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성치

[켕]

영화배우 정찬이 쓴 주성치에 대한 칼럼

그동안 비디오로 나온 주성치 영화들, 무협 시리즈나 홍콩 느와르를 빼곤 거의 다 봤다. 물론 오래된 영화들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성치 자신이 감독한 영화들 〈소림축구〉〈희극지왕〉〈식신〉을 가장 좋아한다. 그 다음으로는 〈서유기〉시리즈― 월광보합, 선라기연과 〈파괴지왕〉도 좋아한다.

주성치 영화들은 대부분 황당한 코미디, 패러디로 압축 설명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헐리우드의 화장실 유머 영화들에 대한 설명과 별로 차별이 없다. 주성치 영화들은 역겹기 짝이 없는〈무서운 영화〉시리즈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주성치 영화들은 대부분 찰리 채플린 식의 사랑이 있다. 특히 장백지와 공연한 〈희극지왕〉이 명백하다. 현실의 주성치는 찰리 채플린처럼 돈과 명성을 가진 대스타다. 그러나 마치 채플린처럼 3류 인생의 주인공들을 고집한다.

주성치 영화의 장점은 악당의 비열함에도 있다. 악당들은 적당히 비열하지 않다. 단순히 사납고 못된 것도 아니고 주인공을 위해 동원된 비열함도 아니다. 확실히 비열하다. 그래서 〈식신〉에선 아예 악당 이름이 '대쾌락'이다. 하락하는 주성치의 처절함을 더 실감나게 한다.

주성치의 승리는 3류 인생들의 승리다. 이것은〈소림축구〉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파괴지왕〉에서 주성치는 종려시를 위한 장학우 콘서트 표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매표소 앞에 텐트까지 치고 밤새 기다렸는데 어느 늙은 할머니에게 경로정신을 발휘한 게 독이 돼 그만 돈만 다 날리고 표는 한 장도 구하지 못한다. 이렇게 꼬이는 날 기분이 얼마나 처참한가. 그런데 뜬금없이 장학우가 나타나 표 두장을 선물한다. 주성치 영화는 이런 식이다. 뭐 원래 공상(위안)이 다 그렇지 않은가.

〈희극지왕〉에 이르러 주성치의 승리는 아예 소박해진다. 이 영화는 채플린의 〈시티라이트〉쯤 되는 것 같다. 주성치는 양복조차 채플린처럼 입고 나왔고(물론 주성치의 바지는 잭슨바지지만 그 정도는 작은 변형 같다.) 입심이든 무공이든 초능력이든 대단한 사부든 뭐든 하나도 최고가 없다. 단지 연기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밖에는 침상 하나 놓인 그의 방처럼 무일푼의 3류다.

〈서유기〉가 대표적인데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주성치 영화의 요소는 비겁함의 극치다. 인물들은 비겁의 달인들이다. 정말 영리하게 비겁하다. 위기의 순간, 모면하기 위해 죽은 척하거나 거짓눈물을 지어 보이는 주성치와 그 친구들을 보면 헐리우드 영화에서 비명횡사하는 조연들이 정말 어리석어 보인다.

코미디를 따져 보자면 뜬금없음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장 돋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해 냈을 까? 온갖 잡탕의 정신없는 줄거리를 떠올리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영화들을 대하는 느낌이다. 정작 주성치 자신은 대본이나 연기나 즉흥적인 것을 꺼려한다고 한다. 아마도 패밀리(감독, 제작, 각본, 연기자들 모두 주성치 패밀리다.)가 공들여 빚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서유기〉는 〈동방불패〉와 〈동사서독〉의 러브 스토리 전체에서 착안한 듯하다. 그런데 (배경음악도 통째로 빌려왔지만) 시간여행까지 잡탕이 돼 예측불허의 줄거리로 튄 삼각관계는 훨씬 더 가슴 저리다.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것에 감동 받는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을 어쩔 수는 없다. 천박하고 유치한 게 거슬리는 사람들을 어찌하랴.

게다가 나를 자극하는 진정한 감동은 넘치는 아이디어들이다. 성룡의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진정한 감동과 다르지 않다. 〈구품지마관〉에서 말빨을 수련하는 주성치를 보고 기절초풍할 뻔했다.

이제 주성치 나이도 41살이다. 10년을 오만가지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만족시키고도 계속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진정한 감동이다.

〈소림축구〉를 꼭 봤으면 한다. 긴 버전일수록 좋다. 그리고 〈소림축구〉의 무수한 전편들이 집 앞 비디오가게와 인터넷에 있다. 전편들을 하나하나 새롭게 볼 수 있은 사람들, 이제 입문한 신입 팬들이야말로 복받은 자들이다. 이제 한편한편 주성치의 놀라운 세계와 만날 수 있으니!

출처- 팟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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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강 - 주성치 군단

"먼저 이소룡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의 영화 팬이었고, 그래서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TVB 훈련반 두 선생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저는 연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임려진 감독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저를 어린이 프로그램(주: <430 제트기>) 진행자로 발탁해 주셨지요. 또 첫 단편드라마에 출연하게 해 주신 이첨승 감독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최초로 저를 무협드라마(주:<개세호협>)에 출연시켜주신 유가호 감독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에게 첫 대형 영화(주:<벽력선봉>) 출연의 기회를 주신 이수현 감독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제가 연기하는 데에 많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은 만자량, 이력지, 오맹달씨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대회측에도 감사 드리고, 마지막으로 관중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지난 4월 21일 진행된 제 21회 홍콩 금상장 시상식에서 <소림축구>로 최고 영화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7개 부문의 상을 휩쓴 씽예, 주성치(저우싱치이)가 밝힌 수상 소감이다. 데뷔 후 10여년 동안 50 여 편의 영화와 10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한 주성치는 연기 생활 최초로 쏟아진 상복 앞에서 흥분된 어조로 '최고' 보다는 '최초'를 떠올렸고, 자신의 연기 활동을 도와주는 '벗'들에게 감사를 돌렸다. 주성치의 팬으로서 이런 수상소감을 접하게 되면 그의 '인간 됨됨이'를 짐작(!)하게 해 주기 때문에 한편으로 몹시 흐뭇해 지지만 사실 그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오래 전부터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주성치는 '영화란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며, 연기자 개개인의 개성이 어우러진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늘 강조해 왔다. 그래서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같은 배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촬영해 오고 있고 손발이 잘 맞는 감독군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관계를 기반으로 완성된 주성치 작품들이 계속 흥행가도를 달려 왔기 때문에 홍콩 영화계의 배우들과 스텝들은 언제든 주성치가 보내는 러브 콜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이젠 아시아로 넓혀졌겠지만….). 그리고 주성치는 자신의 영화를 빛낼 배우와 감독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이들이 모여 아시아 최강의 코믹 영화 패밀리, 주성치 군단을 이루고 있다.

