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key)시리즈 제1편-2
2. 바 장조(F major) - flat 1개
(1) 조의 성격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느낌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바 장조에 견줄 수 있는 조는 없다. 하지만 이런 특성이 이 조를 주조로 삼아 쓰여진 곡의 숫자를 적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2) 기술적 특성
호른과 잉글리쉬 호른은 조옮김악기(실제로 연주되는 음과는 다른 조나 음역으로 기보된 악보를 사용하는 악기인데 주로 관악기이다. F조 악기의 경우 F major의 곡이, B flat조 악기의 경우 B flat major의 곡이 가장 연주하기 쉽게 된다.)이며 F조로 된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하지만 호른은 F조 이외에도 B flat조와 E flat조가 종종 쓰인다.
이 악기들은 목동들의 뿔피리에서 발전한 것으로서 전원적인 풍경을 그리는데 제격이다. 이에 관한 가장 멋진 패시지를 감상하고 싶으면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의 3악장에서 잉글리쉬 호른이 연주하는 부분을 들어 보면 된다.
현악기의 경우에는 flat이 붙는 조보다는 sharp이 붙는 조가 더 연주하기 쉽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겠다.
(3) 사용례 소개
바 장조의 이름에 걸맞는 가장 대표적인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이다. 그는 또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에서 바 장조로 한가로운 봄의 정취를 그리고 있고,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로망스 2번에서도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비발디도 '사계' 중 '가을'에서 추수를 한 농부들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이 조를 사용하고 있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은 바 장조로 되어 있지만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우인데, 이것은 4악장과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다.
혹자가 '브람스의 영웅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 곡은 당당하면서 위풍이 있고, 이 곡의 1악장은 바 장조이지만 4악장은 바 단조(정열적이고 거친 느낌)인데, 곡의 전체적인 비중은 4악장에 놓여 있고 1악장 첫머리에서부터 곡은 바 장조를 벗어나 바 단조로 가고 싶어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따라서 1악장에 바 장조가 쓰인 것은 4악장을 예비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이 곡은 '교향곡 3번 바 단조'로 불리는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7번 3악장도 바 장조로 되어 있다. 더없이 활달한 이 곡에 바 장조가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가 장조가 제격), 하나의 교향곡에 가 장조를 세 개의 악장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차라리 엉뚱한 조의 선택이 더 신선할 때도 있을 것이다.
(4) 유명한 곡들
베토벤: 교향곡 8번
슈만: 어린이의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 '봄의 소리', '남국의 장미'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간주곡'
3. 내림 나 장조(B flat major) - flat 2개
내림 가 장조 (A flat major) - flat 4개
내림 라 장조 (D flat major) - flat 5개
내림 사 장조 (G flat major) - flat 6개
(1) 조의 성격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다. '부드럽다'는 것은 내림 마 장조를 제외하고 '내림'자가 들어가는 모든 장조에 해당한다. 내림 나 장조 → 내림 가 장조 → 내림 라 장조 → 내림 사 장조로 가면서 부드럽다 못해 둥글둥글해지는 정도일 뿐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내림 나 장조는 십팔세 처녀, 내림 사 장조는 원숙한 할머니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2) 기술적 특성
B flat조를 사용하는 조옮김악기에는 클라리넷, 호른, 트럼펫이 있다. 클라리넷에는 A조도 사용되고, 호른은 앞에서 보았듯이 F, E flat등이 있으며, 트럼펫에는 C, D, E flat, F, G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B flat과 C가 일반적이다. 호른의 경우 B flat조보다는 F조의 것이 관길이가 더 길어 풍부한 소리를 낸다.
군악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트럼펫은 B flat조의 것이다. B flat조 클라리넷의 활약은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서 클라리넷을 소개하는 파트와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 도입 부분의 클라리넷의 환상적인 글리산도(음을 미끌어지면서 옮겨가는 것)에서 두드러진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이 내림 마 장조로 된 것은 물론 E flat조 트럼펫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3) 사용례 소개
가. 내림 나 장조
내림 나 장조는 내림 마 장조와 더불어 flat이 붙은 장조 중에서는 가장 많이 쓰인다. 따라서 작품도 많이 있는데, 베토벤의 교향곡 4번을 먼저 들 수 있다. 어둡다 못해 칙칙한 내림 나 단조의 1악장 도입부를 지나면 밝은 내림 나 장조의 주부로 들어가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게 뛰노는 곡이다.
