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내일 귀국을 위해 오클랜드에 입성하는 날입니다.
가는 길에 무라와이비치와 피하비치를 들러 가기로 했습니다.
오클랜드 서쪽 해안가에 있는 그 해변은 무척 아름답다고 했거든요.
새벽 일찍부터 남편과 나는 서두르고 아이는 일어나기 힘겹습니다.
남은 음식들을 풍성히 먹기로 했는데 깻잎도 두개나 남았고
샐러드도 과일도 있어서 오늘 아침도 행복한 밥상이 되겠습니다.
무라와이 비치는 가넷 서식지로 유명해서
장엄한 풍경을 이룬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더니
우리 갔을 땐 가넷이 사냥을 나갔는지 하얀 가넷의 똥으로 칠해진 바위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검은 모래 언덕을 뛰어 올라가 기념촬영이라도 해서.. 위로가 좀 되었을까요?
햇볕에 구워진 모래알은 너무 고왔고 신발 사이로 화상을 입힐듯 뜨거웠습니다.
언덕에 올라갈 때도 냅다 뛰어야 했으니까요..
드디어 여기에 왔습니다.
피하비치..
홀리헌터 주연의 '피아노' 촬영지..
저는 오래전 그 영화를 보았기에 남편이 시간이 늦을까 조바심하는 것도 모르는 척 하고
꼭 이곳에 들르고 싶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알게 하고 세상에 대고 말하는 방식이 피아노인 여자...
뉴질랜드의 자연이 그대로 살아나고
피하비치의 파도와 바닷가의 쓸쓸함이 파도소리에 그대로 투영되는, 시작하자마자 드러나는 장면...
그녀가 뉴질랜드에 첫발을 디디는 장소이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장소이고,
그리고 영원한 행복을 위해 떠나는 장소...피하비치..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영화를 한국에 돌아가 꼭 다시보리라 작정하며 그곳에 들렀습니다.
아직도 그 파도소리는 그대로이고
그 뜨거운 해변의 햇살도 그대로인데...
![](https://t1.daumcdn.net/cfile/cafe/174C8D114B66B5991C)
저 아래 보이는 피하비치...
결국 우리는 시간이 없어도 아래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 쓸쓸하지는 않았습니다.
서핑보드경기가 열리고 있어서
건너 해변은 엄청 소란스러웠는데 이곳엔 몇몇의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역시나 뜨거운 검은 모래...
참, 그 검은 모래의 매력을 잊을 수가 없네요..
또 라이언 록도..
정말 사자처럼 생긴 산엔 사람들이 수시로 오르내릴 수 있는데 우린 바빠서....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C8D114B66B5991D)
거기 해변가에 캠퍼밴을 세우고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영화와 장소가 머릿속에서 클로즈업되어 떠나기 싫었지만
다섯시가 넘으면 차를 반납할 수가 없어서 서둘러 오클랜드를 향해야 했습니다.
가는 도중 오클랜드가 내려다 보이는 꼬불한 길..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보이는 파란색 날씨..
길가엔 마누카나무가 하얗게 눈가루같이 머리에 꽃을 뒤집어 썼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C8D114B66B59A1F)
예약을 하지 않은 공항근처의 방을 찾아 헤매다 싸고도 좋은 호텔 하나를 찾았습니다.
짐정리를 하다보니 여행 시작 사흘만에 고장났던 안경이 안보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안경다리가 제멋대로 흔들려 당황했는데
손재주 좋은 남편이 등산갈 때 쓰는 작은 컵의 뚜껑을 연결하는 철사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빠삐용처럼 그걸로 얼기설기 묶어 감쪽같이 여행 내내 안전하게 쓸 수 있었는데...
차까지 달려간 남편이 돌아왔는데 찾아서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제가 가진 안경 중 가장 편해하고 좋아하는 거니까요...
여행을 떠나면 어디서나 한 가지 기념삼아 안 잊어 버릴때가 없습니다.
옷을 잃어 버리기도 하고, 화장품도 흘리고, 샴푸도 흘리고...
안경을 쓰는 건 덜렁이인 저로서는 심한 장애처럼 난감함을 느끼게 합니다.
아침마다 잠이 덜 깬 채 식사준비를 하러 나오면서 생각없이 그냥 나와
다시 돌아들어가는 바람에 곤히 잠든 남편을 깨우는 것도 그녀석 때문이고
누워서 책을 읽는 게 불편한 것도 그녀석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안쓰고 살 수는 없는 일 같으니 결국 친구처럼 친숙하게 여겨야겠죠.
잘 챙겨가서 고쳐야겠습니다.
오후, 저는 여행의 피로에 지쳐 꼼짝도 하기 싫어 식사도 생략하고 침대에 큰 大자로 누웠습니다.
드디어 한국에 가는 겁니다.
내일 아침 일찍~
다들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한국말 쓰는 사람들과 왁자지껄한 사람사는 모습들이....
첫댓글 여행하며 하느님의 작품들을 다시금 바라 보며 하느님의 기운을, 생명을 흠뻑 젖은 행복한 시간들 .. 잘 보고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