1. 코미디 사상 최강의 파트너 - 오맹달

오맹달은 주성치의 이웃 주민으로 TVB 연기생 동기이기도 하다. <천장지구>에서 유덕화의 친구로 나왔을 때 그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 조폭 영화에, 그것도 악역에 적합한 배우처럼 보였는데 그와 주성치가 콤비를 이룬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진다. 여러 장르의 영화를 통해 다져진 그의 연기력을 기반으로 오맹달이 보여주는 과장된 코믹 연기는 선이 가늘고 왜소한 주성치와 대조적인 모습으로 주성치의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메워주고 있다. 특히 <파괴지왕>에서 주성치의 사부로 나와 '무적 풍화륜' 을 가르치는 그를 보면, 주성치와 오맹달이 영화 속에서 이루는 조화를 확인하게 된다. 오맹달은 주성치의 강점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역- 그러니까 잔꾀를 부리다가 늘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식신> 같은 영화에서 악당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맹달은 <톰과 제리>의 고양이 '톰' 처럼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다.

주성치와 오맹달은 10여년을 함께해 왔기 때문에 안 좋은 얘기들도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를테면 둘이 싸웠다, 결별했다 등등의 소문이다. 그러나 <소림축구>와 주성치의 금상장 수상소감은 앞으로도 이 둘이 만들어낼 코미디 영화가 많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어 팬들을 기쁘게 한다. (오맹달은 예전의 '스타덤' 기사를 참조하세요->바로가기)

2. 주성치의 사랑 - 장민, 매염방, 막문위, 장백지, 그리고 조미

주성치는 영화를 찍을 때 특정 여배우와 오랫동안 같이 작업을 한다. 성룡의 영화가 여배우들에게 '찍기엔 너무 힘든' 액션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한 여배우들이 큰 맘 먹고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주성치의 영화에선 '망가지기' 때문에 여배우들의 결심을 필요로 한다.

드라마 <황제의 딸>로 스타덤에 오른 조미의 경우엔, 처음에 <소림축구> 섭외를 받았을 때 망가진다는 이유로 매니저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미가 '주성치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성사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영화에서 참 많이 망가져 준다.

이렇게 망가지는 것의 전신은 단연코 막문위이다. <식신>에서 막문위는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추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의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인해 결국 주성치와 사랑을 이루게 되는데, 조미는 <식신>에서의 막문위와 같은 컨셉이지만, 막문위가 다소 터프한 여걸이었던 반면에 다소곳한- 정말 '태극권'을 사용하기에 딱 맞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막문위와 함께 <소림축구>에서 상대편 용병으로 콧수염을 달고 등장하는 장백지는 <희극지왕>을 통해 크게 알려진 여배우이다. 이전의 주성치 파트너들과는 달리 장백지는 젊고 솔직하고 거침없는 철부지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전까지 주성치와 오래 작업을 한 장민의 경우를 보면 <무장원 소걸아>같은 시대물에서 '바보온달'같은 주성치를 구원하는 평강공주의 캐릭터로 나온다. <도학위룡>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항상 주성치보다 강하고 똑똑하며 심지가 굳다. 이후 <심사관> 등에서 주성치의 아내 역할로 나온 매염방은 덤벙거리지만 주성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애교 많은 푼수 역할을 보여주는데, 이는 막문위가 조미로 바뀐 것처럼 오군여가 매염방보다 먼저 선보인 캐릭터이다. 차이가 있다면 오군여는 다소 예쁘지 않은 푼수 역할이었다.

이렇게 여배우들을 봐도 주성치가 보여주는 코믹 캐릭터의 성격들을 짐작하게 한다. 평강공주형 가인, 푼수 아내, 터프한 여걸,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철부지, 조용한 도인(?) 등 조금 모자란 듯도 싶지만 마음이 여리고 착하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캐릭터 - 그것이 바로 주성치가 보여주고 팬들이 아끼는 영화 속 캐릭터인 것이다.

3. 삼장법사와 트렌스젠더(?)

비디오 걸작으로 영화 팬들에게 주성치를 다시 보게 만든 작품은 다름 아닌 <서유기 그 후 500년> 시리즈이다. 이 영화는 '서유기'를 주성치 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동성서취>의 유진위가 감독을 맡고 있는데 주성치와 오랜 협의 끝에 나온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영화를 보면 우리는 손오공(주성치)를 옭아매는 주문으로 'only you'를 닭살 돋게 불러대는 삼장법사 때문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마치 '날아라 슈퍼보드'의 삼장을 떠올리게 하는 여성스러운 태도는 <서유기> 시리즈의 후편인 <선리기연>에서 웃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주성치조차 웃게 만드는 이 배우는 바로 나가영이다.

그리고 또 한명, 주성치 영화에서 잠깐 출연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는 사람은 코 후비는 여인. <주성치의 007>에서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고도 미모의 기생을 데려오라고 주성치에게 명령하는 황제에게 '왜?'라고 되물었을 때, 황제의 뒤 쪽에 황제를 외치며 귀엽게 뛰어오는 한 무리의 후궁들. 그리고 그 대열의 제일 앞에서 코를 파며 뛰어오는 털 많은 여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바로 이건인이다. 그는 항상 주성치의 영화에 잠깐 출연하는데, <소림축구>에서도 조미를 꾸며주는 미용실 주인으로 나온다. 이렇게 갑자기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긴장감을 늦추고 관객들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 모습만 보고도 웃을 수 있게 해 준다.

