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요한복음 14:16-18, 25-27
제목 : 보혜사, 성령님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수요일 새벽에 또 주의 전에 나와 우리가 함께 찬양하며 또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성령님 이 자리에 임재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자리가 마가의 다락방 되게 하시고,
성령님,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성령의 불로 역사하시고 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귀한 예물을 올려드리는 손길도 있사오니,
우리의 기도의 제목과 함께 드리는 이 귀한 예물을 기뻐 받아 주시옵소서.
이제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 하나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들어가는 말 : 보혜사,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오늘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아침에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깊은 음성을 다 함께 깨닫고 들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보혜사께서 오시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 보면,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심지어 본인이 죽으시는 게 유익하다고까지 언급하시면서
보혜사가 오시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보혜사'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마치 예수님의 핵심 사역이 성령님을 파송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요한복음의 후반부, 특별히 14장부터 16장까지는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말씀이 그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멀게 느껴지는 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교회는 성령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우리와 함께 임재하시고 계시는 성령님과 더 친숙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성령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이 '보혜사'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말씀을 통해서 깨닫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 14장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에게 주신 말씀이지요.
만약 제자들이 근심하지 않고 평안했더라면 이런 말씀을 안 하셨겠지요.
제자들은 당시, 근심과 불안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겁고 어두운 말씀 때문에 힘들어했고 불안해했습니다.
유월절을 보내시기 위해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오신 예수님은 도착하자마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에 보면, '괴롭다'
요한복음 12장 27절에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공관복음들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내적 괴로움이나 고통을 최소한으로 표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아버지와의 단절을 앞두고 계신 예수님의 두려움,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진노의 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피하고 싶은 예수님의 인성에 의한 요구가
요한복음에도 그 내용이 농축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주님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던 제자들의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참 이기적인 것이, 스승은 지금 죽음을 앞두고 힘들어하는데,
제자들은 오로지 자기들의 안위만 염려하며 그로 인해서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그 당시에 예수님의 고통을 정확히 이해할 수도 없었지요.
예수님이 어디로 왜 가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까,
그들은 그저 막연한 두려움과 혼란 속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스승을 위해서 재산도 버리고, 모든 것 다 다 내려놓고, 3년 간이나 따라다녔는데,
이제 와서 스승께서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시니, 제자들의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가 작지 않았어요.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거듭거듭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시지만, 제자들의 근심과 걱정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지요.
제자들은 당시 자신들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부들은 배와 그물 등 생계의 모든 수단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어요. 세리를 역시 고소득의 일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열심당원 시몬과 같은 제자는 자신의 이념과 신념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어요.
그러니까 이 제자들은 물질과 자신들의 꿈과 또 비전과 심지어는 가족까지
예수님을 위해서 다 포기하고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 예수님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을 하시고
이제 조만간 떠날 거라고 하시니까, 그들은 근심과 두려움에 빠지게 된 겁니다.
이런 제자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아신 예수님은 사실은 당신도 힘겨운 상태에 있었지만 제자들을 안심시키고자 말씀하십니다.
본문 1절이 그래서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제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준 제자들에게 끝까지 믿으라고 호소하시는 거예요.
27절에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이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을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말씀하시면서 더 적극적으로 제자들의 그 불안한 마음을 잡아주시려고 합니다.
근심과 두려움으로 평안을 잃어버린 제자들에게 세상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니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은, 제자들을 위해서 이제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한층 더 강화됩니다.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여러 번 격려했지만, 제자들의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예수님은 더 적극적으로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라"고
보혜사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스승이 떠남으로 인해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를 향해
"너희는 결코 나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야. 내가 너희를 결코 홀로 남겨두지 않고 함께 할 거야"라고 하는 의미로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하신 겁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 끝에 예수님께서도 그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는데, 그게 바로 18절에 나오지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영으로, 보혜사로 다시 올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씀을 결정적으로 하신 거예요. 그렇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불안해 합니다. 이들의 불안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지요.
