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뜯어낸 월대 앞 장식물
100년 만에 호암미술관서 찾아
이건희 유족, 문화재청 2점 기증
10월 복원 마친 뒤 일반에 공개
100년 전 일제가 전차선로를 넣으며 뜯어낸 서울 경북궁 광화문 입구 월대의 상징 동물 조각상이 이건희 콜렉션에서 튀어나왔다.
이건희 컬렉션의 옛 석조물들을 배치해놓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정원의 모습을 본 한 시민이 '궁궐 석조물 같으니
조사해보라'고 문화재청에 제보한 것이 단서가 됐다.
이 조각상이 원래 있던 곳은 지난해와 올해 초 국립문화재단연구원이 발굴조사를 벌인 광화문 앞 월대 어도의 앞쪽 끝부분이다.
1867년 조선 26대 고종이 경북궁을 중건한 이래 '왕의 길'로 불린
이 역사적 명소는 1923년 일제가 조선부업품공진회를 경북궁에서 열며 전차노선을 깔면서 땅 속에 묻혔다.
이 월대 어도의 첫머리 장식물이자 궁궐 시작점을 상징하는 서수상(상서로운 상상의 동물 상) 돌조각 2점이 최근 호암미술관
정원에서 발견됐다.
두 돌조각물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소장했던 컬렉션의 일부로 2021년 나라에 기증된 2만3천여점의 고미술.근현대미술
컬렉션과는 별개로 유족들이 계속 소장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지난4월 산하 궁능유적본부가 시민 제보를 받고 호암미술관 주차장 옆 정원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서수상 2점을
확인했고, 이 상이 광화문 월대 유적에서 발굴된 받침석과 치수가 딱 들어맞아 월대 앞 머리 서수상으로 판단된다고 29일 발표했다.
문화재청 쪽은 이어 '삼성가 유족들이 서수상이 의미있게 활용되길 바란다며 기증 의사를 표명해
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삼성문화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을 열었다'고 전했다.
조은경 궁능유적본부 복원정비과장은 '10월 완공 목표로 복원 중인 광화문 월대에 기증받은 석조각들을 그대로 활용할 방침'이라며 '일단 다음 달 초부터 서수상과 발굴한 받침대를 실제로 짜 맞추고 접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수상 2점은 문화재청이 올해까지 월대 유적 소맷돌(돌계단 옆면의 마감돌) 받침석에 윗부재를 앉히기 위해 가공한 부분의 모양과 크기가 일치한다.
형태와 규격, 양식 등이 사진자료 등으로 확인되는 과거 월대의 것과 똑같아 고종대 건립 당시 쓴 부재임이 확실하다는 설명이다.
서수상에는 하나의 뿔이 달렸고 목과 귀에 갈기털이 새겨져 있는데, 광화문 해치상, 경북궁 근정전 월대의 서수상 등과도
양식적으로도 유사하다.
조선시대 석조미술사 연구자인 김민규 박사(문화재청 전문위원)는 '조선 말기에는 석조 각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고 보는
선입견이 있는데 19세기 중반까지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석조상들이 제작됐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중요한 실증자료'라고 짚었다.
건축사.미술사 전문가들은 광화문 월대 복원 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19세기 중반 고종의 중건 당시 모습에 훨씬 가까운 복원 공정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 복원을 마무리하는 10월 중 기념행사를 열어 서수상을 포함한 월대를 일반인들에게 내보일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