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화폐속의 인물 스타시츠(폴란드-) 태어남
폴란드 50,000(1989년 발행)
스타시츠(Stanisław Staszic) 1755. 11. 6 ~ 1826. 1. 20
폴란드의 으뜸가는 계몽주의 정치평론가.
폴란드 프로이센 슈나이데뭐에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괴팅겐·파리에서 공부했고 같은 시대에 살았던 대부분의 폴란드인들보다 훨씬 더 유럽인다운 시야를 갖고 있었다. 교사가 된 뒤, 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지질학자로서 광물을 탐사하고 동로바 지구의 탄광과 올쿠슈 지역의 광산을 재건했다. 또한 농업에도 관심을 갖고 농작물 재배술 개량을 주장했으며, 1824년에는 자신의 소유지를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고 협동농장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저서인 〈폴란드를 위한 경고 Przestrogi dla Polski〉(1790)에서 젠트리 계층의 사회경제적 약탈 행위를 가차 없이 묘사하며 민주개혁을 주장했다. 그밖의 저서로는 철학적 장시 〈인간의 조건 Rod ludzki〉(1819~20)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폴란드어로 번역한 작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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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화폐속의 인물 이맘 본졸 (인도네시아) 세상떠남
인도네시아 2001년 발행
이맘 본졸(Imam Bondjol)
Muhammad Sahab, Peto Sjarif, Malim Basa, Tuanku(Master) Muda, Tuanku Imam, Tuanka Imam Bondjol이라고도 함.
1772 ~ 1864. 11. 6. 종교 지도자 /수마트라 캄풍탄중붕가 출생
1803년경 청교도적인 와하브파의 이념에 감명을 받은 순례자들이 메카에서 돌아와 미낭카바우인들이 믿고 있던 이슬람교를 개혁하고 정화하는 운동을 시작했을 열정적인 초창기 개종자가 되었다.
고향인 알라한판장 계곡에 본졸이라는 요새화된 공동체를 세웠으며 이곳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지었고 이곳은 파드리교를 전파하기 위한 '성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내전이 일어나 이맘 본졸은 파드리 공동체의 정치적?군사적 지도자가 되었다.
1821년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지원을 요청 받은 네덜란드군이 전쟁에 개입했는데 이는 벤쿨렌과 페낭 섬에서 이루어지는 미낭카바우인과 영국인 간의 무역을 중단시키려는 또다른 목적을 내포한 결정이었다.
자바 전쟁(1825~30)으로 네덜란드군이 빠져나가자 이맘 본졸군은 통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맘 본졸군은 네덜란드군의 증강으로 이같은 경향이 바뀌는 1831년까지 전쟁에서 계속 승리했다. 1832년부터 네덜란드군은 파드리파가 지배하는 지역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1837년에는 본졸 자체를 점령했다. 이맘 본졸 항복하여 추방당했다. 파드리파의 몰락으로 전쟁이 종결되었음은 물론이고 미낭카바우가 주권을 잃었고 그들의 영토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령에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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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년 폴라로이드 사진기 개발
폴라로이드 사진기
1947년 11월 6일 미국 폴라로이드사 사장 에드윈랜드 박사(MIT명예교수)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처음 개발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필름에 부착된 현상인화 정착액 주머니가 필름을 뺄 때 카메라 안에 장치된 룰러에 눌려 터지면서 필름에 골고루 묻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촬영 후 흑백 필름은 10초 만에, 칼라 필름은 약 1분 만에 인화가 되며 암실조작이 필요없고 촬영한 장소에서 바로 인화되어 사진촬영 즉시 사진을 볼 수 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정식명칭은 폴라로이드 랜드 카메라이며 ‘1분카메라’라고도 불려진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발명은 일대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사진사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최근에는 일반카메라 뿐만 아니라 공업용·의학용·상업용·보도용 등으로도 사용되어지고 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1964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자셔터식 AE카메라인 ‘폴라로이드 오토매틱 100’이 개발되었고, 1972년에는 접는 식의 1안 리플렉스 전전동(全電動) 카메라인 ‘폴라로이드 SX-70’도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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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 호메이니,임시정부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음
이란(이 국명은 1934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중립을 지켰으나 영국과 소련이 독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41년 레자(Reza)는 남아프리카로 추방당했고 그의 아들 모하메드 레자(mohammed Reza)가 뒤를 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소련의 철수를 설득하여, 젊은 왕(Shah)은 1941년 절대적 권력을 다시 얻게 되었고 이란은 서방에 돈독한 우방이 되었다.
