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연약함과 쓸모없음을 진심으로 시인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의 본성은 스스로 능력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내가 다니던 초대형 교회에서 싸움이 났었다. 수천 명, 수만 명 앞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노래하고 연설하는 목사는 거의 신적 존재였다. 여성 신도들 중에는 그 미남 목사를 우상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목사는 인간적으로도 모든 자격을 갖추었다고 했다. 그는 국내 최고 명문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사가 이끄는 그 교회로 수십억, 수백억이 헌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그 목사는 평양으로 가서 북의 지도자까지 굽신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돈의 힘이었다.
영화 '할렐루야' 한 장면
그 목사를 수십 명이 옆에서 경호하듯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와 한번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사람이고 같은 시대를 살아왔는데도 뭔가 편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의 말이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의 주위에서 풍겨나오는 건 성공에서 오는 인위적인 권위라고 할까. 수만 명의 박수에 계속 취하다 보면 인간은 ‘마네킹 우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시련이 다가왔다. 그의 박사학위가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신도가 나타났다. 그 신도는 미국의 명문대학교에서 힘든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었다. 목사는 자신의 논문 표절을 철저히 부인했다. 그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교회 신도들이 목사파와 반대파로 갈리어 심한 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양측의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고 화해의 길을 모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먼저 목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전과는 달리 둘만 얘기할 때 목사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줬다. “저도 가난해서 그렇지 학비만 있었으면 서울대학교를 들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논문을 쓸 때 다른 사람이 쓴 걸 좀 인용하면 어떻습니까? 우리 시대 모두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나는 그의 말에 동감하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성직자에게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나 박사 학위 논문이 뭐가 문제겠습니까? 중요한 건 본질 아닐까요? 억지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설교 때 공개석상에서 훌훌 털어버리면 어떻겠습니까?”
나의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의 부인이 내게 대답을 보내왔다. 체면을 존중하는 남편의 기질상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그를 반대하는 반대파의 수장인 장로를 만났다.
“목사가 너무 교만했어요. 그렇게 잘났고 성공을 자랑하면 나도 그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군대 가서 하사관이 됐어요. 뒤늦게 군대에서 변두리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입니다. 군복을 입고 중학교 앞에 가서 거기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들어갔었죠. 그렇게 공부해서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국회의원도 되고 당도 창설한 경력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허세를 부리는 목사를 나는 인정할 수 없어요.”
그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교회의 분열은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자존심과 체면의 대결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시다가 하늘나라에 가면 어떻게 하려고 해요? 목사만 괴롭히다가 올라왔다고 보고하려고 그럽니까?”
“아니죠. 교만한 목사를 잘 혼내줬다고 하나님한테 상을 받을 겁니다. 그 상으로 벌써 손자도 태어났어요.” 논문이나 학교 졸업 문제는 표면적인 사유에 불과했다. 이미 그들 사이는 마음의 끈이 오래 전에 끊겨버린 것 같았다. 그들은 아직 자아가 가득한 사람들 같았다.
자신의 연약함과 쓸모없음을 진심으로 시인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의 본성은 스스로 능력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체면을 생각하고 자존심 싸움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을 보고 하나님은 위에서 뭐라고 말씀하실까? 이렇게 말하지는 않으실까?
‘결코 사람 앞에서 체면이 깎일까봐 두려워하지 말라[.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라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