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장마처럼 추적추적오는 날,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국내초연 Roberto Devereux 를 관람할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번에 초연하는 로베르토 데브뢰는 도니제티의 여왕 3부작 중 세번째 오페라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군주로서의 면모보다 한 여자로서의 사랑을 다룬 매우 로맨틱한 소재 그러나 비극적 결말을 가진 전형적인 도니제티 스타일의 오페라입니다.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보다 상연이 비교적 잘 안되는 이유는 이번 공연을 보니 주역 아리아의 난이도가 꽤 높아서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 오페라를 어쩌면 오페라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초연을 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간 오페라단인 라벨라 오페라단의 음악적 노력의 결과가 없었다면 유명하지도 않아 티켓파워가 보장되지 않는 이런 오페라를 직관할 기회는 없을텐데 그리고 관객석을 꽉 채운 열기를 보니 그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간단히 소개하면
때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치세 하의 영국에서 여왕이 사랑하는 남자 에식스 공작 로베르토 로베르토가 사랑하는 연인 사라 사라가 여왕의 강권으로 강제결혼한 노팅험 공작
이 네 명의 남녀의 운명의 실타래가 꼬여 이루어진 드라마지만 남녀 관계가 예나 지금이나 그렇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정해져 있는데(여기서는 로베르토와 사라) 사랑하는 연인 주변에 자기가 좋다고 방해하는 이들로 인해 사랑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줄거리는 로베르토는 한때 연인이었던 사라를 늘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그가 아일랜드 반란군을 진압하러 전쟁에 나간 사이 여왕은 사라를 노팅험과 결혼시키죠 한편, 로베르토가 아일랜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실패하고 평소 여왕의 총애를 받는 그를 시기 질투한 귀족들의 주도하에 반역죄로 기소됩니다 로베르토를 사랑하는 엘리자베타(여왕)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의 사형 집행을 거절하며, 내심 그가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죠 여왕은 로베르토에게 자신이 건넨 특별한 반지를 언급하며 자신만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다면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하지만, 로베르토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맙니다 여왕은 로베르토의 연인이 누구냐며 압박하지만 그는 사라에 대한 마음을 지키고자 대답을 거절하자 여왕은 그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확신하고 분노하며 사형선고를 내리죠. 로베르토의 친구인 노팅험은 사형 선고를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지만 아내 사라가 로베르토에게 사랑의 징표로 주었던 푸른 스카프가 발견되고 창백해진 로베르토의 반응을 확인한 노팅험은 그가 자신의 아내의 연인임을 알아채게 됩니다 이들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하며,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 노팅험. 런던 탑으로 수감된 로베르토는 결국 사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준 반지를 여왕에게 전달해 자비를 베풀 것을 간청해 달라 부탁하지만 노팅험은 그녀를 가로 막아 감금하여 반지는 너무 늦게 여왕에게 전달됩니다 결국 여왕이 마음을 돌려 사형집행을 막으려 하지만 이미 로베르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였고 마지막에 여왕은 나라도 지위도 필요없다며 절규하면서 막이 내립니다.
내용이 무척 격정적이다보니 아리아도 고난도의 드라마틱한 아리아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인지 음악적 완성도로는 여왕 3부작 중 가장 높다고 하기도 합니다
오늘 토요일 공연 캐스팅은
엘리자베타 역에 소프라노 손가슬 로베르토 역에 테너 김효종 사라 역에 소프라노 조정희 노팅험 공작 역에 바리톤 임희성
그 중 단연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은 로베르토 역의 김효종 테너였는데요 리릭 거의 레제로 테러 느낌이 나는 미성에 힘있는 파워가 더해져서 무척 인상적이었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죠
기대가 커서인지 엘리자베타 역은 워낙 고난도 아리아를 소화해내야 하는 부담도 있었겠고 역할에 비해 성량이 좀 부족한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었지만 3막 클라이막스로 치닫으면서 한결 나아진 호흡과 연기력에 힘입어 초반의 단점을 극복한 듯 보였습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약간 샵이 되는 발성은 계속 거슬렸지만요 ㅋ
이 오페라에서 가장 비중있는 첫 아리아는 사라의 아리아인데 사라역의 조정희 소프라노 발성이 영 두리뭉실 불안한 음정을 기반으로 해서 좀 실망스러웠지만 그녀 역시 뒤로 갈수록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 걸 보니 처음에 좀 떨렸나 봅니다
노팅험 공작 역의 임희성 바리톤은 무난하고 노련한 연기로 제 몫을 충분히 해냈고 전반적으로 큰 실수없이 극을 잘 이끌어 나갔습니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무대위의 배우들의 볼륨이 이따금 언밸런스한 부분이 좀 아쉬웠달까요
