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43회 동창들이 양양으로 몰려오는 날이다.
1965년 졸업후 흩어져 살던 우리를 1997년 양양 사는 친구들이 초대해 주었고 모임장소는 준식이 형 덕분에 거평프레야로 정했다.
4학급 졸업생 240명 중에서 지난해 8회 모임까지 한번이라도 참석한 친구는 150여명에 이른다.이미 하늘나라에 간 친구들 수를 빼면 70%가 넘는 숫자다.
그동안 담임이셨던 이장수 선생님, 윤용완선생님, 박동순 선생님을 초대하여 감사한 마음도 전하고 여흥도 함께 가졌다.미국에 계신 이정숙 선생님은 참석치 못하셨다.
쉬흔이 넘었지만 동창회 모임에선 모두 13살 어린이가 된다.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날아가 추억 담기를 시작한다. 특별히 이글을 쓰려고 기백이가 만든 Daum카페 양초43에 추억올리기 부탁을 했더니 친구들이 생각나는 일들을 올려주었다. 여러친구들의 기억을 모아놓은 회고담, 그래서 나는 제목을 ‘추억 담은 모자이크’ 라고 했다.
간식
할머니,할아버지문방구 왕눈깔사탕통은 오가는 아이들 시선이 멈추는 곳이다. 장마당 허연 광목천 포장 밑에선 아주머니가 무쇠솥 뚜껑을 열때마다 뽀얗게 살오른 진빵과 만두가 구수한 냄새로 우릴 유혹했다. 기름에 튀겨낸 찐빵, 동글동글 빚은 찹쌀 엿, 녹인사탕에 소다 저어만든 또뽑기,총이며,새, 꽃 모양의 누렇고 투명한 설탕과자, 삼각형 비닐주머니에 든 오렌지 쥬스, 나무통속에 꽁꽁 언 아이스케키.
하지만 이런 건 돈 있는 날이나 눈여겨 보는거다.
뽕나무 당겨 입술 새파래지도록 오디 따먹고 거름더미에서 자란 까마중(감탕열매) 찾으면 논두렁것 보다는 열매도 크고 단맛도 더 난다. 과수원 버덩에 푸짐했던 뾰미, 풀잎 젖히면 솜털처럼 보드라운 감촉과 달짝찌근한 풀맛이 일품이다, 남대천 모래벌에 지천으로 피던 해당화열매, 이름하여 율그, 씨 빼먹다 묻은 가시로 몸 가려워 쩔쩔 맨 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사루비아,인동초 똥꼬 단물빨기, 찔레꽃대 껍질 벗겨먹기, 산딸기,뱀딸기도 좋은 간식이다.
서문리 임천 아이들은 하교길에 밭 귀퉁이에 불 놓아 밀,보리, 콩, 동부,서리해서 찜해먹었다는데 잔불처리는 히히, 언제나 돌아서서 눗는 남자아이들 오줌이었단다.
놀이
돌은 가장 좋은 장난감이다. 돌쌓기, 사방치기,비석치기,공기놀이.
공기놀이 하다가 하늘보고 눈 흘기면 흉년든다고 어른들께 야단도 들었다. 사굼파리나 깨진 사기그릇은 훌륭한 소꿉장난감.
해지면 넓혀놓은 땅 스윽쓱 문지르고 돌아가는 땅 따먹기놀이.
발목에서 시작해서 머리끝까지 높혀가는 고무줄놀이하다가 남자아이들 고무즐 끊어놓고 달아나면 팽팽한 고무줄 종아리에 튕겨 벌겋게 부어올랐다. 새끼줄 돌리며 하던 줄넘기, 잣치기,오자미던지기,구슬치기,말타기등등.... 목숨걸고 편 짜서 놀이하며 자란 덕분에 건강한 몸, 강인한 성격 생겼을거다.
단상
나처럼 12월생 일곱 살도 일학년이었지만 아홉 살 누나가 엄마 도와 키운 일곱 살 동생이랑 같이 입학하고 삼춘이랑 엄마 젖 나눠먹고 크다가 함께 입학한 조카도 있다.