주성치 사단의 중요 인물로, 곡덕소나 이력지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인물들을 우선 살펴 보았다. 사실 이런 조연급 배우들을 얘기하기 전에 <소림 축구>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성치는 국내에서 흥행하기 힘든 배우였고, 비디오로도 매니아들에게만 잘 나가는 코미디 배우였다. 그러나 얼마 전 내한을 계기로, 그의 팬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주성치 본인조차 놀랄 만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한 영화 잡지에선 그의 불성실하고 변덕스러운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통역자에게 확인한 바로는 원래 스케줄 그대로 움직인 것이었다고 하는데, 누가 잘못한 것인지 원….)

하지만 주성치는 그저 웃기는 영화의 코미디 배우로 기억되어서는 안될 무엇인가가 있다. 그는 홍콩의 수많은 배우와 배우 지망생들에게서 희극적인 요소를 이끌어내는 연출자이며,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희극을 통해 드라마보다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도록 연기하고, 그를 보는 관객들에게 눈물보다 아픈 웃음을 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스타이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무엇인가가 주성치 사단들로 하여금,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같이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극장에서 주성치와 함께 주성치 사단들이 만들어내는 희극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유쾌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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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주성치를 말한다.

비장한 기운과 함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천천히 실내로 들어온다. 홍콩 느와르의 한 장면처럼 어깨엔 코트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낀 채 천천히 손을 휘저으며 한 걸음 한 걸음 폼나게 내딛는 그. 그런데, 잠깐! 어딘가 어색한 느낌에 자세히 살펴보면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은 그 혼자일 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의 다리는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있고 이마엔 땅방울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으니...

영화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이 장면, 이른바 ‘인간 슬로우 모션’이라 불리는 이것은 주성치의 첫 출세작 <도성>의 한 장면이다. 알려진 대로 <도성>은 주윤발의 <도신>을 패러디한 영화다. 1980년대 말 강호를 뒤흔든 주윤발의 카리스마를 무차별적으로 패러디한 이 영화는 오리지널을 뛰어 넘는 대성공을 거뒀으며 1990년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주성치의 아성은 이후 10년을 넘어 2002년에 이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씽예, 씽짜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홍콩 영화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주성치. 그는 누구인가.



배우 주성치 VS 감독 주성치

최근 <소림축구>의 개봉과 함께 국내에도 주성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과거 “그것도 영화냐? 그런 황당한 영화를 어떻게 보냐?”는 비웃음 속에서도 꿋꿋이(그러나 대부분은 숨어서) 주성치의 모든 것을 섭렵하던 ‘성치교도’들에겐 이런 때아닌 대접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말이다. 그 동안 국내에서의 주성치는 어두운 방안에서 비디오로나 즐기던 ‘골방의 제왕’이며 괴팍한 영화 취향을 자랑하는 소수 열혈 매니아들의 우상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와는 달리 홍콩영화계에서의 주성치는 단순한 코미디 배우 이상의 의미이다. 과거 10년간의 홍콩 박스 오피스를 잠깐만 보더라도 그의 위력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작 <도성>은 햇병아리 신인 주성치를 홍콩의 일급 스타로 만든 영화였다. 그는 같은 해 <도성>을 비롯해 <도신2> <무적행운성> 등 3편의 영화를 흥행 10위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1991년에는 <도학위룡>이, 1992년에는 <심사관>이, 그리고 93년에는 <당백호 점추향>이 1위에 오름으로써 4년 연속 흥행 1위의 기록을 세우기까지 했다. 게다가 1992년에는 <심사관> <가유희사> <녹정기> 등 영화 베스트 10의 절반인 다섯 편이 그의 영화였다. 그의 승승장구는 1990년대 내내 계속되었으며, 1999년 최고 히트작 <희극지왕>과 역대 홍콩의 흥행사를 다시 쓴 <소림축구>에 이르기까지 그의 흥행 신화는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주성치의 자기 반영적 요소

이렇게 본다면 주성치는 분명 성공한 배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는 그는 자신의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연출하는 제작자이자 감독이기도 하다. 그의 첫 감독작은 1994년 작인 <007 북경특급>. 이후 <식신>과 <주성치의 007> <희극지왕>, 그리고 최신작인 <소림축구> 등이 그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사실 그의 영화는 그가 감독이든 배우이든 그다지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웃음이 그의 특유의 몸짓과 수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저급한 코미디라는 일반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성공을 이룬 저력으로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 이를테면 무차별적인 패러디와 막가파식 유머, 매번 등장하는 그의 사단들, 만화적 상상력 역시 그가 감독이든 아니든 모든 영화를 다 ‘주성치 영화’라 부르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만약, 감독으로서의 주성치가 배우로서의 주성치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주성치에 대한 평가(당연히 재평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까지 한 번도 평가되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를 내린다는 것은 과연 유효한 일일까? 오늘 우리는 배우가 아닌 감독 주성치에 대해 가능한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한다.(만약 도중 길이 어긋나더라도 너무 노여워 마시길. 진지해 질수록 멀어지는 존재가 바로 주성치일 테니 말이다)



앞서 말한 특유의 스타일과 함께 주성치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 반영적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끊임없이 영화 내부와 외부가 교차하고 뒤섞인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불현듯 현대의 유행어가 튀어나오고 배우들이 문득 실명으로 등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007 시리즈를 패러디한 <주성치의 007>을 보자. 황제를 지키기 위한 사명감에 불타던 보룡일족(일종의 비밀첩보원) 공공발은 황제를 위해 천하일색 금조를 만나지만 오히려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조강지처 아내마저 배반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황제에게 공공발이 자신을 취하려했다고 거짓으로 알린다. 이제 공공발은 황제의 노여움을 사고 말 것인가? 그러나 잠깐! 황제의 위병들에게 체포되는 것은 공공발이 아닌 사악한 금조였으니, 경악한 금조에게 우리의 공공발은 지금까지 상황이 모두 연극이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영화는 갑자기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바뀌어 버린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내의 수상소감이 진짜 아카데미 시상처럼 이어지고 곧 ‘그녀가 어떤 연기 때문에 수상’하게 됐는지 하이라이트 장면까지 보여준다. 영화 중간 밑도 끝도 삽입되는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를 순식간에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TV CF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 ‘허구’의 ‘영화’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러한 자기 반영적 요소는 최근의 연출작에 이르면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홍콩영화계와 현실에서의 주성치 자신을 영화 속에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1999년작 <희극지왕>에서 주인공은 제목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삼류 엑스트라다. 영화 속의 그는 잠깐의 영광을 맛볼 뿐 냉정히 말해 낙오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홍콩영화계의 ‘코미디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주성치라는 배우의 위상을 아는 우리에게는 이 제목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극중 인물과 실제 상황이 절묘하게 교차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소림축구>역시 마찬가지다. 극중,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뚱보가 된 막내 사제는 씽씽에게 말한다. "사형은 여자에게 인기가 많잖아요." 깜짝 놀란 씽씽이 “누가 그래?”라 묻자, 막내는 “신문에서 봤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영화 속 인물 씽씽이 아닌(여기서의 씽씽은 걸인에 다름없으므로) 스타 주성치를 말함이다.(물론 다음 장면에서 막내는 얼굴을 부르르 흔들며 “제가 잠깐 미쳤나봐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인터네셔널 버전에는 빠져 있다.) 오맹달의 별명 ‘황금우구’역시 마찬가지다. ‘황금의 오른발’이라는 뜻 그대로 주성치의 황금의 콤비이자 오른팔 같은 오맹달의 현실에서의 지위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은 너무 황당하거나, 아니면 이런 식으로 스스로 영화임을 끊임없이 밝히기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영웅신화와 낙오자 정서