팔레비국왕은 50년대 중반부터 석유 수입과 미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강력한 산업화 정책을 펴 나갔다. '백색혁명'으로 불리는 그의 근대화 추진은 도로-철도-항공망의 확장, 댐 건설과 관개 사업, 질병-문맹 퇴치 등 이란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1973-74년 유가의 대폭적인 인상과 함께 시작된 이란의 석유의존형 고속성장은 인프라부문에의 투자보다는 국방부문에 과도한 지출과 국왕의 명성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집중됨으로써 인플레를 유발하여 경제구조에 심각한 결함을 노출시켰다. 경제적 어려움, 행정의 소홀한 관리 및 국왕 자신이 서구에 국익을 팔아 넘겼다는 인식으로 국민들의 불만은 광범위한 불안의 요인이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1979년 1월 팔레비 왕조(Pahlavi dynasty)를 전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팔레비 왕조의 통치에 대해 60년대 초 이란국민의 90%를 차지하는 이슬람 시아파의 최고지도자 '대 아야툴라'가 된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는 반정부 운동의 선봉에 섰다. 팔레비 정권은 1963년 그를 투옥했고 1년 뒤 강제추방했다. 이라크에 머물며 반 팔레비 운동을 계속하던 호메이니는 1978년 10월 후세인에 의해 여기서 마저 쫓겨나자 프랑스 파리로 옮겨갔다.
1979년 1월 팔베비 왕조는 전복되고, 그 결과 국왕인 샤(Shah)의 망명과 프랑스로부터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귀국으로 이란은 1979년 3월 이슬람공화국이 되었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국민투표에 의해 합법화되었으며, 1979년 11월 6일 호메이니는 임시정로부터 권력을 이양받고, 그 해 12월 새로운 법률을 시행하였다.
이란 혁명은 팔레비와 호메이니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았다. 이집트, 모로코, 멕시코를 전전하던 팔레비는 79년 10월 암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갔지만 이란 강경파 학생들이 그의 이란 송환을 요구하며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하는 바람에 다시 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80년 7월 이집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반면 호메이니는 1989년 6월 4일 죽을 때까지 이란의 절대적 통치자로 군림하며 이슬람 혁명의 수출에 힘씀으로써 인접 아랍국가의 지도자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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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년 윤관(尹瓘) 장군 여진 정벌.
1429년 헨리 6세(Henry VI), 잉글랜드 왕위에 오름
1506년 연산군 사망
1632년 구스타프 2세(Gustavus II), 스웨덴 왕 세상떠남
1771년 알로이즈 제네펠더(Alois Senefelder), 오스트리아 석판인쇄 발명가 출생
1811년 (순조11)국악인 신재효 출생
1814년 아돌프 색스(Adolphe Sax), 벨기에 색소폰 발명가 출생
1836년 프랑스의 왕 샤를10세 사망
1842년 윌리엄 혼(William Hone), 영국 작가, 편집장 세상떠남
1854년 존 필립 수자(John Philip Sousa), '행진곡의 왕' 미국 취주악자휘자, 작곡가 출생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미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됨
186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킴벌리(Kimberley)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됨
1880년 오스트리아 소설가 로베르토 무질 출생
1884년 영국, 뉴기니아를 보호령화
1892년 존 앨콕(John Alcock), 영국 비행사 출생
1893년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eter Ilyich Tchaikovsky), 러시아 작곡가 세상떠남
1901년 케이트 그리너웨이(Kate Greenaway), 영국 일러스트작가 세상떠남
1905년 YMCA창설자 조지 윌리엄스 사망
1906년 일본, 남만주철도회사 설립
1907년 미국, 파나마 독립승인
1922년 안창남 도쿄~오사카 왕복우편비행대회서 우승
1924년 영국 토리당(Tory) 당수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이 수상으로 선출됨
1931년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미국 감독 출생
1932년 독일에서 행해진 총선거에서 나치스(Nazis)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이 됨
1937년 도로규칙 개정(1938.4 실시)
1937년 영국의 배우 포브스 로버트슨 사망
1937년 이탈리아-일본-독일 방공(防共)협정 가입
1945년 일본 연합국총사령부(GHQ), 일본재벌에 해체 명령
1946년 샐리 필드(Sally Field), 미국 여배우 출생
1947년 폴라로이드 사진기 개발
1949년 북한, 중국과 국교수립
1950년 맥아더, 중국 월경(越境) 성명
1950년 UN공군, 압록강 철교 폭파.
