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교 졸음쉼터 전망대 -
새벽 댓바람에 나선 길,순천만 쯤에서 차창을 내려 바닷바람을 폐부 깊숙히 들이킨다.
하늘에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는 걸 보니 우리 농어민들 시름도 깊겠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터널 하나를 더 지나서 벌교 시내와 고흥,보성,순천을 끼고 있는 여자만을 오롯이 볼 수 있는 벌교대교 졸음쉼터에 차를 세웠다.
간간히 흩뿌리는 빗줄기가 졸음쉼터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잠을 깨워준다.
이곳에 잠시 정차를 한 것은 졸음을 쫒기위한 방편보다 벌교와 여자만을 파노라마 영화처럼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여자만이 보이는 바다쪽으로는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오른쪽 벌교시내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무대로 문화와 역사 기행이 동시에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산과 들,바다가 어우러진 남해안의 특징을 다 담고있어 절로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멀리 벌교 제석산, 고흥 두방산과 부용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오른편으로 보이는 여자만은 동그랗게 만으로 둘러쌓여 있어 바닷물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하다.
저멀리 섬의 꼬리가 하나가 아스라히 잡힌다.
조선시대 코끼리가 유배 온 '장도'다
여자만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작고 낮은 구릉이 펼쳐진 여자만은 마치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펼치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순신의 사전에는 ‘싸워서 이긴다는’ 법은 없었다.
싸우기 전에 먼저 확실히 이겨놓고 싸웠다.
이는 손자병법의 첫 번째인 ‘시계(始計)’ 병법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요, 싸워야 한다면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국가와 민초들의 삶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난 다음에 이기는 승리는 애민(愛民)주의자 이순신의 머릿속에는 없었다.
벌교대교 아래 작은 포구 장양항이 시야에 잡힌다.
장양항 인근으로 뻘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조개를 캐기도 하고 짱뚱어를 잡기도 하는 곳이다.
물길 사이로 자연스레 만들어진 작은 뻘등에는 칠면초군락이 자리하고 있다.
고개를 조금 더 왼쪽으로 돌리면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가 눈에 들어온다.
갈등과 혼돈의 시대, 좌익 세력과 토착지주 및 자본가를 중심으로 우익 세력 사이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민중들은 저마다의 길을 택해 살아야 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 태백산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차에 늘상 가지고 다니는 쌍안경을 꺼내 벌교시내를 조망해본다.
벌교를 안고있는 제석산 아래에는 태백산맥의 주인공인 소화네집과 현부자집과 김범우와 염상진,염동구가 마주치는 소화다리가 그림처럼 놓여있다.
벌교에서 순천으로 넘어가는 진트재와 하대치와 징광댁이 만났던 중도방죽역시 조망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려거든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 태백산맥이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그동안 멋모르고 지켜왔던 신념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고 인생 항로를 결정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과 역사기행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벌교 졸음쉼터 조망대에서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을 통해 전해주려고 했던 말씀을 상기하며 고흥으로 향했다.
"한줄기 바람이었다.한줄기 구름이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이념이라는 것이 정치지향적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임을 뒤늦게 깨달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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