주성치는 영화 속에서 좀처럼 잘난 인물로 나온 적이 없다. 부잣집 아가씨를 꼬셔서 팔자 한번 고쳐보려는 날건달(<무적행운성>), 여자 때문에 목숨 걸고 ‘무적풍화륜’이라는 비기를 익히는 배달맨(<파괴지왕>), 시골에서 막 올라온 촌뜨기(<신정무문>),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왔어도 엑스트라 자리 하나 얻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배우(<희극지왕>)처럼 뭔가 모자라고 인생을 힘들게 사는 인물이다. <식신>이나 <홍콩마스크>, <무장원 소걸아>처럼 처음엔 잘 나갔어도 정신 차리고 새사람이 되기까지 세상의 쓴맛, 단맛을 호되게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서 무시 받고 고생을 겪는 것은 그가 못나서가 아니다.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남과 다른 뛰어난 능력을 겪고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다 온갖 환란을 다 겪고 난 후 비로소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게 되는 그. 그의 영화들은 이렇듯 철저하게 ‘영웅신화’의 구조를 띠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그의 연출작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주성치의 007>이나 <식신>의 식신 스티븐 주, <희극지왕>의 삼류 엑스트라, 그리고 <소림축구>의 주인공들을 떠올려보자. 특히 <소림축구>의 주인공들은 본디 초절정 고수였으나 속세에 묻혀 능력을 잃어버리고 사회의 낙오자처럼 날아간다. 그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아 다시 영웅의 지위를 찾는 순간은 그들이 가장 비참한 상황으로 떨어진 바로 그 순간이다.(대사형 황일비는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새파랗게 젊은 놈의 더러운 팬티까지 뒤집어쓴다. 씽씽과 사형들은 깊이 상처받고 모멸감에 절망하는 그 순간 그들은 돌아온다.)

주성치의 영화는 사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독특한 내적 세계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런데, 이 내적 세계는 항상 제작 당시의 홍콩사회의 상황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사실 그의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주성치의 영화는 <미스터 부> 시리즈로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허관문의 서민적인 코미디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허관문의 인물처럼 주성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계급이나 사회적 지위 면에서 하위에 해당되는 서민들을 연기한다. 따라서 현실세계의 관객들은 그들의 모습을 이중적으로 받아들인다. 코미디의 특성상 그들은 일탈적이고 논리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일삼지만 그들의 이미지는 사실적이고 서민적이며, 관객들과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친숙함을 갖게 한다. 결국, 주성치 영화가 홍콩 대중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는 이유는 황당한 내용과 상황이 언뜻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결코 현실에서 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성치는 작가다?

주성치의 영화는 분명 코미디이다. 그런데, 저급한 코미디라는 일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봤듯이 그의 영화에는 분명한 내적 법칙이 존재한다. 이는 왜 언제나 그의 영화들이 똑같은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영화 속 모든 것이 주성치 개인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특성은 주성치가 감독한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감독에 의한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가 연출을 맡은 영화들은 이런 요소들이 더욱 두드러질 뿐이다. 영화 전체를 걸쳐 어떤 일관된 스타일과 주제의식이 존재하고 텍스트의 중요한 의미망으로 존재하는 이가 주성치라면, 감독이든 배우이든 그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붙이는데 주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감독으로서의 주성치를 굳이 떼어놓는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요즘 갑자기 대두되고 있는 주성치에의 관심에 대해 ‘주성치는 저급한 코미디 배우가 아닌 감독이자 작가’라는 객기 어린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독으로서의 주성치는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 편 정도의 그의 연출작들에는 어느 영화보다 그의 채취가 물씬 풍기며 어느 영화보다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이다. 최근작에 이를수록 그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있다. 예전의 황당무계한 상황과 유머, 토악질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주성치는 웃음과 그만큼의 눈물로 채우고 있다.(팬티를 뒤집어쓰고 머리를 조아리던 대사형 황일비. 그의 얼굴에 떠오르던 자조 섞인 웃음을 떠올려 보라. 최근 영화 중 그처럼 인생의 비극적 정조와 감동을 가슴 아프게 담아냈던 영화가 있었던가) 인생의 반은 웃음, 그리고 반은 눈물이라 했던가. <희극지왕>과 <소림축구>에서 보이는 주성치의 모습은 마치 눈먼 소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던 <라임라이트>의 찰리 채플린이 연상된다. 주성치, 이제 그는 점점 채플린 같은 무성영화 시대 거장들의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던 세계를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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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지왕의 매력

난센스 코미디의 대명사 주성치가 컬트영화의 사원을 뚜벅뚜벅 걸어나와 대중에게 악수를 건넨다. 홍콩 최고의 희극배우이자 감독인 주성치는 그동안 한국에서 소수 마니아의 경애를 받는 대상이었지만 특수효과로 도배한 대작(?) 코미디 <소림축구>에선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닌 꽤 가공할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예전의 주성치를 좋아했던 마니아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을 두루 웃겨주는 희극배우의 자리로 그는 막 옮겨가고 있다. 주성치 영화의 숨은 팬이었던 영화평론가 김성욱이 그의 코미디 세계를 안내한다.



