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서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지혜와 통찰력의 맛을 본 이후로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많이 조심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아닌 남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경계선을 잘 지켜주는 대표적인 스킬이 '내 생각은 ~이다'라는 것이다. 항상 '내 생각'이라는 것을 붙여서 말한다. 내 주장은 이러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 맞고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덧붙이거나, 그런 느낌을 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들은 매번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어떤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 '주고 받음'이 잘 되지 않는다. 난 내 의견을 줄 의향도 니 의견을 받을 의향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의견을 나에게 우겨넣으면서 동시에 내 의견까지 자기 것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본인의 관념에 어긋나는 발언이 들리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가 맞니 니가 맞니의 늪으로 빠져든다. 안타깝게도 내 경험상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부류가 더 많았다. 이런 사람과 토론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토론이 불가능한 관계에 더이상의 발전을 기대하진 못한다.
너와 내가 뜻이 같다고 할지라도 포장지를 벗겨보면 그 내막이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게 설계되어 있는 게 우리 인간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 지식 선에서만 판단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관념을 뒤흔드는 건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경청하는 사람을 정해놓고 산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가지 유형의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 첫 번째는 자기의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고 믿는 사람. 두 번째는 본인이 범접할 수 없는, 자기보다 한참 강해보이는 사람. 추가로 단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말도 잘 듣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본인이 자기와 동급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말은 철저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친구관계에서 그런 색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보통 학창 시절 때 만난 친구들은 공부를 놓고 서로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에 관계가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변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서로가 경험하는 사회생활이 너무나도 다른 것에서 오는 현상이다. 물론 끼리끼리 만나는 것도 친구사이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조차 비슷한 무리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생각차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생각의 차이는 대화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다. 나같은 경우 내 의견에 대한 주장을 펼칠 때는 정답을 정해놓고 말하지 않는다. 보통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고 만다. 하지만 어른이 되서 만난 친구들은 각자의 정답을 정해놓고 그에 반하는 의견이 귀에 들어온다면 항상 '잘못됐다', '그건 아니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더 큰 문제는 그 기준이 본인의 것이 아니지만 본인의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데에서 있다. 항상 근거를 물어보는 나는 매번 실망한다. 논리도 출처도 없는 주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알맹이도 없는 주장을 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더욱더 멀어지는듯한 거리감을 느낀다. 껍데기에 불과한 생각은 금세 티가 나게 되있다.
자기자신이 한 명의 독보적인 존재라는 것은 인지하지 못하고 남들의 생각을 쫓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현실은 차마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다. 본인 자체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의 생각을 굳이 자기생각으로 동기화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귀담아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본인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것이라고 여겨 반대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살기엔 더 편하다. 큰 고민과 사유는 할 필요없이 단지 아는 대로만 살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더 편할지 몰라도 언젠가 큰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진정한 자기자신으로서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을 깨닫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