패했다 하던데....어쨋든 1월안에 도산위기라 하더군요...어쨋든 짬내서 시승해보시길....과연 새서울이 남아도는 파크웨이 우등차량을 어떻게 굴려먹을지...
여담이지만 독일에서 프랑스로 갈 때 탄 오픈살롱형 야간열차에서 거의 완전히 소등이 된 적이 있습니다. 컴파트먼트형에서야 타는 사람 마음이지만, 오픈살롱형에서 소등이라는 건 드문 경우라 인상에 남는군요. (물론 JR의 아카쯔키 좌석차도 상당히 어둡습니다만)
작년 구 289열차에서 옥천쯤에서 발전차 고장으로 단전된 적이 있었죠 ^^;; 너무 당황;;;; 대략 실내온도계만 켜져있고 자동문은 에어가 빠져서 수동으로 여닫고 다녔죠. 대략 각계 정도 와서 다시 들어왔지만요.
새서울이 소송에서 져서 센트럴발 청주행 노선 대폭 감회했죠..(그대신 남부터미널발을 왕창 증회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