전철역에 설치된 텔레비전에 <소림축구>의 광고 장면이 보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멈추어 서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그 광고를 쳐다본다. 가판대에는 주성치의 사진과 기사가 실린 영화잡지와 신문이, 그리고 거리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바야흐로 월드컵을 알리는 홍보 기사와 더불어 주성치의 <소림축구>가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의 관심으로만 보자면 주성치는 이제 막 컬트적인 스타에서 대중의 스타로 변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대중적인 전시와 홍보야말로 주성치의 영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주성치, 그리고 그의 신작 <소림축구>를 둘러싼 최근 국내의 반응은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난리법석에 가까운 장면들과 수다스런 대사와는 달리 주성치의 영화는 90년대 초 정말이지 조용하게 우리를 찾아왔다. 비록 그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긴 했지만 결코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었기에, 주성치를 흠모하는 열광적인 팬들에게 그의 영화는 진정한 의미의 ‘발견’에 가까웠다. 성냥개비와 선글라스를 벗어던진 주윤발이 카지노의 ‘도신’으로 등극한 순간 주성치는 그를 모방하고 흉내내며 <도성>의 권좌에 아주 손쉽게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너무 손쉽게 홍콩영화의 영웅들을 모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흉내와 모방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주성치의 영화는 결코 독창적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주성치 영화의 독창성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모방과 흉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도성>에서 주성치가 슬로 모션으로 주윤발의 제스처를 모방하는 장면이 가져다준 쾌락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주윤발을 흉내낸다. 당시 ‘홍콩 누아르’라 불리던 비장한 홍콩영화의 분위기를 주성치는 한낱 개인의 몸짓을 통해 재연한 셈이다.

영웅적인 제스처를 모방하기

홍콩영화의 비장한 분위기가 영화적 효과의 산물이 아니라 개인기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주성치의 제스처는 과격하게 홍콩영화의 장르를 뒤집는다. 주성치는 성룡과 달리 그 자신 클론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늘 시대의 유행이자 대중의 영웅이었던 인물들, 예를 들어 레옹(<홍콩 레옹>), 짐 캐리(<홍콩 마스크>), 제임스 본드(<주성치의 007>), 터미네이터(<파괴지왕>) 등을 모방하고 흉내냈다. 그는 친근한 영화의 인물을 자신의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와 그 인물들의 제스처를 모방한다. 하지만 그 대신 인물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그런 점에서 주성치의 영화를 패러디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지적은 그의 영화가 주는 쾌락의 본질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약점도 지니고 있다. 주성치의 영화에서 모방은 카피가 아니라 카피의 카피(그래서 주성치가 재연하는 영웅은 늘 덜떨어진 인물이 된다)이며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코스프레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성치는 배우이자 또 한 명의 관객이다.

이러한 모방은 불가피하게 액션의 질을 뒤바꿔버린다. <신정무문>이나 <도학위룡> 시리즈에서 주성치가 보여주는 액션은 그 시절의 홍콩영화에 담긴 분노나 절망의 몸짓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의 액션은 허무로 가득한 실존적인 고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허영이나 과시의 발로에 가깝다. <도학위룡 2>에서 주성치는 테러의 위협이 예상되는 외국인 학교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잠입, 테러리스트들을 일망타진한다. 여기서 주성치는 타고난 능력에 근거해 특유의 과장과 허영을 선보인다. 그는 단지 여자를 꼬드기기 위해 영웅의 몸짓을 모방하고 허영을 부린다. 그러니까 주성치는 일찌감치 자신을 매력 있게 보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성치는 그런 제스처를 사용해 액션극을 완성한다. 그는 악당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테러리스트가 쏜 총알을 오른손으로 잡아낸다. <매트릭스>의 전조에 해당할 만한 이 장면의 경이로움은 그러나 순전히 거짓된 제스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재빠른 제스처가 총알을 잡아내는 액션을 정당화하는 순간 액션은 곧바로 그를 초인간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총알은 이미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그는 단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된 제스처를 취했을 뿐이다. 그는 초인이 아니라 초인의 제스처를 잠시 카피했을 뿐이다.

주성치의 익살과 매력은 이처럼 영웅 혹은 초인의 힘을 순간적인 제스처로 변형한다는 점에 있다. <신정무문>에서 주성치는 이소룡을 모방하고 있는데, 이 가당치 않은 모방은 그가 가공할 만한 파워를 오른손 주먹에 숨기고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주성치는 이소룡이 선보인 액션의 카리스마가 마치 상대방을 정권으로 가격하며 내지르는 괴성과 주먹을 부르르 떠는 액션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때문에 전설적인 영웅 이소룡이 주성치의 <신정무문>에서는 주먹대장으로 현실화되어 버린다. 그런 점에서 주성치의 영화에서 영웅은 가끔 <식신>에서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이럴 때 그러한 인물에게 가공할 만한 초인적인 능력은 타고난 것이지 결코 습득되는 법이 없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물론 대부분의 쿵푸영화들처럼 수련의 과정이 그의 영화에서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파괴지왕>에서 알 수 있듯 수련을 통해서 인물은 초인이 될 수 없다. 그는 단지 제스처를 모방하는 인간 혹은 가면을 쓴 위장된 인간으로 탈바꿈할 뿐이다. <파괴지왕>에서 사랑에 빠진 주성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오맹달에게 너무나도 진지한 태도로 쿵푸 수련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수련 과정은 단지 제스처를 모방하고 반칙의 기술(전술)을 전수받는 것에 머문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주성치는 우스꽝스런 고양이 복면을 하고 곤경에 처한 여자친구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반칙왕>의 전조에 해당할 만한 이 영화에서 그는 거울을 쳐다보며 "역시 복면의 무공이 강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이 단지 <파괴지왕>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주성치가 연기하는 영웅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늘 가면을 쓴 존재다. 그래서 그는 다소 졸린 듯한 눈으로 꿈꾸듯이 세상을 쳐다본다.