내림 나 장조치고는 다소 과하게 활발한 곡이다. 오히려 이 조를 적절하게 사용한 곡으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번을 들 수 있다. 그 정도의 부드러움과 경쾌함이 내림 나 장조에 잘 들어맞는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악장만 놓고 보면 바 장조가 더 어울릴 법하나 3·4악장까지 생각한다면 내림 나 장조가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나. 내림 가 장조
아쉽게도 내림 가 장조, 내림 라 장조, 내림 사 장조를 주조로 삼은 곡은 별로 없는데, flat이나 sharp이 많이 붙은 조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림 가 장조를 사용한 곡을 소개하자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이나 브람스 교향곡 1번 3악장 등을 들 수 있다. 들어보면 분위기를 쉽게 알 수 있는 곡들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2악장도 이 조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아무래도 다 단조와의 관계조로서 채택한 느낌이 강하다.
다. 내림 라 장조
내림 라 장조로 된 곡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도입부의 유명한 선율이다. 내림 라 장조의 선율이 주는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만약 반음만 높여서 라 장조로 연주한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의 선율이 되고 말 것이다.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월광'과 드보르작 교향곡 9번 2악장도 이 조로 쓰여졌다.
라. 내림 사 장조
flat이 6개나 붙은 악보를 보노라면 눈이 뱅뱅 돌고 머리에서 김이 날 것이다. 이 조로 된 곡 중 잘 알려진 것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집 D.899 중 3번째 곡이다. 그 외에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 2악장의 피치카토 패시지나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에서도 이 조를 들을 수 있다. 안정되다 못해 축 쳐저 버린 것이 이 조를 사용한 곡들이 갖는 공통적인 느낌이다.
(4) 유명한 곡들(내림 나 장조만 소개)
모차르트: 세레나데 '그랑 파르티타'
베토벤: 피아노 3중주곡 7번 '대공'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
슈만: 교향곡 1번 '봄'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전주곡', '중국의 춤'
4. 내림 마 장조 (E flat major) - flat 3개
(1) 조의 성격
힘차고 영웅적인 느낌이 두드러진다. 나란한조인 다 단조와 궁합이 대단히 잘 맞는 조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앞뒤에 있는 내림 나 장조, 내림 가 장조와 연관되어 그 조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독주곡이나 실내악곡에서 이런 경우가 많은데, 어쩌면 힘찬 내림 마 장조보다 부드러운 내림 마 장조의 수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2) 기술적 특성
호른과 트럼펫에 관한 내용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밖에 특별한 것은 없다.
(3) 사용례 소개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내림 마 장조의 특성을 대변하는 대표작이다. 두 곡의 분위기는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영웅 교향곡이 다 단조와의 연관을 강하게 짓는 반면 협주곡 쪽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2악장에 나 장조라는 매우 온화한 조를 사용하는 점에서 대비된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39번은 내림 마 장조를 사용하기에는 다소 약해 보이기도 하나, 모차르트의 곡 치고는 굉장히 힘찬 편이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4번에서 이 조를 사용하고 있으나 브루크너의 교향곡들 분위기는 한결같은 것이므로 조에 관해서 언급하는 것이 필요없을 듯싶다. 말러의 교향곡 8번도 이 조의 분위기에 걸맞는 곡이다.
내림 마 장조와 관련해서 가장 우습게 보이는 곡은 쇼팽의 녹턴 op.9의 2번인 듯 하나,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조가 종종 내림 나 장조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상에서 쓰이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인정해 줄 만하다. 오히려 더 이상한 쪽은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서곡인데, 내림 나 장조라 하기에도 너무 경쾌하게 움직이는 곡이 내림 마 장조로 쓰여졌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의 시작조도 내림 마 장조인데, 도도히 흐르는 라인의 물결 속에서 앞으로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해 갈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다. 참고로, 반지의 최종 조성은 내림 라 장조이다. 그때까지의 혼란을 마감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을 안정된 느낌의 조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6시간에 걸치는 반지 시리즈의 조성 변화는 치밀하게 구성된 것으로 듣는 이의 경탄을 자아낸다.
(4) 유명한 곡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297b, K.364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슈만: 교향곡 3번 '라인'
자료 출처 : 넷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