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머니는 진짜 신(神)이다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그 제목을 고조선이라 쓰고 바로 아래 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고 부기하였다. 또 그 내용 첫 부분에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불렀다.”고 하였으며, 이어서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라 불렀다.”고 하였다.
이들에 쓰인 ‘왕검(王儉)’이란 무슨 뜻일까? 그냥 ‘왕조선’, 단군왕‘이라 하면 될 것인데 왜 ‘왕’ 자 뒤에 ‘검’ 자를 붙여 ‘왕검조선, 단군왕검’이라 하였을까? 이 ‘검’은 신이란 뜻의 우리말 ‘’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니 왕검은 신왕(神王)이란 의미다. 이 ‘’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 검, 곰, 금’ 등으로 변하였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도 여기에 속한다. ‘’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미’가 되었다. 한자로는 이를 ‘개마(蓋馬), 금마(金馬), 금(錦), 금(今), 흑(黑), 웅(熊)’ 등으로 빌려 적었다. 이 중 ‘흑(黑), 웅(熊)’은 글자의 뜻 ‘검(다)’와 ‘곰’을 각각 빌려 적은 것이다.
북한의 ‘개마고원’, 전북 익산의 ‘금마’, 경북 일원에 보이는 ‘금천(錦川), 감천(甘川), 감문(甘文), 고모(顧母)’ 등이 다 거기에 근원을 둔 지명이다. ‘금’은 음운의 변동으로 ‘즘’이 되기도 했는데, ‘주몽’은 그 예다. 즉 주(朱) 자의 앞 음 ‘즈’에 ‘몽(蒙)’ 자의 첫 음 ‘ㅁ’을 합하여 ‘즘’을 표기한 것이다. 주몽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삼국사기에 적혀 있다. 지금도 활을 잘 쏘아 맞히면 ‘귀신’ 같다고 한다. 그러니 ‘주몽’ 은 ‘즘’ 곧 신이었다. 경북 의성을 중심으로 한 옛 조문(召文)국의 ‘조문’도 ‘즘’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조(召)’의 ‘즈’와 ‘문(文)’의 ‘ㅁ’을 합친 소리다.
부산 지역에서 모심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에 ‘거미야 거미야 왕거미야’라는 민요가 있다. ‘모심기 소리’ 중에서도 모를 다 심어 놓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모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부른다. 이 노래는 양산 지역의 지신밟기 사설로도 불려온 주술성이 강한 소리다.
거미야 거무야 왕거미야/ 줄로 노던 왕거미야/ 니 한량 내 천룡 천룡산 청방우/ 황생강 들생강 노든강 새든강/ 남산밑에 남대롱 서산밑에 서처자/ 닐리동산 비늘달아 닐릴릴쿵 절사 왕거미야
여기에 등장하는 ‘거미’를 벌레 이름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벌레 이름이 아니다. ‘거미야’는 ‘검이야’ 즉 ‘신이여’라는 뜻이다. ‘왕거미’는 바로 삼국유사에 적힌 ‘왕검(王儉)’이다. 그러니 ‘거미야 거무야 왕거미야’는 ‘신이여 신이여 신왕이여’의 뜻이다. 그것은 이 노래가 양산 지방에서 지신밟기의 주술 가요로 불린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모내기를 하면서 모가 잘 자라 풍년이 깃들기를 신에게 바라면서 부른 주술성을 띤 노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지가의 ‘거북(龜)’도 사실은 신을 가리킨 말이다. 그래서 노래 이름도 영신군가(迎神君歌)다. 하늘에서 신군이 내려오기를 바라면서 부른 주술가요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실려 전하는 원문과 종래의 풀이말을 보자.
龜何龜何 (구하구하) 구하 구하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 내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안 내 놓으면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구워 먹는다
우리말에 신을 나타내는 말에는 두 갈래가 있음을 앞에서 말했다. ‘검’ 계열과 ‘굿(구)’ 계열이 그것이다. 다시 한 번 그것을 요약해 보자.