참을 수 없이 터무니없는 가벼움

영웅의 액션을 제스처로 축소시키면서 주성치는 초인적인 인물을 모방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모방과 터무니없는 액션이 90년대에 소수의 관객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영화가 극장에서 환대받기보다는 비디오 매체의 대중화와 더불어 컬트적으로 소비되어 왔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디오는 이미지의 입양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만들어낸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비디오 가게에 들러 황당무계한 주성치의 영화를 대여해, 그것을 집에서 혼자 틀어보며 낄낄거리는 것은 90년대 우리들의 삶을 지배한 소시민적인 삶의 한 풍경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급진적으로 일탈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과 맥을 같이 한다. 90년대 초에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비디오는 개인적인 영화 보기의 체험을 극대화하고, 주성치가 대중의 영웅을 흉내냄으로써 그 힘을 전취하듯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주성치를 통해 힘을 전취할 수 있는 가능성(그 단순한 표현은 물론 제스처를 흉내내는 것이다)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주성치의 영화가 가벼움을 미학의 경지로 이끌어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주성치의 영화가 터무니없는 익살과 대사(<파괴지왕>에서 격렬한 싸움 때문에 부상을 입은 주성치에게 부축하던 주변 사람들은 "빨리 택시를 타고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주성치는 그들에게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택시 한 대에 탈 수 있을까"라며 농담을 한다)로 점철되어 있을지라도 그의 영화가 가벼움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의 영화가 지닌 전복의 쾌락은 사실 제스처의 애매모호함에 숨어 있다. 게다가 주성치의 제스처는 가벼워서 웃긴 것이 아니라 너무나 진지해서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007 북경특급>에서 주성치는 몸에 박힌 총알을 빼내기 위해 <첩혈쌍웅>의 주윤발의 제스처를 모방하고 있는데, 그 순간 그는 "관운장은 바둑을 두며 화살을 빼냈지만, 나는 포르노를 보며 총알을 빼낸다"고 너스레를 떤다).

또, 액션영화를 제스처로 구성된 과장된 연극으로 재구성하면서 주성치는 늘 갑작스런 감정의 전이를 이끌어낸다. 액션에서 뮤지컬로, 뮤지컬에서 코미디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의 갑작스런 도약은 물론 터무니없어 보인다(예를 들어 유도 연습을 하던 주성치는 상대방과의 신경전을 벌이며 발의 스텝을 밟아나가는데 그 순간 그들은 갑자기 ‘차차차’를 춘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엉뚱한 행동이 아니다. 문제는 늘 관객인 우리가 그의 제스처를 충분히 읽어내지 못하거나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다. 그의 영화에는 충분히 명상적인 순간도 들어 있다. <소림축구>에서 주성치는 축구 결승전에 나서기 전 자신을 사랑한 여인이 만든 만두를 먹는다. 그 순간 그는 그녀가 흘린 눈물을 떠올리는데 그 장면의 애잔한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한 고요한 분위기도 영화의 결말부에서 그녀가 대머리로 나타나는 황당한 순간의 익살을 잠재우거나 가리지 않는다. 거기에 어떤 단절이란 없다. 그 모든 것은 그저 다양한 감정의 흐름일 뿐이다.

주성치의 국제화 프로젝트?

주성치는 <소림축구>에서 분명 이전보다 덜 제스처를 흉내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아주 근원적인 제스처를 모방하고 있다. 그건 바로 이소룡의 제스처다. 그는 마치 이소룡이 70년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쿵푸를 통해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홍콩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 목록에서 <소림축구>가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축구라는 운동 경기가 그러하듯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단합, 그것의 힘을 묘사한다. 게다가 주성치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들의 일상적인 삶에 개입한다. 그는 소림 무술을 어떻게 대중화할 것인지, 그리고 소림 무술이 얼마나 일상적인 삶에서 유용한 것인지를 설파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성치는 소림 무술을 익힌 여자가 장력으로 차를 주차시키고, 막 떠난 차 위로 회사원들이 훌훌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만족해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문제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소림축구>는 분명 주성치가 이전에 만들었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 가장 대중적인 영화에 가깝다. 그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연 그의 영화가 한국에서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대중적인 호응이야말로 그의 영화가 지닌 밀교적인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주성치의 제스처가 초래할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2002.05.21 / 김성욱(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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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검열] 홍콩산 족구 노총각 검열보고!!

2002.5.11.토요일
딴지 영진공


잔인한 4월, 어느 화창하던 날. 영등포구 번지 없는 안가에 자리잡은 영진공 수뇌부. 그 직속 공안 9과 아지트에 한 통의 첩보가 '떵그렁' 효과음과 함께 도착했다. 그 내용인즉슨,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은 사발배 세계 족구 대회를 대비해 한국족구의 내공을 진일보시킬 극비 프로젝트가 국가 중요 관계 기관장 합동 회의 형식으로 모처에서 진행되었다는 첩보였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보니, 본 공사 공안 9과는 그 극비 프로젝트가 졸라 궁금 했더랬다. 본 공사 이젠 별걸 다... 졸라 궁금해 한다. 그래서 영진공 수뇌부 직속 공안 9과 과학수사대 CSI 팀이 밀도 있게 추적해낸 결과, 베일에 싸인 홍콩청년(사실 앳된 얼굴과는 달리 벌써 나이가 40줄에 접어들었단다) 하나가 당 극비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임을 밝혀냈다.

그 이름 모를 홍콩총각은 천년 소림의 비기를 족구에 접목하는 데 성공했고 금번 사발배 세계 족구 대회를 기념할 겸, 한중친선도 할 겸 해서 비밀리 국내에 잠입, 일단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신비의 족구 기술을 전수하고는 바람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족구 기술이 얼마나 절묘하고 출중했던지 전국 예비역 2년차 족구 대표팀과 일 대 다구리로 족구경기를 벌이고도 가볍게 승리했단다. 공만 보면 발이 근지럽다는 대한민국 예비역들과의 맞짱에서도 손쉽게 이겨버린 신비의 홍콩 족구 총각.

이미 눈치 깟겠지만... 그는 바로, 지난 십 수년간 온 세상 화교동네를 황당무계, 쌈마이, 엽기지존, 절치부심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그 이름도 찬란한 희극지왕. 주.성.치.(일명 씽짜이, 씽예, 저우싱치이)였던 것이다.



그럼! 주성치, 과연 그는 누구인가?

