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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들꽃 & 토종, 생태환경 스크랩 갯벌로 출근하던 아줌마의 기억
선과 추천 0 조회 52 06.07.28 06:0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갯벌로 출근하던 아줌마의 기억

제32차 새만금시민생태조사 문화팀 보고


                                                                           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문화팀 김경완


지난 7월 1일 9시40분 옥봉리 수라갯벌에 도착해 갯벌을 바라보는데 멀리 안개가 끼여 있다. 지난 밤 사이 많은 비가 내려서 진짜 갯벌로 보이는 곳엔 멀리 두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다. 칠게잡는 통에서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접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뻘이 젖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옥봉리에서 어패류도소매를 하는 ‘천기수산’에 들러 동네에서 오랫동안 갯벌일을 하신 분을 추천받아 우영록 선생님 집을 알아두었다.


시내에서 옥봉리로 출근하는 아줌마들

 

 

 


마을로 되돌아들어서는 길에 5명의 중년 여성들이 가방을 메고 ‘천기수산’이 마련한 작업장으로 들어선다. 이분들은 모두 군산시내에 거주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에 10년 또는 수년 동안 조개를 캐기 위해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분들이었다. 물론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요일도 없다. 다만 어제같이 엄청난 폭우가 있을 때만 오지 못했을 뿐이다. 옥봉리 갯벌이 직장이자 근무지인 셈이다. 물막이가 끝나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습관이 있다. 물때 없어도 옛날식으로 물때를 보면서 다니는 것이다. 달력을 가져다가 놓고 계속 보면서 나온다는 이야기에서 이분들의 평소 습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분은 오식도 섬에 살았던 사람들로 이제는 군산시내 조천동으로 이사해 살지만 갯벌일을 잊지 못하고, 다른 일을 못하는 탓에 40대 중반에 이 일을 시작해서 이제는 10년 되었다고 한다. 몇 분은 이렇게 섬을 막자 고향을 떠나 시내에 살면서 이곳에서 작업을 한다고 한다.


“대충 5-6만원, 잘 벌면 7-8만원씩 벌었제, 반지락(바지락), 생합, 피조개 없는 것이 없었어요. 반지락도 엄청 좋은 반지락이 나왔어요. 작년 그럭께까지 좋았아요. 이거 막고 나서부터는 물이 안 올라와 완전히 변해 부렀어. 이거라도 있으니까 다행이지 없으면 살기 막막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한 팀이 더 들어와 작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갯벌로 나서는 채비가 보통이 아니었다. 완전무장에 가까운 복장을 챙기는데 한분이 종이박스 안에 있는 도구를 몇 가지 보여주었다. 본인의 사물함인 셈이다. 그동안 사용해왔던 여러 도구들 중 갈퀴가 여러 가지 있는데 최근에는 이것이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죽뻘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낫을 많이 사용한다. 또 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꺼운 스티로폼도 가지고 다니는 것이 그전과 달라진 점이다. 생명이 걸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할머니 허리까지 빠져갖고 큰 일 날 뻔 했어요. 이렇게 다 끈을 만들어 끄고 다녀야해요. 새만금 4공구 막고 나서부터 갖고 다녀요.”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출퇴근을 하고, 갯벌에 나가지만 물막이 공사가 끝난 바다는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그렇지만 별수 없는 일이다. 별로 희망적이지 않은 바다에서도 이분들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과연 ‘이대로만 가면’ 계속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방조제 보강공사가 계속되고, 수문이 수시로 닫히는 판국인데 이분들의 기대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공치는 날도 있고, 빈 다라로 끄고 올 때도 있어요. 차비도 못해가지고 올 때도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이 갯벌이 다 말라불 때까지 벌어먹고 살아야해. 이대로만 나가면 한두 달이 아니지. 계속 하지”


“여기는 나이 제한도 없고, 활동만 하면 되는데. 내 나이 60이여, 갈 데도 없고 이거나 하다가 물 말라불면 끝장이지”


열아홉에 시집와서 내내 바다 뜯어먹고 살았는데...


수라마을 언덕위에 사는 이정님(67세,471-5505) 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나 19에 시집와서 내내 그런 것만 했제. 내내 바다 뜯어먹고 살았제.”

친정은 이 넘어 비석거리라 바다를 몰랐고, 당연히 ‘색시 때는 이런 일 안 해 먹’고 살았다. 시집 올 때 남편은 그물을 들고 다니면서 새우젓 잡아다가 파는 일을 했다. 그리고 곧 이곳으로 이사와 바다 일을 배운 것이다. 이 동네는 농사짓는 사람은 별로 없고 갯일을 통해서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조개를 잡아다가 팔고, 까서도 팔아 8남매를 모두 키워낸 분이다.


“이게 금바다여. 그냥 바다가 아니라. 저녁거리 없고, 아침거리 없을 때 나가면 쌀사고, 연탄사고, 새끼들 학교 갈 때 돈 달라고 하면 돈 주고. 8남매를 그렇게 키웠어”


그 바다에서 얼마 전 물막이가 끝날 때까지 바다 일을 했다. 지금도 나가고 싶지만 ‘눈이 멀어 못 한다’고 했다. 눈이 멀다는 말은 조개구멍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눈이 멀어 못해. 물막이 공사 직전까지 잡았제. 가무락은 눈을 봐야 하는데 구멍을 몰라. 그 눈이 몇 가지여. 모양이... 뒤엉(동죽)이나 헤대기(하얀조개)를 (주로) 다 까서 파는데..., 낫 가지고 아무데나 하는 것이 아니고 구멍 봐가지고 낫 가지고 ‘폭’하는거여”

 

 

 


그런 갯벌이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여기서 벌어먹고 살 일이 없어졌고, 밖으로 나가더라도 돈이라도 있어야 집이라도 하나 얻지 여기 사람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여기 사람들은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고 말할까. 이분의 마지막 당부는 오랫동안 귀전에 남아있다.


“여기사람 이제 죽을 일 뿐이 없어. 여기는 다 끝난 놈의 일.. 다 끝나 불고 살 길이 없는 형편인데, 여기 사람들 다 굶어 죽게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딱 터달라고 어디 위에 권력있는 사람들한테 이야기 좀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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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28 18:51

    첫댓글 할말이 없지요? 썩어가는 시화호를 보면 느낄만도 한데...바다는 바다로 산은 산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야지요. 역행해서 좋은 건 별루 없는듯...

  • 06.07.29 17:56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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