1년부터 6학년까지 봄 , 가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소풍가던 낙산사.산불로 몽땅 타버린걸 보며 빛바랜 사진 태운 것 같아 아타까웠다. 2학년때는 조산까지 걸어가서 태극기 흔들며 윤보선 대통령 오신 걸 환영한 일도 있다. 쥐잡기 운동때는 쥐약을 나눠주고 잡은 쥐꼬리를 잘라내라고 했다. 애꿎은 개들이 쥐 대신 죽었는데 아이들은 쥐꼬리가 징그럽다며 젖은 오징어다리에 화로재를 묻혀 쥐꼬리로 둔갑시켰다.
회충약을 나눠 준 다음 날이면 그러잖아도 구더기 득실대던 화장실엔 새로운 것들이 꿈틀거리고 화장실 소독용으로 남대천 뚝방에 있던 할미꽃뿌리들 무수히 뽑혔다.어디 그뿐인가. 송충이 잡는 날엔
나뭇가지 잘라 만든 젓가락으로 아이들이 집어낸 송충이 수효 만만치 않다. 거마리, 화일리, 감곡리에 사는 아이들이 주워온 불온삐라는 공책과 바뀌었고 마땅히 애완동물 없던 그 시절, 화일리 친구들이 책가방에 몰래 넣고 온 아기새 깔까리는 더러 간식과 바뀌어 친구집으로 갔다. 운동회날 점심시간 운동장에 뿌려진 삶은밤 한 가마니 줍던 기억은 지금도 가끔 꿈에서 재현도 한다.
쌕쌔기가 자주 머리 위로 날던 시절이라 반공교육도 많고 공부시간에도 사이렌 소리만 나면 와르르 몰려나와 대피훈련을 했다.
삼화상회 앞 공터에선 영화도 상영했지만 간첩 세 명이 사살되어 가마니거적을 씌워놓았던 곳이기도 하다. 반공에 관한 포스타나 표어 모집도 많았다.
6학년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왔고 흑백텔레비전이 처음 들어왔을땐 영화관처럼 모여서 드라마를 보았다.
어린이회
회장은 윤명식, 부회장은 최명원, 4,5,6학년 급장, 부급장과 6학년에서 뽑힌 각부 부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장은 어린이우체국장도 겸했는데 우편함에 모인 편지들은 각반 급장들이 와서 가져갔다. 아마도 제자들의 글쓰기지도를 위한 선생님들의 배려로 시작된 것 같다. 선생님과 형제, 친구들끼리 편지를 주고 받았다.
특활부
미술부, 서예부, 문예부, 경필부, 축구부,배구부, 송구부, 음악부,주산부,등이 있었는데 군내 실기대회와 도 실기대회에선 늘 입상을 많이 했다.이기언이와 김기백이는 서예로,이규홍 선생님께서 지도하신 주산반은 노승희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상을 탔다. 문예반은 신경순, 박상혁이 입상을 했고 나도 소년한국일보사에서 상을 받았다.
축구부와 배구부
축구부 주장은 박용길, 골키퍼는 윤우희다. 천수, 재익이, 원규,규원이, 종엽이외에 후배들도 선수로 함께 뛰었다. 박응대선생님께서 축구부를, 김진만선생님께서 배구부를 지도해 주셨다. 축구부원이 되면 옥수수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구나 시합이 가까워오면 커다란 무쇠솥에선 닭개장이 끓었고 시합에서 이기고 오면 어김없이 육개장을 먹었다. 축구부에 소속되어 있다는 명예와 긍지도 컸지만 배고픈 시절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는 건 가장 큰 혜택이다.
골키퍼였던 우희는 강릉상고에 축구특기생으로 입학도 했다.
밴드부
밴드부악장은 석경환이다. 정온철 선생님의 지도아래 수업이 끝나면 여러 가지 악기연주 연습을 했다. 해군악단 복장을 한 경환이는 호르라기를 불며 지휘봉을 멋지게 휘둘렀다. 큰북, 작은북소리, 심벌즈며 트라이앵글, 리코더와 멜로디온 소리가 운동장을 채웠다.
조회시간은 물론 운동회날엔 밴드부가 앞장서서 행진을 했다.
지난 현산문화제 전야제 날 시가행진 하는 후배들의 합주부를 보며 맨 앞줄에서 아코디온을 켜며 따라가는 나의 옛모습을 찾았다.