역시 예당 오페라 극장의 회전무대는 진가를 발휘하네요 예전에 명성황후 초연 때 그 버라이어티한 회전무대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극찬을 받았던 무대가 잠깐 기억났어요 어떤 극이든 배우의 기량 외에도 많은 요소가 극의 완성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비오는 토요일, 이 멋진 오페라를 보느라 하루를 다 썼지만 아깝지 않은 날이었어요 ㅎㅎ 아래에 주요 아리아 소개하오니 즐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1. All'afflitto è dolce il pianto... (슬픈 이에게 흐느낌은 감미로운 것...)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슬픈 마음으로 부르는 사라의 아리아
Donizetti: Roberto Devereux / Act I - "All'afflitto è dolce il pianto"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Donizetti: Roberto Devereux / Act I - "All'afflitto è dolce il pianto" · Elīna Garanča · Filarmonica del Teatro C...www.youtube.com
2. L'amor suo mi fe' beata (그의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해...) 엘리자베타가 로베르토를 생각하며 부르는 아리아
Donizetti: Roberto Devereux - L'amor suo mi fe' beata (Edita Gruberová)Gaetano Donizetti: Roberto DevereuxL'amor suo mi fe' beata...(Ah! ritorna qual ti spero...Elisabetta - Edita GruberováOrchestra of the Hungarian State Opera ...www.youtube.com
3. Un tenero core mi rese felice (부드러운 마음은 날 행복하게해) 로베르토가 반역죄로 체포 당한 것을 해명하고, 엘리자베타는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부르는 2중창
Roberto Devereux, Act 1: "Un tenero core mi rese felice" (Elisabetta, Roberto) (Live)Provided to YouTube by Opera RaraRoberto Devereux, Act 1: "Un tenero core mi rese felice" (Elisabetta, Roberto) (Live) · Maurizio BeniniDonizetti: Roberto De...www.youtube.com
4. Ed ancor la tremenda porta... A te diro negli ultimi... Bagnato il sen di lagrime (아직도 저 두려운 문이... 죽음의 품 속에서 나 그대에게... 눈물로 범벅이 된 내 가슴으로...) 사형을 앞두고 있는 로베르토가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며, 부르는 아리아
Tenore JOSÉ CARRERAS - Roberto Devereux "Ed ancor la tremenda porta..." (1979)Gaetano Donizetti - ROBERTO DEVEREUX “Ed ancor la tremenda porta non si dischiude… Io ti dirò, fra gli ultimi singhiozzi” - (Scena del carcere) - studio...www.youtube.com
5. Vivi, ingrato, a lei accanto (나쁜 사람, 그녀 곁에서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로베르토가 반지와 함께 자신에게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그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아리아
Alexandrina Pendatchanska "Vivi, Ingrato, a lei d'accanto" Roberto DevereuxAlexandrina Pendatchanska sings "Vivi, Ingrato, a lei d'accanto" from Roberto Devereux by Gaetano DonizettiBulgarian Symphony OrchestraEraldo Salmieri, condu...www.youtube.com
6. Quel sangue versato (당신이 흘린 피는...) 로베르토의 죽음과 자신의 어리석음의 분노하여, 넋을 잃은 엘리자베타가 부르는 아리아
Pendatchanska, Elisabetta - "Quel sangue versato"- Roberto Devereux, Donizetti - Teatro di San CarloAlexandrina Pendatchanska, Elisabetta "Quel sangue versato" Roberto Devereux, Donizetti - Teatro di San CarloElisabetta, Queen of England – Alexandrina Penda...www.youtube.com
첫댓글 room19님,오페라 공연 후기 올려주셨군요. 좋은 시간 머물게요 감사합니다.
얼마전에 한 2023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로베르토 데브뢰와 일 트로바토레를 보고 왔는데 트로바토레는 너무 혹평을 써서 못 올리겠고 로베르토 데브뢰 공유합니다 ㅎㅎ
저도 오페라 축제 도니제티의 로베르토 데브릭 회원들과 다녀왔습다
라벨라 오페라단의 초연작임에도 감명깊게 감상 잘 했습니다 후기글 잘 봤습니다
라벨라 오페라단이 로베르토 데브뢰를 올리면서 도니제티 여왕 3부작을 다 공연한 오페라단이 되었네요. 라벨라 오페라단이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이미 공연해서 이번 로베르토 데브뢰까지 해내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공연 너무 좋았죠? 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베라오페라단 도니제티 여왕3부작 저도 3개의 공연 전부 감상했어요
그중에서 이번 로베르트 데브뢰가 최고였든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