예수님도 그것을 아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임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동안 제자들과 지금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겁니다.
▣ 하나 되게 하는 영, 보혜사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는 사실 하나의 설교이자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세 장이나 되는 많은 분량에서, 예수님은 반복적이고 길게 말씀하시는데
그 내용 상당 부분이 뭐냐 하면, 결국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서 너희들을 도와주시겠다"라고 하는 위로와 약속의 말씀이었어요.
이게 핵심입니다.
연약한 인생들은 극심한 두려움에 빠질 때에, 우리의 이성이 때때로 마비될 때가 있어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 이성이 지금 작동하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마치 부모를 곧 잃을 처지에 있는 아이처럼,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지요.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가장 정확하고 가장 바른 처방을 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7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은 진리의 영인데 아무나 받을 수 없고, 너희에게만 특별히 허락된 영이다"라고 제자들을 추켜세워 주세요.
또, 그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 속에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성령께서 나의 빈자리를, 예수님의 빈자리를 대신할 것이니까, 절대로 걱정하지 마라 안심하라" 위로하신 것이지요.
1) 예수님과 제자들을 하나로 연결
그렇다면, 성령님은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고, 또 그들 속에 계시면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겁니까?
여러 일을 하시지만, 보혜사 성령님은 무엇보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연결하는 일,
즉 양측을 하나 되게 하는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세요.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이 말씀에서 "그 날"은 "성령님이 오시는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는 날" - 성령님이 오셔서 제자들 안에 거하시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또 예수님이 제자들 안에 계신 것을 성령님이 알게 해 주실 것이라는 거예요. 참 파격적이고 신비한 말씀이지요.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하듯이, 예수님은 성령님의 역할을 그렇게 설명하시는 거예요.
성자께서 성부 안에, 제자들이 성자 안에, 성자께서 제자들 안에 있다는 것을 성령님이 알려주신다는 거예요.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또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아십니까?
그런 사실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이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이 알려주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이 멀게 느껴지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때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우리가 영적으로 불안한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과의 거리감 때문입니다.
주님이 멀게 느껴지면 우리는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주님!" 하고 불러도, 주님이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우린 영적으로 불안해져요.
심지어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실 때에,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듯한 극도의 두려움을 겪으셨어요.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가 나를 버리셨다는 단절과 분리의 고통을 겪으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어요.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그 정도의 거리감과 불안을 느끼셨다면, 죄인인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님이 필요한 거예요.
성령께서 그 분리의 문제, 불안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할 때, 성령님 말씀하세요.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혼자 있는 게 아니야. 네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셔!
그리고 너도 예수님 안에 있어! 걱정하지 마. 주님이 너와 함께 계셔! 성령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
2) 제자들 사이를 하나 되게 하심
제자들이 불안을 느낀 또 하나의 이유는,
어제 다뤘던 말씀처럼, 제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자 공동체는 악한 자 유다, 높아지려고 하는 자 야고보와 요한,
말만 앞서는 자 베드로 등, 서로의 경쟁과 갈등의 관계로 얼룩져 있었지요.
이런 분열된 분위기가 제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분열된 제자 공동체에 가장 필요한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지요.
왜? - 성령님은 하나 되게 하는 영이시니까...
에베소서 4장 3절을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랬어요.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된다고 그랬어요.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을 때,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다 한 성령을 받고 하나가 됐어요.
그 하나됨은 교회를 탄생시켰고, 그렇게 세워진 초대교회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었지요.
(에베소서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 모든 연결과 결합을 역사하는 이가 누구신가? - 성령님이시지요.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우리가 힘써 지키기만 하면, 우리는 말 그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공동체를 한 몸이 되게 하시는 영이세요.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성령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한 성령을 받음으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기만 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예수님의 소망이었지요.
예수님께서 드리신 간절한 기도가 기억나십니까?