1951년 허정, 국무총리 서리 임명
1954년 유엔총회서 미국-영국 등 60개국, 원자력 평화이용 공동결의안 제출
1956년 아이젠하워 재선
1956년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의 잠베지(Zambezi)강에 카리바(Kariba)댐 건설이 시작됨
1959년 능의선 기공식(능곡-의정부)
1959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통치를 반대한 필리핀 대통령(1943-45) 라우렐 사망
1961년 UN총회, 핵실험금지 결의안 가결.
1962년 동해북부선 개통
1962년 아랍연합, 사우디아라비아와 단교
1966년 마해송 별세
1968년 닉슨, 미국 37대 대통령에 당선
1968년 월남평화협상 시작
1970년 이탈리아-중국 국교 수립
1972년 태국 학생들 일본상품 불매운동 결의
1975년 모로코, 평화대행진 선발대 서부사하라 국경내 10km까지 진입
1975년 영국의 펑크 락 그룹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런던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St Martin's College of Art)에서 첫 대중 공연을 열었으나 대학 관계자들에 의해 10분만에 중단됨
1976년 조치훈이 일본에서 명인위 획득하다
1978년 이란, 팔레비왕 군사내각 수립
1979년 계엄사,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전모 발표
1979년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이슬람 혁명정부(Islamic Revolutionary Council), 임시정부로부터 이란에서의 권력을 획득함.
1980년 조치훈, 일본 바둑 명인위 획득
1981년 안기부, 학원침투 교포간첩단 9명검거 발표
1983년 미국, KAL기 블랙박스 수색중단
1983년 북괴공작원 버마로부터 추방
1984년 아시아-태평양전기통신협의체(APT) 서울총회 및 관리이사회 개최
1988년 미국 국방부의 6000개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의해 기능이 마비됨, 범인은 국가 컴퓨터 보안국 수석의 23세 아들로 밝혀짐
1989년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 착공
1990년 한국-소련 간 직통전화 개통
1995년 조선 중종때 정온의 시신, 파주군서 미라로 발견
1997년 독도의 동도(東島)에 접안시설 완공. 길이 80미터, 폭 14미터. 어민숙소 50명 시설과 진입통로도 시공. 일본 외무성에서 항의.
1997년 러시아 옐친 대통령, 화학무기협약서명. 4.4만톤으로 세계 최대보유국. 이 협약에
165개국 서명하였으나,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북한 등은 서명 안함.
1997년 북한 서열 26위 서관희 농업담당 비서 농정실패 문책 공개처형 당한 것 밝혀짐. 지난 9월 중순, 다른 17명과 함께.
1997년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라트비아 출생 영국 철학자, 역사가 세상떠남
1997년 중국인권보호법안 미의회 압도적 통과. 소수민족의 종교방해, 강제임신중절관련 중국관리 미국입국 불허.
1997년 TDX 1000만 회선 돌파
1998년 서울 월드컵 경기장 기공식
1998년 전세계 300만번째 도메인 네임(lizzybee.com) 등록
2000년 사진작가 김근원씨 별세
2005년 원로 영화 감독 최훈(崔薰) 씨 타계
2005년 대한항공 비행 시뮬레이션 대회
2005년 제4회 마카오 동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
2005년 로버트 김, 10년만에 고국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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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첫댓글 어딘지모르게 남다른 이미지를 가지고있는 김장훈님 박수를 보내드리면서 어쩜 그렇게 멋있어보이는지 .... 오늘은 조선시대의 폭군 연산군이 세상을 떠나고 국악인 신채효선생이 출생하신날이군요. ㅎㅎㅎ 또한, 어린이들의 꿈과희망을 선물하는 아동 장편문학의 선구자 마해송 님이 별세하신날이군요. 벌써 국내에 독감환자가 발생하였답니다. 건강관리 잘 하세요.
김장훈씨의 기부의 끝이 어딘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액수의 기부를 하셨고,앞으로 얼마를 더 기부할지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대단합니다.폴라로이드 사진기 개발이 보입니다.책상에도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이 있는데 1947년 개발되었네요.
김장훈씨의 선행은 연예인 본보기도 되지만 끝이 없네요. 70년대 후반 학생들이 두건을 두른 호메이니 얼굴을 그리던 생각이 나네요. 조치훈씨 이름뒤에 명인이 들어가는 데 약관의 나이이던 80년 획득후 오랫동안 방어를 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언제나 열심히 변치않고 선행에 앞장 서시는 김장훈씨에게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군요.
가수 김장훈씨의 기부열정이 대단합니다... 지역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모습이 놀라울 뿐입니다... 기부만큼 인기나 명예도 따라와준다고 생각하고 더 힘내길 기원합니다.
공인들이 타의 모범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장훈씨의 기부 대단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란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는군요. 팔레비와 호메이니 두사람의 엇갈린 운명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