알타이어 Kam → 검 … 감, ᄀᆡᆷ, 곰, 금, 거미, 즘, 일본어 가미
인도유럽어 Guth → 굿 … 구, 가, 갓, 가시, 구시
지금 우리는 이 노래를 삼국유사에 적힌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龜何龜何(구하구하)’를 ‘거북아 거북아’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독이다. 이 구절은 ‘신이여 신이여’의 뜻이다. ‘구하구하’로 읽어야 한다. 이 ‘龜’는 인도유럽에서 들온말인 신의 뜻 ‘구’를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龜’ 자 아래 ‘~하(何)’라는 극존칭 조사를 붙인 것이다. 백제가요 정읍사의 ‘달하’라는 말이나 용비어천가 마지막 장의 ‘임금하’에서 보듯, ‘~하(何)’는 대상을 아주 높여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단순히 동물 ‘거북’을 지칭했다면 이 극존칭인 ‘~하(何)’를 붙여 썼을 리가 없다. ‘龜何龜何(구하구하)’는 ‘구하 구하’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그 뜻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이여 신이여’의 뜻이다.
그러면 신을 ‘검’이란 말로 나타낸 것은, 위 표에서 보듯이 ‘검’이 알타이어의 Kam에서 유래한다. 이 ‘검’은 ‘검다’의 어원이이기도 하다. 검은 것은 아득하고 신비롭다. 무언가 확실히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윽한 그런 사상(事象)이다. 한말로 검은 것은 유현하다. 그래서 천자문에서도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天地玄黃]고 하였다. 우리 민족은 멀고 먼 아득한 곳인 ‘검은 것’을 ‘검’ 즉 신의 관념에서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검다’에서 모음을 교체하여 ‘감다’란 말을 만들었다. 눈을 ‘감으면’ 검다.
그런데 이 ‘/ 검’이 ㄱ과 ㅇ이 호전(互轉)하는 우리말의 특성에 의하여 뒷날 ‘/엄’이 되었다. 이 ‘/엄’은 뒤이어 ‘암/엄’이 되고, 이 ‘암/엄’은 여신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여신을 가리키는 ‘암/엄’의 ‘암’은 ‘암컷’의 어원이 되었고, ‘엄’은 ‘엄아’ 즉 엄마의 어원이 되었다. ‘암(컷)’과 ‘엄(마)’는 동류다. ‘엄’은 신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여신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은 엄마다. 또 손가락 중에서 가장 큰 손가락은 ‘엄지’고, 치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는 엄니(어금니)다. 훈민정음언해에서 ㄱ을 엄소리라 하여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암’은 생명 창조의 근원이다. 그래서 이에서 갈라진 ‘암, 엄, 움’ 등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어감의 차이는 약간 있었으나 아무런 분별없이 같은 어사로 두루 사용되었다. 지금은 이들 어휘가 의미상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같다. 즉 ‘암(컷)’은 생명을 잉태하고, ‘엄(마)’는 아기를 낳고, ‘움’은 새싹으로 자란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그런데 ‘움’이란 말은, 앞에서 예로 든 ①‘나무 등걸의 뿌리나 가지에서 새로 돋는 싹’이란 뜻 외에, ②‘땅을 파고 위를 거적 따위로 덮어서 추위나 비바람을 막게 한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움’에서 ‘움누이, 움딸, 움막, 움벼, 움뽕’ 등의 말이 파생되었다. 또 ‘움푹하다, 움쑥, 우물(움물)’이란 말이 이 ‘움’을 어근으로 하여 생겨났다. 우물은 움에서 나오는 물이다. 곧 우물은 물의 생성처다. 물이 생명을 얻어 태어나는 곳이 우물이다.
움은 ②의 뜻과 관련된 일종의 동굴이다. 동굴 또한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도 동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을 먹고 삼칠일을 견딘 후에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동굴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래서 서양인들도 자궁을 ‘움(womb)’이라 했을까?
아무렴 어머니는 생명을 창조하는 신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첫댓글 탁월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배웠던 교수님 백강 서수생 선생께서는 아예 "검하 검하"로 번역을 하시더라구요. 그 당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검/감, 엄/암' 및 '움'까지 곁들여 설명해 주시니 환하게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