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학생의 잠들어 있는 지성을 깨우는 자라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겠지요?
자신 속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경의를 표하며
자신을 존중한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가 뭐냐구요?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의지하고
닮고 싶은 그런 분들처럼 '그렇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는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름에만 엇비슷하게 쓸 것이 아니라
내안의 가능성을 아주 아주 귀하게 여깁시다.
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하는데
어찌 교인들의 가능성을 깨어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선생과 제자가 지식을 거래하는 사이가 아니듯
목회자와 교인은 구원을 거래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내 교인에게서
하나님께서 심어 놓은 그 꽃씨를 찾아서
제대로 발아시킬 수 있도록 열심히 애써 봅시다.
갑자기 영지주의처럼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