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우울증과 광기에 대하여
병이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며, 정신병 또한 예술가들만 걸리는 병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처절한 작품 활동과 광기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병마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광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가?
예술은 그들 생의 전부이며, 생의 절대적 가치를 지니다. 예술가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영혼에 불을 지피고 자신의 감성에서 뽑아낼 수 있는 한 선율을 뽑아내고는 밑동이 잘린 나무둥치처럼 그만 지상에 엎어지고 마는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그들은 잠든 영혼을 고양시키기 위해, 때로는 깊게 내재된 자신의 영성(靈性)을 고무시키기 위해 악마와도 기꺼이 손을 잡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약과 알코올중독, 매독과 정신착란은 순서대로 오면서 치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대가였던 것이다. 로트렉과 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는 전형적인 이 코스를 밟았다.
“이 세상에서 어떤 병을 알코올중독과 비교할 수 있으리.”
에드거 앨런 포의 말이다.
시인 에드거 앨런 포를 닮은 보들레르, 두 사람은 술과 마약과 정신착란으로 정신병동을 드나들며 46세, 40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시에서만은 두 사람 모두 철저했다.
화가 로트렉과 유트릴로, 그들은 어머니의 극진한 보호 속에 한 사람은 불구로, 한 사람은 사생아란 자학 증세로 알코올중독에 빠져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많은 걸작품을 남겼다. 작가 모파상과 보들레르, 그리고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는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때 로댕의 애인으로 촉망받던 조각가 카미유 끌로델은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30년 만에 죽어서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음악가 슈만과 스메타나도 정신병원에서 운명했다.
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생애의 반을 좌절과 고독 속에서, 나머지 반생은 정신착란으로 36년간을 유폐된 채 살았다. 그의 시, 일 구에 나는 무한 존경을 바친다.
‘위안받으라! 이 삶은 고통받을 가치가 있도다.’
헤르만 헤세와 사뮈엘 베케트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시인 딜런 토마스와 박정만, 무소르그스키는 알코올중독으로 쓰러졌다. 헤밍웨이 역시 알코올중독자였고 엽총 자살을 감행했다. 그중에도 모파상, 보들레르, 니체, 스메타나, 슈베르트는 매독으로 인한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니체는 매독으로 인해 실명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스메타나는 〈나의 조국〉을 완성한 뒤 양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나부 마야〉를 그린 스페인 화가 고야도 매독으로 청각을 잃었다.
화가가 눈을 잃고, 시인이 말을 잃고, 음악가가 귀가 멀다니…. 왜 이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야 했을까?
그들의 감각은 악마의 제물이 되었다. 가난과 질병, 깊은 절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마약은 환각의 낯선 생동감을 유발시키고 외부 세계에 강렬한 흥미를 갖게 한다. 이때 생각의 흐름도 무척 빨라져 훨씬 가속도가 붙은 광시곡(狂詩曲)이 된다는 것이다. 마약은 창작의 영감을 제공해주는 대신 악마처럼 그들을 집어삼켰다. 악마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감성적인 예술가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나 미술에 뛰어난 예술가들은 왜 항상 우울한가?”라는 물음을 제기한 이래 심리학자와 신경학자들은 ‘창조성과 광기’에 대한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켄터키 의대 심리학 교수인 아놀드 루드윅 박사는 조울증이 가장 심했던 집단은 예술가 집단이었으며 알코올중독은 조사 대상의 60%가 배우, 40%가 작가들이었으며 과학자들은 3%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조울증의 정도에 따라 창작성에도 차이를 보였는데, 세계의 뛰어난 창작자들은 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 홉킨스대학의 케이레드필드 제미슨 박사의 주장이다.
예술가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한 제미슨 박사는 자신의 저서 《우울증과 예술성》에서 시인 바이런과 셀리, 음악가 슈만, 소설가 허먼 맬빌과 버지니아 울프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정신병은 고통으로부터의 피난처이며, 광기는 수난의 기억을 잊으려는 수단”이라던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오른다.
간절히 잊고 싶은 수난의 기억, 고통뿐인 상처, 악마에게 뒷덜미를 잡힌 가엾은 예술가들의 심연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거미가 습격한다며 창문을 닫고 ‘신에게 검은 매독을 전염시켜서 죽이겠다’고 악을 쓰던 모파상. 처자를 먹여 살리지 못했다며 음식을 거부한 이중섭. 노래를 들려주던 천사들이 마치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을 움켜쥔다면서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던 슈만 등등.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 여기 예술가 10명을 지면으로 초대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금이 간 거울처럼 깨지고 만 자아의 붕괴. 그들 마음속 병이 어떻게 전개된 것인지를 나는 알고 싶었다. 어떻게 그러한 환상과 망상이 일어나는가? 병든 마음, 마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 < 거울 속에 내 모습은 없다> / 모파상
2. <길 떠나는 가족> / 이중섭
3. <색채의 절규> /뭉크
4. <환영을 밟아 오르는 사다리> / 슈만
5. <이젠 나도 시커먼 아가리에요> / 고흐
6. <나 자신을 내던지리라> / 버지니아 울프
7.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8. <내 넋은 금이 갔네> / 보들레르
9. <삶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 / 에드거 앨런 포
10. <태어나서 미안해요> / 다자이 오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