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정말 미친 듯이 집필 작업에 몰입했다. 옛날에 이미 써놓은 게 대략 500페이지인데, 이번에 500페이지 정도를 더 채워 넣었으니, 이제 대략적인 틀은 다 짜놓은 셈이다. 남은 일은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7월 들어서는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가 않았다. 아마도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 모양이다. 하기야 3월부터 그렇게 미친 듯이 몇 달 동안 글을 썼으니 체력도 지력도 조금 떨어질 만도 하다.
책이 잘 써지지 않을 때 내가 취하는 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관련 서적을 읽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쉬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만지작거리기를 계속했다. 글이란 게 참 묘한 것이어서 재촉한다고 그냥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재촉하면 오히려 더 막히기도 한다. 그럴 때는 좀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필력이 충전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쉬는 것은 조금 따분해서 이번 기회에 청음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 있어 음악은 매우 중요하다. 그 사이 만들어놓은 자작곡으로 음반을 낼 생각도 가지고 있고, 명상과 인문학과 음악이 함께 하는 독특한 개념의 콘서트도 구상하고 있다. 그러니 잠시 쉴 때 음악 훈련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기타를 공부하거나 화성학을 공부하고픈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집필 중에는 가급적 기타를 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기타에 대한 욕구는 일어나지 않았고, 화성학은 논리적 사유를 써야 하는 것이라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그리고 화성학은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기에 그다지 많이 당기지가 않았다. 가장 많이 당겼던 것은 청음 훈련이었다. 아마도 그쪽이 제일 취약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게다가 청음 공부는 감각 훈련이고 지식, 논리 이런 것과는 제일 거리가 먼 것이라 내 뇌의 지식, 논리 영역에 휴식을 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핸드폰에 "Perfect Ear"라는 청음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쉬는 시간에 틈틈이 연습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그 사이에 상대음감은 상당히 좋아져서 이제 음정 간격에 대한 청음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 그냥 7음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반음을 포함한 12음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뿐, 3연음부터는 잘 들리지가 않고, 게다가 절대음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 활용도가 너무 낮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음감 공부를 하고픈 욕구가 일어났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은 완벽한 절대음감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고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잡는 것이다. 상대음감을 어느 정도 구축해놓았으니 기준음의 음고만 확립되면 나의 음악 내공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찾다보니 청음 훈련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들이 많았다. 사실 그 사이 나의 청음공부는 주로 앱을 통한 음정 간격 맞추기 훈련이었는데 유튜브에도 청음에 대한 훈련을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좋은 동영상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그 사이 나의 공부 방법은 매우 무식한 방법이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니 청음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냥 음정 간격 맞추기를 하기보다는 일단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내어보는 훈련, 즉 시창 훈련을 먼저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 동영상 중에는 소리를 먼저 들려주고 그 음정을 알려주는 것이 있어 그 동영상을 들으면서 청음 훈련을 했다. 소리를 들을 때 굳이 그 음정을 맞추려고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그 소리를 따라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음감이 형성된다는 설명이었다. 두뇌의 휴식을 필요로 하는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훈련법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베이스음을 훈련하는 동영상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지막한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참 편안하고 좋았다. 게다가 베이스는 음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훈련을 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영역이다. 음악을 제대로 하려면 베이스 청음 능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어 베이스 청음 훈련을 자주했다. 물론 베이스 소리를 듣고 따라하는 것만 아니라 2옥타브 청음 영상도 동시에 진행했다.
사실 나의 뇌는 선천적으로 논리적 사유 능력이나 외국어 능력 쪽으로는 많이 발달되어 있지만 예술적인 감각 쪽으로는 황무지에 가깝다. 당연히 음악적인 감각 또한 매우 무딘 편이다. 그래서 논리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화성학이나 어려운 재즈 코드 등은 그런대로 쉽게 터득할 수 있었지만 감각적 예민함을 요구하는 음정이나 리듬은 퍼부은 시간에 비해 효과가 미미한 편이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니 배우는 속도는 더욱 느리다.
그렇지만 나는 후천적인 노력을 믿는 사람이고,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비록 음악에 재능은 없지만 관심과 열정을 지니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음악적 내공이 지금보다는 분명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사실 처음 재즈와 보사노바를 배울 때 보사노바의 싱코페이션이 어려워서 얼마나 헤맸던가? 그렇지만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음정에 대한 감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노력했더니 내가 느끼기에도 음감이 확실히 좋아졌다. 특히 가장 중요한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기준 음고에 대한 감각이 좋아졌다. 물론 아직은 초보 수준이라 처음 듣는 복잡한 노래를 몇 번 듣고 바로 악보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노래들은 머릿속으로 찬찬히 따져보면 그 음정을 알아낸다. 옛날에는 기타를 쳐서 직접 그 소리를 듣지 않으면 음정을 알지 못했는데, 상당한 진보를 한 것이다.
한 달 가까이 열심히 했던 청음 훈련을 마무리 짓는 차원에서 내가 좋아하는 재즈 스탠다드 "Autumn Leaves"의 콘트라베이스 백킹 트랙을 청음하면서 악보로 옮겨보았다. 백킹트랙은 32마디를 총 8번 돌리지만 다섯 번째부터는 앞의 것을 반복하는 것이라 네 번째까지만 채보하면 된다. 경과음까지 다 하려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그냥 주 멜로디만 옮겼다. 고음 음정이 없이 베이스만 있으니 청음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몇 군데는 너무 낮아서 그런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 듣게 된 것이 나로서는 실로 대견하다.^^
https://youtu.be/E4IVIaXE_fU
첫댓글 청음감각, 청음훈련, 청음 프로그램...
경장히 낯선 용어들이지만 긴 시간 (뭔가?)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장님, 더운 여름 잘 지내시죠?^^
@너른돌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더위 기세가 좀 누그러질 싯점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 입니다만 무탈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열심히 설명과 사진으로 올려주셔도 당최 기본이없는 사람이라 ㅎ
덜자란콩나물 쪼매 더 자란콩나물 ㅋ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다 잘 하시면 다른이들 다 굶어서 죽어요
그래서 쪼매는 못하시는것도 있어야지요 남들도 좀 살게요 ㅎㅎ
수고많으셨네요 능력주신것으로 세상에 나눔도 하시고 즐거운 매일들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