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내 주변의 고등학교 동기나 대학 친구 및 직장 동료들의 자녀가 결혼하는 것을 수없이 지켜보았는데, 이제 저도 드디어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되었네요.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결혼식을 무사히 잘 마치고 애들은 지금 신혼여행 중에 있습니다.
저희집 둘째 아들 주홍이는 갓난아기 때부터 순둥이여서 잘 울지를 않아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무척이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고 10개월이 되기 전부터 걷기 시작하더니 돌이 되었을 무렵에는 거의 뛰어다닐 정도였지요.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개구쟁이로서 장난도 많이 쳤지만, 따스한 마음씨를 지닌 착한 아이였지요.
큰 아들 태홍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데 비해 주홍이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지요. 수학 성적은 늘 100점 만점에 2-30점 정도, 어쩌다 40점이라도 받으면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저는 주홍이가 형보다 공부를 못한다고 꾸중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홍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홍이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엄마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엄마 옆에서 흙을 만지작거리면서 무언가를 만들기를 좋아하고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20여년 전 제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UCLA에서 해외연구를 할 때 아이들도 아빠를 따라 미국에 왔다가 2년간을 미국에서 지냈지요. 귀국했을 때 주홍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아내는 주홍이가 공부에는 소질이 없지만 미술에는 소질이 있으니 선화예중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냥 입시는 어림도 없지만 마침 해외에서 2년을 체류했으니 특례 입학이 가능하고, 특례 입학은 정원 외이니 혹시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운 좋게 선화예중에 들어가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진짜 거의 꼴찌였지요.
선화 예고에 들어간 뒤에도 성적이 중하위권이었는데, 2학년이 되면서부터 자기 진로에 대한 방향을 잡고 독서와 사색을 많이 하더군요. 주홍이는 고2때 자기는 실기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홍대 디자인학과는 가지 못해도 창의력과 사고력이 있기 때문에 서울대 디자인학과는 갈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때, 저는 웃으면서 아빠는 네가 어느 대학을 가도 상관없고 그냥 네가 자기 성장을 위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기특할 뿐이라고 말했지요.
아이에게 입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기에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주홍이는 전국에서 겨우 12명을 뽑는 서울대 디자인학과의 수시 시험에서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을 하여 저를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선화예고의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지요. 대학에 입학한 뒤에 주홍이가 하는 말, 다른 집 부모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기대를 걸고 들볶았지만, 우리집 부모는 그냥 묵묵히 기다려주셨고, 자기는 그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대학원에 들어간 뒤에도 자신의 전공 영역을 더 깊게 파고들더니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젠틀 몬스터라는 안경 회사의 매장 설치디자인 부서에 들어가서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했고,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일을 열심히 하더군요. 그러다 작년에 옛날부터 잘 알던 어느 조그만 벤처기업 사장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고 지금은 그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사업을 하려면 작은 기업부터 출발해야 할 텐데 젠틀 몬스터는 이미 다 성장한 유명 기업이라 자신은 자그마한 무명 회사에서 차근차근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주홍이는 현재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홍이는 이번 결혼에 대해 모든 것을 자신이 알아서 다 할 테니 나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결혼식장 예약에서 준비, 그리고 신혼집 계약과 살림 도구 장만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주홍이와 예비 며느리가 알아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비 며느리는 주홍이의 같은 과 후배로서 지금은 주홍이가 다니던 젠틀 몬스터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결혼 준비에 관련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둘의 모습을 보니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아무튼, 처음 자식의 혼사를 맞이하다보니 이런 저런 감정이 많이 드는데, 우선 큰 탈 없이 훌륭하게 잘 성장해준 자식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홍이만이 아니라 세 아들이 모두 잘 성장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 최선을 다한 아내 덕분이지요. 공교롭게도 오늘은 아내와 제가 결혼한 지 36년 되는 결혼기념일입니다. 아내가 없었으면 아이도 없을 것이니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돌이켜 보면 제 아내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정말 남달랐습니다. 예술가로서 세 아들을 키운다고 하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 아내는 보통의 전업주부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 아낌없는 사랑과 헌신을 먹고 저희 아이들이 모두 무럭무럭 잘 성장했지요. 아내 덕분에 저는 집 안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명상가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에게 정말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
2023년 9월 13일, 36번째 결혼기념일에
첫댓글 저희집 둘째 아들 결혼식에 축하와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들 셋 이름 중에 주홍이란 이름이 특이하기도 했지만 너른돌님이 각별히 많은 사랑을 주신듯 기억합니다.
참 복 받으셨네요.
요즘 아이들의 좋은 점만 갖고 있는듯한 주홍이 부부의 앞날도 부모님 닮아 잘 살아나가리라 싶어요.
두 분 부부 결혼기념일도 축하드립니다!
네, 저도 주홍이를 특히 많이 귀여워했지요. 그래서 애가 잘 자란 것 같아요. 아무튼 축하의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정말 우리집도 비스무르한 작은녀석이 있어서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고있네요 ㅎ
결혼식을 멋진분과 만나서 했군요 저희는 늘 관심도 없이 나이가 꽤 먹었어요
영문과 1학년에 다니다가 자퇴하고 미술쪽으로간 엉뚱녀석이죠 ㅎ
우리는 홍대산디과 특차로합격하고 지 아버지한테 꾸지람들은 ㅎ
남자가 갈곳이 아니라고 육사를 보내길 꿈꾸던사람이라
고2때부터 열심이더니 수능도 잘 나오고 그러나 언제 또 어디로 튈지모르는 녀석이라 ㅋ
영국왕립대학원을 국비장학생으로 간다더니 어느날 베낭메고 접는자전거사서 외국의 이곳저곳을 7개월간 다니더니
영화를 해봐야겠다고 미술보다 영화가 땡긴다고 한예종 영화제작과정을 들어가서 학비도 벌고한 엉뚱녀석
터널과 부산행이 작은녀석이아니면 나오지못할 영화 터널은 작은녀석이쓴시나리오 지금은 미국영화사와 열심히작업중
주위의 좋은소개와 좋은직장의 아가씨들 다 마다하고 과연 누가올지 늘 궁금한 본인 ㅋ
오늘 모처럼 시간내서 사오모 글들을 다 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지켜만 봐주면 잘 자라는것같아요
둘째 아드님의 결혼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