1962년 생인 그는 우리나이로 방년 40세이다. 홍콩경찰무비 전문 배우 이수현의 <벽력선봉>에서 조연으로 영화에 데뷔했지만 우리나라에는 당시 홍콩에서 흥행기록을 세운 <도성>으로 그 빛나는 존함을 알리기 시작했다. <도성>은 당시의 유행하던 카지노무비에 코믹을 가미해 선풍을 일으킨 작품인데, 카지노 장에 입장할 때 주성치가 연출한 '슬로우 모션'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자 세계 영화계에 한 획을 긋는 대(大) 코미디언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적어도 본 우원은 그렇게 평가한다.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아님 말구...

주성치는 영화에 데뷔하기 전 몇 편의 티비 드라마(오맹달은 그의 TVB 연기생 동기며, 그 동기 중에는 양조위도 있었다고 한다)와 <340 제트기>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를 맡는 등 긍긍전전하던 연기인생을 보냈다. 이렇듯 주성치의 재치와 순발력은, 타고난 재주에다가 아마도 어린이 프로에서의 종종 통제불능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경험들에 일정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도성> 때부터 주성치 무비의 몇 가지 특징인 엽기적 상황연출, 황당무계한 이야기전개, 어처구니없는 대사, 언제나 얼굴을 디미는 패밀리들의 반복출연, 그리고 스토리 전반을 면면히 흐르는 서민적 체취 등은 시작되었던 셈이고 이게 그만의 독특한 코미디 스타일로 흐르게 되었다.





허접하다, 황당하다, 터무니없다, 말도 안 된다...가 칭찬이 되는 영화. 흔히 '모레이 터우'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장르를 만들어 낸 주성치.

그는 정형화된 이야기의 전개나 평범한 상황묘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상황은 왜곡되고 이야기의 전개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산만하기 그지없다. 또 폭력성의 수위 역시 대단히 높아, 거의 <톰과 제리> 수준의 무차별 폭력이 난무한다. 쌍코피 터지거나 멍드는 건 기본이고, 팔다리 부러지는 것도 예사다. 엽기성 또한 오바이트 정도는 귀여운 축에 속한다. 또 모든 영화를 통해서 반복되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연기는 큰 차이가 없이 일정하다.

그래도 좀 일목 요연하게 주성치 영화만의 코미디 특징을 따져 보자면...

첫째, 무엇보다 주성치 그만이 가지고 있는 묘한 캐릭터에 승부가 있다. 보통 명(名) 코미디언의 영화는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슬립스틱 재주나 독특한 재담스타일로 승부를 걸기 마련이다. 이와 달리 상황코미디의 경우는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정작 작가의 상상력이 더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주성치의 코미디는 얼핏 봐서 그의 재주가 돋보이거나 특이한 능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성치도 짐 캐리처럼 얼굴 근육의 환골탈태를 매우 많이 구사하긴 한다만 자유자재로 움직인다기보다는 도리어 가학적인, 자학적인 연출을 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즉, 고무인간같은 얼굴근육을 가졌다기보다 좀더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이 다양한 표정을 보라!


우짰든, 그것만으로 코미디배우 주성치를 설명하긴 곤란하다만 그렇다고 그의 코미디가 상황에만 의존하는, 스토리가 강한 코미디라는 것도 아니다.

홍콩에는 그의 영화를 흉내낸 작품들도 많다. 심지어 <천왕지왕 2000(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무비 되겠다)>같이 그가 직접 찬조출연하면서 도와준 작품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전혀 주성치스럽지 않다.

이렇듯이 그의 코미디는 상황에서 오는 기묘함에만, 혹은 개인기에 의존한 코미디에만 기대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무비 속에는 그 이상의 설명하기 힘든 어떤 '묘함'을 가지고 있다.

둘째, 주성치 군단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패밀리'의 팀워크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요 반복되는 재미가 쏠쏠 쌉싸름하다.

코미디의 테크니꾸 중에 반복 기법이란 게 있다. 흔히 같은 말이나 같은 행동을 여러 번 하면서 관객의 기대심리를 충족시켜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방법인데 업계에서는 이 반복이 세 번 이상되면 관객이 완전히 알아차리고 그나마 일곱 번까지는 재밌고, 여덟 번부터 열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주성치 패밀리덜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볼만하다. 참말로 이상시럽게도 말이다.

만약 오맹달과 그 일당들이 주성치의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썰렁할까. 주성치 영화 초창기의 늘 아름다운 여인으로 나오는 장민, 그녀의 라이벌 여인 오군여, 주성치의 실제 여자친구로 소문도 났던 막문위, 삼장법사 나가영, 잊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 '코딱지 디비는 미인' 이건인꺼정 호화군단의 절묘한 팀워크는 역사상 최고, 최장의 하모니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맹달과 주성치가 서로 마주보고 대사를 치는 장면을 보노라면 어떻게 저리 죽이 잘 맞을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셋째, 늘 주성치의 팬들은 요절복통의 난장판 장면보다 <서유기(월광보합, 선린기연의 연작으로 된 작품)>의 고독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장면이나, <무장원 소걸아>에서 개밥을 먹는 장면, 그리고 이번 <소림축구>에서 쓰레기 넝마를 들고 다니는 그 모습... 그런 약간은 우울하고 진지한 장면을 명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런 진지한 모습을 아주 짧게 던지고 말지만, 보는 이들은 그래서 더 가슴 따뜻하게 그의 영화를 즐기게 된다. 보충썰 풀자면 주성치는 골 때리는 괴짜라거나 정신없는 사이코 기질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마인드로 영화를 구성한다는 거고, 바로 이점에서 웃음의 묘미가 배가된다.

본 우원, 주성치의 영화들이 순전히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만 나왔다곤 보지 않는다. 홍콩코미디의 황당무계함과 특유한 몸놀림의 절묘함은 이전에도 없던 게 아니다. 특히 '허관창'의 <미스터 부>시리즈나 '대머리 마카'의 <최가박당>시리즈에서 보여준 홍콩코미디의 형식을 보노라면 분명히 주성치 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화는 아니란 걸 말해준다.