어린이신문
어린이신문이름은 ‘양양어린이’였다. 제호는 이경수가 낸 것이 당선된거다.나와 이광수와 신기자가 어린이신문기자였고 군수님과 도 교육감님 오셨을때 인터뷰하고 기사도 썼다. 신문에는 교장선생님의 훈화,학교소식, 문예마당,각반 소식과 자랑,군내 실기대회 입상자 명단도 실렸다.기자였던 광수는 후에 사진작가로 월간골프 편집국장 일을 했다. 어린이신문은 밴드부와 경필을 지도하셨던 정온철 선생님 담당이셨는데 후에 리라초등학교로 옮기셨다. 5년때 선생님 반이었던 남자아이들은 결혼식주례로 모셨고 지금도 해마다 10여명이 부부와 함께 선생님을 만난다고 한다. 서일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계실 때 찾아뵈었는데 선생님들께 특별한 제자라고 일일이 소개시켜 주시면서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내가 색동회 동화구연가로, 동화작가로, 보육과 교수로,방송일, 교회회보편집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초등학교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이다. .
우리 친구들도 모두 제자리에서 각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자기맡은 몫을 열심히 해내고 있다. 뿐만아니라 양양초등학교 출신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역발전과 후손을 위해, 자연보존과 생명존중하는 일에 쓰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을때마다 자랑스럽다. 이후의 졸업생들도 인류를 위해 좋은 영향을 끼치는 큰 역할들을 해 내리라 기대한다.
개교100주년을 맞아 양양초등학교를 설립하신 남궁억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수업시간마다 소망의 눈으로 희망을 심으셨던 모든 선생님들과 믿음의 눈으로 우리안에 숨겨진 작은 재능의 씨앗들을 특별활동을 통해 지도해 주신 여러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오늘도 현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미래를 이끌어 갈 후배들을 지도하시는 전상범 교장선생님과 윤재철 교감선생님, 그리고 여러선생님들께 회고담을 함께 준비한 43회 졸업생 모두 한 마음으로 우뢰같은 큰 박수를 보내드린다.
그리고 지면을 통해 어린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평생 초등학교 교육에 성실하게 임하셨던 아버님(한용한 선생님)과 어머님(이유화선생님)께도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
양력
1953년 양양출생
1971년 양양여고 졸업, 1975년 중앙대학교 화학과 졸업,
1974-1978 주식회사 태평양화학 추판부 근무
2002년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석사)
1991년 마로니에백일장 아동문학부문 장원, 아동문예로 등단.
1992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1993년 색동회어머니동화구연대회서 금상 수상.
1995-2004년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 글짓기와 동화구연 강사로 재직
2000-2004년 인천여자신학교 보육교사교육원에서 교수로 재직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아동문인협회 회원, 아동문예작가회 회원,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운영위원,
기독교문인협회 이사.
저서
세상에서 가장 힘센 돌멩이, 신바람이 났어요. 세모와 피피.
지구할아버지의 눈물등 창작동화집 다수와
예수님 이야기,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 이스라엘 여인들의 이야기, 사사들의 이야기, 제자들의 이야기, 선지자들의 이야기, 구약성경에 나오는 동물들 이야기, 절기동화집등 성경동화 다수,
전래동화, 천로역정, 탈무드전집, 벤허등 개작동화집 다수,
글짓기가 재미있어요, 38가지 이야기와 동시등 글짓기 지도책등 30여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43회 친구들 화이팅!
너희들 덕분에 써내려갈 수 있었어.
더 늙기 전에 이렇게라도 어린 시절 메모 할 수 있어서 좋았어.
밤잠 가끔 설치긴 했어도 유년의 뜨락 서성대며 행복했었단다.
한마음이 되어 도운 너희들에게 큰 박수 보낸다.
하늘나라 가서도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는거다.
하나님은 너희들 모두를 지으시고
지금도 너희들과 함께 하시며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거든.
가끔씩 살아계신 하나님 이름 부르며
감사하며 살도록 해.
첫댓글 잘 읽었어! 작가가 있어 좋다~~~!!!
고마워. 니가 이런 카페 만들어 준 덕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