(요한복음 17:21-23)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신 내용이에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렇듯,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분열을 연합으로, 갈등을 협력으로 변화시키는 영이 성령님이세요.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기만 하면, 우리는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고,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장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서 혹, 우리 안에 있는 작은 분열과 갈등이 있다면,
다 사라지고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하는 천국이 우리 주안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분명히 우리간에 갈등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내 안에 혹은 내가 누구와의 관계에서든 갈등하는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돼요. 그리고 기도하셔야 돼요.
"성령님, 성령님, 하나 되게 하옵소서! 하나 되게 하옵소서!"
내가 나를 내려놓고 우리 모두가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 곁에서 기운을 북돋우는 위로자, 보혜사
두 번째, 성령님은 곁에서 기운을 북돋우는 위로자이십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라 그랬어요. 이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곁에서 기운을 북돋우는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힘들어 낙심해 있을 때 우리 곁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을 북돋우셔서 우리를 일으키시는 위로자이십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고아처럼 버림받게 되었다고 여기며 근심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어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위로와 격려였지요. 그런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었어요.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성도들 각 사람도 강건해지고,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도 강건해질 수 있지요.
실제로 성령 강림 이후에 제자들은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다 이겨내고 순교하기까지
모든 사명을 하나 되어 감당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1) 낙심한 엘리야를 일으키신 성령님
성령께서 하시는 주된 일은 낙심한 자를 일으키시는 능력 사역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크게 낙심했던 사람을 볼 수 있지요.
엘리야 선지자를 볼 수 있어요. 언뜻 보기에 참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지요.
무려 850명이나 되는 이방인 선지자들과 혼자서 싸워 이긴 엘리야가
이세벨 왕비의 말 한마디에 놀래서 곧장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탄식하며 하나님께 고백했지요.
열왕기상 19장 4절 보면,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날 그냥 죽여 달라고 그랬어요. 아무리 능력이 많고, 하나님의 선지자라 할지라도 이렇게 한 순간에 낙심하고 절망할 수 있어요.
이게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지요. 이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연약함이에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회복하고 일어설 것인가 하는 거지요.
엘리야가 낙심해 쓰러져 있을 때 등장하신 분이 성령님이세요. 그때 성령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성령님은 엘리야를 어루만지시고, 음식을 먹이시고 재우시기를 반복하시지요.
마침내 그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렇게 일어난 엘리야는 40주 40야를 달려 호렙산에 이르게 되지요.
호랩산에서도 엘리야는 여전히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어요.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온통 부정과 불평적인 말 밖에 없었지요.
"제가 여호와께 열심히 특심한데, 저들이 선지자들을 다 죽였고, 저만 남았으니 저마저 이제 죽이려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 세미한 음성을 돌려주시면서 다시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그의 기운을 북돋워 주었지요.
그리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힘을 얻은 엘리야는 그것을 따라 남은 사명을 마침내 감당하게 되지요.
2) 낙심한 웨슬리를 일으키신 성령님
그러니까, 낙심했다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어선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이 엘리야라고 하면,
성경 외의 인물로는 요한 웨슬리를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부푼 선교의 꿈을 안고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를 방문하지요.
그러나 생각지 못한 현지 교인들과의 갈등, 또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여러 가지 문제에 접하면서
그들은 2년 만에 아무런 열매 없이 선교사로 갔다가 그만 실패한 채 귀국하게 됩니다.
우리가 들은 예화가 여러 가지가 있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귀국하는 뱃길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고 그 폭풍 가운데 웨슬리 형제는 죽음의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함께 그 배에 타고 있던 독일의 경건주의자들, 모라밴 교도들은 너무나도 평온하게 시편을 찬송하고 있었고,
그 장면을 본 웨슬리가 참 감동하고 회개했다 하는 내용을 우리가 그동안 들어왔어요.
