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 2
치유자로 오신 예수님
2023. 12. 10. 주일 낮 요 21 : 15-17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란 주제 두 번 째로 [치유자로 오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2023년 10월 9일자 서울경제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우울증 환자 100만 명 넘는다고 하면서, 정신과 의사 수가 부족한데 OECD 즉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6월 24일자 메디칼타임즈 기사에서는 우울한 20대, 우울증, 불안장애가 5년 새 127%, 86%가 폭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홀로 생활한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더라도, 정신적, 육체적 등 다양한 질병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고, 치유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질병은 고칠 수 있다는 겁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임하면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막 2: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도 병든 자들은 의사들을 통해 고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임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것이 대림절 둘째 주일의 말씀입니다.
각종 병이나, 정신적 질병 등은 자신들의 소명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 의사 분들을 통해 진단받고, 치료받아야 합니다. 늦추면 늦출수록 병만 깊어집니다. 믿음 좋은 분들은 ‘아니야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실 거야! 난 믿어’하며 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셨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통해 병을 고침받습니다. 지금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치유 받기를 기도하고, 의사의 손길을 통해 일하심을 믿고 기도하는 겁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단지 스승이나 설교자나 윤리가 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의 치료자입니다. 위대한 의사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문제만을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짊어진 신체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말합니다(사53:5).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가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은 단순히 육체적인 가학을 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가 맞을 매를 대신 맞아주시고, 내가 당할 진노를 대신 감당해 주심입니다. 주님은 어떤 인간도 가질 수 없는 아픈 상처를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나라의 명의라고 하는 허준도 각종 병을 치료하는 법을 알기 위해 자기를 임상실험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허준은 ‘병’을 치료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사는 동안 당할 모든 죽음과 고통과 고난 등 모든 걸 당하셨기에 인간의 모든 걸 아시고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합니다. 그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본업인 어부의 길을 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가 베드로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제가 신학생 때는 예수님께서 “왜 세 번이나 물으셨을까?”란 답을,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기에 세 번 물어보심으로 베드로를 깨우치게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후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한 질문이다. 그 질문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질문을 제대로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가페’의 사랑을 질문했는데, 베드로는 ‘에로스’ 인간적 사랑, ‘필로’ 우정의 사랑, 마지막으로 ‘아가페’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답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어떤 의도를 물어봤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고향으로 도망가 지내고 있는 베드로의 쌓인 고통을 치료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스승이 죽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친 본인을 스스로 돌아볼 때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여러분이 만약 베드로였다면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 죄책감, 두려움 등 각종 생각에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자기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말도 못 했을 겁니다. 베드로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베드로의 상처는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준 상처입니다. 자신이 고칠 수 없는 깊은 상처입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요한복음 20:31절에 나옵니다.
20:31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대림절은“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치유자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 생명을 우리가 받고, 치유함을 온전히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만남과 질문과 답을 통해서 완전히 무장 해제되고, 과거의 상처에 완전히 압도되었을 겁니다. 감추고 싶었고, 그로 인해 힘들고 무서웠던 시간이 무겁게 엄습했을 겁니다.
죽을 때까지 배=ㅔ드로는 영원히 감추고 싶었던 과거요 짐이요 약점을 피하지 말고 그 상처를 대면하게 하려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상처를 아셨습니다. 그 상처를 그대로 두면 그 무게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도 죽은 것처럼 살아야 할 죄인으로 살아야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찾으셨고, 상처를 대면하게 하셨고, 그 상처의 아픔을 내어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베드로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와의 대화 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십자가 사건 때의 베드로와는 다른 베드로에 대해 말씀하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 21:18-19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전처럼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말씀에 순종한 삶을 살았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온전히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삶이 치유 받았습니다. 육이 치유 받았습니다, 그리고 흔들리던 영이 치유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치유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유자로서의 사명을 한 치 빈틈 없이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베드로를 치유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픈 상처, 질병, 각종 병 등등을 치유하시기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병을 치유 받을 수 있을까요?
상처의 근본적인 치유는 자기 안에 있는 상한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상한 감정(상처)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안에 담아둔 감정을 토해내고 후련함을 느낍니다. 내 안에 있는 못된 감정들을 끄집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처를 치유하려면 출구가 필요한 겁니다. 그것이 취미생활이든지, 혹은 스포츠나 오락이나 여행이나 독서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아요. 여기에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방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세상과 다른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 안에서 풀어야 합니다. (예배, 말씀, 기도, 찬송 등). 그래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치유는 상한 감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베드로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자존감의 치유는 주님의 사랑을 회복해 주는 것이지요. 사랑이 회복되면 자존감이 회복되고, 자존감이 회복되면 사명이 회복되지요. 한마디로 사명은 사랑이 회복되면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치유는 관계 회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관계 회복이 되어야 사명도 회복되고, 치유도 일어납니다. 때문에 주님은 베드로의 어린아이같이 상처 잘 받는 감정, 즉 무너진 마음을 먼저 치유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15절).
그리고 잃어버린 사명을 치유하시기 원하셨으며(16절), 마지막 순교를 통한 생명의 치유까지 원하셨던 것입니다(18-19절). 이른바 전인적인 치유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영혼이 치유 받기 원합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 영적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나음을 받아 온전함을 입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영육간에 각종 질병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겁니다. 만나는 겁니다.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멘하는 겁니다. 그때 모든 병으로부터 치유 받게 됩니다. 성경의 모든 치유는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치유자로 오셨습니다. 모든 상처, 모든 질병으로부터 치유를 받아 주안에서 자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