여기서 하나 더 보태기. 주성치의 진정한 맛은 그런 형식적인 테크닉보단 본 공사가 주목하고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진지한 서민의식이다. 그것이 마지막 네 번째 특징이자 핵심되겠다. 물론 그는 이제 엄청난 돈을 번, 홍콩의 재벌 급 대(大)스타다. 그러나 우리의 <도성>은 홍콩dream을 안고 중국본토에서 넘어와 살았던 평범한 촌놈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으며, 또한 홍콩의 시민들도 바로 그의 그런 모습에 즐거움과 공감대를 가지고 함께 웃고 즐기는 것이다.

참, 한가지만 더 야그 해보자. 그의 영화가 최근작으로 오면서 더더욱 강하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회의 강압적 도덕율같은 '허위 의식'들을 짭짤하게 씹어대고 있다는 거다.

<희극지왕>에서 성공한 후 장백지를 배신하려 한다든가, 또 <식신> 에서 자신을 구해준 여자가 졸라 못 생겨서 고민하는 등 사람들 밑바닥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을 살살 긁는 재미, 도덕이나 윤리 같은 거 때문에 짓눌려 있던 인간적인 혹은 이기적인 욕망을 코메디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준다. '그래도 영화는 그러면 안 돼...'그럴 것 같은데도 그는 기냥 해버린다.

김히선이나 류시웬이 현실에서 뭔 짓을 해도 화면 속 그들에게 우리가 맥을 못추는 건, 영화 속 가상현실의 룰을 우리도 지켜주기 때문이다(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만). 그러나 주성치는 그런 엄중한 불문율까지 쌩까며 개무시한다. 그런 모습은 보기에 따라서 졸라 섬뜩하다. 인간의 진짜 모습을 풀어주는 거, 그래서 그는 진짜 코미디언이 되어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번 개봉영화 <소림축구>에서도 예의 그 모습은 여전하다. 하긴 그의 마인드가 어디 가려나. 주성치가 직접 제작, 감독, 주연을 겸했고 그의 찰떡궁합콤비 오맹달, 요즘 홍콩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여배우 조미, 막문위, 장백지(그래 맞다. <파이란>의 장백지다. 그녀들의 무지막지한 변장술에 놀라지들 마시라)까지 얼굴을 비춘다.

당 영화가 기존 그의 영화와 다른 점 하나만 좀 집고 넘어가자면 영화 속에 수도 없이 난사되는 컴터특수효과들이다.

그간의 황당하고 터무니없던 개그가 당 영화에선 CG효과로 많이 대체되었다. 팬들의 입장에선 이것을 어떤 식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다. 근래 CG나 각종 특수효과로 점철된 영화를 보면서 느끼듯, 그런 특수효과가 내용과는 동떨어져 겉도는 효과라면, 비록 특수효과 자체의 실감이 헐리우드 수준의 실감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의 감상은 <용괘리>, <천사몬> 등의 어설픔과 다름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럼 <소림축구>는? 특수효과 자체의 모양새는 너무 높아진 관객의 눈썰미에 만족스럽지 못한다손 치더라도(주성치의 팬이라면 그럴리야 없겠지만서두) 그 자체가 재밌다.

예를 들어 소림사를 배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술동작을 펼치다가 곧 현대의 마천루와 도시인들로 바뀌는 장면이나, 주인공 씽씽이 엄청난 거리의 벽을 두고 공차기 연습을 하는 장면은 <진주만>식의 특수효과와는 전혀 다른 목적과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특수효과라는 것이 절대 별다른 볼거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영화자체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의 보조수단으로 철저히 복무해야 한다는 거, <소림축구>는 그 당연한 기본은 갖추고 있다 본다. 그리고 기존작품들과는 다르게 CG가 많다고 해서 예전의 씽예 영화의 플롯에서 크게 변한 것은 없으니 너무들 걱정마시라.



<소림축구>의 현란한 씨쥐 장면






잘난 영화와 못난 영화,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이 간단한 자문에 대한 본 우원 뻔한디 뻔한 멍청한 대답도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 씨바. 다만 그저 '영화는 보는 이의 것이다'라는 공염불을 금과옥조 삼아 어느 누가 어디서 뭔 지랄을 하건 자기 눈을 믿는 게 최고라는 말은 할 수 있다.

요즘 잘 나가는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 고딩 때 시내 모 비디오방에서 그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를 함께 보던 친구 놈이 '저거, 저거... 저놈들 미친놈들 아이가'하며 개거품을 물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뿐이던가. 감명 깊은 영화를 말해보래서 페럴리 부라더즈의 <메리에게 뭔가 거시기한 게 있다>라고 농삼아 가볍게 낑꿔 넣었더니 그때부터 친구덜 보는 눈에 색안경이 보태지더라.

그렇다. 주성치의 대다수 작품과 대부분의 장면들 역시, 여간해서 머리에 남겨두기 힘든 줄거리, 한도가 없는 오버와 난장판의 퍼레이드이다. 또한 범작과 졸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모 인사의 말대로 주성치의 영화는 함부로 남에게 권할 수 있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뭐, 솔직히 강요하고 싶은 생각도 엄따.

그러나 정말 별 생각 없이 실컷 웃어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고, 아주 잠깐이나마 쓸쓸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뒤돌아 씩 웃으며 내일은 좀 더 좋은 날일 거라고 희망도 다독거려주는 이웃집 노총각... 그래서 우리덜은 주성치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알게 모르게 그의 비디오가 40편 이상 나와 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절대 강요는 안 하겠다. 그러나 직접 보고 확인하는 수고가 보태지지 않는다면 이따우 디비기 기사가 뭔 소용이겄냐.

개인적으로 그에게 바라는 아주 작은 소망 하나를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씽예여, 앞으로도 더더욱 심하게 날뛰어주시게나.






딴지 영진공 전방우 검열우원
버디(<a href="mailto:yibuddy@hanmail.net">yibuddy@hanmail.net</a>)

 

 

[켕]

모아둔 주성치 관련 글 몇개 올려봅니다.

[영길]

주성치영화 어렸을 때 꽤 많이 봤었는데....... 주성치가 한때는 제 이상형이기도 했었죠.ㅋ

[mina]

그는....아직도 제 이상형 이랍니다..ㅋㅎㅎ

[도돌이표]

예전에 볼살 통통하게 귀여웠던 시절이 그리워..

[어예~~]

나의 개그 사부이죠. 정말 좋아합니다. 제일위에 주인도 같이껴있네요... 선리기연에서 이쁘게나왔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