물론 이 내용도 다 진실이긴 하지만, 사실 웨슬리는 배 위에서 진정한 회심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모라밴 교도들을 통해 깊은 감명은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낙심 가운데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웨슬리는 '올더스 케이트'라고 하는 곳의 한 작은 기도 모임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듣다가 진정한 성령 체험을 하고 회심을 합니다.
저녁 8시 45분, 그 모임의 리더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웨슬리는 마음이 뜨거워짐을 경험합니다. 그때의 체험을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 케이트 거리에 있는 한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 경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하고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함을 깨달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 존 웨슬리 목사 -
성령께서, 성령께서 웨슬리에게 알게 해주신 겁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을 통해 그의 모든 죄가 사해졌고,
마침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를 완전히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성령께서 웨슬리 속에 역사하시고 알려주신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웨슬리는 그 당시에 이미 목사였어요. 웨슬리가 예수님은 몰랐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그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목사였고, 심지어는 선교사가 돼서
2년 동안이나 나가서 헌신할 정도로 열심이 대단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주님으로 아직 그 순간까지 목사였는데, 선교사였는데 깨닫지 못했던 거였어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머리로 아는 것하고, 지식으로 하는 것과, 가슴과 영으로 깨닫고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성령께서 웨슬리에게 찾아오셔서 그동안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복음을 진심으로 깨닫고 느끼고 경험하게 해주신 것이었지요.
이 유명한 '올더스 케이트'의 회심 이후에 웨슬리는 낙심해 있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열정적인 부흥사가 돼서 마침내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되지요.
성령님의 역사였던 겁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는 낙심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겁니다.
바라기는, 우리 가운데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가
오늘 이 이 아침에 이 새벽에 충만하게 역사하시길 축원합니다.
▣ 진리의 영, 보혜사
마지막으로 세 번째, 보혜사 성령님이 하신 일은 진리를 전파하는 일입니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에요.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시다]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을 하시고,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하시고, 보혜사는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힘 주셔서 다시 일으키는 이유는 진리를 전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쓰러진 엘리야를 일으켜 세우셔서 남은 사명,
곧 엘리야를 세워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세벨과 아합일가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는 일을 완수하게 하셨어요.
성령님은 낙심한 웨슬리를 격려하고 일으키셔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던 영국 성공회를 각성시키시고 순수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도록 하셨어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진리의 복음을 만방에 전파하도록 우리를 파송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성령께서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어리석던 우리가 성령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남들에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마침내 담대하게 복음을, 진리를 전파하는 자로 쓰임받게 되는 거지요.
(요한복음 15:26-2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인데, 제자들도 이제 같이 증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문맥상, 결국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학문이 없던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구약의 예언의 말씀들, 진리의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던 모습을 통해서 분명히 그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봅니다.
바라기는,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번 예수 사랑 큰 잔치를 통해
우리 모두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의 진리를 증거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나가는 말 :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자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이 하시는 세 가지 예를 분명히 들었어요. 하나 되게 하시는 일, "하나 되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와 예수님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주십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인 우리를 하나 되게 하세요.
우리의 가정이, 우리 교회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온전히 하나 되게 역사하십니다.
두 번째, 보혜사 성령님은 낙심한 우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일으켜 주세요.
지치고 낙심한 심정으로 혹시 이곳에 오늘 아침 오신 분이 있는 줄 압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님께 나를 붙잡아 달라고 간구하세요.
보혜사 성령님이 저와 여러분을 붙잡아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일으키시는 이유는 진리의 복음, 복음의 진리를 전하게 하심입니다.
이번 예수사랑 큰잔치에 한 영혼에게라도, 한 영혼에게라도 꼭 복음 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하심으로 이번 예수사랑 큰잔치에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해서
하늘에서 큰 기쁨의 잔치가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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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시고, 주님과 하나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가 실망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 성령님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이번에 우리에게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의 진리를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진리의 복음 전할 때, 듣는 이들의 마음에 성령님 역사하셔서
저들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게 도와 달라고, 이 시간 주님 한 번 부르고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